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19화
키 드레이번은 자신의 책상에 앉은 채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좌로부터 라이온, 오스발, 식스의 순서였다. 라이온은 그냥 두 손으로 귀 를 틀어막고 있었지만, 고지식한 식스는 차렷 자세를 유지한 채로 졸도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발은 부드럽게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화분을 공손하게 받쳐들고 있었다.
키는 싱잉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독특하게 생긴 꽃이었다. 튤립처럼 긴 줄기 위에는 얼핏 보기에 공처럼 보이는 꽃이 달려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던 키는 그 둥그스름한 꽃이 수백 개 의 작은 꽃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는 그쯤에서 관찰을 멈추었다. 더 자세히 관찰해 볼 시간은 많이 있을 테니. 그래서 키는 관심의 대상을 오스발에게로 옮겼다.
오스발은 그저 얌전히 서 있는 것만으로 자유호의 1등 항해사와 레보스호의 임시 선장을 창피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식스는 자신이 노예보다 못할 수는 없다는 결심으로 꿋꿋하게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결과로 입가에 걸죽한 액체를 조금 분비하고 있었다. 대범한 라이온은 그냥 귀를 막 고 있었고 게다가 몸은 사정없이 비틀어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키에게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고함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싱잉 플로라의 노 랫소리를 듣고 있던 키는 라이온의 심정을 거의 이해할 수 있었다.
키는 책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는 오스발에게 말했다.
“그 노래가 들리지 않느냐.”
말을 꺼내던 키는 흠칫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오스발은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들립니다. 저, 퍽 신기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꽃이 다 있군요.”
“신기하다고 했느냐. 다른 것은 느끼지 못하나?”
“예? 다른 것이라뇨?”
키는 잠시 기다렸고, 이번엔 떨림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노래를 따라 불러보아라, 오스발.”
오스발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키는 엄한 얼굴로 마주볼 뿐이었다. 잠시 주춤거리던 오스발은 내키지 않아하는 태도로 허 밍을 시작했다. 식스는 고개를 돌렸고 라이온도 한쪽 귀를 열어 오스발의 허밍을 들었다. 오스발은 더듬거리며 한참 동안 허밍했다.
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많이 더듬거리는군. 넌 그걸 들을 수는 있지만, 잘 듣지는 못하는군.”
“예. 그렇습니다. 선장님.”
“이리 다오.”
오스발은 화분을 키에게 건네었다. 키는 한 손으로 화분을 받아서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일항사, 노예장에게 전해라. 오스발은 그대로 노예 신분으로 두지만 쇠사슬은 더 이상 착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스발이 매를 맞을 필요가 있을 때는 내게 직접 맞게 한다. 노예장 자신이 아니라. 알겠나?”
오스발과 식스는 동시에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노예 신분으로 두지만 쇠사슬은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달아나고 싶으면 달아나라는 뜻이나 다름 없다. 매도 마찬가지다. 노예장이 무슨 배짱으로 오스발을 선장에게 끌고 와서 저 대신 좀 때려주십시오, 라고 말한단 말인가. 이건 매를 대지 않겠다 는 뜻이다. 식스는 뒤의 것은 양보하더라도 앞의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세웠다.
“선장님. 쇠사슬을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곤란합니다. 저놈이 혹시라도 불측한 마음을 먹고 달아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아니, 달아난다면 차라 리 낫습니다. 저놈이 다른 노예들의 족쇄까지 풀어줘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어쩌시겠습니까.”
키는 식스를 바라보았다.
“일항사. 새장의 문을 열어본 적이 있나?”
“새장이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식스는 얼떨떨한 눈으로 키를 바라보았다. 키는 고개를 돌려 책상에 놓인 싱잉 플로라를 내려다보았다.
“모두들 나가보게. 그리고 일항사. 내 말은 그대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식스는 불만스러웠지만 두 번 되묻지는 않았다. 식스는 키에게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몸을 돌렸고, 라이온은 이제서야 살았다는 표정으로 부리나케 선장실을 빠져나갔다. 오스발은 더듬거리며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마지막으로 선장실을 나온 사람이 되었다.
자유호의 넓은 선장실 안에는 해적 선장과 노래 부르는 꽃만이 남았다.
키는 책상 옆을 돌아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화분을 바라보았다. 싱잉 플로라의 괴기스러운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다. 키는 조용히 말했다.
“너는 이상한 꽃이군.”
키의 탁한 목소리는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 속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나는 너를 가졌다. 싱잉 플로라. 나를 소개할까? 나는 제국의 공적 제1호 키 ‘노스윈드’ 드레이번이라고 한다. 너를 처음 가졌던 제국의 공적 1호는 위대한 마법사였지만 나는 해적이지. 실망할 것은 없어. 나와 하이낙스를 비교해 보려 한다면 너는 크게 뉘우치게 될걸.”
싱잉 플로라의 노래는 계속되었고 키의 혼자말도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너는 정말 이상하군. 정확하게 말해서 네 노래는 이상하군.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는 남자에게만 들린다. 그런데 내 함대에 있는 유일한 여자는 네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내 함대에는 네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남자도 있다. 어떻게 된 거지? 네가 이상한 싱잉 플로라인가, 아니 면 그들이 이상한 남녀인가?”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는 끝없이 고조되었다. 키는 피식 웃었다.
“대답이 없군. 노래하는 꽃이여. 그 대답은 내가 찾아야 되는 것인가.”
키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문득 자신이 피곤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낮의 전투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온몸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싱잉 플 로라의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랫소리 속에서, 키는 자신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해적이 된 이후로 지금껏.
키는 두 자리가 넘는 햇수의 피로를 한꺼번에 느꼈다.
“나는 이제 자야겠다. 조용히 해라. 그렇지 않으면…
키는 싱잉 플로라의 꽃봉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를 꺾겠다.”
싱잉 플로라의 노래는 멎었다.
키는 손을 멈췄다가, 다시 끌어당겼다. 선장실은 이제 고요했다. 키는 그 고요 속을 조금 방황하다가 책상 위에서 불타던 촛불을 껐다. 고요에 이어 선장실에는 암흑이 찾아왔다.
대해적은 고요와 암흑 양쪽에 만족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