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32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10 – 악마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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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3권 32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10 – 악마의 소망



악마의 소망

“어서 오시오. 어둠의 제왕이시여. 모든 것을 취하고 대가로 보상을 주시는 잔혹한 그림자시여.”

마스터가 주문 같은 말을 이으려는데 음산한 울림이 아스타로 트에게서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은 방 전체에 생생하게 울렸고 그 소리는 어떤 언어도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뜻이 전달되었다. 네가 이걸 열었는가?

마스터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예.”

그 순간 아스타로트는 뜻밖의 말을 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 했느냐?

“예? 어둠의 지배자시여. 무슨 말씀을…………….”

마스터조차 당황하여 말끝을 흐렸지만 아스타로트는 노호성을 질렀다.

누가 세상을 멋대로 하라 했어! 벌레 같은 놈이!

아스타로트가 노한 듯 고함을 쳤다. 그 여파로 방 전체가 폭풍 처럼 흔들리며 벽에 금이 가고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마스터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으나 그는 여전히 차갑게 말했다.

“고대로부터의 약속이 수행될 것을 믿고, 내 원하는 바를 얻 기 위해 그대를 불렀노라. 대체 왜 계약으로 맺은 일을 거부하는 가?”

아스카로트가 껄껄 웃었다.

계약? 하하하.

“악마는 계약에 종속되니 어서 내 말대로.”

마스터가 말하는데 아스타로트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야 내가 하고 싶을 때만 그러는 거지. 이건 아냐.

마스터가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계, 계약을…………….”

아스타로트는 비웃듯 말했다.

내 마음이다. 벌레여.

마스터가 노기를 띠우자 숨 막힐 것 같은 기운이 몸 전체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웃 으며 말했다.

너………… 우리에 대해 뭘 알고, 우리에 대해 뭘 느끼고, 우리에 대해 뭘 할 수 있지? 너 혼자 안다고, 지배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너희 인간 들의 표현으로 한다면………..

아스타로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크게 말했다.

웃기는군!

마스터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스타로트는 킥킥거리는 듯한 느낌으로 계속 말했다.

그런데 너 따위가, 네가 뭘 안다고, 세상을 없애? 네 것도 아닌 주제에 뭘 바쳐? 너희 인간의 표현으로 한다면.

아스타로트는 다시 크게 비웃듯 말했다.

놀고 있군!

“이이익!”

마스터가 분노했는지 얼굴색까지 변하면서 무서운 기운을 몸 전체에서 내쏘았다. 무시무시한 압력이 방 전체를 순식간에 부 숴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아스타로트가 손 하나를 쳐들자, 마 스터의 기운은 둥글게 뭉쳐져 마스터를 에워쌀 뿐, 더 밖으로 빠 져나가지 못하고 안에서만 소용돌이쳤다. 퇴마사들에게 조그마 한 영향조차 오지 않았다. 아스타로트는 당황한 마스터를 보고 비웃듯 말했다.

힘이라고? 아직도 그런 것에 눈이 팔려 있는 미물 주제에, 힘 위에 무엇이 있고 또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뭐? 세계를 어째? 하하하.

마스터는 스스로가 뿜어내는 힘에 갇혀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는 지지 않고 무시무시한 힘을 더 뿜어내 버티려고 했고, 무슨 말인가 외치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스타로트가 손을 꽉 움켜쥐자, 마스터의 몸과 그가 뿜어내던 기운을 포함한 모든 것 은 삽시간에 짜부라져 점이 되더니 형체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 다. 마스터도 엄청났지만 그를 순식간에 없애 버린 아스타로트 의 힘이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아니, 그건 힘이라고 표현되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현암조차도 더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의식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박 신부뿐이었다. 그가 경악하여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아스타로트의 심연 같은 검은 구멍으로 된 얼굴이 그들을 향했다. 박 신부가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앞을 막아서려는데 아스타로트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괜찮은가? 좀 도와줄까?

아스타로트의 말에 박 신부는 기겁을 하며 놀랐다. 그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뭘 바라는가? 사악한 악마!”

그러자 아스타로트는 여전히 비웃는 울림으로 답했다.

음? 이미 바라는 대로 다 했는데?

“무엇을 말인가? 지옥문이 열렸으니, 세상을 유린할 건가?”

그러자 아스타로트는 마치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변해 이제는 마치 장난치는 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왜?

