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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04화


세레나는 정신을 집중시키고 주문을 계속해서 외우고 있었다. 흰색의 오오라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녀의 주위에 있는 저항군과 기사단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나단은 처음에 그녀를 말리려고 했으나 그녀의 의지가 강해서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티퍼는 기사단의 제지를 받으며 자신의 누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누나! 안돼!! 또 누나를 잃게 되면 난 다시 외톨이가 된다구! 그건 싫어, 싫다구!! 하지 마 누나!!!”

분명 세레나의 귀엔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를 흔들 수는 없었다. 리오를 포함한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선의 방법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당신에게 보답할 수 있겠죠… 리오 스나이퍼, 영원한 가즈 나이트….’

그녀의 몸 주위에 있는 흰색의 오오라가 점차 강해졌고 그녀의 모습은 빛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쿠워어어어!!”

왕비, 아니 괴물도 홀리의 성스러운 힘을 느꼈는지, 빠른 속도로 세레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리오와 지크가 괴물의 앞을 막아섰으나 기가 떨어진 그들에겐 허사였다. 괴물의 입이 한껏 벌어졌고 그곳에서 강력한 투기가 둘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둘은 피하려고 몸을 움직였으나 예전 같지 않았다.

“크, 크아아아악!!”

둘은 곧 큰 충격을 받고 건물 사이로 날아갔고 어떤 가옥의 안에 처박혔다. 지크는 머리가 먼저 부딪힌 탓인지 혼절한 상태였고 리오는 온몸에 큰 충격을 입은 채 가옥의 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머리와 왼쪽 어깨에서 적지 않은 출혈이 있었다. 리오는 가옥의 창문으로 괴물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리오는 그대로 몸을 숙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제, 젠장…!”

정신이 차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 괴물은 자신이나 가즈 나이트급의 전사 내지는 대마법사밖엔 막지 못하는 괴물임엔 확실했다. 그러나 자신과 지크는 이미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이, 이대로 포기하면….”

디바이너를 쥐고 있는 리오의 팔이 풀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힘을 가해 보았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리오의 의식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그의 몸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쿠오오!!”

괴물은 기사단과 저항군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서 입을 벌렸다. 아직 홀리는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막아라! 막아야 한다!!!”

템플 나이트들의 갑옷은 6급까지의 마법을 방어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괴물의 투기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각 기사단은 방패 등의 방어구로 몸을 가리며 투기포에 대비했고 저항군들은 건물 뒤에 숨거나 하며 준비를 했다. 홀리를 준비하고 있는 세레나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조나단이 말을 타고서 그녀와 티퍼를 안아 올린 채 건물 뒤로 피신했고 그와 동시에 괴물의 입에선 투기가 재차 뿜어져 나왔다. 그 거대한 투기의 폭풍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방패로 몸을 방어하고 있는 기사단의 대부분이 위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버렸고 은폐하고 있는 집도 폭풍에 파괴되어 파편에 의한 저항군의 피해도 만만치가 않았다. 태라트의 이마에도 파편이 스쳤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적어도 한 곳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태라트는 땅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분노를 터뜨렸다.

“크으윽…! 여기까지 왔는데…!!!”

괴물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차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고 기사단들의 저항도 부질없는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은 극악이었다.

“홀리도 파괴되었는가…!”

조나단은 기절한 세레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괴물을 공격할 수단을 저항군과 기사단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저항군과 기사단은… 이제 저항할 힘이 없었다.

왕비의 얼굴이 이마에 조그맣게 박힌 괴물의 머리가 태라트의 앞에 나타났다. 태라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검 하이바렌을 들고… 끝까지 싸우려 하고 있었다.

“… 왕비, 너도 이제 더 이상 가이라스의 국민들을 정당하게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 그것으로 족하다. 나의 임무는… 끝났다.”

괴물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천천히 입을 벌렸다. 태라트에게 정면으로 쏠 생각인 듯 싶었다.

“쿠우우우….”

괴물의 입 안이 흰색의 투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태라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굉장히 멀리서 그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바이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아…! 이젠…!!”

바이나도 포기하고, 그 근처에 있는 모든 잔여 저항군들이 포기라는 걸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

야룬다 요새의 안에서 조용히 리오의 승리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클루토와 리카는 조용히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리카?”

클루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서 갑옷을 닦고 있는 리카에게 말했다. 리카는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넌 리오가 언제나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니? 우리는 리오만 믿고 있으면 되는 거야! 아무도 리오를 쓰러뜨리진 못해, 만약에 쓰러진다 해도 그는 기적이라도 일으켜서 판도를 뒤집을 거야. 난 그렇게 믿고 있어… 그리고….”

클루토는 조용히 되물었다.

“그리고…?”

리카는 갑옷을 내려놓으며 말을 끝냈다. 믿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리오는 가즈 나이트니까!”

바이나는 보았다. 잿빛 구름을 뚫고 괴물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붉은 빛줄기를….

