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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11화


히렌은 자신의 등에 장비된 장검을 뽑아들고 도적들 앞에 섰다. 도적들은 그가 나타났을 때 약간 놀랐을 뿐, 히렌이 소년이라는 걸 알고는 그에게까지 접근해 왔다.

“이, 꼬마 녀석이…! 감히 이 어르신들을 놀래켜? 맛을 보여줄 테다!!!”

도적 중 한 명이 소리치며 히렌에게 달려들자 리오는 디바이너를 슬슬 뽑으려고 했으나 히렌이 도적의 검을 날리는 장면을 보고 다시 손을 떼었다. 굉장히 빠른 실력의 소년이라고 리오는 생각했다. 히렌에게 당한 도적은 손을 어루만지며 옆에 떨어진 대검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자신의 부하가 소년에게 쩔쩔매는 꼴을 본 도적의 두목은 다른 부하 한 명을 그쪽으로 보내며 소리쳤다.

“칠칠치 못한 것! 그깟 어린아이에게 당하고 있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히렌은 상대가 둘로 불어나자 숲으로 그들을 유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숲으로 뛰어가며 히렌은 리오에게 소리쳤다.

“이 봐요! 내가 올 때까지만 버티고 있어요, 알았죠!!!”

그 말을 들은 리오는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었다.

“하, 하하하…!”

두목은 리오가 웃기 시작하자 자존심이 상한 듯 리오에게 소리쳤다.

“이, 이 녀석! 뭐가 그리 우습냐!!”

리오는 입가에 웃음을 남긴 채 디바이너를 뽑아들었다. 보라색의 날이 눈에 들어온 도적들은 약간 움찔거렸다. 리오는 검을 몇 바퀴 돌리며 도적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 꼬마가 할 일을 줄여줘야 하겠군, 후훗…. 내가 이 정도로 약해 보였나…?”

두목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고함을 지르며 리오에게 달려들었다. 공중에 도약해서 리오의 머리를 두 조각 낼 심산이었다.

“받아라앗!! 엇!?”

두목은 공중에 뜬 순간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뜨기 전까지 지상에 있던 붉은 머리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두목은 위를 바라보았다.

“!!”

리오는 어느새 두목보다 위에 있었다. 리오는 디바이너의 자루를 두 손으로 쥐고서 자루의 끝으로 두목의 등을 내리쳤다.

“커헉!!”

입에서 선혈을 뿜으며 눈밭에 처박힌 두목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광경을 눈으로 직접 본 도적들은 리오가 자신들을 향해 눈을 돌리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때마침, 히렌이 간 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는 급히 디바이너를 집어넣고 도적들을 쏘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히렌이 검에 피를 묻힌 채 돌아왔고 도적들은 두목을 업고 어디론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히렌은 그들이 도망치는 광경을 보고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나이스 타이밍… 훗.’

리오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 소년도 분명 보통 실력은 아닌 것만이 확실했다. 도적 두 명을 생각보다 빨리 처리한 탓도 있었고 그 소년에게서 발산되는 기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련된 기사 수준이었지만.

“아, 당신들 괜찮아요?”

히렌은 땀을 닦으며 리오와 크리스에게 물었다. 크리스는 고맙다는 듯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덕분에. 정말 고맙다.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리오는 그렇게 슬쩍 인사한 후 크리스와 함께 다시 갈 길로 돌아섰다. 히렌은 리오가 그렇게 인사하고 떠나가자 약간 화가 난 듯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둘이 떠나자 나무 뒤에서 숨어있던 메이린이 히렌에게 다가왔다. 히렌은 괜찮냐고 메이린에게 물으려 하다가 메이린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리오와 크리스가 간 방향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도 약간 이상한 눈초리로….

“아아… 정말 멋있었어….”

메이린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히렌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아하하… 그렇게 멋있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고마워 메이린.”

그러나 메이린의 시선은 여전히 고정된 그대로였다. 히렌은 설마 하면서 메이린을 툭툭 건드렸다. 정신을 차린 메이린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히렌. 그 기사님은…?”

히렌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메이린에게 물었다.

“기사님? 누구 말이야?”

“붉은 장발의… 아아… 정말 멋진 남자였어, 꿈에 본 그대로야…!”

히렌은 검을 다시 집어넣으며 메이린과 함께 가던 여행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린의 말이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자신이 알기로는 그 붉은 머리의 사나이는 검을 한 번도 뽑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기사라니….

어쨌든 히렌과 메이린 둘은 다음 목적지인 루퍼헨드에 그날 저녁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둘의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리오와 크리스의 이번 목적지는 루퍼헨드였다. 이틀 만에 따뜻한 여관에서 자게 된 크리스는 기분이 좋은 듯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여관이 모조리 트레이지 헌터들에 의해 꽉꽉 들어찬 것이었다. 세 개의 여관 중 마지막으로 그들이 들른 여관의 주인 역시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이런… 이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 보물 사냥꾼들이 몰려든 이유가 있을 텐데요?”

