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30권 무당집회(武當集會)편 :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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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30권 무당집회(武當集會)편 : 7화


309장. 고인고사(古人古事)

숙소로 돌아온 진산월은 제일 먼저 사숙인 성락중을 찾아갔다.

조용히 진산월의 말을 듣고 있던 성락중은 그의 말이 끝나자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자리가 마련되었군. 수고가 많았네. 이제 문제는 삼일 후의 비무에서 어떤 결과를 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일 텐데, 각 파에서 다섯 명씩 나오기로 한 게 마음에 걸리는군.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성락중의 말마따나 오대오의 대결은 종남파에 불리한 면이 적지 않았다. 형산파에서는 다섯 명 모두 오결검객이 나올 게 뻔한데, 종남파의 고수들 중 그들과 대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장문인인 진산월 외에 성락중과 낙일방 정도였다.

진산월은 생각해 놓은 것이 있는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우선은 육 사숙의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육천기는 경요궁의 궁주이며 당금 무림에서 수공에 관한 한 최절정의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비록 그가 종남파에 입문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의 성정으로 보아 이번 비무에 기꺼이 참여할 것이 분명했다.

성락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라면 능히 한 자리를 담당할 수 있겠지. 남은 한 자리는 누구를 생각하고 있나?”

진산월을 바라보는 성락중의 얼굴에는 전흠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과 바라지 않는 마음이 엇갈리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사부인 전풍개의 일과 조부의 염원을 이루어 주려는 전흠의 사정을 생각해 본다면 마땅히 그가 선발되기를 바라야 하나, 그의 무공이 아직 형산파의 오결검객을 당해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기에 저어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대결은 단순한 비무가 아니라 문파의 부흥을 결정짓는 너무도 중차대한 싸움이었다. 만약 전흠이 나섰다가 패하기라도 한다면 그 개인이 받는 타격도 엄청날뿐더러 자칫 비무 전체의 승패가 갈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고른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벼르고 별렀던 형산파와의 싸움에서 출전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면 전흠의 실망감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흠 외에는 임영옥이 있을 뿐인데, 그녀의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도 불안한 일이었다. 한수에서 잠깐 실력의 일단을 드러냈던 그녀는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로는 거의 방 안에 칩거하여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단은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숙께 한 가지 양해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 말해 보게.”

진산월은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방 문이 보이자 진산월은 한 차례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늘 가슴이 설레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고는 했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그러했다. 진산월은 굳이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고자 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편안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이번 일에 대한 그녀의 의중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녀의 방 문을 보자 다시 또 마음이 흔들렸다.

다시 한 차례 숨을 찬찬히 내쉰 후 그는 그녀의 방 문을 두드렸다.

“사매, 나야.”

조용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진산월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 특유의 향내가 은은히 느껴지자 그의 입가로 자신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언제 맡아도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고 아늑하게 만들어 주는 내음이었다.

촛불 아래 내비치는 그녀의 눈빛은 유난히 영롱하게 반짝였다. 진산월은 가만히 그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녀의 앞에 가서 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흐릿한 촛불과 뒤섞이자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촛불이 그녀의 얼굴에 짙은 음영(陰影)을 드리우자 그녀는 한없이 창백하고 핼쑥해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진산월은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몸은 어때?”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많이 좋아졌어요.”

한수에서 전흠을 구하기 위해 무공을 사용한 후 그녀는 솟구치는 음기를 다스리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며칠간 그녀가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방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음기를 가라앉히기 위한 운공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었다.

진산월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으나, 며칠 전에 비해서는 그래도 약간의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대로 요양을 계속한다면 음기를 잠재우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음기와 양기의 충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신상에 당장의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무공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진산월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형산파의 용선생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해 주었다.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그녀는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비무에 나갈 사람은 모두 정했나요?”

진산월은 그녀의 두 눈을 빤히 응시하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정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직후에 말이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전 사제는?”

진산월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녀는 갑자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진산월은 묻지 않아도 그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진산월은 그녀의 손을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전 사제에게까지 무거운 짐이 돌아가는 일은 없도록 할 거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으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수심이 감돌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 왔던 구대문파로의 복귀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자신이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문파의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한 것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진산월은 그녀의 몸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겨 왔다. 진산월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설픈 위로의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기를 바랐다.

