퇴마록 말세편 5권 1화 – 묵시록의 재현 1 : 두 괴인과의 싸움
두 괴인과의 싸움
한편, 지하실 내의 상황은 더욱 급박해지고 있었다. 박 신부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아하스 페르츠를 막아 내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현암도 월향검을 휘두르며 고반다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 으나 그것은 이만저만한 무리가 아니었다. 공력을 쓸 수 없는 탓 에 눈썰미와 검법의 조예만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고반다 같은 괴물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월향검으로도 고반다의 오라 는 뚫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현암은 악착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 었다. 도망만 다닌다면 고반다가 다른 사람들을 덮칠 것이 분명 하기에.
두 사람 모두 필사적으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도움을 줄 만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 해도 아하스 페르츠의 주술과 박 신부의 오라가 워낙 강해서 승희나 백호 등은 발을 동동 구를 뿐 감히 그 근처로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아직 멀었나요?”
승희의 말과 동시에, 로파무드가 간디바의 힘을 빌려 아스트 라의 빛줄기를 내쏘았다. 그러자 무너진 돌무더기가 우르릉 소 리를 내며 흔들렸고 이내 돌들이 굴러 내렸지만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로파무드가 다시 서둘러서 아스트라를 외우는 순간, 승 희의 비명 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악!”
고반다의 손이 현암의 몸을 스친 것이다. 정통으로 맞지 않고 스친 것인데도 현암의 옷이 찢어지고 할퀸 자국에서 금방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럼에도 현암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 틈을 타 고반다의 손목을 월향검으로 후려쳤다. 그러나 월향검은 그 강철 같은 오라에 튕겨 나가 버렸고 그 반탄력으로 현암마저 넘 어지고 말았다.
고반다가 현암을 밟아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사납게 달려드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의외의 사태에 고반다가 잠 시 움찔하고 멈추어 섰다. 그 앞에 선 사람은 키건이었다.
“키건?”
승희가 의아해하며 중얼거리는 순간, 키건은 현암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월향검이 가까스로 키건의 칼을 튕겨 내는 동안 현암은 몸을 굴려 칼에 맞지 않았다.
키건은 다시 현암을 향해 칼을 휘둘러 댔다.
그때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와 절망적인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극도의 힘을 가한 박 신부의 오라는 이제 연녹색에서 맑 은 녹색으로, 그러다가 거의 투명하게 바뀌었다. 아하스 페르츠 의 몸에서도 무서운 기운이 휘몰아쳤지만, 박 신부의 오라를 그 리 쉽게 뚫을 수는 없었다.
언뜻 보기에 두 사람은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듯했으나, 둘 다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아하스 페르츠도 박 신부가 여간이 아님을 알았기에 자신의 모 든 주술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렇지만 박 신부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박 신부 역시 전력을 다하는 탓에 몸을 뺄 수 없었다.
“너………! 이 치사한 놈아!”
승희의 욕설에도 키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희는 무척 화가 난 탓에 박 신부의 당부도 잊어버리고 염력을 발동하여 키건의 몸을 찔렀다. 키건도 보통은 넘는 자라서 염력에 그리 쉽게 당하 지는 않았으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승희가 무자비하게 통각 신경을 찔러 대자 상당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도 키건은 칼을 휘둘렀다. 이번엔 승희는 먼지와 잡동사니에 염력을 사용하여 마구 키건에게 집어 던졌다. 백호도 가만히 볼 수 없는 듯, 키건에게 달려가면서 옆차기를 했다.
키건은 눈이 먼데다 승희가 정신을 혼란시켜서 그런지 백호의 옆차기에 턱을 얻어맞고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키건은 화가 나 서승희가 있음 직한 곳에 칼을 휘둘렀지만 그녀를 맞히기엔 역 부족이었다. 백호와 승희 두 사람은 힘을 합해 간신히 키건을 막 아냈으나 이제는 그들도 몸을 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에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와 꼼짝도 하지 않고 대치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박 신부는 기도력이 상승되면서 남에게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걸거나 접촉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수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하스 페르츠와 오랜 시간 접촉하면서 그의 본 질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아하스 페르츠 같은 자는 투시가 통하지도 않고 마음도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내뿜는 기운에 감추어진 그의 본성 이라고 할 어떤 느낌을 박 신부는 놓치지 않았다.
‘그랬구나. 아마도…………….’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에 대해 뭔가 추측할 즈음, 약간의 동요를 일으켰다.
그때 아하스 페르츠가 박 신부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 왔다. 물론 둘의 이야기는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것이니만큼 눈 깜짝할 정도의 굉장한 속도로 전달되었다.
버티기 힘들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베드로의 후예여?
박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하스 페르츠와 대치하는 것은 힘겨웠지만 그 때문에 동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하스 페르츠가 또다시 말을 전해 왔다.
타보트도 소용없고, 네가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제 곧 너희 모두 는 끝장이야. 하지만…………… 내 부하가 된다면 한 번 눈감아 줄 수도 있지.
왜 그런 소리를 하오?
박신부의 질문에 아하스 페르츠가 대답했다.
시몬의 복수가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후예가 시몬의 후예에게 무릎을 꿇는다면……. 하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덤덤한 표정으로 박 신부가 아하스 페르츠에게 말했다.
나는 파문당한 신세이고 성 베드로의 후예를 자처할 수도 없소. 그리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박 신부가 이내 덧붙였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련하군.
내가? 뭔가 착각하는군. 죽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다. 네가 나를 당할 수 있을 것 같나?
그 말에 박 신부가 태도를 바꾸어 정중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해 내고 못 당해 내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껏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단지 근본적으로 슬프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요.
슬프다니? 곧 죽을 처지가 된 당신 신세가 슬픈가?
나, 그리고 우리는 솔직히 당신을 당해 낼 수 없소. 그러나 당신은 절 대천하무적이 아니오. 인간들 중에는 분명 당신을 상대할 자가 있소. 무슨 헛소리냐? 고반다와 바이올렛은 조만간 내 손에 모두 없어질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방해할 자가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에 필적할 만한 두 사람이 고반다와 바이올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 무런 내색하지 않고 박 신부는 계속 말했다.
그 둘말고라도 당신이 절대 당해 낼 수 없는 자가 있소. 반드시.
충동질하려는 수작은 버려.
그럴 뜻은 없소.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생각이오.
별안간 아하스 페르츠가 몹시 화를 내며 뿜어내는 기운의 강도를 높였다.
그놈이 누구냐?
돌연 아하스 페르츠가 냉소를 섞어 말을 이었다.
해밀튼 말인가? 그건 이제껏 내가 수없이 바꾸어 썼던 가면 중 하나 일 뿐이야. 그는 내 안에 웅크리고 내가 나타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바보 에 불과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영원히 나타나지 못할 거야.
박신부가 천천히 되받았다.
