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68화 : 선발대의 신념과 선택
선발대의 신념과 선택
흐느끼는 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천지 가득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사방이 흑암으로 채워진 중에 그 소리만이 유일한 변화의 흔적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은 하나 제외됨 없이 숨죽이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생경한 느낌도 잠시, 점차 그 소리에 동화되어 기묘한 감정상태로 접어들게 한다.
어찌 들으면 바람소리 같기도 했지만 그것은 분명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였다. 저마다 다르게 들었지만 모두가 환각에 빠져든 건 동일했다.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은 마음에 새로운 느낌들을 출현시켰으며 그 가운데 안식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일부의 존재들에게는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했다.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파천과 아퀴나스는 숨을 고르며 소리에 더 집중해 갔다. 카오스가 남긴 흔적은 지울 수 없도록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아퀴나스의 탄식은 현재의 상황이 어떤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모두가 혼돈 중에 잠겨버렸구나. 카오스의 목마른 울음소리가 내 소중한 것들을 삼켜버렸다. 그토록 염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내 힘으로도 막지 못했다.”
여기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파천은 아퀴나스를 위로하지 않는다. 아퀴나스는 위로 받고 싶지 않았다.
미리 알고 있었다 해도 원천적으로 차단시킬 방법은 없었을 텐데. 대처함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도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은 덜어내지 못했다. 파천은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고 또한 이런 흐름을 방치한 것도 사실이라고, 어쩔 수 없었노라고.
“카오스를 구별시켜 드러내기만 했어도. 실체를 찾아내기만 했어도.”
아퀴나스의 자책이 이어지는 동안에 파천의 시선은 카오스가 떠난 곳으로 따라 흔들렸다.
흘러내린다, 터진다, 녹는다. 부서진다. 그리고 새로운 개체로 변형된다.
혼돈 중에 모두가 사로잡혔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었으며 그 양상은 너무도 참혹했다.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시작일 뿐이었다.
“파천.”
메타트론의 부름은 의미를 형성하지도 못한 채 다다르지 못하고 공허하게 파천을 비껴갔다. 흔들리는 시선은 메타트론을 넘어 수호자, 선발대를 지나쳐 한없이 확장돼 갔다. 파천의 멍한 시선 속에서 아퀴나스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너와 나 둘 중에 하나가 반드시 옳다고 확신할 수 있나? 이 현상계에 절대적으로 존중해줘야 할 숭고한 진리라는 게 있었던가?”
제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이 그것뿐인 것이 억울하다는 듯 아퀴나스는 더 큰 소리로 고함 질렀다.
“지금의 네 개입은 교묘하게 변명거리를 좌우에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극단적인 이기심에 다름 아니다. 너와 내가 적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 지극히 단순하지. 내가 네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네 굳건한 의지를 시험하고 뒤흔드는 명확하지 않은 우리의 태도 때문이겠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무참히 부셔버릴 위험스런 존재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방비한답시고 저 꼴사나운 무리를 이끌고 온 네 모습이 … 내겐 왜 이리 초라하게 보이는 걸까? 좀더 솔직해질 수는 없었나? 우리 눈과 귀를 속일만한 달콤한 타협안을 가져올 수는 없었단 말이더냐? 우리들의 기억이 네게는 그처럼 무가치한 것이었나?”
파천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퀴나스의 떠드는 소리에 매료되었다거나 온전히 동의함은 아니었다. 또다시 파천의 의식을 흔드는 아퀴나스의 외침!
“너와 내가 없어져도, 이대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이 세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착각하지 마라, 파천. 가면을 벗어라. 넌 완전자도, 그렇다고 저들과 같은 나약한 인간도 아니다. 네가 돌아오길 염원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그래서 눈앞에 다시 서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되었다.
키케로, 너의 … 지금의 네 모습은 … 소중한 무엇인가가 부셔져 흩어질까 봐 초조와 불안에 떨고 있는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 그래, 우리가 이 세계에서 몰아내버렸던, 우리가 혐오하던 바로 그놈, 카오스의 지저분한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명확하지 않은 의지로 늘 우리 모두를 혼란스럽게 했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세상 모든 걸 다 가졌다고 믿었다. 주변은 물론 자신조차 파멸로 밀어 넣고도 제 존재의 이유조차 깨닫지 못하지.
