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28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6 – 마스터

랜덤 이미지

퇴마록 세계편 3권 28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6 – 마스터


마스터

“당신이 마스터요?”

박 신부는 오라의 기도력을 뿜으면서 말을 건넸다. 자신의 눈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깡마른 노인이 정말로 블랙서클 의 마스터란 말인가. 마스터는 합장한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스터는 복화술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한국말까지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박 신부는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의 실질적 인 두목인 마스터를 눈앞에 대하고 보니 어찌해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던 박 신부의 입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거요? 지옥문은 대체 왜?”

“어째서라니요. 하하하.”

박 신부의 질문이 엉뚱했던지 마스터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마스터의 웃음소리에는 과거에 히루바바가 썼던 울림이 있는 듯 했다. 박 신부는 몸을 주춤했고 준후는 잽싸게 수인을 맺으면서 몸을 보호했으나, 뒤편의 연희는 귀를 막으면서 고통을 참으려 고 애썼다. 준후가 재빨리 연희의 손에 부적 하나를 쥐어 주자 연희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괜찮아졌는지 준후에게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오. 경탄하고 싶군. 내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해 왔지만 인간 세상에서 당신들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을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이오. 물론 벌레지만…………….” 

“우리 그런 얘기는 하지 맙시다.”

박신부는 음파를 한 번 받고는 오히려 냉정함을 되찾았다. 마 스터는 오랜 친구라도 만난 양 얼굴에 미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박 신부는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상대는 블랙서 클의 최고라는 마스터가아닌가?

“당신은 도대체 왜 블랙서클을 만든 거요? 왜 지옥문을 연다 는 거요? 세상을 그토록 증오하오?”

마스터는 미소를 띤 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복화술로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에 약간의 미소만을 띠고 있는 사람에게서 말소 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세상을 미워한 적이 없소.”

“그렇다면 뭐요.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미워했고, 세상도 내가 약간씩이나마 도움을 준 다른 사람들을 미워했지. 그것뿐이오. 나 자신은 그렇 게 생각한 적이 없소.”

“거짓말. 증오와 복수를 재창조하라고 그들에게 가르친 것은 당신이 아니었소? 죄로 물든 세상을 정화하라고 했던 것도 이 세상을 온통 피바다와 증오와 고통과 공포의 소굴로 만들려고 한 것도 당신의 계획이 아니었소? 더구나 지옥문은……..”

“하하하.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스터는 말을 끊으면서 눈을 떴다. 마스터의 눈은 참으로 희 한하게도 여느 보통 사람과 똑같았고, 거기서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텅 빈 공허함만이 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나는 내가 바라는 바를 한 것뿐이오. 그리고 당신들은.”

마스터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박 신부와 준후와 연희 세 사람은 마스터의 유창하게 이어지는 한국말에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스터의 몸에서는 붉은 기운이 솟구쳐 올라왔다. 현암이 과거에 연희와 만나게 되었을 적에 상대했었 던 것 같은 염체들이었다. 연희가 옛 기억이 나는 듯, 비명을 질 렀다. 염체의 색은 달랐지만 수법은 과거의 이름 없는 남자가 현 암과 싸우면서 썼던 수법과 너무도 흡사했다.

“아니, 저건!”

솟구쳐 올라온 염체는 뱀이나 용처럼 꿈틀거리면서 허공에서 뒤엉켰다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갈라져서 박 신부와 준후 그리 고 연희를 노리고 덮쳐들었다. 준후가 재빨리 연희를 옆으로 밀 쳐내면서 양손에 뇌전의 기운을 끌어 올렸고, 박 신부도 베케트 의 십자가를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십자가를 꺼내 들 었다. 연희는 뿜어져 나온 염체들을 피해 엉겁결에 벽 쪽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그 벽도 일종의 환영이었던 듯 연희의 몸은 쑤욱 벽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 신부와 준후는 마스터를 상대하느 라고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했다. 연희는 생각지도 않게 몸이 뒤 로 나가떨어지면서 뒤통수를 부딪히자 눈에서 불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연희는 당황스러웠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자신이 빨려 들어 온 벽 쪽으로 나가려 했으나, 희한하게도 벽은 거짓말처럼 단단하게 막혀 있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연희는 소리치면서 벽을 두들겨 댔으나 벽은 쿵쿵 하는 소리 만 냈을 뿐이었다. 연희의 뒤쪽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에는 머리가 벗겨지고 뚱뚱한 육십 대 남자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새 어 나오고 있었다. 연희는 경계 자세를 취했으나 남자는 이미 탈 진 상태인 것 같았다. 연희는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남자가 중얼 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러시아어였다.

“마스터, 마스터를 막아야만……………. 마스터를”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나, 나는・・・・・・ 블랙서클의 총수, 블랙서클을 만든…………….”