그는 당신의 가면이 아니오. 그는 당신과는 다른 인격과 사고를 지닌 사람이오. 당신은 그와 떨어질 수 없소. 아무리 당신이 천하무적이고 아무도 당신을 죽일 수 없다지만 당신은 그를 어쩌지 못하오. 그러나…….
잠시 박 신부는 생각을 가다듬다가 이윽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가 아니오.
그럼 누구냐?
아하스 페르츠가 묻자 박 신부는 조용히 대꾸했다.
바로 당신이오.
헛소리!
헛소리가 아니오. 물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 당신 이야기를 들은 바 있소. 그리고 당신을 악마나 다름없는 잔학한 인간이라 여겼소. 하지 만 당신을 만나서 접하고 보니 당신은 선량한 본성을 아주 잃은 건 아니 더군. 그리고 당신은 속고 있소. 몇천 년 동안이나 말이오. 그래서 가련 하다 한 거요.
미쳤군!
아하스 페르츠가 코웃음을 치자 박 신부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 입장이 된다면 누구나 괴로울 것이오. 이해할 수 있소. 하지 만 당신은 생각을 고쳐야 하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반신반의했지 만…………… 당신을 만나 보니 확실히 알겠소. 당신이 죽지 않는 몸이 된 것 은 절대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 때문이 아니오!
이제 그만 닥쳐!
아하스 페르츠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손을 휘저었다. 박 신부는 오라 막에 저항하기 힘든 무서운 힘이 부딪쳐 오는 것을 느꼈 다. 곧이어 박 신부는 오라 막으로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라 막째로 뒤로 붕 떠서 넘어질 뻔했다.
급히 박 신부는 오라 구체와 비슷한 오라를 몇 줄기 내뻗었다. 그 오라 줄은 마치 고무줄처럼 아하스 페르츠의 몸 주위 허공에 못 박힌 채 박 신부를 지탱해 주었다.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 의 앞으로 되돌아왔다. 아하스 페르츠가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떴 다.
이런 술수는 비록 기도력이 엄청나게 증가한 박 신부라 하지 만 사력을 다해야 간신히 쓸 수 있는 것이라 박 신부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박 신부가 다시 말을 전했다.
나는 당신에게 질 수 없소. 져서는 안 되오. 우리의 목숨 때문만이 아 니라, 당신에게 진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오.
당해 내지 못할 것 같으니까 마구 혀를 놀리는군. 내가 그따위 언변 에 넘어갈 것 같으냐?
당신이 한을 품은 것도 이해가 가오. 그리고 이천 년 동안이나 그 한 을 쌓아 왔으니 성격이 변하고 인격이 분열된 것도 이해할 수 있소. 그러나 당신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소.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남을 저주 하여 이런 지경에 빠뜨릴 분이 아니오.
대뜸 아하스 페르츠가 악을 썼다. 물론 마음속으로 지른 소리였지만 박 신부는 강한 주술적 타격을 받았다. 박 신부의 오라 줄이 휘청할 정도였다.
나는 직접 그 말을 들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당신의 집 앞에서 넘어지신 것은 알고 있소. 그때 당신은 예수를 비웃었다고 전해지오. 정말 그랬소?
옛이야기를 끄집어내자 감정 없는 아하스 페르츠의 얼굴이 놀 랍게도 붉게 격동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일이야말로 아하스 페르츠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하스 페르츠는 자신도 모르게 고대 히브리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박 신부는 성서 연구를 하느라 히브리어를 약간 배운 적이 있어 그 말이 비 웃는 저주의 말임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신이 그 말을 그리스도께 했소?
그러자 아하스 페르츠가 무섭게 분노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에는 불빛 같은 것이 번쩍였다. 돌연 내뿜는 그 눈빛은 주변을 비출 정도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그렇다! 그리고 나는 또 할 것이다! 이번에는 그자를 내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말이다!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박 신부가 물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말세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오?
그렇다!
박신부는 마치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의 표정, 과거의 닥터 박 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 신부의 진지한 표정 때문인지, 과거 에 대한 격정 때문인지 아하스 페르츠 역시 자신도 모르게 박신 부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두 사람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
당신이 그 말을 한 다음 그리스도께서는 어쩌셨소?
로마 병사 한 명이 다른 자를 붙들어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는 다시 골고다의 언덕으로 걸어갔다. 그때, 그때 나는 들었다. 그가 걸어가면서 남긴 저주의 목소리를…………!
당신은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저주의 말을 들었소?
박신부가 외쳤지만 아하스 페르츠는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게 너냐, 아니면 나냐?
내가 없었으니 묻는 거요.
그 말에 아하스 페르츠는 크게 웃으며 외쳤다.
그래?
그러면서 아하스 페르츠는 분노에 가득 찬 태도로 히브리어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박 신부에게로 전달했다. 소리를 내어 읊지 않았음에도 한 음절을 읊을 때마다 벽과 천장이 우르릉거리며 울렸다. 말로 전달한 것이 아니라서 박 신부는 그 말의 의미 까지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의 뜻은 이러했다.
가련한 자여, 저주받은 자여.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헤매며 기다리리라………………
아하스 페르츠는 말을 마치고는 무섭게 웃어 젖혔다. 그러고 는 다시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박 신부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 었다.
한 글자도 잊을 수 없다. 이 말을 나는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 로 죽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어. 이것이 바로 너희가 말하는 세상을 위 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는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위 선자였다!
그러나 박 신부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너희의 예수는 무척이나 성질이 급한 자였지. 입으로는 원수를 사랑 하고,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라고 하면서도, 무화과나무가 열매 를 맺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나무를 말라 죽게 만든 자였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래도 박 신부는 침착하게 되받았다.
그렇지 않소.
흥! 그렇지 않다고?
박신부는 또렷하게 대꾸했다.
그때 그 자리는 분명 당신 집 앞이었지만 그곳에는 가야바의 사주를 받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비웃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 소.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자들은 모두 내버려 두고 왜 유독 당신만을 저주하셨겠소? 그것을 생각해 보셨소?
아하스 페르츠는 뜻밖인 듯,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박 신부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 조금 비웃었지만, 이후 로마 병사 하나 는 그를 조롱하여 십자가 위에 비웃음의 꼬리표를 달았고 다른 자는 그 가 목이 마르다고 할 때 물이 아닌 식초를 주었소. 그러면 그자들도 당 신 같은 경우가 되었을까요?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의 재판을 받을 때,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살리라고 소리친 수많은 군중들은 어 떻소? 그들도 모두 저주를 받았소?
그러자 아하스 페르츠는 힘겹게 박 신부의 말을 부정하듯 외쳤다.
그것은 그가 꾸민 연극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모욕 은 참아 넘긴 것이지만, 내가 준 모욕에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저주를 내린 것이다!
그 부정의 말을 박 신부는 단호하게 받아쳤다.
