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2 :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퇴마록(세계편) ‘아르타로트의 약속’ 직후] : 1화 – 괴사건
괴사건
“또야?”
막 출근해 자리에 앉으려던 더글러스 형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책상에 놓여 있는 보고서 겉장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그러면 이건……………’
급한 일이니 빨리 처리하라는 일종의 압력일까, 아니면 추적 중인사건 수사를 돕기 위한 조력일까.
‘상관없지. 그보다는 내용이…………….’
책상 서랍조차 열지 않고 서둘러 보고서를 펼쳐 보던 더글러스 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 섞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용은 전과 동일했다. 살인 사건. 어떻게 보면 평이하다. 권총 총격에 의한 사망. 여러 번 난사하거나 확인 사살을 하지도 않았 다. 오로지 단 한 방. 미국에서는 흔한 살인 형태다. 하지만 이 사 건이 더글러스를 포함한 미국 경찰을 괴롭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사건의 정황이 너무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대체 왜들 이러지?’
이번에 죽은 자는 ‘프랑코’라 불리는 자이며 ‘직업’은 마약 밀 매상이다. 암흑가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짓도 ‘직업’으로 쳐주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니만치 더더욱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총 에 맞아 죽었다 해도 얼핏 보기에 특별한 것은 없다. 매스컴에서 는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이다. 허나 정작 수사를 맡은 더글러스 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 뒷골이 아프다.
‘왜 이런 시간에 이런 장소에 나간 거야? 그것도 무기도, 호위하 는 사람도 없이. 더구나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목격자도 없을 곳 으로 왜 나간거야? 마치……………’
더글러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하던 생각을 입술로 씹어뱉었다.
“….죽여 달라는 것처럼.”
보고서에 의하면 프랑코는 죽기 바로 직전까지 그의 부하 및 동 료 갱들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하물며 그는 하찮은 피라미가 아니다. 잘 무장된 부하들과 구성원, 배경과 연줄을 갖춘 중간 이 상 규모 조직의 보스다. 그런 자가 안전한 아지트에서 부하들과 함께 파티를 벌이다가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그 후의 행적이 이 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화장실에 가긴 했는데 문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자기 아지트의 화장실 창문을 넘어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화장실 창문은 황급히 부수며 열어젖히고 나간 흔적이 역력했고, 증언에 의하면 프랑코가 들어가기 이전에는 물론 멀쩡했다. 프랑코는 너저분한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뭔가 망가진 것 에는 예민한 성격이었다. 자기 주변에 은근한 위험이 다가오는 것 을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창문이 미리 부서져 있었 다면 그냥 보아 넘길 성격이 아니었다.
또 바로 몇 미터 앞에는 그가 믿는 부하와 동료들이 파티를 벌 이고 있었다. 갱들의 파티답게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 놓았기에 부 하 중 아무도 창문 부서지는 소리를 못 들은 것은 이해가 간다. 그 런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자기 아지트에서 자기 동료나 부하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었을까? 문 대신 화장실 창 문을 부수어야 할 이유? 그래도 여기까지는 뭔가 내막이나 사연 이 있다고 억측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후의 일은 더하다.
그는 자기의 아지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외지고도 한적한 곳 까지 ‘두 발로 갔다. 차를 타지도 않았다. 더구나 목적지는 보는 사람이 전혀 없을 후미진 장소다. 프랑코와 같은 직업을 가진 자 들에게는 극히 위험할 장소다. 겉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지만, 갱 들에게는 일종의 ‘구역’이 있다. 정글의 야수들이 나무에 표식을 하듯, 갱들도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 일정한 구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구역을 함부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프랑코 정도 되는 자라면 통보도 없이 다른 세력의 구역을 침범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짓이다. 애당초 총알 세례를 받고 죽 어도 갱들의 율법으로는 군소리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자는 그 구역을 벗어나, 그것도 차도 타지 않고 호위도 없이 다른 영역으 로 두 다리로 ‘뛰어서 침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총을 맞고 죽은 것이다. 현장을 목격한 자는 아무도 없지만, 화장실에 간 시각과 사망 시간, 그리고 두 장소 사이의 거리로 짐 작하면 상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곳에 제 발로 헉헉거리며 달려가서 죽여 달라고 간청한 셈이다.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더글러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그것도 벌써 다섯 명이나……………
더더욱 괴이한 것은 이런 부류의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 이다. 물론 여기는 유흥업과 매춘, 마약상들이 들끓는 할렘 지구 가 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런 부류의 알력이나 싸움, 살인은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약아빠진 자들이 넘쳐난 다. 약아빠지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닳 고 닳은 자들이 스스로 죽음을 영접하듯 다섯 명이나 연달아 죽었 다. 마치 죽여 달라고 스스로 도살장에 걸어 들어간 것처럼.
