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17화 – 그들은 모두를 미워하라 했다 3 : 고통의 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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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3권 17화 – 그들은 모두를 미워하라 했다 3 : 고통의 승정


고통의 승정

지금 퇴마사들이 쫓고 있는 것은 블랙서클의 삼대 승정 중 마 지막 승정이라고 할 수 있는 고통의 승정인 히루바바였다. 세 명의 승정 중 한 사람은 증오의 승정이었던 코제트였고, 코제트 를 추적하는 중에 퇴마사들은 한 명이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이 며 또 한 명은 미국에 있는 젠킨스라는 것을 알아냈다. 추적 끝 에 캐나다로 옮겨서 공포의 힘을 끌어 모으려고 하던 젠킨스를 잡았고, 히루바바의 이름과 그가 도곤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역사책을 뒤적거린 승희의 노력으로 도곤족은 주로 말 리의 남부 지방에 살고 있으며 홈보리 산맥의 동굴 속에서 아직 도 대부분 칩거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털털거리는 고물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끝에 말 리에 도착한 퇴마사 일행은 내리자마자 도곤족의 기미를 살폈다. 말리 정부의 공식적인 해명은 없었으나 국민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다 알고 있었고, 또한 퇴마사 일행도 승희의 투시력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눈치채고 있었다.


문화부 장관이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퇴마사 일행은 멜바싸 대령이 이끄는 부대의 선을 넘어가려다가 야전 최고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멜바싸 대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당신들은 누구고 어디에서 왔소? 무슨 목적으로 나를 만나자 고 한 것이오? 여기는 민간인이나 외국의 관광객이 들어올 수 있 는 곳이 아닙니다.”

멜바싸 대령은 위압적인 태도로 말을 꺼냈다. 그들의 앞에 나 선 것은 덩치가 크고 얼굴이 창백하며 머리를 뒤로 묶은 서른 살 정도의 건장한 남자였다. 그 남자, 그러니까 백호는 아무 말 없 이 대령에게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 주고, 품 안에서 서류 몇 장 을 꺼냈다. 연희가 통역할 말이 있으면 해 준다고 말했으나 백호 는 다만 눈을 찡긋하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서 있 었다. 멜바싸 대령도 아무 말 없이 서류들을 자세히 뒤적거리더 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놀란 눈으로 백호를 가만 올려다보 았다. 그러자 백호가 조용히 말했다.

“여러분은 잠시 나가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제가 이 사 람과 단둘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퇴마사들은 불만스러웠으나 모종의 정치적 또는 외교적인 문 제가 아니고서는 백호가 그들을 피해 있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 었기 때문에, 잠자코 옆방으로 갔다. 백호의 진짜 신분이나, 지 금 백호와 멜바싸 대령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승희가 마음속으로 투시하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런 짓을 해서까지 백호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또 퇴마사들도 승희가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옆방에서 히루바바의 힘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골똘히 생각했다. 도대체 히루바바가 어떤 힘을 사용했기에 잘 무장된 군대를 무전 응답할 사이도 없이 전멸시킬 수 있는 것인 지 궁금했다. 박 신부가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저들은 몹시 파괴적이고 악랄한 주술을 사 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중장비까지 갖춘 군대를 단숨에 자 취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는 것은 일상적인 수단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나 그게 뭔지는 아직도…………….”

현암이 고개를 끄덕였고 준후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준후야. 저주의 주술 중에 이렇게 여러 명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술수가 있니?”

“헤헤헤. 저주라는 것도 뚜렷한 대상이 있어야 할 수 있죠. 누 군지 알지도 못하는 병사들을, 그것도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술수 같은 건 글쎄요……. 헤헤헤.”

현암은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은 도혜 스님이 물 려준 수십 년의 내력과 한빈 거사에게서 고대의 갖가지 무예들 을 익혔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서클과 같은 사악한 집단의 사람 들과 싸워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약 정규군과 싸운 다면 몇 명이나 상대할 수가 있을까? 제아무리 공력을 최대한으 로 돌리더라도 장갑차 한 대나마 상대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런 장비들을 갖춘 중대 규모의 인원을 단숨에 해치울 수가 있을까? 승희가 입을 열었다.

“젠킨스는 히루바바의 힘이 가장 세다고 했어요. 제일 간사하 고 일을 많이 벌이며 사악한 지혜를 가진 것은 코제트였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셋 중에 히루바바가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가 읽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여러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지만 승희 가 다시 한번 히루바바의 ‘고통의 힘’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히루바바의 고통의 힘이 어떤 것인지는 젠킨스도 알 지 못했어요. 블랙서클의 일하는 방식 그대로죠. 모든 사람이 각 자 알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어.”