“저, 저것은?!”

붉은 빛줄기는 괴물의 목에 정확히 꽂혔고 그 빛줄기는 괴물의 입안에서 폭발했다. 괴물은 고통에 겨워 입을 닫았고 모아두었던 투기는 입안에서 터지고 말았다.

“쿠어어어어어!!”

괴물의 조직 파편이 땅에 떨어져 내렸고 반쯤 날아가 버린 괴물의 머리는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태라트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발 앞에 꽂혀있는 긴 창을 보기 전까지였다.

“으응…?!”

각도로 보아 괴물의 머리를 뚫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창이 확실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누가 이곳에 창을 던졌단 말인가?

“실례했소이다 태라트 황태자님….”

태라트는 뒤에서 들려온 낮은 음성에 급히 뒤를 돌아다 보았다. 펄럭거리는 옷에, 푸른색의 긴 머리를 한 사나이였다. 태라트는 잠시 움찔했으나 안심하라는 그의 손짓에 한숨을 쉬었다.

“전 슈렌이라고 합니다, 리오와 지크의 형제지요. 그런데, 그녀석들은 어디 가고 이 괴물은 뭐지요?”

그들이 얘기하는 동안 괴물의 머리는 거의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태라트의 대답을 듣던 슈렌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녹색의 작은 병 두 개를 꺼내 태라트에게 던져주었다.

“이것을 리오와 지크에게 전해 주십시오! 상황이 급하군요, 어서!!”

태라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을 받아들었다.

“아, 근데 이것이 뭔가?”

슈렌은 창을 뽑으며 대답했다.

“… 엘릭서라고 합니다. 전에 있던 나라에서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거죠.”

슈렌은 그 말을 마치고 곧바로 괴물을 공격하기 위해서 하늘로 치솟았다. 태라트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두 개의 엘릭서를 불끈 쥐며 말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기다려라, 리오, 지크…!!”

슈렌은 천천히 괴물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정정당당을 고수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괴물의 머리에서 연기가 사라지고 상처가 회복된 괴물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슈렌을 향해 투기포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슈렌도 천천히 기염력을 끌어올렸고 그의 몸은 화염에 휩싸였다. 슈렌은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자아… 쏴봐라 괴물 단지…!”

괴물은 그 말을 들었다는 듯 입에서 투기를 뿜어내었고 슈렌은 그 속에 휩싸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괴물은 쉬지 않고 투기를 계속해서 뿜어대었다.


“아, 아이고…!”

지크는 머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일어섰다. 손에 끈적거리는 것이 묻어있는 듯했다. 지크는 손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쳇, 피잖아. 운이 진짜로 없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집의 내부 같았다. 자신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리오도 쓰러져 있었다. 지크는 리오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이봐, 정신 차려.”

잠시 후 리오도 깨어났고 둘은 비틀거리며 집에서 빠져나왔다. 체력과 기가 거의 소모된 둘에겐 걷는 것도 힘들었다.

“후우… 할아범이 제1 안전주문을 안 풀어주는 걸 보니까 죽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무슨 수로 저 괴물을 막지?”

지크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리오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점심이라도 천천히 먹고 느긋하게 싸우라는 소린가? 그건 그렇고 그 괴물은 어디 있는 거지?”

리오가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가 둘러볼 때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리오는 지붕에서 내려와 검에 손을 가져갔다.

“리오! 지크! 어디 있나!!!”

태라트의 목소리였다. 둘은 각자의 칼에서 손을 떼고 태라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태라트의 눈에도 그들이 들어왔고 그는 말을 달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태라트님, 무사하셨군요!”

태라트는 말에서 뛰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슈렌에게 넘겨받은 병 두 개를 리오와 지크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네들 몰골이 말이 아니군. 자, 어서 이것을! 시간이 없다구!!”

리오는 그 병을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에, 엘릭서! 이것을 어떻게…?”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엘릭서…? 피로회복음료인가?”

리오는 병의 꼭지를 따내며 말했다.

“비슷하지. 하지만, 꽤나 비싼 음료야. 가사 상태까지 몰린 모든 생물을 다시 살릴 수도 있지. 마셔만 봐.”

리오는 엘릭서를 단숨에 들이마셨고 지크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면서도 속는 셈 치고 엘릭서를 마셨다. 마시고 난 뒤에 지크는 혀를 내밀었다.

“우엑…! 정말 쓴데! 이거 허가받은 거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오와 지크의 몸에선 기의 오오라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폭풍에 태라트와 태라트의 말이 잠시 주춤거렸을 정도였다.

“우와앗! 효과는 만점인데!!!”

지크는 몸의 근육을 최대한도로 긴장시켜 보았다. 마치 몇일간 푹 자고 난 뒤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난 기분,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리오도 마찬가지였다.

“가자 지크!! 두 번째 판이다!!!”

둘은 자신들의 다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괴물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태라트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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