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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03화


“하아… 하아…!”

리오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공중에 뜬 채 빈사 상태에 몰려 기가 잠시 끊어진 때도 있었을 정도로 그의 상태는 위험했다. 그리고 세인트 디바이너의 넓은 날도 박살이 난 상태였다. 확실히 더블 프레아를 막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리오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이리프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빈사 상태에 가까웠다. 리오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이리프는 뒤로 물러서며 몸을 움츠렸다.

“가, 가까이 오지 말아요!”

리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후우, 이제 다 끝났어 이리프…. 넌 정상으로 돌아왔다구.”

이리프는 흐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엔션티드 엘프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요! 제가 죽을 때까지…!!”

리오는 그녀의 양 어깨에 살며시 손을 가져갔다.

“… 그래. 네가 엔션티드 엘프라는 건 변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이리프라는 것도 변하지 않잖아.”

이리프는 고개를 들어 리오를 바라보았다.

“아…!”

“이제 아무도 널 괴롭히지 않아…. 넌 그리고 프레아 주문을 쓴 때부터 돌아와 있었어.”

이리프는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 물었다.

“엇, 그걸 어떻게…?”

리오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으음… 넌 분명히 영급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쳤었지. 그러나 쓴 건 일급 마법이었어. 그때 알 수 있었지.”

리오는 이리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가며 장난기 있게 말했다.

“그런데 더블 프레아는 진짜 아팠다구…!”

이리프도 예전과 같은 엘프족 소녀의 표정으로 돌아와 웃으며 이마를 쓰다듬었다.

“아야… 헤헷.”

아래에서 지켜보던 지크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장감이 풀린 탓이었다. 세레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듯 계속해서 눈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태라트는 자신의 장검을 땅에 꽂으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각 부대의 대장들과, 기사단의 단장들도 긴장이 풀린 듯 모두 한숨을 쉬었다. 이리프를 데리고 땅에 내려온 리오에게 군인들의 환성이 터져 나왔고 리오는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티퍼는 이리프에게 안겨들며 상봉의 기쁨을 나타내었다.

“아, 바이칼은…?”

리오는 루브레시아와 결판을 내기 위해 날아간 바이칼을 찾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리 걱정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쿠쿠쿠쿵!

그때, 왕궁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왕성이 부서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말을 잃었다.

“… 저, 저건 뭐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빛과 함께 왕궁을 완전히 박살 내며 나타났다. 리오와 지크는 몸을 떨었다.

“와, 왕비…!”

괴물의 미간 사이에 박혀있는 왕비의 광기 어린 얼굴…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없·애·버·린·다····”

리오와 지크는 다시 일어서 싸우려고 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기의 소모가 너무 심해서였다. 분명 이 상태로 싸운다면 그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이리프도 마력의 소모가 너무 심해 지금은 보통의 엘프와 다른 것이 없었다.

“젠장…!!”

리오는 다시 일어서 디바이너의 봉인을 걸었다. 흰색의 날이 들어가고 보라색의 날이 어디선가 날아와 다시 합해졌다.

“리오! 어떻게 하려고…!!”

이리프는 리오를 말리려고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하고 죽어야 속이 편할 것 같아, 후훗…! 저 왕비는 이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일의 원흉이야, 가만히 둘 수는 없지…!”

리오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에 질 수 없다는 듯 지크도 무명도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좋아, 바이나를 더 골려주지 못해서 억울하긴 하지만 괜찮을 것 같아. 자, 가보자 리오!”

리오와 지크는 손을 한 번 맞잡고 천천히 왕궁에서 꿈틀대고 있는 거대 몬스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리오! 잠깐만요!!”

리오는 뒤에서 들려온 세레나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세레나의 회복 마법이 둘에게 날아와 그들을 회복시켜 주었다. 하지만 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세레나는 숨을 헐떡이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이게 제가 당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미안해요 리오…!”

리오는 세레나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고 손을 흔든 후 다시 걸어갔다. 세레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저 사나이들에게 힘을 주세요, 제발…!’

체력은 마법에 의해 웬만큼 회복되어 있었다. 기가 모자랄 뿐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기형의 괴물은 그 거대한 모습을 자랑하듯이, 한껏 몸을 뻗어 보였다. 기분 나쁘게 생긴 수백 개의 촉수가 허공에 춤을 추었다.

“쳇, 크긴 크군… 근데 갑자기 저게 어디서 나타난 거지?”

리오는 팔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소환된 것 같아. 저런 괴물을 성 안에서 키울 리는 없겠지.”

“… 하긴, 먹이값도 꽤나 나갈 테니까….”

둘은 각자의 검을 잡고, 각자의 자세를 취하며 그 괴물의 앞을 막아섰다.

