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01화
저항군과 기사단은 본 임페리얼의 몸에 그어진 수십 개의 거대한 검광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푸른 불빛 하나가 몇 번 몬스터의 몸을 지나갔다는 것 외엔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없었다. 지크는 땅에 착지한 후 뒤로 빠르게 물러서 본 임페리얼의 동향을 보았다. 그 거대한 언데드 몬스터의 움직임은 잠시 정지해 있었다.
파가각!!
곧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본 임페리얼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지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 뼈다귀…!”
그러나 일은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부서졌던 본 임페리얼의 조각들이 다시 본 임페리얼에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뼈들은 곧 전처럼 흔적 없이 달라붙었고 지크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난 왜 이런 괴물들만 맡아야 하는 거야!!!”
지크는 다시 몸을 움직여 몬스터의 거대한 검을 피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꽤나 길어질 것만 같았다.
리오와 이리프의 전투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마법과 검술의 최종 대결이라도 벌어지는 듯, 쌍방은 치열히 접전을 벌였으나 여전히 서로에게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하고 공중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서로 기회만 노리고 있을 무렵, 리오는 자세를 풀고 이리프를 바라보았다. 반탄력도 거둔 상태라서 이때 2급 정도의 마법을 맞게 되면 아무리 리오라고 해도 큰 충격을 입을 것이 뻔했다.
“뭐하는 거야! 난 무방비 상태의 적에겐 마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이리프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리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붉은 눈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좋아, 아직 나에게 죄를 면할 길은 있겠군. 고맙다 이리프… 속죄할 길을 열어줘서 말이야…!”
리오는 다시 반탄력을 올리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방금 전과 같이 사신의 춤을 추지는 않았다. 예전과 같은 여유를 되찾은 상태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간다 이리프!”
그사이, 왕비는 성의 뒷뜰로 도망쳐 그곳에서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사인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쪽지를 들고서….
“좋아, 이제 10개의 선만 그리면 끝난다. 후후후… 모조리 다 날려주마. 모두 다! 어차피 얻는 데 실패한 수도이니 박살 내도 상관없겠지. 이 소환진만 완성되면 난 살 수 있어, 오호호호호…!”
왕비의 얼굴은 광기에 젖어 있었다. 어떤 괴물도 그녀의 그 눈을 보면 질릴 것만 같았다. 10개의 선 중에 하나가 완성되고 있었다.
루브레시아를 뒤쫓아가던 바이칼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루브레시아라면 장소를 가려가며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놓아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바이칼은 계속해서 루브레시아를 추격해갔다.
이윽고 루브레시아가 멈추자 바이칼도 같이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발밑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이…!! 무슨 이유로 여기에서 멈추었냐!”
루브레시아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던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정 구슬로 보았지… 용제님께서 여기에 추억거리를 만들어 놓으셨더군. 그래서 말이야…. 하지만 난 이 밑의 인간들에겐 볼일이 없다. 나에겐 유리한 곳이지, 하하하…!!!”
바이칼은 검에서 손을 떼었다. 루브레시아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검술이라면 분명 지상에도 충격을 줄 것이 뻔해서였다.
‘이런…!’
바이칼은 자신의 투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할 수는 없었다. 야룬다 요새가 밑에 있어서였다.
야룬다 요새의 사령탑 위에서 잠깐 동안 불꽃이 솟아올랐다. 아무도 그 불꽃을 보지는 못하였다. 사령탑 위에서 옷자락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한 사나이도 있었다. 푸른색의 머리카락에 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그리고 그의 등에는 기다란 창이 매달려 있었다. 사나이는 위에 있는 두 개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늦지는 않은 건가…?”
사나이의 샤프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묵묵함이 담겨있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
“바이칼 녀석도… 많이 변했군.”
사나이는 탑 꼭대기에 그대로 걸터앉았다. 위의 전투를 지켜보려는 듯한 자세였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다시 한번 펄럭였다. 옷의 둘레는 붉은색으로 장식되어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불꽃이 날름거리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펄럭이는 멋진 옷이었다.
적들이 사라지자 저항군과 기사단이 할 일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그 전투를 구경하는 것 외에는… 물론 도울 수도 없었다. 조나단은 걱정이 어린 눈길로 자신의 검을 들고 거대한 언데드 몬스터와 홀로 싸우고 있는 그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한 기사가 조나단에게 보고를 하려는 듯, 경례를 붙이며 앞에 섰다.
“뭔가?”
“예, 대장님의 자제분들이 뒤에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레나와 티퍼를 데리고 오라는 말을 했다. 그 젊은 기사는 다시 경례를 붙이고는 뒤로 말을 달렸다. 곧 그의 안내로 세레나와 티퍼가 조나단의 옆에 다가왔다.
“아버지! 어떻게 되었지요?”
세레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나단에게 물었다. 조나단은 투구를 벗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났단다…. 이제 저 젊은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수 외에는… 없구나.”
쿠쿵!!
