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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 1793화


1793화. 저게 대답이란다. (3)

“……어?”

조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남궁의 검기가 찬란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이번엔 시선이 다른 한편으로 획 돌아갔다. 실로 묵직한 종남의 검이 태산처럼 적을 막아서고 있었다.

패(覇)와 중(重).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두 검이 서로 겨루기라도 하는 듯 적을 향해 쏟아졌다.

“오오오오오오!”

그렇게 두 검이 활로를 연 순간, 움츠러들었던 근처 천우맹도들이 용기백배해 적과 맞서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조걸이 다급하게 삿대질하며 벌컥 고함을 질렀다.

“저거 보라고요, 저거! 우리가 하려던 거 아닙니까? 사형이 꾸물대니까 저 양반들이 선수를 치잖아요!”

“…….”

“명령을 기다리기는 개뿔이! 우리가 언제부터 명령 기다렸다고! 화산 놈들이면 화산 놈들답게 토끼 본 개새끼처럼 달려들고 봐야지! 사형, 실수 눈감아 드릴 테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아악!”

“요놈의 조동아리, 조동아리! 이 새끼야! 토끼 본 개새끼가 사문에 갖다 붙일 수 있는 표현이냐? 이걸 확 그냥!”

윤종이 조걸의 뒷머리를 움켜잡고 입술을 찰싹찰싹 때렸다. 스스로도 제 발언이 심했다 싶었는지 큰 반항 없이 고개만 획획 돌려 대던 조걸이 다시 외쳤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우리도 뭐라도 해야죠!”

“지금 하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어라.”

“예? 아니, 가만히 있는 게 어떻게 뭘 하는 게 됩니까?”

“지금은 그게 하는 거야.”

조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이 양반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노골적이다 못해 전위적인 표정에 열이 확 오른 윤종이 한마디 하려는데, 임소병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흐음. 확실히 윤종 도장은 화산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그가 부채 끄트머리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니, 아니지……. 지금까지 화산을 이끌었던 양반들이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 보이는 건가…….”

임소병은 잠시 중얼거리다 이건 나도 모르겠네 하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러더니 짧게 평했다.

“나쁘지 않은 판단입니다.”

“아니. 이 양반도 아주 맛탱이가 가 버리셨나! 나쁘지 않긴 뭐가 나쁘지 않아요!”

울컥한 조걸이 거의 찌르듯이 앞쪽을 가리켰다.

“안 보입니까? 저래 봐야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니까요! 이럴 때 나서서 아예 전황을 확 뒤바꿔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이 기회라니까!”

임소병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조걸을 바라보았다.

“오.”

“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사파 새끼가!”

“참아! 참아!”

“진정해요, 사형! 전쟁 중이잖아!”

날뛰는 조걸을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임소병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지금이 딱 나서야 할 상황이죠.”

“그러니까! 그런데 대체 왜 여기 있자는 겁니까?”

“그야 조걸 도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요.”

“엥? 그게 뭔 소립니까?”

조걸이 눈을 끔뻑였다. 임소병이 빙그레 웃었다.

“조걸 도장도 알 만한 일을 다른 이들이라고 모르겠습니까?”

“그야…….”

조걸이 움찔했다. 그러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귓가에 탄식에 가까운 임소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령이고 나발이고 날뛰고 싶어 하는 게 여기 사람들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이죠.”

“저 멍청한 놈이…….”

이 갈아붙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진금룡의 눈빛은 이송백의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장문인의 명을 들었을 텐데도, 저 생각 없는 놈이 가장 앞에서 적과 맞서고 있다.

“사형!”

“명을 주시면 도로 끌어내겠습니다!”

주변에 있던 몇몇 종남 제자들이 진금룡의 시선을 알아채고 빠르게 말해 왔다.

그러나 진금룡은 별다른 지시 없이 그저 이송백 쪽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다른 종남의 제자들도 우선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는 없었다.

적과 맞서는 이송백의 모습이 보였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세상 그 어떤 검보다 단단하다. 쏟아지는 공격을 철벽처럼 막아 내고 있다. 그 견고함이 등 뒤에서 지켜보는 이들마저 숨 막히게 했다.

“……대단하다.”

누군가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진금룡이 슬그머니 눈살을 찌푸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뒤늦게 실언을 깨달은 이가 화들짝 놀라 고개 숙였다.

진금룡은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그저 시선을 보낼 뿐. 하지만 딱히 화난 기색이나 질책이 실려 있지 않아도 무척 불편한 시선이었다.