이것은 내 신앙과 믿음의 문제이기도 하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외람되다 여기지 않소. 오히려 그분도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할 줄 아는, 우리와 같 은 인간이었다는 게 자랑스럽소. 그러나 그분께서 당신을 모욕하였다고 이렇게 엄청난 세월 동안 한 인간을 저주하였다고는 결코 믿을 수 없 소. 그는 용서하고 또 용서하여 일곱 번, 아니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 실 분이시지, 영원히 용서해 주시지 않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분이 아니오!
논리 정연한 박 신부의 말에 아하스 페르츠가 악을 썼다.
하지만 현실이 그랬어!
당신은 그리스도의 말을 한마디도 잊거나 틀리지 않게 기억하고 있다고 장담하시오?
나는 바보가 아니야!
그렇다면 그 목소리가 그리스도께서 내신 것이 틀림없소?
그 음성을 기억한다. 틀림없이 그의 목소리였다! 당시에 나는 믿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나중에 내가 정말 늙지 않게 되자 사람 들은 그런 이야기를 퍼뜨렸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이후… 그 이후에 내가 겪은 일들이 어떤 것인 줄 아느 냐?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보고 도망치듯 피했고, 숨어 버렸다! 저주받은 자라고 하면서 말이다!
박신부는 침착하게 말했다. 박 신부의 말투는 그야말로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같이 차분하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하였소? 자신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정확히 언제 알았소? 아니, 언제 믿게 되었소?
예수가 죽고 십 년 이상이 지나서다!
십 년이라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오. 나이가 조금 들었어도 늙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많이 있소. 좋소. 그런데 당신은 시몬의 제자라고 했소. 당신은 왜 시몬을 찾게 되었소?
나는 걱정 때문에 초조해져서, 저주를 풀기 위해 가장 강력한 술법을 지닌 사람을 찾았다.
그때는 아직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도 살아 있었을 텐데, 당신은 왜 그 사도들을 찾아가지 않았소?
그자들은 나에게 저주를 내린 예수의 제자들인데, 왜 내가 그들을 찾아간단 말인가!
그 말에 박 신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탄식했다.
당신은…… 너무도 잘못 알고 있구려, 좌우간 좋소. 그러면 시몬을 만난 것은 언제?
시몬을 찾아내기까지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시몬을 만났을 때는 그가 거의 폐인이 된 뒤였다.
베드로와 로마에서 대결한 이후에 만난 것이오?
그렇다! 시몬은 전신의 뼈가 부스러져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사 람이 되었다. 그 한 사람만이, 나를 제대로 된 눈길로 보아 주었다. 그 한 사람만이 나를 저주받은 자라고 피하지 않았다. 그만이 ……………….
아하스 페르츠의 말은 박 신부의 말에 의해 중단되었다.
당신은 속았소. 바로 그 시몬에게 속은 것이오.
하지만 아하스 페르츠는 박 신부의 말을 무시했다.
한편, 키건이 끼어든 틈을 타서 고반다가 마침내 현암의 멱살 을 잡아 들어 올렸다. 현암은 준후와 마찬가지로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지독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키건이 고반다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이제 보니 키 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반쯤 미쳐버려 아무나 마구 잡이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키건이 덤벼들자고반다는 현암을 돌벽에 패대기쳐 던지고 키 건에게 손을 뻗었다. 키건은 때마침 승희의 염력을 간신히 버티 며 칼을 휘두르던 중인데 고반다의 힘이 흘러 들어와 이중의 타 격을 받았다. 키건의 거구가 축 늘어지자 고반다는 다시 승희와 백호에게 달려들려 했다.
로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돌벽을 무너뜨리려다 말고 몸을 돌려 연신 고반다를 향해 간디바의 시위를 튕겼다. 고 반다의 몸은 펑펑 소리를 내며 세 번이나 불길에 휩싸였지만 그 는 끄떡도 하지 않고 외쳤다.
“아스트라? 너는 누구냐?”
“바바지 님의 원수!”
로파무드는 비로소 억눌러 왔던 성질이 폭발한 듯, 인도어로 저주의 말을 외치면서 다시 간디바의 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는 검은 기운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면서 고반다의 몸 주위를 소 용돌이처럼 무섭게 휘감아 돌았지만 여전히 고반다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하는 듯했다.
고반다는 로파무드의 고함을 듣고 눈을 빛냈다.
“바바지의 제자냐? 그렇다면 그냥 둘 수 없지.”
고반다는 현암을 내버려 두고 로파무드를 향해 음산한 눈빛을 흘리며 다가왔다. 로파무드는 강력한 아스트라가 별로 효과가 없자 당황하여 계속 아스트라를 쏘아 붙였으나 고반다는 한 발 한발 다가왔다.
그때였다. 아이들과 황달지 교수를 밀어 넣었던 문이 덜컹 열 리면서 준호와 아라, 수아가 달려 나왔다. 그리고 황달지 교수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뒤를 따라 나왔다. 황 교수는 아이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모 양이었다.
아라가 로파무드의 뒤로 가면서 그녀의 등에 손을 얹자 준호 는 수아를 안고 로파무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급한 상황이 라 예전에 준후와 연습한 퇴마합진의 방법을 응용해 보려는 것 이었다.
준호와 아라, 수아의 힘을 받는 순간 로파무드가 들고 있던 간디바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왔다. 연이어 발사되는 아스트라는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그 아스트라를 계속 맞은고반다는 주춤거리면서 연신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쓰러진 현암을 마하딥이 일으켜 세웠다. 현암은 무 서운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지만 마하딥이 부축하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고반다의 술수가 하도 지독해서 몸이 저 릿저릿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단순히 충격을 준 것이 아니라 무슨 저주 같은 것을 건 듯했다. 그때 준후가 힘겹게 현암 쪽으로 기어왔다. 준후도 현암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고통에 찬 준후가 더듬거리며 현암에게 말했 다.
“이건・・・・・・ 속박술…………. 저자를 쓰러뜨려야…………….”
현암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박 신부는 간 신히 버티고 있었고, 승희와 백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었 다. 로파무드와 아이들이 고반다와 평수를 이루고는 있지만, 고 반다에게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기운이 빠지면 그 쪽도 끝장이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포자기식으로 중얼거리던 현암은 문득, 아까 준후가 무슨 말을 했기에 잠시나마 고반다를 움직였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준후가 고반다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바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왔다. 연이어 발사되는 아스트라는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그 아스트라를 계속 맞은고반다는 주춤거리면서 연신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쓰러진 현암을 마하딥이 일으켜 세웠다. 현암은 무 서운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지만 마하딥이 부축하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고반다의 술수가 하도 지독해서 몸이 저 릿저릿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단순히 충격을 준 것이 아니라 무슨 저주 같은 것을 건 듯했다. 그때 준후가 힘겹게 현암 쪽으로 기어왔다. 준후도 현암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고통에 찬 준후가 더듬거리며 현암에게 말했 다.
“이건・・・・・・ 속박술…………. 저자를 쓰러뜨려야…………….”