박신부가 말했다.

“보통 주술사들이 일을 할 적에는 가능한 한 자신들이 앞에 나서지 않고 은밀하게 일을 하게 마련인데 히루바바라는 자는 공 공연하게 반란을 일으켰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 아 무리 주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정규군을 삽시간에 전멸시킨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야. 지방 경비대도 아닌 정규군과 주술 력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을 텐데, 어째서 무모하게 이런 일을 하려는 것일까? 도곤족은 매우 선량하게 살아온, 농민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종족이라던데.”

“그거야 알 수 없죠. 하지만 여태까지 본 바에 의하면 코제트 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증오하게 만들려고 애를 썼고, 젠킨 스는 공포감을 퍼뜨리려고 윈디고를 불러내기까지 했어요. 그렇 다면 히루바바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바라고 있고 그러 기 위해서 전쟁이나 내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지난번에 세크메트 사건 때도 그와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 었던 것 같아요.”

“음, 그랬지. 그 사람은 이집트의 주술사였지만…………….” 

박신부는 앉아서 뭔가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블랙서클이 노리던 목표들을 잘 생각해 봐. 맨 처음 우리가 상대했던 호웅간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는 블랙서클을 벗어나 도망치려고 했지. 두 번째로 만났던 젊 은이는…………….”

박 신부는 말을 잇다가 연희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다물었다. 연희는 예의 그 남자의 이야기가 언급되자 얼굴에 수심 어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박신부가 머뭇거리고 있자 현암이 눈치를 챈 듯 재빨리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블랙서클과 맞닥뜨리게 된 것은 세크메 트 건 때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때의 이집트 주술사는 한국에 전화(火)를 불러일으키려 했죠. 영국에서는 전멸한 켈 트족의 영들을 이용하여 수라장으로 만들려고 했었고, 카프너는 덜 떨어진 사람들을 이용하여 늑대 인간을 만들었지만 그건 블 랙서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를 상대하기 위 해서였을거구요. 그리고 코제트는 루마니아에서 장애인들의 심 리와 흡혈귀의 전설을 이용했지요. 항상 그들은 억눌리고 억울 함을 당한 사람들을 이용했어요. 이번에 도곤족이 반란을 일으 킨 배경에도 그러한 음모가 있을 겁니다.”

“도곤족의 반란은 블랙서클의 부추김을 받아서 일어났다는 건가?”

“그렇게밖에 볼 수가 없잖아요.”

승희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도곤족은 멸망한 민족도 아니고, 특별히 박해를 당했 다는 기록도 없어요. 그런 종족이 이런 난리를 일으킨 것은 어쩌 면 정치적인 이유에서인지도 모르죠.”

“히루바바는 분명 도곤족의 주술사이고, 실질적으로 저 반란에도 개입되어 있을 것이 분명해. 승희야, 히루바바를 투시할 수 없니?”

“전혀 안 돼요.”

“흠!”

일행이 별 성과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백호가 방으로 들어섰다.

“정찰대와 같이 가 보기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멜바싸 대령도 동행하겠답니다.”

“그거야 뭐 상관없죠. 정찰대와 함께 간다면 행동의 제약을 받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글쎄요.”

백호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

“탱크를 타고 가야 하니 여러분은 조금 고생이 되겠습니다. 그 러나 외국의 사절을 보호해야 한다고 대령이 고집을 부려서. 하 하하.”

현암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썼지만 준후만은 신이 나는 듯했다.

“하하하. 탱크요? 히히힛. 신난다.”

현암은 고개를 갸웃했다.

“외국 사절이라고요? 우리가 언제..”

현암이 말을 이으려는데 백호가 눈을 찡긋했다. 현암은 백호가 도대체 무슨 술수를 부려서 기세등등한 야전 사령관을 녹여 놓았는지 궁금했으나 다그쳐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박 신부 는 다른 생각을 했다.

“원 참 탱크 속에서 투시나 기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군요.”

“그러나 그것만은 꼭 따라 주어야 한다고 멜바싸 대령이 고집 을 부려서요. 워낙이 깐깐하고 고지식한 성품이라 영…….” 승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탱크를 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요란하게 탱크를 타고 간다면 도곤족을 만날 수나 있을까요? 시끄러워서 모두 피해 버리는 것은 아닐지…………….”

“글쎄요. 그렇게 되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더라도, 포위망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저번처럼 막무가내로 뚫고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더군 다나 남의 나라, 말도 통하지 않고 거기다가 정글과 초원, 사막 지대인데……”

백호가 어울리지 않게 윙크를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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