잃어버린 본산을 찾기 위해 한겨울의 매서운 산바람을 맞으며 종남산의 산자락을 내려 보던 그 순간에 그녀가 옆에 있어 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몇 사람 되지 않는 제자들만으로 거대한 초가보를 공격하기 위해 산문을 등지고 나설 때에도 그녀의 빈자리로 인해 얼마나 공허해했던가?

이제 그녀는 자신의 품속에 있다.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산월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다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그런 심정이 그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에게는 다른 어떤 여인의 몸보다 부드럽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무당산의 일이 모두 끝나면 강남 지방을 가 보자.”

난데없는 그의 말에 그녀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 보았다.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본 파로 돌아가지 않고 말이에요?”

“절강성에 있는 보타산 청조각의 신공이 음한지기를 다스리는 데는 최고라고 하더군. 그들의 신공이라면 사매의 몸도 완치시킬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눈빛이 잠시 아련해졌다.

“보타산이라……. 너무 먼 길이네요.”

“한수에서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가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야.”

임영옥은 여전히 근심 어린 기색이었다.

“그들이 선뜻 자신들의 신공을 알려 주려고 할까요?”

“성 사숙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 신공이 본 파의 무공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거야.”

“만약 그들이 그 사실을 부인한다면?”

진산월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윽고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의 신공이 본 파의 무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증거가 있기 전에는 그들은 감히 그러지 못할 거야. 그게 아니라면, 어느 쪽이든 슬픈 일이 벌어지겠지.”

임영옥은 그의 손을 꼬옥 잡았다.

“너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지는 말아요.”

진산월은 희미하게 웃었다. 왼쪽 뺨의 칼자국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결연한 빛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청조각의 전인에게 신세 진 일도 있는데, 그들을 억지로 강제하지는 않을 거야. 그들에게 진상을 밝힐 충분한 기회를 줄 거야.”

임영옥은 아무리 그가 강제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검무적이라는 그의 명성으로 볼 때 그가 청조각을 찾아가는 일 자체가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압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굳이 그 점을 입에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청조각의 전인이라면 이동심 소저 말이군요.”

“그래.”

“그러고 보니 청조각에서는 이번 집회에 오지 않았군요.”

“나도 은근히 그들이 오기를 기대했는데 조금 아쉽더군. 그랬다면 어쩌면 절강성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지.”

임영옥은 차가운 손으로 그의 손등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나 때문에 너무 서두르거나 초조해하지 말아요. 나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으니.”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진산월이 그녀의 방에서 나온 것은 밤이 제법 깊은 늦은 시각이었다.

그녀의 방에 촛불이 꺼진 것을 보고서야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하늘을 잠시 올려다본 그의 눈빛은 유난히 침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막 방문을 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진산월은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러다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의 한쪽 의자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유난히 눈부신 청삼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 사람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살짝 웃었다.

“주인도 없는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있어 미안하네. 아무리 기다려도 자네가 오지 않기에 잠시 실례를 했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이지.”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이었다.

진산월은 묵묵히 그를 보고 있다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귀하가 조만간 나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소. 사 맹주, 아니면 사백이라고 불러야 하오?”

청삼 중년인, 강북녹림맹의 총표파자인 십절산군 사여명은 한동안 아무 대꾸 없이 진산월을 응시하고 있더니 이윽고 한숨을 불어 내쉬었다.

“사백이라. 내게는 너무도 낯선 단어로군.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나?”

“당신이 남겨 준 여섯 발자국이 무염보라는 걸 알았을 때, 무염보를 얻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소. 그리고 이십여 년 전에 네 권의 무공비급과 함께 갑작스럽게 사라진 누군가가 떠올랐지.”

진산월은 사여명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시 묻겠소. 내가 귀하를 무어라고 불렀으면 좋겠소?”

사여명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순간 사여명은 평상시의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맹주라 불러 주게. 나는 이미 오래전에 종남파를 떠난 사람이니까.”

사여명은 다름 아닌 종남파의 전대고수인 운중안 강일비의 분신이었다.