자, 보아라. 널 향한 의심의 눈초리들을. 한때는 그처럼이나 맹목적으로 널 지지했던 헤르바르트조차 네 진실 된 의도를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뭐라 하는 것 같은가? 저자가 이제 우리를 멸하고 노예로 삼고자 왔구나. 저자가 우리를 소멸시키고 새로운 왕이 되고자 왔구나. 저자가 우리를 꺾고 제 영광을 세우려고 왔구나. 해볼 테면 해봐라 … ”
“파천!”
메타트론의 짜증 섞인 부름에 파천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정신을 추슬렀다. 메타트론을 위시해 수호자와 선발대 등이 자신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메타트론의 얼굴엔 짜증이 덕지덕지 불어 있었다.
“갔다 온 일에 대해서 설명해줘야지?”
“그래, 그래야지.”
파천이 뭔가 이상하다. 수호자만이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라미레스는 파천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파천, 너무 무리한 요구다. 우리가 여기서 더 긴장하길 바라나본데 … 그러다간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앉고 말 거야.”
파천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메타트론이 재차 다그쳤다.
“결과는?”
파천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선 무겁게 입을 열어 갔다.
“둘 중에 하나. 남는 자가, 이기는 자가 입을 열어 말할 것이다.”
그렇게 결론지어지기까진 아퀴나스의 의견이 결정적이었다. 그가 파천을 몰아붙이며 싸울 뜻을 내비쳤고 격렬히 타오르는 결전 의지를 파천은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메타트론의 눈 속 깊은 곳에서 반짝이기 시작한 생기와는 달리 수호자는 암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피할 길은 없었나?”
스스로에게 재차 물음이 던져졌다.
‘진정 피할 수는 없었던가? 헤르바르트의 말처럼 처음부터 다른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고 이렇게 되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현실을 일깨운 건 메타트론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자, 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 처음부터 이러리라고 예상했던 일이니까. 이제부터 세부적인 사항들을 검토해봐야겠는데 … 아무래도 파천이 이곳 사정에 밝으니 내 특별히 지휘관의 자리를 양보하지.”
파천은 간략하게 의견을 정리해 내놓는다.
“그들은 오만하다. 자신들의 능력이 신에 버금간다고 여기는 자들인지라 세력 전으로 나오지는 않은 것이다. 여섯 지도자 그리고 그들의 최측근 소수. 아마도 … 상대해야 할 자들은 우리의 수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좀 근거가 약한 확신인데 … 믿어도 될까?”
루시퍼는 즉각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소모전으로 나온다면 꽤나 번거로울 텐데 왜 그들이 그런 유리함을 버린다는 거지?”
“수의 많고 적음으로 우위를 점할 수 없으니까. 물음에 대한 답. 그들도, 우리도 …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적에게서 찾고자 한다. 그 결과물로서. 그들의 고매한 자존심이 다른 여타의 우연이 침범해 원래의 뜻이 훼손되는 걸 용납하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아퀴나스가 원치 않는 일이다.”
메타트론이 파천의 의견에 동조하며 거들고 나섰다.
“그렇겠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어쨌든 비밀차원의 여섯 우두머리만 제거하면 끝이란 말인데 … 예상보다는 좀 시시한 감이 있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버리라고 충고해주고 싶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신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 신이라 자처하게 된 자들. 내부적인 갈들이 치열했음에도 지금껏 원칙을 고수하며 이 세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끊임없이 외부로 눈을 돌리려는 자들은, 그들의 충동을 다스리고 억제할 수 있었으니 장악력과 지배력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도자들의 존재감은 충분히 경탄할 말할 것이지.
이곳이 좋아 영원히 눌러앉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진정 여기서 살아나가고 싶다면 너 자신에 대한 신뢰만큼이나 그들을 무겁게 대하도록. 네 생명의 끝은 너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항시 잊지 마라.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너로 인해 내 종말을 일찍 맞이하고 싶진 않아.”