현암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박 신부는 간 신히 버티고 있었고, 승희와 백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었 다. 로파무드와 아이들이 고반다와 평수를 이루고는 있지만, 고 반다에게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기운이 빠지면 그 쪽도 끝장이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포자기식으로 중얼거리던 현암은 문득, 아까 준후가 무슨 말을 했기에 잠시나마 고반다를 움직였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준후가 고반다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반다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세였고 서늘한 살기가 지하실 안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키건이나 아하스 페 르츠조차도 한순간 그 살기에 놀라 몸을 움찔했다.
고반다는 무서운 은빛 광채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놀라면서 양손을 휘저어 월향검을 막으려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로파 무드가 연속으로 아스트라를 세 번 발사했다. 무리하게 힘을 쓴 탓에 아라와 준호는 세 번째 아스트라가 쏘아지는 순간 비명을 지르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온몸의 힘이 모조리 탈진되는 것 같아서였다.
로파무드와 아이들이 만든 퇴마진의 힘을 모조리 모아 날린 세 발의 아스트라가 고반다에게 적중되자 고반다는 비틀거리다 가 넘어졌다. 그 틈을 타서 월향검은 고반다의 어깨 부위, 그것 도로파무드의 아스트라가 맞혔던 부위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아아!!!”
고반다가 길게 뜻 모를 고함을 질렀다. 기이하게도 그 고함에 는 고통뿐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기쁨의 탄성 같은 울림이 있었 다.
“저자가……………?”
로파무드와 아이들, 현암까지도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고반다 를 바라보았다. 고반다의 오라 막은 그 일부가 월향검에 의해 뚫 린 상태였고,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반다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박 신부와 대치하던 아하스 페르츠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바보들아!”
아하스 페르츠가 박 신부에게 말했다. 박 신부는 지금 그야말 로 모든 힘을 다해서 그에게 매달리는 참이라 피를 토하면 토했 지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바보 같은 네놈들 때문에 ……………..”
그러나 아하스 페르츠가 무슨 소리를 하든 관심 없다는 듯이 로파무드는 고반다 어깨의 오라가 걷힌 것을 보고 급히 없는 힘 을 끌어올려서 아스트라를 내쏘려 했다.
그때 고반다가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뿜으며 소리를 냈다.
“오오오.”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소리였지만 역시 그 소리에는 울림 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살아 있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 을 흔들어 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로파무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다 요가(Nada Yoga)!* 귀를 막아!”
* 요가에는 많은 수행 방법이 있는데 그중 존재의 소리를 통한 요가 또는 정교한 음향에 집중하는 수련을 나다 요가라고 한다(반면 육체나 생리 조절을 중시하는 요가는 ‘하타요가’라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요가 수행법이 있다). 원래 나다 (Nada)는 소리라는 뜻이며, 요가에서는 정교한 음향을 뜻한다.
로파무드가 소리쳤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이 인도어여서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간디바를 내던져 버리 고 옷자락을 찢어 넘어진 아이들의 귀를 막아 주었다.
고반다가 내뿜는 소리는 더더욱 커져서 사방의 모든 것을 뒤 흔들기 시작했다. 황달지 교수가 제일 먼저 고함을 지르며 귀를 막다가 쓰러지고 키건과 싸우던 백호와 승희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예사로운 고통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잡고 쥐어짜는 듯한, 저항할 수 없는 고통이었 다.
그 와중에도 키건은 백호에게 칼을 휘두르려다가 견디지 못하 고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다음에는 현암이 버티지 못하고 앞으 로 퍽 엎어져 버렸다. 로파무드도 간신히 수아와 아라의 귀를 막 았지만 자신의 귀를 막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수아와 아라는 귀를 막기는 했지만 나다 요가의 진동은 그런 옷자락으로 막을 정도가 아니어서 그 둘도 비명을 지르며 넘어 져 버렸다. 준후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차에 다시 진동이 엄습하자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박 신부는 오라에 둘러싸여 그 지독한 나다 요가의 고통을 겪지 않았지만 아하스 페르츠에게 붙들려 있어 둘 다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준호였다. 준호는 엉겁결에 양손으로 귀를 막았는데, 정신을 잃 기는커녕 오히려 온몸에 넘칠 듯 힘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게….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모두 쓰러지는데 왜………… 나 ?
준호는 도무지 영문을 몰랐다. 그 이유는 준호의 양손에 흑마 법과 백마법의 문양이 있다는 데에 있었다. 상반되는 두 문양은 상대의 힘을 흡수하여 다른 문양으로 되돌려 주는 기능을 지닌 것이었다.
지금 고반다가 사용한 것은 음파를 이용한 정통 요가로서, 백 마법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준호의 흑마법 문 양이 그 힘을 흡수하여 준호의 머리를 통해 백마법 문양으로 보 냈고, 백마법 문양은 다시 그 힘을 흑마법 문양으로 보냈다. 그 리고 흑마법 문양이 얻은 힘을 더하여 다시 백마법 분양으로 보 내기를 반복해서, 그사이에 끼인 준호의 몸에는 고반다가 보낸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인 것이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기는 했지만, 고반다의 힘이 워낙에 대 단하여 지금 준호의 몸에 축적된 힘은 현암의 공력에 필적할 만 큼 대단했다.
준호가 어리벙벙하고 있는 사이, 곁에 쓰러져 있던 준후가 꺼져 가는 듯한 목소리로 준호에게 속삭였다. 준후는 워낙 재치 있고 눈치가 빨라서 준호의 표정과 자신이 아는 사실만으로 진상 을 파악한 것이다.
“준호・・・・・・ 엎드려……………. 너도 쓰러진 척…………….”
그러나 준호는 준후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았을 뿐, 곧 고 개를 돌렸다. 아까 숲 속에서 목격했던 장면 때문에 반발심이 있 었다.
준후는 의아한 듯이 다시 힘겹게 말했다.
“지금은・・・・・・ 네가…………… 네가 마지막…………. 너밖에 없어. 그러 니 기습을 하려면…… 어서…….”
준호는 그 말을 듣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준후가 연희를 죽이 는 광경을 보기는 했지만 아직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믿기도 싫었다. 그리고 설령 준후가 그랬다 해도 지금은 일단 고반다와 아하스 페르츠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준호는 곧 준후의 말대로 거짓 비명을 지르면서 땅에 뒹굴었다.
이제 서 있는 사람은 아하스 페르츠와 박 신부밖에 없었다. 그 리고 그 둘은 오라에 둘러싸여 고반다의 나다 요가의 영향을 크 게 받지는 않는듯했다.
고반다가 껄껄 웃으며 쓰러진 자들을 보며 외쳤다.
“고맙군! 고마워! 그러니 몇 분 더 목숨을 붙여 주겠다.”
그러면서 고반다는 로드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고는 아하스 페르츠에게 눈을 돌렸다.
“일단 저 보기 싫은 놈부터 처리해야겠지…………?”
