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13화
리오의 목소리를 들은 히렌은 잠시 주춤거렸으나 상관하지 않고 계속 갤럭시 웜에게 달려들었다. ‘웜’이라고는 했지만 완전 인간형의 괴물인 갤럭시 웜은 별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일종의 행성 기생 생명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 유충일 때는 식물류만 먹고 커가지만 성충이 돼서는 동물의 고기와 피를 먹는 그야말로 괴물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우주에서 온 생명체였기에 정령 마법 계통은 절대로 통하지 않고 오직 무속성의 마법과 물리력만이 갤럭시 웜에게 충격을 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히렌과 메이린은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히렌은 자신들에게 소리친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럼 당신도 같이 싸우면 되잖아! 뭐가 걱정이야!!”
리오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크리스가 리오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그를 불렀다.
“예? 걱정 말고 검이나 빨리 가져오라고요?”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았다는 듯 여관을 향해 뛰었다.
“그럼, 제가 올 때까지 애들을 응원해줘요!”
히렌은 온 힘을 다해 괴물의 다리를 검으로 후려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괴물의 가죽에 검이 살짝 박히자, 히렌은 검을 다시 빼며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괴물의 뾰족한 팔이 히렌이 있던 장소를 거세게 찔러서 파헤쳤다. 히렌은 그것을 보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지, 진짜 보통이 아니잖아! 검이 어떻게 들어가지도 않지?’
히렌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나무 뒤에 숨어있는 메이린에게 신호를 보냈다. 마법을 사용하라는 신호였다. 메이린은 떨리는 손으로 호선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6, 6급 마법! [가이아 드라이버]!!”
땅속에 있던 탄소의 입자들이 모두 뭉쳐 칼날을 이루며 공중에 치솟았다. 그리고 메이린의 손이 이끄는 대로 모조리 갤럭시 웜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검은 칼날 수십여 개가 괴물의 두꺼운 몸체에 박혀 나갔고 메이린은 자신의 마법이 통하자 손을 치켜올리며 기뻐했다.
“히, 히렌! 성공했어, 성공했다구!!”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괴물의 몸에 박힌 줄만 알았던 탄소의 칼날들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땅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메이린의 얼굴은 금방 울상으로 바뀌었고 히렌도 메이린의 마법이 통하지 않자 엄청난 긴장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메이린! 다른 마법을 사용해 봐!!”
히렌은 다시 괴물에게 공격을 감행하면서 메이린에게 마법을 부탁했다. 그러나 메이린은 알고 있었다. 6급의 가이아 드라이버를 저 정도로 간단히 깰 괴물이라면 4급의 마법도 그리 충격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히, 히렌! 도망가!!”
메이린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림에도 불구하고 히렌은 계속해서 괴물을 공격해 나갔다. 그러나, 괴물의 두꺼운 가죽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괴물의 공격이 또한번 히렌의 검을 강타했고 히렌의 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뒤로 멀리 나가떨어졌다.
“크아앗!!”
히렌이 쓰러진 후에 괴물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게 된 것은 메이린이었다. 괴물은 메이린을 향해 그의 붉은 눈을 번뜩였다. 히렌은 일어나면서 메이린에게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도망쳐 메이린! 저 녀석은 내가 맡을 거야!! 위험해!!!”
메이린도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겁에 질린 나머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히, 히렌…!”
메이린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히렌을 바라보았다.
“사, 살려줘어!!”
히렌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괴물을 향해 달려들 자세를 취하였다. 그때, 누군가가 히렌의 옷자락을 강하게 잡아당겨 뒤로 끌어 내었다.
“자아, 꼬마는 구경이나 해라. 저 녀석은 내가 맡을 테니까 말이야.”
디바이너를 가지고 나온 리오였다. 히렌은 인상을 쓰면서 리오에게 소리쳤다.
“웃기지 말아! 당신 따위가 어떻게 저 녀석을 없앤단 말이야! 내가 저 녀석을 없앨 거야, 메이린도 내가 구할 거라고!!!”
리오는 갤럭시 웜에게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히렌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히렌은 움찔하며 얼굴 표정을 풀었다. 리오는 히렌을 보고 씨익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 한 번만 더 그따위로 지껄여대면 내가 널 없애버릴 거다. 후훗….”
리오는 히렌을 내려놓고 괴물에게 한 발 한 발 걸어가기 시작했다. 히렌은 다리의 힘이 빠진 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난생 처음 보는 웃음을 리오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살기가 담긴 웃음… 이 정도로 자신의 힘을 빼는 존재는 히렌에게 리오가 처음이었다.
‘사, 사신!?’
히렌은 식은땀을 흘리며 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리오는 너무나도 당당히 괴물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괴물도 리오의 살기를 느꼈는 듯 메이린에게서 시선을 옮겼다. 리오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괴물에게 말했다.
“너도 참 운이 없는 괴물이야… 하필이면 나에게 걸리다니 말이지.”
괴물은 자신의 뾰족한 팔을 곤두세우고 리오를 살피기 시작했다. 본능인지, 지능인지는 모르지만 리오가 강하다는 것을 그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리오는 검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양손으로 검을 거머쥔 상태였다. 곧 그의 몸에서 푸른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간다아앗!!”