지나치듯 던진 말이었지만 메타트론은 오싹한 전율을 느꼈던지 표정이 딱딱하게 경직됐다.
‘그 정도란 말인가? 믿기 힘들군.’
마지막으로 넘어서야 할 벽과도 같은 존재 파천.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이나 파천을 인정한다. 그런 파천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허투루 들을 게 아니었다.
파천이 제안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해보자. 수호자와 난 선발대를 이끌겠다. 전력을 분산하자는 얘기다. 한 곳에 모여 있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다. 긴밀한 연락을 통해 서로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필요할 때 행동을 같이 한다. 원칙은 각개격파다.”
“그들이 한 곳에 모이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군.”
루시퍼의 질문이었다. 루시퍼를 대하는 파천의 태도는 메타트론과는 또 달랐다. 아무래도 예전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파천의 눈빛은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해져 있었다.
“그들이 모여 있다면 우리 또한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모이게 되겠지. 하지만 그들은 한데 어울려서 힘을 합하기엔 여러모로 껄끄러운 구석들이 많다. 자기주장들이 강해 외부의 약한 자극에도 쉽게 분열한다.
위기라고 판단되면 일시간 힘을 합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일치할 수도 일치될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 간의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이 세계를 지탱시켜온 핵심이었으니. 만약 이런 내 예상이 깨진다면 … 우리 싸움은 좀더 힘들어지겠지, 아주 많이 … ”
메타트론은 파천의 제안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진 않았다.
파천은 이어 비밀차원의 지도자들에 대한 것들과 기타 알아두면 좋을 만한 여러 가지 정보도 덧붙였다. 그 중에는 의미가 모호해 과연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열된 기호 정도로 인식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메타트론이 무리를 이끌고 사라진 연후 수호자가 지니고 있던 의문을 털어놨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전력을 굳이 양분한 진정한 이유가 듣고 싶은데?”
그랬다.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믿음처럼 서로 간의 전력이 팽팽하다면 전력을 분산해 유리할 게 하나도 없었다. 각개격파란, 포장만 그럴 듯한, 전략으로는 왠지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던 것이다. 파천은 수호자를 위시한 선발대 전원을 하나씩 훑어가며 조심스럽게 속내를 꺼내놓았다.
“우리 중 과연 몇이나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과의 정면대결은 … 백 번 되짚어 생각해보아도 사실 무모한 일이지. 요행을 바라고 밀어붙이기엔 위험 부담이 커. 너희들 중 단 하나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미련스럽게 강행해야 할까? 다시 한번 말하마. 내 생각이 짧았다. 너희들을 데려 오는 것이 아닌데 … ”
대체 무슨 소린가? 한참 용기백배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싸움을 앞둔 용사들을 향해 지휘관이란 작자가 뱉어낼 말은 아니었다. 설사 현실이 그렇다 하여도 대책을 강구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짜내어야 할 파천이 저런 나약한 말부터 꺼내놓는 저의가 뭐란 말인가? 모두는 파천의 말을 수긍하기보다는 그 점이 의아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파천의 나직하나 힘 있는 음성이 선발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번 싸움의 목적은 비밀차원의 붕괴나 파괴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영계를 위해서도 비밀차원은 존재함으로써 더 유익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는 그 수위를 넘어선 감이 없지 않지. 비밀차원은 변수가 많은 곳이고 그런 이유로 여기 오기 전까지 무엇을 결정했든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이 싸움을 하자고 한다. 피할 수 없겠지. 허나 아직은 아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파천은 뜻 모를 말로써 닫아두었던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파천의 의도는 간단한 듯 보이지만 꽤 복잡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 수호자를 포함한 모두를 속여 왔다고 고백했다. 선발대를 이끌고 비밀차원에 들어선 데에는 영계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 요소를 제거한다는 일차적인 목적보다도 더 절실한 두 가지의 시도가 숨어 있었다.
그것이 단지 시도에서 그칠 것인지도, 원하는 결과물을 손 안에 움켜쥘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하나는 메타트론과 그를 따르는 자들의 전력을 적의 손을 빌려 약화시키는 것. 그 목적은 이변이 없는 한 어느 정도는 성취될 거야.”