잠시 후, 진금룡은 다시 이송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하삼십육검. 종남의 검.

‘언제 저렇게…….’

진금룡도 부인할 수 없었다. 이송백이 펼쳐 보이는 검에서 흠을 찾기 어려웠다. 저 철벽을 뚫는 이가 그가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저 검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대단해진다 한들, 무어가 달라진단 말인가?’

과거를 답습하기만 한다면 영원히 선조들의 발치에 머무를 뿐이다. 설령 천하삼십육검을 완벽히 익힌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문파는 항상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문파의 검 역시 계속해서 발전해야 한다. 설령 그 검의 시작이 화산의 모방에 불과하더라도, 완연한 자신의 색을 입혀 내고 화산의 색을 지워 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종서한.”

“예, 사형!”

“뒤로 따라붙어라.”

“알겠……. 예?”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던 종서한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종남의 검을……. 지금의 종남이 선택한 검을 똑똑히 보여 주겠다.”

“자, 잠시만요, 사형! 장문인께서는……!”

“화산 놈이 저리 날뛰고 있는데 잠자코 뒤에서 구경이나 하라는 거냐? 책임은 내가 진다! 잔말 말고 따라와!”

말을 내뱉은 진금룡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방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쇄도했다.

“허…….”

종서한은 순간 말문이 막힌 채 진금룡의 뒷모습을 망연히 보았다.

파아아앗!

마치 비조처럼 강하하는 진금룡의 주위로, 휘몰아치는 눈발처럼 새하얀 검기가 나부꼈다.

“하여튼 저놈의 자존심.”

더없이 치명적이다. 그저 지지 않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저토록 서릿발 같은 검기를 뿜어낼 수 없을 터였다.

아마 진동룡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를 그리 만든 적들에 대한 분노가 저 검에 고스란히 실려 있을 것이다. 물론 제 입으로는 그 감정에 대해 죽어도 말하지 않을 사람이지만.

종서한이 버럭 고함쳤다.

“뭐 하고 있느냐! 사형 말씀 못 들었어? 따라붙어!”

“예!”

몇 없는 종남의 제자들이 재빠르게 진금룡을 따라 전방으로 쏘아졌다.

“하여간…….”

종서한은 이 시각에도 적을 굳건히 막아 내고 있는 이송백과,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적을 밀어붙이는 진금룡을 응시했다. 두 사람의 완연히 다른 검이 그린 것처럼 대비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종남의 검일까?

글쎄. 그건 종서한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저 두 사람이 그 답을 내줄 테니까. 그러려면…….

종서한이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그의 입에서 그 자신도 예상치 못했을 만큼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종남이 여기도 있다!”

우선 지금 이곳에서 이겨야 한다.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쿠웅!

“후!”

무진의 검이 잘게 진동했다.

‘옳은가?’

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기에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쿠웅!

심지어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았다. 그로서는 전면에 서는 일만으로도 벅차고 버거웠다.

상황이 이러니 주위를 독려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콰각!

적의 도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화끈한 통증이 번져 나갔다.

‘위험하군.’

그도 안다. 이 행위가 옳을지는 몰라도, 현명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무당은 장문을 잃었으며, 허공을 잃었다. 이런 마당에 무진이 목숨을 잃는다면 무당은 정말 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후방에 있는 편이 옳다. 그 누구보다 안전한 곳에 머무르는 편이 낫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콰앙!

그의 검과 적의 도가 거세게 맞닥뜨렸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무진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한쪽 눈을 잃은 자리가 욱신거렸다. 진기가 흐를 때마다 지난 전투의 상흔이 고통을 호소했다.

자존심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열등감인가?

몰락하지 않겠다는 외침? 혹은 몰락을 절감한 이의 절규?

‘그런 걸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쾅!

그의 검이 무당의 검답지 않게 거친 기운을 머금은 채 적의 도를 후려쳤다.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아직 외눈에 익숙해지지 못해서인지, 적의 도가 날아드는 궤적을 자꾸만 오인하게 되었다. 찰나의 실수가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전장에서 이러한 결점은 실로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우는소리나 늘어놓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잃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무당이다.’

때로 생각했다. 무당의 이름을 지키고 이어 가기 위해 그들이 뼈를 깎는 수련을 한다는 사실을 세인들이 몰라 준다고. 이 이름이 주는 것만큼이나 이 이름을 지키기 위해 잃어야 하는 것도 많다고 말이다.