“예? 뭐라고요?”


인디언 주술사의 몸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것을 현암은 심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애당초 거인이었던 인디언 주술사의 몸은 마치 고무풍선처럼 늘어나서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단순한 환영인지, 정말로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 해 몸이 커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좌우간 인디언 주술사 의 덩치는 드라큘라 성의 미르챠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현암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복도를 메 울 정도로 덩치가 커진 인디언 주술사가 현암을 보고 웃었다. 현 암의 마음속으로 주술사의 말이 들려왔다.

이것이 바로 조상신들의 힘이라네. 자, 그러면 이리 오게.

주술사의 말은 아이들을 달래는 느낌이었다. 현암도 더 이상 주춤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음에는 기공탄으로 끝장을 보고 마스터를 상대하러 아래층으로 달려갈까 생각을 했었으나 처음부터 그렇게 위험한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인디언 주술사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암에게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대결하는 것 같기도 했고…………. 현암은 찜 찜한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오른손에 기공력을 모으고는 인디언 주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승희는 현암을 향해 힘을 보내며 정신을 집중하고 앉아 있었 으나 윌리엄스 신부는 가만히 앉아 있기 답답한 듯, 보이지 않는 벽에 몇 번이나 부딪쳐 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나만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윌리엄스 신부는 상당히 흥분한 듯 씩씩거리면서 초조하게 보 이지 않는 벽을 살펴보기도 하고 몸을 부딪쳐 보기도 했으나 그 럴 때마다 몸은 뒤로 밀려날 뿐이었다. 흥분이 되자 몸에서 흡혈 귀의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지 윌리엄스 신부의 얼굴이 창백해지 더니 입술 밑에서 날카로운 이빨이 불쑥 솟아났다.

“으윽! 오우 이런! 이놈의 이블 파워가!”

윌리엄스 신부는 기겁을 해서 승희 옆에 무릎을 꿇고 앉고는 사악한 힘이 자신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정신없이 기도를 올 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려갔던 아래쪽에서 누가 소리를 쳤다. 이반 교수의 목소리였다.

“이리 내려와 보시오! 주술 막은 풀렸을 겁니다!”

윌리엄스 신부는 그 소리를 듣고 벌떡 몸을 일으켜서 아까까지 분명히 가로막고 있던 주술 막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어느 사이 주술 막은 사라지고 없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기쁜 나머지 승희를 흔들어 눈을 뜨게 했다.

“승희 양! 내려갑세다! 길이 열렸습네다!”

승희는 반쯤 흡혈귀의 기색을 띠고 있는 윌리엄스 신부를 보 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으나 곧 침착함을 되찾고 몸을 일으켰다. 어서 현암에게 월향검을 전해 주어야 할 것이고, 자신도 조금이 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스 신부와 승희는 서둘러 입구를 지나 일층의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승희는 남몰래 다짐하고 있었다.

‘무리한 힘을 써서 쪼글쪼글한 할망구가 된다 해도 최선을 다 할 거야! 그럴 테야!’


“얍!”

“야앗!”

박 신부와 준후는 힘을 내어 각각 둘씩의 염체를 허공에서 막 아 내고 있었다. 준후는 뇌전의 기운으로 염체를 밀어냈고, 박 신부는 오라력으로 달려드는 붉은 염체의 줄기를 튕겨 냈다. 그 러나 붉은 염체들은 소멸되지 않고 마스터의 뒤쪽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져 버렸다.

“많이들 강해지셨군. 놀라울 뿐이오. 하하하. 그런데 그래 봐야 벌레 정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

준후가 고함을 쳤지만 마스터는 염체들을 사라지게 한 다음에도 껄껄거리고 웃기만 했다. 박 신부는 그제야 연희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희 양은?”

“어? 저도 몰라요!”

“남을 걱정해 줄 때가 아닐 텐데요? 하하하.”

마스터의 몸에서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시커멓게 사방을 메웠다. 박 신부가 놀라서 소리를 쳤다.

“이건 코제트!”

“증오의 안개랍니다. 증오는 이처럼 모든 것에 눈을 멀게 하고 시야를 가리지요? 하하하.”

마스터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검은 안개는 무리를 지어 박신부와 준후를 향해 쏘아져 내렸다. 준후가 소리를 쳤다.

“아무리 마스터라지만 이 모든 걸 어떻게………….”

“놈은 지금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어!”

박신부가 노한 듯 외치더니 몸에서 더더욱 기운을 끌어 올렸 다. 박 신부의 손에서 베케트의 십자가가 기도성을 울렸고 오라 는 연녹색에서 점차 현란한 푸른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준후도 한 손에는 도가 오행의 기운 중 금(金)의 방어막을 주위에치고 한 손에는 부동명왕의 멸겁화의 기운을 불렀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