강일비는 진산월의 사부인 태평검객 임장홍의 사형이었으며, 한때 종남파에서 가장 촉망받는 최고의 기재였다. 하나 모든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는 기산취악이 벌어진 후 방황하다 종남파를 등졌고, 그 뒤로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나중에야 진산월은 강일비의 형인 강일산을 통해 강일비가 우연히 종남오선의 일인인 비선 조심향의 네 가지 무공비급을 입수했으며, 그 사실을 종남파에 알리라는 강일산을 뿌리치고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강일비가 입수한 네 가지 비급 중 하나가 바로 <무염보요결>이었다.

진산월은 자신에게 무염보를 알려 준 청삼 중년인의 정체를 고민하다가 오래전에 사라진 강일비를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친형마저 뿌리치고 홀연히 모습을 감춘 강일비가 어떻게 이십 년 만에 강북녹림맹의 총표파자가 되어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산월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강일비와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강일비는 지금 분명한 대답을 했다. 자신은 더 이상 종남파의 운중안이 아니며, 강북녹림맹의 총표파자인 십절산군 사여명이라고.

그 순간 진산월의 마음 한구석에 휘몰아친 감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종남파의 옛 사람 하나가 또 떠나간다는 아쉬움인지, 아니면 종남파의 실전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자가 종남파의 문하임을 부인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인지.

진산월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으로 강일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귀하의 의견을 존중하겠소. 우선 일전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덕분에 당각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소.”

진산월은 그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격식 있고 예의를 갖춘 인사였으나, 그것은 상대를 같은 문파의 어른이 아닌 타인으로 대접하겠다는 의사표시나 마찬가지였다.

강일비의 얼굴에 한 줄기 고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모두 자네의 공일세. 나야 그저 가벼운 조언 몇 마디를 했을 뿐이지.”

“가벼운 건 아니었소.”

강일비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 두지.”

“사 맹주께서 나를 다시 찾아온 건 내가 귀하와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되었기 때문이오?”

강일비는 이미 오래전에 종남파를 떠났다고 스스로의 입으로 말했으나, 막상 진산월의 입에서 ‘사 맹주’라는 말이 나오자 가슴 한구석에 묘한 씁쓸함이 느껴졌는지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 말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군.”

“한 문파의 장문인으로서 의당 알고 있어야 할 문파의 옛 이야기를 들을 자격조차 없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지 않겠소?”

“자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나는 단지 대적(大敵)을 앞에 두고 자네가 다른 일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세. 확실히 이제 자네는 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되었네.”

“경청하겠소.”

“어떤 것이 듣고 싶나?”

“사 맹주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시오.”

강일비는 허공을 올려 보며 소리 없이 웃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만만치가 않은 사람이군. 그럼 오늘은 두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주겠네.”

“그게 무엇이오?”

“무염보와 난화지일세.”

두 가지 무공 모두 비선 조심향 이후 사라진 종남파의 전설적인 신공절학이었다. 최고의 보법이라는 무염보와 당시 강호제일의 지법으로 알려졌던 난화지. 당대에 조심향이 무염보를 밟으며 다가와 난화지를 펼치면 주위가 온통 꽃 그림자로 뒤덮였고, 그 안에 갇힌 자는 전신이 피로 물든다고 했다.

강일산에게 듣기로 강일비가 얻은 네 가지 무공비급은 무염보와 난화지 외에 염화옥수와 칠음진기에 대한 것이었다. 진산월은 강일비가 사대절학을 얻은 것이 맞다면 다른 무엇보다 칠음진기에 대한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강일비가 지난 세월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몇십 년간 친형인 강일산을 이씨세가의 감옥에 방치해 둔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 셈이오?”

강일비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내가 그 이야기들을 들을 자격이 안 되기 때문이오?”

“자격 문제가 아니라 시기 문제라고 해 두세.”

“어떤 시기 말이오?”

강일비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삼일 후에 형산파와 비무를 한다고 하더군. 그게 사실인가?”

진산월은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이 무당파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 있음을 알기에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비무에서 이기면 자네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겠네. 그러니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듣도록 하게.”

진산월은 강일비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으나, 그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만이 떠올라 있을 뿐이어서 속마음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비무에서 패하게 되면 더 이상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는 거요?”

강일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승리할 자신이 없나?”

“강호의 싸움이라는 것이 자신감만 가지고 이기는 것은 아니라서 말이오.”

“신검무적답지 않은 말이로군.”

“강호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지 않겠소?”

강일비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이내 단호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승리가 없다면 해야 할 이야기도 없네. 우리는 그저 각자의 길을 가면 되는 걸세.”