“지옥문은・・・・・・”

아, 이건 내가 그냥 재미로 해 본 거야. 지옥문이라. 다른 데서는 열 리지도 않았지. 내가 왜 그렇게 해 주겠어? 왜 이런 것에 흥분하지? 이 런 것 없어도 난 마음대로 이 세상에 드나들 수 있는데 뭘.

아스타로트의 대답은 너무도 어이없는 것이라 박 신부조차도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다가 다시 고함을 쳤다.

“그럼 뭐야! 인간의 영혼을 원하는 것 아니었나? 너는 블랙서클의 영혼들을 흡수…….”

아스타로트는 딱 잘라 말했다.

너,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군. 너희의 영혼을 원한다고? 그런 것 을 우리가 어디에 쓴단 말야? 저 마스터란 녀석이 생색내면서 주기에 받아 두긴 했지만 그런 건 우리에게 아무 쓸모도 없어.

“그, 그게 대체・・・・・・ 너희는 그러면……”

아스타로트는 아이들이 장난이라도 치듯 쾌활하게 말했다.

너희가 우리에 대해 뭘 알고, 우리에 대해 뭘 느끼고, 우리에 대해 뭘 할 수 있지? 그냥 너희 멋대로 이름 짓고, 우릴 정의하고, 예측하고, 정말 너희 인간들 표현을 빌리자면 웃기기 그지없지. 다 틀렸어. 딱 한 가지만 빼고.

“그게 뭔가?”

박신부가 말하자 아스타로트는 무시무시하게 고함을 쳤다. 

우리가 너희 인간을 미워한다는 거!

아스타로트의 외침은 사방을 쩌렁쩌렁 울렸고 박 신부마저도 왈칵 피를 쏟을 정도였으나 기절한 현암, 준후, 승희, 연희나 다 른 사물에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박 신부는 여태껏 알 아왔던 악마관과는 너무도 다른 악마라 여기고 인간의 믿음에 혼란을 느꼈으나 동시에 많은 것을 이해했다. 모든 것을 잘못 안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악마는 인간의 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해칠 건가?”

아스타로트는 순식간에 낄낄거리며 교활한 늙은이 같은 느낌을 풍겼다.

내가? 왜? 너희는 소중해. 그런데 내가 왜?

“뭐?”

어, 정말이다. 너희는 소중해. 너희같이 죄 없고, 순결하고, 희생 정신에 가득 찬 자들을 나는 좋아해. 정말로.

“믿. 믿을 수 없어! 우리가 소중하다고?”

믿어야 해. 너흰 우리에게 정말 소중하다. 왜냐하면.

아스타로트는 돌연히 소리를 높였다.

그런 너희가 고통받는 것이 좋으니까!

아스타로트의 울림에 박 신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 나 박 신부는 눈을 빛내며 외쳤다.

“역시 너희, 너희는…………….”

하하하. 순결한 영혼, 죄 없는 영혼. 영혼 따위는 아무 데도 쓸 모없지만, 그런 너희가 흘리는 피와 그런 너희가 당하는 고통이 나는 너무 좋아. 그것이 우리를 너무 즐겁게 해. 왜냐고? 우리는 너희를 미워하니까! 이런 고통 아니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 세상 을 망하게 한다고? 절대 안 돼! 오래오래 살아남아, 계속 상처 입 고 고통받아 줘. 그게 우리가 바라는 거야. 제발 힘내서, 계속 싸 워 줘. 우리를 더 즐겁게 해 줘!

박 신부가 대답조차 못하고 덜덜 몸을 떠는데 아스타로트는 말을 이었다.

마스터 같은 사악한 적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어 보내 주겠어. 세상에 위기가 닥쳐야 나선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주겠어. 그러니 싸워. 영원히 살아남아 싸우고, 피 흘리고, 고통받아 줘.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거니까.

그 말만 남기고 아스타로트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론 열렸던 블랙서클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박 신부는 힘 이 빠져 풀썩 주저앉았다. 수많은 상념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현암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 줘야 할까? 악마와 인 간사이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신의 섭리는 대체 어떤 것 이기에 그들과 인간을 공존시키는 것일까? 그러나 박 신부는 생 각을 길게 끌지도 못하고 피곤에 지쳐 눈을 감았다. 세상 모든 것이 꿈과 같이 느껴졌다.

‘무엇이든, 내가 옳다 여기는 대로 하는 거다. 달라질 건 없어. 아무것도.’

의식이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동안에도 박 신부는 계 속 그 생각만을 했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통받아야 할 가족 같은 퇴마사들이 고통을 감내해 야 할 그들이 너무도 안쓰럽고 가여워서 절대 말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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