“간다아앗!”


슈렌은 조용히 그의 창, 그룬 가르드를 루브레시아의 등에서 뽑아 들었다.

루브레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쓰러져 있었다. 바이칼은 자신이 루브레시아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 떫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거 아니군. 듣던 것보다 약한데.”

슈렌의 무뚝뚝한 말에 루브레시아는 분하다는 듯 몸을 떨며 소리쳤다.

“부, 분하다…! 오른팔과 심장의 반쪽이 있었다면…!!”

슈렌과 바이칼은 그 소리를 듣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루브레시아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루브레시아는 그들의 의외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너희들…?!”

슈렌은 창을 다시 등허리에 맨 후 돌아서며 말했다.

“어쩐지 너무 약하다 했다. 기사는 절대 상대방과 동등한 상태에서 싸운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난 애꿎은 내 팔과 심장을 자를 만한 감성파는 아니야. 나머지 부분을 찾은 뒤에 바이칼과 정식으로 대결해라.”

루브레시아는 몸을 일으킨 후 둘을 향해 조소를 보냈다.

“푸, 하하하!!! 멍청한 녀석들. 나를 죽일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걸 모르느냐! 너희들은 큰 실수를 했어… 하하하하!!”

루브레시아가 웃음을 멈춘 것은 바이칼과 눈을 마주쳤을 때였다. 차가운 눈… 분명 자신이 오래전 생명을 걸고 싸웠던 바이칼의 아버지와는 다른 눈이었다.

“… 슈렌이 나타난 건 너에겐 행운이었다….”

루브레시아는 순간 자신이 바이칼의 살기에 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자신이 야룬다 요새를 날렸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할 수가 있었다.

“… 이, 이 애송이 녀석…!!!”

루브레시아는 거칠게 내뱉으며 공간 이동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뿜어지는 빛 안으로 들어서며 그는 바이칼에게 소리쳤다.

“다음에 만날 땐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용제여!”

곧 루브레시아는 사라졌고 바이칼은 다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슈렌에게 말했다.

“슈렌. 리오와 지크에게 작별 인사를 전해주겠나.”

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고니스에 돌아갈 일이 생겼다고 전해줘. 나중에 부를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말도 해주고.”

말을 마친 바이칼은 바로 몸을 돌려 야룬다 요새로 향했다. 슈렌은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조금… 변했군. 자, 두 얼간이들에게 가볼까.”

슈렌은 공중 부유술을 사용해 공중에 떠오른 후,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강력한 존재의 움직임을… 그리고 두 개의 희미한 기를….


“크, 크아아아악!!”

리오는 자신의 몸을 휘감은 촉수 몇 개를 힘으로 끊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기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온 충격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리오는 다시 뒤로 물러서며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이 녀석…!!”

지크도 리오와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그도 역시 기가 모자라 기전력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도술도 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들이 뒤로 한 발자국 후퇴할 때마다 괴물도 점차 다가왔다. 지크는 리오의 옆에 바싹 다가서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봐 리오… 네 <오메가 선샤인>과 내 <극뢰> 중 어느 것이 더 세다고 생각하냐…?”

리오는 머리의 피를 닦아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엔 잿빛의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금방이라도 뭐가 내릴 것만 같은 날씨였다. 리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극뢰>가 더 강하지 않을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이야….”

“훗,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냐…?”

둘이 말한 오메가 선샤인과 극뢰라는 것은, 가즈 나이트들에게 하나씩 있다고 전해지는 극대의 필살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들은 각자의 기가 최대인 상태에서 허용되는 것이었고 기가 모자란 상황에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자살 행위였다.

“그럼 가장 공평한 방법이 있지….”

리오는 자신의 손을 지크에게 뻗었다. 지크도 동조하듯 리오에게 팔을 뻗었다.

“가위바위보 다… 후훗.”

그들이 말하는 동안, 저항군에 있는 마법사들이 괴물에게 공격을 몇 차례 가했으나 그 괴물은 피해를 받기는커녕 되튕겨서 저항군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리오는 부질없는 짓은 그만하라고 소리지르려 했으나 저항군 쪽을 바라본 그의 표정은 잠시 굳어지고 말았다. 아주 강력한 마력, 아니 성력이 저항군 쪽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그 성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다.

“서, 설마! 세레나가 일급 마법 <홀리>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일급 마법 <홀리>… 자신의 기도력이나 정신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서 상대편에게 성스러운 속성의 막대한 에너지 쇼크를 입히는 초 강력 갓 스펠(God spell)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정도의 기도력이나 정신력을 소모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리오는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돼…! 나에게… 나에게 누군가가 다시 한번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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