“지금처럼 말이오?”

“그렇지.”

“그러면 이제 무염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막상 이야기를 할 때가 되자 강일비는 잠시 허공을 응시한 채 무언가 상념에 잠긴 모습이었다. 진산월은 조용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다시 시선을 내린 강일비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염보는 비선의 절학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그 연원은 종남파의 팔대(八代) 제자였던 임소군(任素君)까지 거슬러 올라가네. 임소군은 신법과 보법에 특히 재질이 뛰어나서 산화삼십육보(散花三十六步)라는 절학을 만들었는데, 그 보법을 후대에서 계속 발전시켜 나갔네. 그러다 십대(十代)의 옥시음(玉時音)이 서른여섯 걸음을 스물네 걸음으로 줄였고, 말년에 자신이 평생 연구한 보법의 이론을 심득으로 남겼네. 그리고 그녀의 심득을 정리하여 무염보란 이름을 붙인 사람은 십일대 장문인이었던 유백석이었네.”

유백석은 종남파의 최고고수들인 종남오선을 실질적으로 키웠을 뿐 아니라, 종남파가 강호제일의 문파가 되는 초석(礎石)을 다진 인물이었다.

유백석은 옥시음의 심득을 연구하여 몇 가지 개념을 정립했고, 그것을 신법에 특출 난 재질을 지닌 조심향에게 전수해 주었다. 하나 옥시음의 심득은 너무 막연했고, 유백석 또한 그 보법에 대한 개념만 정리했을 뿐 막상 체계화시키지는 못한 상태였다. 막연한 보법의 이론을 실제로 현실화시킨 것은 순전히 조심향 본인의 재질과 노력 덕분이었다.

그녀는 다소 난삽했던 무염보의 걸음을 열여덟 걸음으로 줄였고, 그 보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녀가 사라진 후 종남파에서 무염보의 맥이 끊어진 것도 그녀 외에 누구도 무염보를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염보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흥미로웠으나, 진산월이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종남파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낙양 석가장의 철혈홍안에게 전해졌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강일비가 그 비급을 얻은 것이 순전한 우연인지도 의문스러웠다.

“무염보에 대한 이야기는 그게 끝이오?”

진산월이 다소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자 강일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았네.”

“그게 무엇이오?”

“무염보가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일세.”

진산월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말씀해 보시오.”

“무염보의 주인은 비선 조심향일세. 그리고 조심향은 자신의 절학을 후인(後人)에게 남겼네.”

항상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진산월도 지금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비선에게 후인이 있었단 말이오?”

“그녀도 사람인데 어찌 후인이 없겠나?”

“그 후인이 누구요?”

진산월이 급히 물었으나 강일비는 얄밉도록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건 무염보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세.”

진산월로서는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도 시기가 필요한 거요?”

“그렇다고 해 두세.”

“그래서 무염보는 비선의 후인들에게 대대로 전해져 온 거요?”

“한동안은 그렇게 내려왔지. 그러다 어느 순간에 후인들 사이에 분란이 생겼네. 그들은 두 파로 갈려졌고, 무염보 요결도 두 개로 나뉘었지.”

“그중 하나가 사 맹주께 전해진 것이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이오?”

“중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는 뜻일세. 아무튼 나는 운 좋게도 무염보의 여섯 걸음을 얻게 되었고, 그걸 자네에게 전한 걸세.”

“그럼 내가 얻었던 열두 걸음은 다른 한쪽으로 전해진 것이었단 말이오?”

강일비는 빙글거리며 웃었다.

“자네가 그걸 어디서 얻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진산월은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 자 한 자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낙양 석가장의 철혈홍안에게서 열두 걸음을 배웠소. 그럼 그녀가 비선의 후예 중 하나란 말이겠구려?”

“나는 그녀가 아닌데 그녀가 누구의 후예인지 어떻게 알겠나? 정 궁금하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게.”

진산월이 다시 무어라고 물으려 할 때 강일비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그럼 이제 난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겠네.”