상황이 기이하게 돌아가자 아하스 페르츠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급히 박 신부에게 말했다.
어서 날 놔라! 이 밥통 같은 신부!
그러나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를 놓을 수가 없었다. 아하스 페르츠가 박 신부의 오라를 뚫기 위해 발출한 주술들은 그야말 로 무시무시했다. 박 신부로서는 그 주술을 오라로 중화시키거 나 흩어지게 할 수 없어서 간신히 그 힘을 가두어 두고 있는 형 편이었다. 지금 오라를 풀고 아하스 페르츠를 놓아주면 그 주술 력들이 사방에 쏟아져 나와 무력하게 쓰러진 모든 사람들이 금 방 떼죽음을 당할 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박 신부는 현암을 믿 고 있었다.
‘현암군에게 뭔가 생각이 있을 게다. 현암 군을 믿자.’
허나 박 신부는 현암에게 공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 고 있었다. 현암도 박 신부를 만나자마자 아하스 페르츠 같은 강 적을 눈앞에 둔 터라, 굳이 자신의 약점을 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박 신부가 아직도 자신에게 매달리자 분통을 터뜨렸다.
네 동료들이 모두 저 인도 놈에게 쓰러졌는데, 넌 뭘 하는 거냐?
당신은 왜 당황하오? 누구도 당신을 해칠 수 없다면서?
말장난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신은 깨달아야 하오. 당신이 깨달을 때까지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소. 당신은 시몬에게 속았고, 시몬에게 저주받은 것이오. 그리스도가 당신께 하신 말씀은 당신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런 운명을 가 여워해서 하신 것이 분명하오!
그 말에 아하스 페르츠가 멈칫했다.
뭐라고?
당신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만,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사도들이 활동하여 그분의 이름이 널리 알려 진 후부터 주위에서 당신이 저주받았다고 수군거렸을 것이오. 그때까 지가 대략 십 년이라고 당신은 말했소. 그 정도면 시몬에게 충분한 시 간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 또한 한때는 교단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고 신비주의 연구에 심취 했소. 시몬의 행적은 나도 잘 아오. 시몬은 스스로의 힘을 과신한 나머 지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자신이 신이라 착각하던 그릇된 자였소. 그가 만든 그노시스파의 한 분파는 그를 성부의 자리에 대신 올리기도 하여 대규모의 이단 논박을 낳았소. 하지만 그는 주술사에 불과했소. 그것도 오만에 가득 찬.
그래서 시몬이 뭘 어쨌다는 거냐? 네가 뭘 아느냐?
그리스도의 말을 이렇게 생각해 보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소. 그분이 당신을 보고, 당신이 이렇게 수천 년 동안을 증오와 비통에 가득 차 떠돌게 될 운명이란 것을 보셨을 때, 그분 이 당신을 가엾게 여겨 한탄하셨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오!
하지만 예수 말고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 누구도 그런 어마어마한 주술을 쓸 능력은 없소.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말이오……..
시몬 시몬 말인가?
그렇소. 시몬 마구스. 그는 당신도 잘 알다시피 그리스도의 힘을 이 어받은 초대 교황 성 베드로와 경쟁할 정도의 능력을 지녔고, 그 또한 죽은 자를 살려내는 기적을 보였으며, 하늘을 나는 이적을 보이기도 했 소.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닌 주술사는 그 이후로 아무도 없었을 것이오. 그러니 시몬, 그만이 몇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지금까지 당신을 이렇 게 붙잡아 둘 수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시몬을 만난 것은 그보다도 훨씬 후의 일이다!
당신은 시몬을 몰랐겠지만, 시몬은 당신을 알고 있었을 것이오. 당신 스스로를 되돌아보시오. 당신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주술의 능력은 대단 하오. 거의 시몬에 필적할지도 모르오. 당신은 비록 이천 년이 넘게 존 재해 왔지만, 당신은 도대체 몇 년을 배운 후에 이런 주술을 쓸 수 있게 되었소?
그건……
모르긴 해도 몇 년 내로 당신은 대주술사가 되었을 것이오. 당신이 시몬을 만났을 때, 시몬은 베드로와의 대결에서 져서 죽어 가고 있었을 테니까……………. 시몬의 주술을 그토록 빨리 익힌 것을 보면, 당신은 천부 적인 주술사였소. 시몬은 그것을 미리 꿰뚫어 본 것일 테지.
하지만 그가 왜? 무엇을 바라고 그랬단 말이냐?
아직도 모르겠소? 당신에게 퍼진 소문들. 시몬에게는 그것이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오. 그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맞서는 자였소. 그는 분명 그리스도를 시기했을 것이오. 그러던 중 그는 당신의 소문을 들은 것이 분명하오. 스스로는 몰랐더라도 당신은 대단한 주술적인 자질을 타고났 고, 더구나 그리스도가 저주를 내렸다는 소문이 퍼지기까지 했소. 그런 당신이야말로 그가 이용하여 후계자로 삼기에는 적격이었을 것이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바라고
처음에는 그도 단순히 당신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지도 모르오. 다 만 당신을 이용한 것뿐이겠지. 하지만 베드로와의 대결에서 패하여 죽 음을 맞게 되자 그는 복수를 꾸몄고, 당신에게 그것을 명한 것이오. 그 렇지 않소?
네가……………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당신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나를 베드로의 후예라 말했고, 자신을 시몬의 후예라 자청했소. 당신이 시몬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굳이 그런 옛이야기를 끄집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여기오. 그리고…….
박신부는 조금 고민한 다음 말했다.
당신 내부에는 해밀튼이 있소. 그도 분명 당신에게서 비롯된 인격이고, 그것은 당신이 원래부터 이토록 악랄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 미하오.
헛소리! 네가 의사냐?
그러자 박신부가 조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원래 의사였소・・・・・・・ 정신과는 아니었지만, 흥미는 많이 가지고 있었소.
아하스 페르츠는 어이가 없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러자 박 신부가 다시 말했다.
당신의 증상은 정확히는 해리성 정체 장애라고 하지만, 당신의 경우 는 주술과도 연계가 되어 일반적인 정체 장애라 볼 수 없으니 다중인격 이라 하겠소. 그것도 압박과 타의에 의한 강제적인 다중인격이라 볼 수 있소. 해밀튼의 말에 의하면 당신은 그 후 많은 번민을 했고, 그리스도 께 귀의하려고 여러 번 마음을 먹었다고 했소.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지 금 보이는 것처럼 악랄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오. 당신이 정말 스 스로 말세를 획책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끌어 내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할 만큼 악당이었다면, 해밀튼이라는 이중인격이 떨어져 나 가게 될 정도로 심한 갈등 같은 것은 겪지 않았을 것이오. 당신은 시몬 의 악랄한 주술과 그의 명령에 핍박받아 이천 년 동안을 증오 속에서 살 아왔고, 스스로를 말세를 이끄는 자, 가장 악한 자로 만들기 위해 자아 까지 분열시켰소. 하지만…………….