파천의 확신에 찬 어조만 보아도 비밀차원의 저력이,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만했다. 그런 곳에 파천은 위험천만하게도 선발대를 데려 온 것이다.
“선발대를 동행시킨 것은 메타트론의 주력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의심 없이 동의를 구해내기 위해서 너희들을 이끌고 왔다. 그리고 이 싸움은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싸움이어야 하고 또 … 너희들이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너희들은 다시 돌아가야 한다.”
어이없고 황당한 순간이었다. 선발대를 이끌고 온 이유가 고작 그것이 전부라고 이해시키기엔 무리가 따랐다. 좀더 그럴 듯한 설명이 뒤따라야만 했다. 모두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라미레스가 벌컥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메타트론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데려 왔다고? 그리고 돌아가라고? 파천, 잘 들어라.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곳에 왔고 그 결심엔 지금도 변함없다.
네 말처럼 우리 모두의 싸움이야. 살아남는 건 차후 문제. 네가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지만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제 네 판단이 개입할 수 없다. 그래, 까짓 죽지 뭐. 싸우다 적보다 약하면 죽는 건 당연해. 아무도 널 원망하지 않아. 전쟁에 뛰어든 이상 죽음은 거부할 수만은 없는 숙명과도 같다.
운이 좋다면, 그래 운이 좋다면 살아남아 훗날을 기약할 수도 있겠지. 하룬을 떠날 때 반드시 결과가 좋으리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허무하게 발길을 돌리라고? 난 절대 그럴 수 없다.”
라미레스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그와 똑같은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흘러나왔고 하나같이 그 결심은 다른 이가 어찌 해볼 수 없을 만큼 굳건하기만 했다. 하지만 파천은 가만 고개를 저을 뿐이다.
“만용이다. 가치 있는 죽음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전혀 …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더 절실한 이유가 있다. 모두 예측한 일이지만 지금쯤 마계와 제왕의 군대가 공격을 감행했을 터.”
수호자가 파천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현재 확보된 하룬의 전력으로도 그들과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 그건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천만에. 마령의 본주! 그를 벌써 잊었나? 우리가 이곳에서 생명을 부지해서 돌아간다 해도 정작 하룬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면 … 과연 … 우리는 스스로를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우선은 하룬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큰 우리의 사명이다.
지금의 정황이 둘을 한 번에 방비하게끔 허락하지 않기에 이곳을 먼저 왔어야 했지만 하룬도 버려둘 수 없다.”
“그럼 넌? 너 혼자서 이곳에 남아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지?”
“나 혼자가 아니다. 여기 수호자도 있고 메타트론도 있다. 그리고 비밀차원의 복잡한 상황이 되려 우리를 안전하게 할 것이다.”
파천은 어이없게도 적들의 그 막강한 힘이 자신에게 보탬이 될 것이라 했다. 그의 머리 속엔 대체 무슨 계획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파천의 끈질길 설득에도 불구하고 선발대원들은 그다지 수용할 뜻이 없어 보였다. 이미 결심한 이상에는 절대로 뜻을 꺾지 않을 기세였다.
라미레스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마령의 본주가 멍청한 놈이 아닌 이상 초전부터 참여해 깔짝대지는 않겠지. 그러니 우리에게도 아직은 시간이 충분하다. 우리 힘이 네게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 저들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미련스런 행동이라면 네 말대로 … 그리 하겠다.
하지만 잠시라도 저들에게 곤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여기 남을 절실한 이유가 된다. 우리들만 돌아간다 해서 환영받을 리도 없고 그럴 바엔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키는 쪽에 승부를 걸고 싶다.”
사실 파천이 애초의 계획을 수정하면서까지 급작스럽게 심경의 변화를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직은 확인되지 않은 비밀스런 존재! 한 가지 떨쳐버릴 수 없는 직감이 위험 신호를 깜빡이며 그를 조급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 ’
파천은 두 번째 목적에 대해서 털어놨다.