진산월로서는 그저 아쉬움의 목소리를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난화지는 원래 옥시음의 취란십이수(聚蘭十二手) 중의 절초인 난향만적(蘭香滿跡)에서 파생된 무공일세. 옥시음의 취란십이수는 여인들이 익히기에 적합한 무공이긴 했지만, 위력 자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네. 하나 마지막 초식인 난향만적만큼은 다른 어떠한 절학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지. 옥시음은 이 난향만적만을 따로 떼어 내어 하나의 무공으로 만들려고 했고, 자신의 유진(遺眞) 말미에 그에 대한 심득을 적어 놓았지.”

취란십이수는 진산월도 처음 들어 보는 무공이었다. 아마도 위력이 뛰어나지 않다 보니 옥시음 사후에 자연스럽게 실전된 모양이었다.

솔직히 진산월은 난화지에 얽힌 내력 같은 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일비가 왜 난화지가 만들어진 경위를 이렇듯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을 막을 수도 없어서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무염보를 연구하던 비선이 나중에 그 심득을 발견하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 난향만적은 이름 그대로 단 일수에 사방을 온통 손 그림자로 뒤덮이게 하는 초식으로, 변화가 다양하고 투로를 예측하기 힘들어서 누구도 완벽하게 막기가 힘든 뛰어난 무공이었네. 반면에 일격에 상대를 쓰러뜨리는 강맹함이 부족하여 상승(上乘)의 절학(絶學)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면이 있었지.”

비선 조심향은 몇 년간 난향만적의 위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위력을 강하게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난향만적 특유의 장점인 변화무쌍함이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위력을 죽였다가는 지금처럼 겉보기에만 화려한 무공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변화를 유지하면서 보다 빠르게, 보다 강력하게 펼치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녀가 그 해답을 찾은 것은 어느 해 초겨울 날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첫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하얗게 덮여 있었다. 해답 없는 고민 때문에 시름에 잠겨 있던 그녀는 충동적으로 밖으로 나가 내리는 눈을 맞으며 정원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돌며 떨어지는 눈송이는 무질서해 보였으나, 그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무심결에 자신의 눈앞에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를 손으로 잡아 보려 했다. 눈송이는 그녀의 손을 피해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송이를 잡기 위해서는 손을 아주 빨리 움직이거나 반대로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그녀는 마치 눈을 처음 본 어린 소녀처럼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자신의 주위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움켜잡았다. 그러다 문득 손으로 잡는 것보다는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폭죽이 피어오르듯 한 가지 생각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꼭 난향만적을 수공으로 펼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손보다는 손가락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지공이라면 변화를 줄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 위력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난향만적이 수공보다는 지법에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지법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지법으로 변모한 난향만적은 훨씬 더 변화무쌍하고 빨랐으며, 위력적이었다.

하나 그녀는 아직도 아쉬움을 느꼈다. 속도는 분명히 빨라졌으나 위력은 그녀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단 격중 되면 어떠한 호신강기라도 종잇장처럼 뚫어 버릴 수 있는 절대적인 강력함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우연히 한 가지 무공이 들어왔다. 파홍지(破虹指)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 일지(一指)로 금석(金石)이라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지공이었다.

하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파홍지는 한 집안의 독문무공이었고, 그 무공의 주인은 종남파와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 무공을 알게 된 것도 그 인물이 파홍지를 펼치는 광경을 직접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난향만적의 지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파홍지의 강력함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다고 한 가문의 독문무공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무공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그녀는 고민 끝에 그 사람을 찾아가서 한 가지 흥정을 했다. 파홍지의 가장 중요한 구결인 파천공(破天功)을 얻는 대신, 난향만적의 요결 중 하나인 방향결(芳香訣)을 알려 주기로 한 것이다.

파천공의 구결을 입수한 그녀는 난향만적의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에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하나의 지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난화지의 탄생이었다.

일단 펼치면 천변만화의 변화를 일으키며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혈화(血花)를 선사하는 난화지는 무염보와 함께 그녀의 가장 큰 성명절기가 되었다.

강일비의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진산월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 있었다.

단순히 비선의 절학으로만 알았던 난화지에 그러한 내력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녀가 난화지를 완성시키기 위해 문파의 고수가 아닌 외부인에게 요결의 일부를 교환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절실했던 그녀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파의 무공에 다른 사람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것에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비선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난화지를 완성했다는 것은 비록 뜻밖이긴 했지만, 이백 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백 년이나 종남파의 누구도 익히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난화지의 탄생 비화를 일부러 야밤에 찾아와 알려 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강일비는 왜 지금 시점에서 난화지의 내막을 알려 준 것일까?