박신부는 간절하게 덧붙였다.
……… 이제는 눈을 뜨시오. 더 이상의 죄는 짓지 마시오……
박 신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하스 페르츠를 미워하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박 신부의 마음속에 는 그에 대한 연민과 동정, 사랑이 가득했다. 그런 느낌 때문인 지, 아니면 박 신부의 말 때문인지 아하스 페르츠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한편, 박 신부와 아하스 페르츠가 주변의 일을 까맣게 잊고 서 로의 대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고반다는 다시 한번 득의양 양한 웃음을 흘리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준후가 다급하게 낮은 소리로 준호에게 말했다.
“어서 있는 힘을 다해 고반다를 쳐! 오라에 뚫린 구멍으로! 그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야!”
“하지만……………”
“저 오라가 뚫린 지금이 기회야! 지금이 아니고서는…………!”
준호는 더럭 겁이 났다. 아무도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 고 반다를 자신이 과연 쓰러뜨릴 수 있을까? 고반다가 과연 그렇듯 만만하게 자신이 오라에 손을 넣게 둘까?
죽는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예전의 준호였다면 이렇게 망설이 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준호는 준후를 믿을 수 없었 다. 연희를 죽인 준후는 예전에 자신이 믿고 따르던 사부가 아니 었다. 혹시 준후는 자신을 희생시켜서 혼자 빠져나가려는 것은 아닐까?
“뭘 하는 거야? 준호!”
준후가 다그치자 준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난 사부를 믿을 수 없어!”
준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고반다가 준호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준호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이내 아하스 페르츠를 쳐다 보며 비아냥거렸다.
“너는 죽지 않는 자라며?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그리고 고반다는 숨을 불어 댔다. 그러자 아하스 페르츠의 얼 굴이 납덩이처럼 질렸고 박 신부의 얼굴도 파랗게 변했다. 고빈 다가 나다 요가의 힘을 집중하자 박 신부의 오라 막마저도 흔들 렸던 것이다.
준후는 다시 준호를 다그쳤지만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내 힘으로는 저리로 갈 수조차 없어, 사부……………..
그리고 난 사부의 말을 못 믿어……………!”
그때 쓰러져 있던 현암이 입을 열었다.
“준호야! 그렇다면 ………… 나를…………… 나를 저자에게 밀어 줘!”
“예?”
현암은 무시무시한 고통에 쓰러져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지만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현암은 주술에 대해 승희보다도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현암은 고반다의 오라가 뚫리고, 그가 기다렸다는 듯 나다 요가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한 가지 떠오른 생각 이 있었다.
“어서!”
현암이 다시 재촉하자 준호는 급히 서둘러서 현암의 몸을 일 으켜 세웠다. 순간 준호의 몸에 모인 기운이 현암의 몸으로 자연 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그 기운은 고반다의 나다 요가에서 모인 기운으로, 근본을 따지자면 수련을 통해 얻은 공력과 흡사했다. 흑마법의 문양 때문에 일부 변질되어 현암에게 고통을 안겨 주기는 했지만, 그 힘은 현암이 받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암은 기뻐하며 급히 말했다.
“내 몸에 힘을 넣어라! 있는 힘을 다해서! 그리고 나를 저자에게 밀어붙여!”
“예…………? 하지만…………….”
“나도 생각이 있다! 인정사정 보지 말고 어서!”
고반다는 나다 요가를 뿜어내면서 현암 쪽을 힐끗 보았지만 그의 눈에 그 모습은 쓰러져 비틀거리는 자가 어린아이의 부축 을 받아 일어나는 정도로만 보였다. 그는 안심하고 숙적이기도 한 아하스 페르츠를 향해 더더욱 강한나다 요가를 내뿜어 냈다. 박신부와 아하스 페르츠는 이제 둘 다 쓰러질 판이었다.
그때였다.
“얍!”
준호는 현암의 말대로 있는 힘을 다해 현암의 몸을 밀어냈다. 현암의 몸으로 엄청난 기운이 흘러 들어왔고, 그 상이한 힘 때문 에 현암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 힘 덕분에 현암의 혈도가 잠시나마 제자리를 찾았고 단전에도 기운이 모였지만 코와 입에 서는 피를 뿜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현암은 준호의 힘에 밀 려서 고반다에게로 곤두박질치며 날아가다시피 했다.
‘저 구멍이다. 구멍・・・・・・・ 월향!’
현암은 손을 제대로 놀릴 수 없어서 월향에게 마음속으로 외 치면서 왼손에 월향을 쥐고 자신의 오른 손목에 월향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그나마 간신히 모은 힘을 모두 끌어모 았다.
“뭐………… 뭐야?”
준후는 현암이 스스로 팔목에 검을 찌르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월향은 있는 힘을 다해 현암 의 오른손을 끌어 고반다의 오라에 생긴 구멍으로 향했다.
준후와 준호는 현암의 손이 과연 고반다의 몸을 칠 수 있을지 긴장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런데 …………
“어!!”
준후가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현암의 오른손은 분명 월향이 이끄는 대로 오라 막의 구멍으로 향했다. 그러나 손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을 활짝 펴서 그 구멍 을 막는 것처럼 보였다.
준후와 준호는 현암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고 반다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굴렸다. 현암 또한 오라 막에 밀착하자 무서운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죽어라 하고 손을 떼지 않았다.
현암은 왼손을 들어 오른 손목에 박힌 월향검을 다시 내리찍 었다. 그러자 월향검은 오라 막에 깊이 박히면서 고통스러운 듯 길게 귀곡성을 울렸다. 두 사람과 한 개의 검 모두가 고통에 가 득 찬 비명을 내지르면서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었다. 그러나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하스 페르츠와 박신부마저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고반다의 오라 막이 확 하고 밝아졌다가 사라졌다. 잠 시 후 그 자리에는 현암과 월향검, 그리고 쪼그라든 노인만이 남 아 있을 뿐이었다. 천하무적이라던 고반다가 쓰러진 것이다.
“형!”
고반다가 죽자 준후의 몸을 옭아맨 속박이 풀렸다. 준후는 급 히 현암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아직도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 다. 제일 충격을 받지 않은 준호가 쪼르르 현암에게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현암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의식은 잃지 않고 있었다.
“월향…..⋯은?”
“여기 …………! 여기 있어요!”
준호는 어느 순간에 현암의 오른 손목에서 떨어져 나온 월향 검을 집어 현암의 손에 쥐어 주었다. 준호의 마법 문양과 부딪혀 일순 월향검에 불똥이 튀었지만 준호는 개의치 않았다.
힘겨운 목소리로 현암이 준호에게 말했다.
“고맙다. 너・・・・・・ 잘했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현암은 도대체 어떻게 고반다를 쓰러뜨린 것일까?
준후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신부님을 도와드려라…………….”