여관 주인은 자신의 안경을 닦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예에… 한 한 달 전쯤인가, 이 마을의 동쪽 산에 거대한 유성이 떨어졌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마을에 피해만 입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근처에는 얼씬도 안 했지만 시일이 지나 어떤 사나이가 그곳에서 거대한 에메랄드를 캐내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죠. 실제로 그곳에서 에메랄드를 찾아서 온 사람들도 있고요. 그 후로 이 마을에 보물 사냥꾼들이 몰려들어 결국 이런 상황까지 되었답니다.”

주인의 말을 들은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인에게 다시 물었다.

“예에… 그건 그렇고, 진짜 잘 방이 없는 겁니까?”

주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장부를 뒤져보았다. 그리고 환한 표정으로 리오에게 말했다.

“아, 합숙할 만한 방이 두 개 있습니다. 아까전에 손님이 들어간 방인데요,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랍니다. 따로 주무실 생각이시면 그 손님과 같이 주무시지요.”

리오는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사실 여관 밖에서 자도 죽지만 않으면 되는 사람이었으나 크리스는 그렇지가 않아서였다. 크리스는 그것도 괜찮다는 뜻을 리오에게 밝혔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 손님들에게 말 좀 잘해주십시오.”

주인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한 후에 2층으로 직원을 올려보냈다. 곧 직원이 좋은 소식을 들고 왔고 리오와 크리스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남자 손님의 방이 열렸고 안의 손님이 머리를 내밀자, 손님과 리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이구… 숲속에서 만난 정의의 용사 아니신가?”

손님, 히렌은 그리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리오를 맞아들였다. 크리스는 그 옆의 방에 있는 메이린과 함께 밤을 지내게 되었다.

방 안에서 리오는 그리 껄끄럽지 않은 듯 당당하게 망토를 벗어 옷걸이에 집어던졌다. 히렌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리오의 디바이너였다. 히렌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리오를 계속 보다가 리오의 상반신이 드러나자 잠시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훨씬 발달한 상체였다. 히렌 자신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물론 소년과 청년의 차이이긴 했지만…. 리오는 히렌의 시선을 느끼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봐, 남자끼리 그렇게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게 아니라구.”

히렌은 그 말에 화가 난 듯 침대에 누워 이불을 팍 뒤집어쓰고 리오에게 말했다.

“이 방엔 침대가 하나밖에 없으니 당신은 알아서 주무세요. 알았죠?”

리오는 욕실로 들어가며 웃음이 섞인 말투로 히렌에게 말했다.

“괜찮아, 난 침대하고 별로 안 친하니까. 자본지 하도 오래돼서 말이지, 하하하….”

히렌은 리오를 더욱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곧 잠이 들었고, 욕실에서 나온 리오는 다시 옷을 입고서 의자에 푹 눌러앉았다.

“하아아암… 잘 자라 꼬마….”

크리스와 방을 같이 쓰게 된 메이린은 크리스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전 메이린이라고 합니다. 실례합니다만 성함이 어떻게….”

그러나 크리스는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메이린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다가 오후에 숲속에서 붉은 머리의 남자와 크리스가 수화를 나누는 모습이 떠올라 아차 하며 미안하다는 수화를 이리저리 해 보였다. 그리 능숙하지 않은 수화라 크리스가 바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뜻을 알아들었는지 자신의 이름을 수화로 천천히 메이린에게 전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뜻을 전할 때는 말로 해도 상관이 없다고 추가했다.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 알겠습니다. 방금 전엔 정말 죄송했어요.”

크리스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옷을 벗고 목욕할 준비를 했다. 메이린은 욕실로 들어가는 크리스에게 잘 때 자신의 옆에서 자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

곧 아침이 밝았고, 리오는 닭 울음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났다.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서 일어난 리오는 허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으윽… 계속 의자에서 이렇게 자다간 허리가 끊어지겠군. 젠장….”

히렌은 여전히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잠을 즐기는 상태였다. 그가 자는 사이에 리오는 히렌의 검을 뽑아 보았다. 무기상에서 구할 수 있는 단순한 검이었다.

“날도 무르고… 싸구려 티가 나는군. 이거 가지고 잘도 싸워왔구나 꼬마.”

리오는 다시 검을 집어넣고 방 밖으로 나갔다. 여관에서 지금 떠날 생각은 아니었지만 방안에서 가만히 있기가 싫어서였다. 리오와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리오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망토 안에는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있는 리오였다. 겨울인데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아, 아가씨는 잘 주무시나…?”

리오는 청각을 확대시키고 크리스와 메이린이 자고 있는 방의 문에 귀를 대 보았다.

“… 엇…?”

리오는 순간적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떼었다. 그러다가 다시 귀를 댄 리오는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아, 아앙… 그곳은 안돼요 크리스…!”

분명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크리스의 이름까지 나오니 리오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 간지러워요, 그만… 아, 안돼요, 여기까지…!”

리오는 귀를 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생각하기도 곤란한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설마… 크리스가 남자…?’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그녀의 나체를 슬그머니 본 리오였다.

“어쩔 수 없지…!”

리오는 방문의 틈새로 눈을 가져갔다. 그리고 틈새를 통해 방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

안의 정황을 살펴본 리오는 바로 일어서서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살짝 쳤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젠장할… 이상한 여자애잖아…!”

리오는 터벅터벅 걸어가며 인상을 쓴 채 중얼거렸다.

“귀를 청소하는데 그렇게까지 반응하는 애는 처음 봤네….”

리오가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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