떠오르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비선에게 파천공의 요결을 전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구려. 사 맹주께서는 그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언뜻 강일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자네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일세. 물론 알고 있지. 그래서 자네를 만나려고 했던 걸세.”

강일비의 말인즉, 그가 오늘 자신을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함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진산월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누구요?”

강일비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비선의 정인(情人)이었던 검선에게는 두 명의 절친한 친구가 있었네.”

진산월은 비선의 정인은 매종도가 아니라 혈선 정립병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종리표와 용태린이라는 인물들일세. 종리표는 곤륜파의 장로였고, 나중에 그의 제자가 곤륜파의 장문인이 되었지.”

곤륜의 종리표가 매종도의 친한 친구였다는 것은 진산월도 과거에 종남연기(終南年紀)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하나 그가 곤륜파의 장로이며, 장문인의 사부였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진산월은 곤륜파가 대대로 종남파에 호의적이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선의 또 다른 친구인 용태린은 용씨세가(龍氏世家)의 십일대 가주였네. 당시에는 강북 무림의 십대고수 중 한 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고 하더군. 용씨세가는 두 가지 무공으로 유명했는데, 그게 바로 십절파천검(十絶破天劍)과 파홍지일세.”

매종도는 고고한 성품답게 따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막상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종리표와 용태린뿐이었다. 종리표는 멀리 곤륜산에서 기거하기에 자연히 그와 왕래가 잦은 사람은 지척인 화음현에 살고 있는 용태린이었다.

어느 날 용태린이 매종도를 찾아왔을 때, 마침 조심향은 매종도와 함께 있었다. 그곳에서 서로 무리(武理)를 토론하던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무공 한 가지씩을 펼쳐 보였는데, 그때 용태린이 사용한 것이 바로 파홍지였다.

파홍지를 보는 순간, 조심향은 그것이 자신을 오랫동안 고민스럽게 만들었던 난향만적의 해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용태린을 찾아간 조심향은 그에게 난향만적의 핵심이 되는 방향결을 알려 주고 파홍지의 가공할 위력의 근간인 파천공의 구결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 하나를 냄세. 비선은 난향만적에 파천공의 구결을 담아 난화지를 만들어 내었네. 그렇다면 방향결을 얻은 용태린은 어땠을 것 같나?”

강일비의 물음에 진산월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도 파홍지를 더욱 발전시켰겠구려.”

“그렇다네. 바위도 뚫을 만큼 위력이 강한 대신 단조로웠던 파홍지에 기기묘묘한 변화가 담긴 걸세. 그것은 능히 난화지에 비견되는 놀라운 절학이었네. 용태린은 그 수법을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 전해 주었네.”

“왜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오?”

“첫째 아들은 용씨세가를 물려받아야 하니 타 파의 비전이 담긴 무공을 전해 줄 수는 없었던 게지. 둘째 아들은 그 무공을 익힌 후 분가(分家)하여 용씨세가가 있는 화음현을 떠나 강남으로 갔네.”

주의 깊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진산월의 뇌리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화음현 그리고 용씨세가!

“그렇다면 혹시 화산파의 당대 장문인인 용진산이…….”

강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진산은 용씨세가의 십칠대 후계자일세. 다시 말해서 용태린의 육대손인 셈이지.”

진산월은 뜻밖의 사실에 침음하다 다시 물었다.

“둘째 아들은 어떻게 되었소?”

“둘째 아들은 용태린에게 배운 수법을 더욱 갈고닦아서 하나의 독창적인 지법을 만들어 내었네. 그리고 그것에 ‘월광조산하(月光照山河)’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였지.”

월광이 산하를 비춘다!

확실히 멋진 이름이기는 했다.

“지법이라기에는 다소 특이한 이름이구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월광지(月光指)라고 불렀다네.”

진산월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굳어졌다.

“월광지라면?”

강일비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진산월을 바라보았다.

“자네도 들어 본 모양이군.”

“그건 바로 형산 용선생의 독문지법이 아니오?”

강일비는 놀란 얼굴로 반문하는 진산월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묵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네. 용선생은 강남으로 분가한 용태린의 둘째 아들의 후손일세. 다시 말해서 용진산과 용선생은 서로 같은 혈족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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