“저들은 강하다. 저들의 현 구도는 균형이 무너져 지극히 위험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아퀴나스라는 이름은 저들 중 특별하게 영광을 받고 있다. 그 이면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를 캐볼 생각이다.
만약 내 짐작이 맞는다면 … 그는 내 전부를 이곳에 묻어도 승리할 수 없는 변수가 된다.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어떤 시도도 무모하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너희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처음의 계획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파천은 여기 오는 내내 그 생각으로 불안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로도 그럴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그 순간 모든 계획은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밀차원을 언제든 위험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암적인 존재가 있다. 모든 부정적인 염원의 저주라고 불러야 할 그 존재는 오래 전 나를 포함한 이곳의 지도자들에 의해 봉인되었었다.”
파천은 그 힘을 미약하긴 하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끈적거리는 은밀한 시선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께름칙하다고도 했다.
파천은 광명을 얻고 중간계에서 코모라를 대면했을 때부터 그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비밀차원은 그래서 우선순위 정리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봉인이 해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제 거의 확신이 되어 있었다.
‘최악의 경우 아퀴나스가 이 일에 개입돼 있다면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것만 아니라면 차라리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모든 걸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선발대원들은 파천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저 간절한 호소들이 모두 자실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지어낸 거짓일 거라 생각하는 듯 무감동한 시선을 보내오고만 있었다. 이쯤 되면 누구 고집이 더 센가로 판가름 날 것 같지가 않다.
양자는 땅이 꺼져라 하늘이 날아가라 한숨만 푹푹 내쉰다. 오만상을 찡그리고 뚝심으로 무장한 채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선발대의 의지가 아무래도 이긴 것 같다.
“할 수 없지.”
파천이 백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위험에 선발대가 노출되기를 자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발대의 안전을 볼모로 도박을 해야 한다. 비밀차원에 들어선 이후부터 파천의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졌고 그럴수록 불안감은 증폭되어 갔다. 파천은 완전한 승리를 원했다. 누구 하나라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불안요소가 있다는 사실이 파천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수호자는 파천이 현재 느끼고 있을 심정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양으로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내가 선발대를 이끌겠다. 파천, 너는 미심쩍은 부분을 먼저 확인해봐라. 그런 연후에 우리와 합류하는 게 낫겠다.”
결국 이렇게 해서 파천은 혼자 움직이게 되었고 수호자와 선발대는 파천의 당부대로 적과 대면하는 순간을 조금 더 늦춰 보기로 했다. 불만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메타트론은 불타는 시선으로 한 곳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이쯤 가까이까지 접근했으면 작은 기척으로라도 맞아줘야 정상이건만 기대했던 반응은커녕 오가는 그림자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다.
“흠, 이놈들 보통내기들이 아니군.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겠지?”
이 순간 메타트론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메타트론의 감각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이곳이 비밀차원이라지만 많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메타트론의 예민한 감각에도 어떤 존재감도 포착되지 않는다. 아니 무언가에 의해 그런 감각의 영역이 훼손되고 방해받고 있다는 게 더 적적할 표현이었다.
“좋아. 내 앞에서 그런 자신감을 보인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던가를 깨닫게 해주지. 루시퍼!”
“네.”
“선봉을 맡아라. 저 화려한 궁성을 깡그리 부셔버려라. 그래도 기어 나오지 않을지 지켜봐야겠다.”
루시퍼가 고개를 까닥이며 뒤돌아섰다. 그는 주변에 늘어선 대마신들을 점검이라도 하는 듯 다시금 확인했다.
“싸움은 시작되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모조리 소멸시킨다. 자비 따위는 머리 속에서 지워버려라. 모든 존재들이 우리를 왜 악마라고 부르는지를 보여줘라.”
과연 그런 의미를 이해나 하고서 하는 말일까?
“명령을 이행하겠습니다.”
우렁찬 외침이 주변 공간을 함몰시킬 듯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루시퍼와 일곱의 대마신들이 한꺼번에 공중 높이 솟구쳤다. 영계의 어떤 초강자도 이들의 위엄찬 모습을 보았다면 두려움으로 전신을 떨어댔을 것이다.
