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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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5화


파킨슨 신부가 율리아나와 오스발을 데려간 교회 안쪽의 수도원은 너저분한 예배당과는 달리 깨끗하고 단정했다. 파킨슨 신부는 화재가 이곳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스발은 아무 말 없었지만 율리아나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신부가 내놓은 찻잔을 들어올리며 율리아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신부님? 복사(Acolyte)도 한 명 보이지 않는군요?”

“하하, 여기 있잖습니까. 제가 바로 테리얼레이드 교회의 복사며 부제이고 사제며 골디란 교구의 주교인 셈이죠.”

율리아나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어머. 혼자서 이 교회를 담당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 혼자서도 공주님의 귀환을 충분히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고요, 라는 말을 꺼내는 대신, 율리아나는 찻잔을 들어올려 우울한 얼굴을 감추었다.

파킨슨 신부의 말은 사실 그 자체였다. 그는 테리얼레이드 교회의 하나뿐인 사제였으며 다른 신부를 만나보기 위해선 말을 타고 며칠을 달려가야 되 는 상황에서는 주교나 다름없었다. 펠라론의 법황청은 무법 도시 테리얼레이드 주민들을 대상으로 포교 활동에 정진하는 파킨슨 신부의 노력을 높이 사서 테리얼레이드 교회를 정식으로 인정했지만 그 외의 다른 지원은 하지 않았다. 율리아나 공주와 오스발은 아연한 기분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들의 얼굴을 보며 파킨슨 신부는 히죽 웃었다.

“저는 원래 선교사였지요. 이곳에 찾아든 것을 우연이라고 부르셔도 좋고 신의 섭리라고 하셔도 좋습니다만 어쨌든 전 이곳에 왔고 이 도시의 사람 들이 성전보다는 단검을, 주님의 이름보다는 대마법사 하이낙스의 이름을 더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법황청에 문의해 보고서 테리얼레이드에 교회를 건설할 계획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죠.”

율리아나는 참으로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말을 대충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파킨슨 신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공주님. 죄송합니다. 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요. 공주님께서는 이 무법 도시의 하나뿐인 신부가 과연 어떻게 공주님을 도울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시겠군요.”

“교회 안에서 거짓말은 못하겠군요. 솔직히 걱정됩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래 보여도 신의 사도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재미있는 것 하나 보여드릴까요?”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파킨슨 신부는 두 팔을 천천히 구부렸다. 잠시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바라보던 파킨슨 신부는 갑자기 흡!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을 앞으로 뻗었고 조금 전까지 비어 있던 신부의 두 손에 육중하고 투박해 보이는 단검들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율리아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로 홱 젖혔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미소 지으며 단검을 쥔 두 손을 옆으로 벌렸다.

“제가 이 도시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기술입니다. 겨드랑이 부분에 틈을 내고 등에 찬 단검을 넣었다 뺐다 하는 이 기술은 이 도시에서는 어릴 때부 터 배우는 기술이지만, 저는 성인이 되어 손이 이미 굳어버렸던지라 익히기 퍽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신부의 손에 단검은 어울리지 않죠?”

파킨슨 신부는 싱긋 웃으며 다시 팔짱을 꼈다. 다시 앞으로 나온 두 손은 조금 전처럼 비어 있었다. 율리아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칼날 이 사라진 겨드랑이 쪽을 유심히 보았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율리아나는 무의식중에 질문했다.

“사람을 찌른 적도 있나요?”

파킨슨 신부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그리고 질문을 꺼낸 다음에야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한 건지 알아차린 공주는 화들짝 놀라서는 파킨슨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파킨슨 신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다보다가 혼자말처럼 대답했다.

“글쎄요. 주님 앞에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모호한 대답밖에 할 수 없군요.”

“아, 신부님. 저, 그러니까 제 말은, 아니, 전 단지 궁금해서 아무 생각 없이……”

“괜찮습니다. 공주님.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이지요. 어쨌든 저는 이 도시에서 10년 가까이 살아왔습니다. 신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무수한 삶 의 테크닉들을 배워 익히면서요. 하지만 신학교에서 배운 정신은 아직 잃지 않았습니다. 고난에 빠진 자를 돕는 정신도 그 중 하나겠지요.”

무슨 말을 하려던 율리아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부님을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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