현암은 짧게 말하면서 눈을 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다행히 내 생각이 맞았구나…………….”
그때 승희가 현암에게 다가와 울먹이며 말했다.
“이 바보……………! 자기 몸도 좀 생각해야지!”
승희는 아직까지도 피에 물든 월향검을 꼭 쥐고 있는 현암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현암의 피를 뒤집어쓴 월향검을 보고 울화가 치밀어 현암에게 매몰차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
현암은 피범벅이 된 얼굴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기운 없어. 네가 읽어…………….”
승희는 현암의 열린 마음속을 들여다보고는 아 하며 탄성을 냈다.
현암은 고반다의 몸을 둘러싼 오라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의 심을 가졌다. 과연 그 오라는 정말로 고반다가 내보낸 것일까? 그 오라는 주술적으로 바바지를 연상하게 했다. 더구나 오라라 는 것은 악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 신부나 윌리엄스 신부 등도 모두 오라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기독교계 의성령의 힘을 사용했다.
현암은 힘의 근본을 스스로 수행한 공력에 두고 있어서, 고반 다의 오라의 느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 오라 는 절대 사악한 고반다가 뿜어내는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 로 밝고 맑았다. 그래서 현암은 내내 고반다의 정체에 대해 궁금 증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고반다의 행동에도 의아한 점이 많 았다.
고반다는 아하스 페르츠와 겨루면서도 일체의 주술을 쓰지 못 했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도 고반다가 텔레포트 이외의 다른 술법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라 막에 구멍이 뚫리자 마자 그는 나다 요가라는 무시무시한 술법을 썼다. 또 고반다는 월향검이 오라 막에 구멍을 내고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는데도 고맙다는 말을 했고, 그 보답으로 그들을 좀 더 놔두겠다고도 말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을까?
고반다의 오라 막도 이상했다. 텔레포트까지 자유자재로 구사 할 수 있는 고반다라면 굳이 자신의 몸 주위를 에워싸지 않아 도 충분히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터였다. 만약 현암이었다면 그렇게 항상 몸 주위에 오라를 치느라 공력을 낭비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고반다는 오라를 유지하는 데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며, 심지어 그가 기절했을 동안에도 오라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공력을 운용하여 힘을 쓰는 현암으로서는 그러한 현상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마침내 현암은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그 오라는 고반다가 자 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고반다를 속박 하기 위해서 친 것이 아닐까 하고……………..
평상시의 현암이라면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고반다라는 일생 최대의 강적을 눈앞에 두고, 현암 은 공력을 잃어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고반다를 공격할 수 있는 그의 약점을 알아내는 데 온 신경을 집 중했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한 것이다.
일단 그렇게 정리를 하자 그동안 의아했던 고반다의 행동들이 설명되었다. 고반다의 오라 막이 그토록 강철같이 빈틈없었던 것도. 그리고 고반다의 추종자들이 그리도 넓게, 많이 퍼져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고반다는 사악한 자였지만, 그의 추종자들 은 모두 그의 몸에서 빛나는 순수한 오라를 보고 그를 믿었던 것 이다.
승희는 여기까지 읽고 마음속으로 현암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바바지 님이 고반다를 만나서 싸우지도 않고 죽음 을 당한 것도 설명되겠구나. 현암 군, 그렇다면 바바지 님은 이 악인이 마음대로 활개 치며 다니지 못하게 자신의 모든 힘을 모 아 그를 가두어 둔 것 같아. 어때, 맞는 것 같아?”
“아마도…………….. 하지만 고반다는 바바지 님을 만나기 전부터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했으니, 아마 이전부터 오라 막 을 지니고 있었을 거야. 어쩌면 바바지 이전의 어떤 또 다른 성 인이 그렇게 해 놓은 것일 수도 있지.”
그 말에 승희는 고반다를 만났을 때의 광경을 돌이켜보았다. 고반다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승희가 당신이 세상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고통 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고반다가 자신이 칼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는 말세가 오기를 바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고반다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오라 막의 한 가지 능력일지도 몰랐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물을 가두 고 거짓말을 할 때마다 고통을 주게 안배한 것이라면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런데 왜 현암 군은 고반다를 공격하지 않았지? 그리고 고반다는 왜 쓰러졌지?”
그 물음에 현암이 대답했다.
“지금 내 힘으로 고반다를 맞혀 보았자 그를 쓰러뜨릴 확률이 거의 없었어. 그런데 나다 요가는 음파를 쓰는 주술이야. 아주 강력한 힘을 담은…………. 만약 그 힘이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맴 돈다면 어떻게 되지?”
자신도 모르게 승희는 아하 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고반다 도 오라 막에 갇혀 있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무서운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현암의 공력이 그대로 남아 고반다를 명중 시켰더라도 이렇게 한 방에 고반다를 쓰러뜨리지는 못했을 터 였다.
더구나 이번 나다 요가는 아하스 페르츠를 공격하려던 것이라 무섭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고반다의 주위를 둘러싼 오라 막 이 강력하여 나다 요가의 힘은 구멍을 통해서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현암이 구멍을 막자 그 힘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 고 안에서 맴돌면서 오히려 고반다 자신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결국 고반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공격하게 된 셈이었 고, 단 한 방에 쓰러지게 된 것이다.
돌연 승희가 현암의 머리를 콱 쥐어박았다.
“이런 무대포! 만약 그 생각이 틀렸으면…………… 그랬으면 어쩌 려고 그랬어?”
현암은 빙긋 웃고 말았다. 대뜸 승희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승희의 마음은 현암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현암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승희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잘 알고는 있었지 만 지금 자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승희를 보니 오히려 현 암이 괴로울 정도였다. 그런 두 사람을 백호는 저만치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지하실 전체가 우르릉거리며 흔들렸다. 그와 동 시에 박 신부의 몸이 허공을 몇 미터 날아서 돌 벽에 부딪혔다가 땅에 넘어져 버렸다.
아하스 페르츠가 미친 듯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현암과 준후, 승희와 준호 등이 모두 깜짝 놀라 아연해하고 있 는데, 느닷없이 박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로 나서지 말게!”
박 신부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절뚝거리면서 아하스 페르츠의 앞으로 다가섰다. 박 신부의 몸에는 오라도 펼 쳐져 있지 않았으며, 성한 곳이 한 곳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하스 페르츠가 박 신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다가오지 마라! 죽여버리겠다!”
그러나 박 신부는 되레 피로 물든 얼굴에 미소까지 머금으면서 전혀 망설이지 않고 아하스 페르츠에게 다가갔다. 아하스 페 르츠는 위협하듯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 모습에 승희와 준후가 달려 나가려 하자 현암이 급히 그들을 붙잡았다.
“나가면 안 돼!”
“하지만……………..”
“신부님에게 맡겨!”
“하지만 신부님은 지금 아무 힘도..”
승희가 말을 얼버무리자 곧바로 준후가 외쳤다.