거대한 궁성이 허공 높이 걸려 있었다. 단숨에 공간을 단축시킨 루시퍼의 눈길이 한 곳에 고정된다. 목표는 동일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궁성을 포위하며 늘어섰다. 아직까지도 기척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한꺼번에 힘을 발동시켰다.
화려한 빛줄기들이 사방에서 생겨나 궁성의 최상단부에 모아졌다.
파스스스
쿠루루루룽
콰쾅
빛은 저항 없이 궁성을 통과했고 중심부에서 시작된 균열은 곧장 빠르게 확산됐다. 웅장한 공성이 미세한 먼지로 흩어져 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렇게도 거대하고 화려했던 궁성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꿈이요, 환상이었다는 듯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눈앞에 일시에 환해지자 텅 빈 공간을 주시하는 시선들엔 의문만이 가득했다.
메타트론은 기가 차 중얼거렸다.
“파천, 네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대마신들도 기운이 빠져 망연한 시선을 서로 주고받기 바쁘다. 충성스런 대마신 발리가 재빨리 보고를 한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도주한 듯 보여집니다.”
굳이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좋았을 뻔했다. 대답이 없는 건 당연했다. 루시퍼는 대마신들에게 좀더 넓은 지역을 포함시켜 조사할 것을 명했다. 메타트론은 고민을 거듭했다.
‘이놈들이 한 곳에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놈들이 힘을 합했다면 … 최악의 상황이란 말인데 … .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정명승부를 걸어야 하는가, 아니면 … .’
처음부터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걱정이 커져만 갔다. 파천과 수호자 그리고 자신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불안감은 더욱 부피를 키워 간다.
“나를 따라라.”
메타트론이 파천을 찾아 움직이고 파천이 또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 그들의 적으로 맞서야 할 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깊은 침묵과 함께 했다.
그들 사이에 아직도 결정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오래지 않아 침묵은 헤르바르트의 잔잔한 음성에 의해 녹아들었다.
“어떤 입장이었든 이제는 하나로 통일시킬 때가 왔다. 더 이상의 대립은 어리석다. 키케로와 메타트론, 수호자. 이들 세 존재의 능력은 우리가 힘을 합하지 않고서 거론할 수 없다. 그들이 적임을 선언한 이상 우리도 그에 걸맞는 대응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도 신속히!”
코모라는 아퀴나스를 의식하며 자신의 주장을 조심스레 펴나갔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다. 총동원령을 내려 깡그리 쓸어버리면 된다. 그런 후에 차원을 넘어 영계 전체를 정복한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천궁과 부딪치게 되겠지만 … 충분히 해볼 만하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길 원했던 진실은 이제 너무도 분명해졌다. 약속은 신이 먼저 파기했다. 우리의 싸움은 생존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정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코모라는 아퀴나스의 처사에 불만이 많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캄파넬라가 힘을 실었다.
“진군하자. 우리가 뜻을 모은 이상 두려울 게 없다. 키케로와 메타트론, 수호자가 버거운 상대이긴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세계. 우리의 권능이 작용하는 곳. 제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이곳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지. 우리가 움츠러들 이유가 없다. 유리함을 버린다 해도 …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코모라와는 달리 캄파넬라는 단념이 빠른 편이었다. 아퀴나스는 한곳으로 다섯을 불러들이며 비밀차원의 전 생명체들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킬 것을 먼저 지시했다. 그런 연후 공간을 닫아걸었던 것이다. 캄파넬라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
“그래서 우르르 몰려가서 꼴이야 어떻든 승리만 쟁취하면 된다는 건가? 그런 모습을 보인 후에도 과연 지도자로서의 명예와 긍지를 지켜 갈 수 있으며 존경을 거머쥘 수 있으리라 보는가?”
바르트의 발언은 한참 신이 나서 떠들었던 캄파넬라와 코모라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버렸다. 그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얻은 승리가 너희에게는 가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용납할 수 없다. 지금껏 도전을 받은 예도 드물었지만 그럴 경우 언제나 난 상대를 존중했고 정당한 승부를 펼쳤다.