리오가 앞으로 돌진함과 동시에 괴물도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디바이너와 갤럭시 웜의 생체 병기가 맞부딪혔고 둘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덩치로 보아선 리오가 밀릴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쉽게 밀리지 않았다. 갤럭시 웜은 팔에 힘을 가해서 리오를 강하게 밀어내었다. 리오는 밀리지 않았지만 지면이 끌리는 바람에 리오는 중심을 잠시 잃고 말았다. 그 사이를 이용해 갤럭시 웜은 뾰족한 팔을 리오의 가슴에 들이대었고 간발의 차이로 리오의 망토 앞자락만이 긁히게 되었다. 리오는 뒤로 조금 물러선 뒤에 자세를 고쳐 잡으며 공격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쿠오오오오!!”
갤럭시 웜은 기세 좋게 리오에게 팔을 들이밀었다. 리오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검에 힘을 가했다.
“하아아앗!!”
순간, 리오의 디바이너 끝이 음속을 넘어서며 갤럭시 웜의 팔을 옆으로 쳐내었고 그 힘으로 갤럭시 웜의 중심이 무너졌다. 리오는 중심을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그대로 디바이너를 위로 돌린 후에 곧바로 갤럭시 웜의 한쪽 팔을 내리쳤다.
파악!!
“쿠워어어어!!!”
둔탁한 소음과 함께 괴물의 한쪽 팔은 푸른색의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았고 갤럭시 웜은 고통에 찬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리오는 뒤로 물러서는 갤럭시 웜을 향해 재차 공격을 날렸다.
“가라앗!! 지뢰 자르기!!!”
곧바로 디바이너에서 땅을 타고 전해진 충격파가 갤럭시 웜의 몸을 사납게 긁었고 다시 한번 푸른색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광경은 메이린과 히렌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여태껏 자신들이 보아오고 알아오던 기사들의 전투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리오의 전투 형태에 들어 있었다.
갤럭시 웜은 도망치려는 듯 서서히 숲속으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오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도망치는 갤럭시 웜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도망가게 놔둘 것 같으냐!!”
리오는 갤럭시 웜의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단숨에 검을 내리 그었다. 갤럭시 웜은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두 조각으로 몸이 나뉘어 숨을 거두었다. 생명력이 없어진 그의 몸은 곧 메케한 냄새를 뿜으며 기화되어 사라졌고 리오는 손을 내저으며 연기로 가득 차기 시작한 숲속에서 빠져나왔다.
“푸우 냄새. 이래서 녀석은 상대하기가 싫단 말씀이야.”
리오는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은 메이린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이, 괜찮니?”
메이린은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 작은 열여섯 살의 소녀를 안아 올렸다.
“아, 리오 씨…!”
“훗, 사양할 건 없어. 어차피 다리에 힘도 빠졌을 테고, 여관까지 내가 모셔다 드리지 뭐. 그건 그렇고, ‘씨’자는 빼줘, 듣기 거북하니까.”
리오는 메이린을 양팔로 든 채 걸어 나오다가 메이린과 비슷한 자세로 주저앉아있는 히렌을 바라보았다.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메이린은 히렌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히렌….”
리오는 메이린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경 쓰지 마. 몸에 상처는 없으니까 조금 후 여관으로 다시 뛰어올 거야.”
메이린은 문득 ‘보석’에 관한 일이 떠올라 리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사람들이 들고 좋아하던 보석 말이에요….”
리오는 그 질문을 받고서 살짝 코웃음을 쳤다.
“보석? 그건 보석이 아니야. 녀석은 유충일 때 식물만을 먹고 자라나지. 그러나 식물 안에 있는 녹색 세포(엽록소)는 쏙 빼놓고 흡수해 버리거든? 간단히 말해서, 그 보석이란 건 단순한 녀석의 배설물에 불과해. 그걸 보석이라고 좋아하다니 원….”
메이린은 그 말을 듣고 리오라는 사나이가 신기한 존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책에 나오지도 않은 괴물들의 특성까지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때, 그녀는 어렸을 때 읽은 책의 내용이 잠시 생각났다.
“저어… 리오 씨. 아니 리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리오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리오는 가즈 나이트에 대해서 아시나요?”
그 질문을 들은 리오의 표정은 단숨에 변했고 메이린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오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가, 가즈 나이트? 그게 뭔데…?”
메이린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헷, 아니에요 리오.”
메이린을 안고 여관으로 가던 리오는 크리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자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크리스는 수화로 메이린은 자신에게 맡기라는 뜻을 리오에게 전했다.
“어, 괜찮겠어요? 보기보다 이 아가씨 꽤 무거운데요….”
“리, 리오!”
크리스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메이린을 받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가 메이린을 안고 여관으로 들어가자, 리오는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긴장되었던 근육을 서서히 풀었다.
“하아… 공기가 차가워서 좋구나… 후훗.”
건물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리오의 그런 태연한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아까전에 갤럭시 웜을 반쪽 낸 전사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아… 아직 아침이니까 서서히 출발 하자고… 응?”
리오는 여관으로 들어가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한번 숲속을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그러나 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철컹.
기계의 마찰음이 리오의 귀에 들려왔다. 리오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일그러졌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힘껏 소리쳤다.
“이런! 모두 엎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