“아하스 페르츠를 죽일 수는 없지만, 그를 공격할 수는 있어요! 그건…….”
그러나 현암이 딱 잘라 말했다.
“더 이상 필요 없다. 신부님이 이기셨어! 패한 것은 아하스 페 르츠야!”
현암의 말에 모두들 놀라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박 신부는 만 신창이가 되어 무작정 아하스 페르츠를 향해 다가가고만 있을 뿐이었고, 아하스 페르츠는 아까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날뛰고 있었다. 박 신부가 어떻게 이기고 있단 말인가?
현암은 아하스 페르츠의 표정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마음속으로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신부님! 아하스 페르츠는…………! 그는…………!”
여전히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의 앞으로 다가서려 했다. 준 후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달려 나가 아하스 페르츠를 들이받 았다.
현암과 승희 등은 준후가 무모하게 주술도 쓰지 않고 아하스 페르츠에게 달려 나가자 놀라서 준후를 잡으려 했지만 준후의 행동이 더 빨랐다. 하지만 아하스 페르츠는 준후에게는 눈도 돌 리지 않았다. 준후는 아하스 페르츠의 몸을 둘러싼 기운에 부딪 혀서 튕기고 말았다.
준후가 울상이 되어 외쳤다.
“신부님! 죽이지 않을 만큼의 약한 공격으로만 그를 쓰러뜨릴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 돼요! 안 돼요! 그의 몸 주위의 기 운이 너무 강해요! 그를 쓰러뜨릴 수 없어요!”
“뭐라고?”
승희가 놀라 준후에게 묻자 준후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그는 죽지 않아요! 그러니 그를 죽이지 않을 약한 공격만이 그를 쓰러뜨릴 수・…………….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그에게 다가 갈수가……………!”
준후는 지난번 아하스 페르츠를 만나 결사적으로 도망친 이후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만을 연구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분명 아무에게도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황달지 교수가 몸으로 부딪치는 것은 두 번이나 허용했다. 그 덕분에 연희와 수아가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준후의 강력한 주술들은 모두 빗나가고 무위로 돌아갔 지만 우보법만은 잠시나마 그에게 통했다. 그 이후로 준후는 곰 곰이 궁리를 거듭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하스 페르츠는 어떤 일에도 죽지 않을 운명이며, 어떤 공격 도 그를 죽일 수 없다. 그를 죽일 수 있는 공격이나 행동은 항상 빗나가게 되어 있다. 그 때문에 모든 주술이 빗나갔으며, 타보트 상자의 뚜껑조차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점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를 죽이지 않는 공격은 그 에게 적중시킬 수 있다는 말도 되었다. 사실 모든 접촉이 불가능 하다면 아하스 페르츠는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을 것이 니, 그가 죽음을 당할 우려가 있는 공격만이 빗나간다고 보는 편 이 사리에 맞았다.
그래서 준후는 아까 아하스 페르츠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고 말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역시 아하스 페르츠가 지금처럼 무 서운 주술력으로 자신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면 역시 그를 쓰 러뜨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암이 준후를 잡으며 말했다.
“장준후!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냐! 신부님을 믿어!”
아하스 페르츠는 박 신부가 천천히 다가오자 일그러진 표정으로 외쳤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것 같은가?”
그러면서 한 줄기 기운을 뿜어내자 박 신부는 한숨을 내쉬며 오라 막을 펼쳤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아하스 페르츠에게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신부가 노기 띤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깨닫지 못하겠나?”
아하스 페르츠가 악을 썼다.
“오지 마라!”
돌연 박 신부가 버럭 호통을 쳤다.
“왜 진실을 두려워하나?”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무시무시한 힘을 뿜어냈지만 그 힘은 아까보다는 훨씬 약했다.
박신부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행동을 한 것은 그때 였다. 철썩 소리와 함께 아하스 페르츠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그 손에는 어떤 주술이나 영력도 담지 않았다.
아하스 페르츠는 자신도 모르게 얻어맞은 뺨에 손을 대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시 박 신부가 호통을 치면서 또 한 번 그의 뺨을 후려쳤다.
“아픈가? 놀라운가?”
순식간에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의 뺨을 대여섯 대나 후려 갈겼다. 그 광경을 본 승희와 준후는 물론 현암마저도 어안이 벙 벙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하스 페르츠가 그 몇 대의 뺨을 맞은 것 때문에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뒤로 물러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천하무적에 당할 자가 없다는 아하스 페르츠 가 따귀를 맞다니!
박 신부는 그가 조금 물러서자 그의 멱살을 잡고 연신 손등과 손바닥으로 따귀를 갈겼다.
“고통이 무엇인지도 잊었나? 남에게는 그렇게 고통을 가해 왔 으면서도 그토록 견디기 힘든가?”
아하스 페르츠는 거의 이천 년 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자 무적 의 대명사와 같았다. 아무도 그에게 단 한 번의 공격을 성공시킨 적이 없었다. 아하스 페르츠를 상대하게 된 그 수많은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해 더욱 강한 물리력과 더욱 강한 파괴력으로 아하 스페르츠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힘을 써도 아하스 페르츠를 쓰러뜨릴 수 는 없었고, 아하스 페르츠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잊어 갔다. 그리 고 모든 것에 권태로움을 느껴서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아무런 자극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는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와의 접촉에서 그 점을 느낄 수 있었 다. 그 때문에 이러한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실로 이천 년 만의 고통을 느끼다 보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파서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지만, 그 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희열 같은 것이 끓어올랐다.
그는 무기력하게 얻어맞으면서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이었다. 죽지 않는 존재, 초월적인 존재 아하스 페르츠 이기 이전에 그는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 리고 그것, 평범한 인간처럼 살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죽는 것이 야말로 이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그가 진실로 되찾고 싶어 한 것 이었다. 지금 박 신부의 매를 맞으면서, 아하스 페르츠는 자신이 잊었던 가장 큰 것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아하스 페르츠는 박 신부에게 이십여 대의 따귀를 얻 어맞았다. 아하스 페르츠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박 신부 의 체구가 크고 힘이 센 편이라 더 많이 부어오른 것 같았다. 박 신부는 문득 아하스 페르츠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내리 치려던 손을 멈추었다.
“뉘우치게! 그리고………… 그토록 힘든 길은 이제 가지 말게.”
그러면서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돌 연 아하스 페르츠가 허물어지면서 박 신부를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박 신부는 마치 아이를 다루듯이 그의 등을 다독거리 면서 온화하게 말했다.
“됐네 됐어……. 주님께서는 자네도 사랑하신다네………….”
박 신부는 아하스 페르츠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는 다시 해밀튼으로 돌아온 듯했다. 아 니, 해밀튼이라기보다는 원래의 순박했던 예수 때의 아하스 페 르츠라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지하실에 있던 모두는 그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이 사 라져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 신부는 준후를 향해 살짝 눈짓을 해 보였다. 준후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