하지만 사건의 기괴함과는 걸맞지 않게 용의자는 몹시 선명하 다. 오히려 눈에 너무 환히 보여서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이자가 죽음으로써 누가 최후의 이득을 얻는가?’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 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추정할 수 있는 대상은 단 한 명뿐이다. 속칭 ‘빌’이라 일컬어지는 본명은 프랑코 빌리다- 또 다른 암흑가 갱의 보스밖에 없다. 벌써 다섯 번째라고는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죽어간 사람들은 그들과 경쟁 관계에 있던 세력이나 그에게 반발하던 조직의 보스들이다.
그러나 이미 암흑의 세계에 닳고 닳은 그들이 왜 이런 식으로 스스로 찾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 그 이유는 아무리 해석하 려 해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다. 뒷골목 을 막고 아무 알코올 중독자나 약쟁이에게 물어도 이구동성으로 ‘빌’이 범인이라 할 것이다. 그만큼 분명하지만 그 이상으로 증거 가 없다. 물론 증인도 없다. 살해당한 자들이 모든 것을 인멸해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만약 죽은 자들이 빌의 협박이나 어떤 미끼에 낚였다고 해도 말 이 안 된다. 암흑가에서 굴러먹은 이들이 최소한의 생명 보장 장 치를 하지 않을 리 없다. 도청 장치, 녹음기, 소형 카메라, 멀리서 따라오는 경호원, 저격수, 자기 생명이 없어지면 바로 공개되는 비밀 등등……. 목숨을 건지거나 유지할 수 있는 장치는 수도 없 이 많고 그들도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다. 더구나 한두번도 아니고 이번이 다섯 번째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데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녀석들이 경각심을 갖지 않을 리 없다.
더글러스는 두어 번 이 종류의 사건이 반복되자 다음 녀석은 뭔 가나중에 공개될 비밀이나 증거를 장치할 거라고 자신을 위로했 다. 그러나 실제로는 허탈하게 한 명도 그러지 않았다. 결국 죽은 자들 스스로 아무런 장치도 만들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러 갔든지. ‘빌’이 뭔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재주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 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허나 살해당한 자들의 부하나 조직을 조사했을 때, 거기에 배신자나 빌의 끄나풀, 또는 빌의 입김이 들어 간 흔적은 없다. 빌이 그들에게 어떤 거래를 제안했거나 미끼로 유혹했던 증거도 전혀 없다. 오히려 죽은 자들의 조직원들이 더 미친 듯 그런 것을 찾아다녔지만 어이없게도 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접촉도, 연락도, 메시지도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적어도 두 번째 조직 보스가 죽은 후부터 나머지 보스 들은 거의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지하로 숨어들어 갔다. FBI 를 총동원해 뒤져도 그들을 찾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프랑코 그랬다. 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빌을 의심은 할지언 정 아무도 그를 몰아붙일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꼭꼭 숨은 자들 이 스스로 은닉처를 빠져나와 빌, 아니 누군가의 총구 앞에 섰으 니까. 그렇다면 왜?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건 절대 정상이 아냐”
더글러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과격한 행동으로 형사를 그만 두게 돼 탐정을 하다가 퇴마사라고 일컬어지는 낯선 동양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일에 도움을 준 것이 빌미가 돼 다시 경찰 로 근무하게 됐다. 순전히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입 밖 에 낸다면 웃음거리가 될 만큼 이면의 내용은 황당했고, 그들이 미국에 와서 정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더글러스도 몰랐다. 그 러나 그런 것은 상관없었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알 수 도 없는 일들보다는 자기 사정이 더 급했다.