하지만 잃고 나니 알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얼마나 배부른 투정이었는지.

제대로 된 심법 하나, 제 몸을 지키기 위한 검법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도 싸우기 위해 이곳에 선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 비하면 그가 입은 부상 따위야 결점이라 할 수도 없다.

“하압!”

검이 부드럽게 적의 도를 흘려 내었다.

본디 무당의 검은 힘을 힘으로 맞받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이 깃들었을 때, 무당의 검은 그 어떤 패도(覇道)마저도 굴복시킬 수 있는 법.

그러나.

카가가각.

그 부드러움의 기반이 될 섬세함이 지금 무진에게는 없다.

채 다 흘리지 못한 도가 허공을 가르며 무진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가 두 눈을 부릅뜬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카앙!

뒤쪽에서 뻗어 나온 검이 무진에게 날아들던 도를 쳐 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어느새 옆에 다가와 선 이를 보며 무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불량 도사가 여기도 있군.”

“저희가 불량해 봐야 어느 문파만 하겠습니까?”

진현이 농담하며 나직이 웃었다.

“다만, 사숙.”

“음?”

“여기서 나서서 싸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잃은 걸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

“이제 우린 지키는 게 아니라 되찾는 사람들이니까요.”

진현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했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끝에 누가 있을지 짐작되었다.

무진의 뇌리에 과거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첫 모습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얼간이로만 보였다. 그때의 그는 삼류조차 되지 못하는 화산의 대표로 무진의 앞에 섰다. 그때는 분노했고, 때로는 비하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질투했었다.

하지만 이제 무진은 안다.

‘내가 그러해야 한다.’

그 무모한 모습이 이제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그처럼 살지 않고서는 영원히 무당의 영광을 재현할 수 없음을 말이다.

“후.”

무진이 짧게 한숨을 내쉰 끝에 입을 뗐다.

“만약 내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뒤에 제가 있으니까요.”

“…….”

“그리고 뭐…… 제가 실패해도 또 누군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린 무당이니까.”

무진이 결의로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무당이다.”

설령 모든 걸 잃고 사라질지언정, 한 줌을 지키기 위해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그게 저들이 알려 준 것이고, 장문인과 허공이 모두를 위해 남긴 교훈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예, 사숙!”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흑과 백의 검기를 그려 냈다.

* * *

제갈자인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분명 명을 내렸다.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명령이 외려 족쇄가 되어 그의 목을 조이는 상황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 어째서 저들이?”

곳곳에서 젊은 구파의 무인들이 제멋대로 나서서 적과 응전하고 있었다.

이는 명백한 불복종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무너져 가던 천우맹의 기둥을 순식간에 떠받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화를 내야 하는가, 아니면 기뻐해야 하는가.

제갈자인의 눈빛이 떨렸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재점검했다. 젊은 무인들의 응전에 고양된 천우맹도들이 힘을 내어 적과 맞서고 있다. 동시에 하나둘 더 많은 이들이 전방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저…….”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비우며 생겨난 공백을 뒤쪽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완벽하게 메꾸고 있었다.

마치 그가 머릿속으로 한 생각을 전해 듣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그보다 몇 발짝 먼저 움직이는 것처럼.

“……녹림왕.”

제갈자인이 앓는 듯 중얼거렸다.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부채가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 탓이었다.

움직이고 있다. 이 거대한 군세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라도 된 것처럼 요동친다.

대체 그가 내린 지시와 저들의 목소리가 어찌 다르기에 이토록 다른 결과를 빚어낸단 말인가.

“결국…… 사람인 것을.”

“예?”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제갈자인이 고개를 돌렸다. 당군악이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있었다. 상황에 걸맞지 않게 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분에 넘치는 짓거리는 그만둬야겠소.”

“가주님?”

챙.

당군악이 비수를 꺼내 들었다.

“노력해도 채울 수 없다면, 억지로 채우지 않으면 되는 것을. 나도 멍청해져 버렸군.”

“가주님? 그게 무슨…….”

“뒤를 부탁합니다, 군사.”

“예? 가주, 잠깐! 가주님! 대체……!”

당군악이 그를 두고 빠르게 땅을 박찼다. 이 모습에 당가의 식솔들이 시원하게 웃어 대며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니…….”

홀로 남겨진 제갈자인은 당혹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들…… 제정신인 건가?”

전장의 운명이 그의 손을 깔끔하게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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