적을 예우함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신뢰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얻게 될 승리를 더 값지게 해주었다. 모두들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계략을 꾸며 함정에 몰아넣거나 뒤통수를 치거나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싸울 생각이라면 이쯤에서 난 빠지겠다.
키케로가 적은 무리로 이곳을 찾았을 땐 적어도 그가 아는 우리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거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캄파넬라가 반박했다.
“그럼 묻자. 정당한 승부를 위해이기는 걸 포기해야 할 경우, 너는 그때도 그런 주장을 펴겠는가? 너 하나의 긍지와 명예로 인해 이 세계야 어떻게 되던,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야 어떤 상태가 되든 상관없다는 말이냐?”
“그렇게 말한 적 없다.”
“그럴 경우 넌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그야 물론 … .”
재빨리 말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퀴나스가 모든 상황을 정리해 간다.
“물론 당연한 말이다. 저들이 먼저 정당함을 잃지 않는 한 우리가 야비한 짓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번 싸움은 우리들 선에서 끝낸다. 그런 연후 그때까지 살아남는 이가 있다면 … 그가 모든 걸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영광을 홀로 누려도 좋으리라.”
아퀴나스의 그 말은 키케로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자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담고 있기도 했다. 그는 그처럼 이번 싸움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퀴나스의 두 눈이 빛을 발하며 타오른다. 굳건한 의지와 신념은 누구도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준비는 끝 … 났다.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일만 남았다. 그들과의 싸움이 시작되면 아름다운 우리들 세계는 조금씩 사라져 갈 것이다. 우리의 시작이자 출발점이었던 잊혀진 공간은 차단시켰다.
두려움은 잊어라. 미련도 버린다. 각오를 새롭게 하라. 그간 대립만 해오던 우리들이었지만 이제는 힘을 합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살아남아라. 이 세계를 다시 예전처럼 돌려놓아 주기를 … 당부하겠다. 그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아퀴나스와 지도자들은 비밀차원의 모든 생명체들을 잊혀진 공간이라 불리는 곳으로 인도해 들였다. 그리고 이곳과 분리시켜버렸다.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절실했던 것이다. 아퀴나스의 말처럼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싸우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 키케로를 만나고 오겠다.”
“그는 왜?”
코모라의 의문을 뒤로 한 채 아퀴나스는 그곳에서 사라져 갔다. 그의 음성만이 남겨진 자들에게 대답할 뿐이었다.
“우리의 운명을 점쳐봐야지. 아무리 부정 해봐도 키케로는 여전히 키케로인 것을.”
코모라가 화가 나 소리쳤다.
“대체 그가 왜 두려워하는지를 모르겠다. 아퀴나스에게 제반사항에 대한 결정권을 맡겨도 좋을지 솔직히 회의감이 인다. 그는 아직도 키케로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음이 틀림없다.”
“걱정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야. 신중함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단력이 약해서라면 … 비난의 여지가 많지. 더군다나 키케로를 극복하지 못하고서 어찌 그를 이기리라 기대하겠는가?”
그러자 빈델반트가 코모라와 캄파넬라를 번갈아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가장 성원해주어야 할 너희들이 먼저 의심을 갖다니. 그런 얄팍한 심사를 지녔으니 우리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을. 예전엔 아퀴나스와 의견 대립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냐.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신뢰한다. 왜냐고? 그는 적어도 너희들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진 않으니까.
그가 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너희가 과연 이해라도 할 수 있을지 … . 그리고 난 믿고 싶다. 그는 우리들 중 가장 지혜롭고 강하다. 예전의 키케로로 되돌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를 영원의 침묵 중에 잠들게 하기엔 충분하다. 그가 하지 못한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빈델반트의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캄파넬라가 강경한 어조로 제 주장을 펼쳤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희들 모두에게 묻겠다. 아퀴나스는 가끔 우리들 의견은 무시한 채 독단적이 행보를 할 때가 많다. 만약 그의 결정이 우리 모두의 이익과 반대된다면 그땐 어쩌겠는가? 그때도 아퀴나스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야 하는가?”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모두는 서슴없이 아퀴나스를 버릴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