경찰 일을 할 때는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지겹고 힘들다 생각했는데 겉보기만 그럴싸한 탐정 짓을 해 보니 그 일이야말로 정말 지옥 같았다. 무엇보다도 경찰이라는 조직력이 뒤에 있지 않은 것 이-이전에는 그것이 다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했지만 얼마 나 힘든지,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소름 끼치게 깨 달았다. 그런데 천만다행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알코올과 자신의 더러운 성질 때문에 쌓아 왔던 인생 의 어두운 일면을 털어 버리고 새 출발할 계기로 만들어야만 했 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걸려든 것이 하필이면 이런 괴이한 사건 이라니, 포기를 모르는 더글러스였지만 정말 머리를 쥐어뜯고 싶 었다.
‘아냐. 뭔가 해야 해. 뭐라도 해야……….?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린 더글러스는 파일 중에서 참고가 될 만 한 서류 몇 장만 빼서 아무렇게나 구겨 주머니에 넣은 뒤 몸을 일 으켰다. 마침 서장이 지나가다가 더글러스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말했다.
“뭐 하나?”
“현장에 가보려고요.”
“이미 감식반에서 나와 다 훑고 갔어. 그보다는 먼저 회의를 해야……”
“현장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보게, 지금 가봐야…………….”
“나올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반드시 있어야겠지요.”
더글러스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서장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소문이야 워낙 들어 왔지만 역시 희한한 녀석이다. 사교성도 없고 유머 감각도 없고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더글러스, 아는 자 들의 평에 의하면 그나마 지금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편이라 고 한다. 하지만 서장의 눈에는 여전히 어딘가 할렘 거리의 노숙 자를 연상하게 한다. 머리와 면도를 나름대로 단정하게 했지만 몇 오라기씩 무신경하게 남아 어울리지 않는다. 고운 때가 켜켜이 앉 은 것 같은 옷차림하며 엉성한 몸가짐, 알코올기가 스민 눈초리는 더더욱 말이다.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해서 과거 경력을 무시하 고 일을 준 윗자리의 누군가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래? 뭐 특별한 재주라도 있어?”
더글러스는 순간 조금 당황했지만 서장은 아예 대답을 들을 생 각조차 없던 양 바로 이어 말했다.
“그럼 맘대로 해 봐.”
더글러스는 대답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비 록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저주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재주가 있지. 당신 같은 사람은 죽어도 모를……………’
더글러스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다. 사물에 남은 과거의 기억 을 읽는 능력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 현장이나 사건을 추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 능력 덕분에 지난번 퇴마사들에게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 고, 그 이전 경찰로 일할 때도 의외로 큰 성과를 올리고는 했다.
하지만 이 능력은 더글러스가 마음을 먹는다고 항상 발휘되는 것 이 아니다. 제멋대로 됐다 안 됐다 하는 데다가 발동해도 꼭 도움 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잘 발동되 다가 마지막 순간에 발동하지 않아서 일을 망친 적도 있다. 능력 때문에 모르고 지나쳐도 좋을 허황한 일에 수도 없이 휘말렸고, 결국은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내지도 못했다. 제일 큰 문제는 남에 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이 나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능력이 없었다면 더글러 스는 이렇게까지 괴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유능하며 열의 넘치는 보통 형사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우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 생활 을 시작하려는 마당에 어이없이 걸린, 하나도 단서를 잡을 수 없 는 사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능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 니 이 능력이 튀어나올 때까지 며칠이고 사건 현장에 아예 붙어 있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별말 하지 않지만 슬슬 조롱하 듯 관찰하는 서장과 서 내의 -동료라고 할 만한 인연은 아무와 도 맺지 못했지만-들에게 뭔가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 다. 그는 거친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물론 조금 전에 차 를 세워 둔 곳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의기소침해졌다.
더글러스는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좋은 차를 몰 수 없었다. 이십 년도 넘은 케케묵은 고물차는 조금 전에도 타고 왔지만 다시 보자마자 짜증이 났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올라탔지만 시동조차 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이나 운전대 부근을 주먹으로 두들겨 패서야 간신히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불안한 엔 진 소리와 앓아누울 듯한 진동이 현재 자신의 꼴 같아 우울했다. 그러나 더글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건은 누구도 해결하기 힘들 거야. 하지만 난 할 수 있 다. 한 번만 나와줘라. 한 번만’
차를 빼내며 더글러스는 자신의 그 감춰진 능력이 발동되기를 속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