그 말이 끝나자마자 위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공중에서 조나단들이 있는 곳 근처에 추락했다. 세레나는 다시 구멍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나이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리오씨!!”
리오는 세레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요오! 반가워요 키세… 아니 세레나 양!”
리오는 손가락을 모아 세레나에게 살짝 인사를 하고 다시 이리프가 있는 위로 날아올랐다.
“후아아앗! 간다앗!!”
세레나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손에 쥐고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레나도… 이제 다 컸구나….”
콰아앙!!!
다시 앞쪽에서 폭음이 들리자 다들 앞쪽을 바라보았다. 지크의 공격으로 본 임페리얼의 한쪽 팔이 파괴되며 난 소리였다. 지크는 다시 땅에 착지해 기전력을 충전했다. 아까전과 같이 최대의 기전력이 몸에 흘렀다. 그사이, 본 임페리얼의 파괴된 한쪽 팔도 재생이 되고 있었다.
“재생되게 놔둘 것 같으냐!!”
순간 사람들은 지크의 모습이 세 개로 보였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눈을 비볐다. 지크의 기전력이 만들어내는 지크의 잔상을 본 것이었다. 몬스터의 거대한 몸에서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지크를 향해 뿜어져 들어오자, 지크의 잔상은 늘어갔다. 몇 개의 뼛조각들은 지크가 휘두르는 두 개의 칼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되어 사라져갔다. 두 개의 칼을 동시에 사용하는 지크의 그 모습은 마치 천수 관음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다. 칼을 휘두르는 팔의 잔상이 그대로 남아서였다.
“구백 오십식! 양무(陽舞)!!!”
지크의 칼에 흐르던 검기가 반응에 의해 폭발하며 무명도조차 화이어 턴이 된 듯 불꽃을 뿜어내었다. 화염의 잔상이 본 임페리얼의 몸을 휘감았고 본 임페리얼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본 임페리얼은 불꽃에 휩싸인 채 잠시 간 움직이지 못하였고 지크는 땅에 착지하여 남은 기를 최대한으로 짜내었다.
“크아아아앗!! 간다, 구백구십팔식!!!”
거대한 뇌염의 회오리가 공기 중에 생성되었고 그 회오리는 본 임페리얼을 빨아들여 공중에 떠올렸다. 필살기란 말이 딱 들어맞는 지크의 기술 중 하나였다. 지크는 회오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항마참(抗魔斬)!!!”
두 개의 칼을 교차하며 회오리를 베자, 푸른색과 붉은색의 거대 검광 두 개가 교차하며 회오리와 그 안에 있는 본 임페리얼의 몸을 조각내었다.
하늘에 새겨진 거대한 X자를 바라보며, 조나단을 포함한 기사단은 한편으론 함성을 질렀지만 한편으론 전율을 금치 못했다.
‘만약, 저 사나이가 적이었다면…?’
“쿠, 쿠오오오오!!!”
본 임페리얼의 단말마가 허공에 울려 퍼졌고 곧 그의 몸은 수천 개의 뼛조각으로 변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눈이 내리는 것과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본 임페리얼의 왕관은 심장이 뽑힌 하나의 시체로 변해 뼈들과 같이 떨어졌다. 그것이 왕비 친위대들의 완전한 최후를 장식하는 표시였다.
“헤, 헤헷… 이겼군….”
지크는 피식 웃으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기사단이 떨어진 그에게 달려와 지크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외상은 별로 심한 것이 없었지만 기력의 손실이 엄청났다. 지크의 몸은 서서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정말 강하군 리오 스나이퍼… 검으로 나에게 맞설 만한 자는 오래간만에 보는군!”
이리프가 감탄하듯 말하자 리오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처음이 누구였지…?”
이리프는 움찔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그, 그래. 요우시크님도 너만큼 강할 거야! 자, 다시 시작이다!”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이리프는 움찔했다.
“아니, 그녀석과 나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너 같은 엔션티드 엘프라면 단숨에 알 수 있지. 자, 기억해봐. 처음이 누구였는지!”
그러나 이리프는 기억하기를 거부하였다. 아니, 그녀의 정신을 지배하는 무언가가 그 생각을 돌리고 있었다.
“그, 그딴 것! 필요 없어, 난 너만 없애면 돼!!!”
이리프는 양손을 모으고 주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법의 주문은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언어인 것 같았다. 그 주문이 끝나고, 이리프의 목소리를 들은 리오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자아… 영급 주문으로 끝내주마 리오 스나이퍼!!!”
그녀의 목소리가 두 개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니, 동시에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똑같은 사람 둘이 동시에 말하는 것과 같았다. 리오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런! 더, 더블 스펠…!!!”
주문 한 가지를 특별한 기술에 의해 두 번 동시에 부를 수 있는 초 기술, 바로 리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그것이었다. 사용자의 마법 위력도 두 배, 마력 사용도 두 배인 최고의 기술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간 급격한 마력 소모로 인해 사용자의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마법사들의 최대 금기였다.
“끝이다 리오 스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