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15화
메이린은 계속해서 울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 자신도 왜 그렇게 슬픈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크리스는 얼굴을 풀고서 메이린을 다독거려주었고, 메이린은 그녀의 품 안에서 더욱 더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리오가, 리오 씨가…!!”
크리스는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살짝 입을 열었다가 다시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메이린의 등을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어라, 둘이 이제 보니 꽤나 친한 사이였네. 여자끼리 붙어있는 것도 그리 좋지만은 않아요.”
크리스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뒤를 돌아다 보았다. 분명히 불속에 있어야 할 리오가 버젓이 자신의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크리스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메이린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그러나 메이린은 아직도 정신없이 울고만 있었다. 리오는 몸을 굽히고 메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호오… 감수성이 뛰어난 소녀였군. 불을 보면서 이렇게 슬퍼하다니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메이린은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손을 천천히 만져 보았다. 크리스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큰 손이었다. 메이린은 놀람 반, 기쁨 반의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쳐들었다.
“리, 리오!!!”
리오는 빙긋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리오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메이린은 리오의 넓은 가슴에 안기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오, 이런이런. 울다가 웃으면 신체에 이상이 생긴다구….”
리오는 한숨을 살짝 쉬면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리오가 자신을 바라보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리오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친 곳은 없지요? 다행이네요, 하핫….”
리오의 환한 표정과 그 말을 보고 들은 크리스의 표정은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리오는 깜짝 놀라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 아니, 왜 그래요 크리스?”
크리스는 곧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렇게 뛰어가는 모습을 본 리오의 표정은 이상스럽게도 진지해졌다.
“… 훗….”
리오는 살짝 웃은 뒤에 다시 자신에게 꼭 달라붙은 메이린을 떼어놓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그 소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러면 곤란한데… 어, 히렌?”
리오는 앞쪽에서 지친 표정을 지은 채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히렌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히렌은 리오의 모습을 보고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히렌이 다가오자 리오는 메이린을 반 강제로 떼어놓으며 히렌이 왔다고 가르쳐 주었다.
“아, 히렌! 괜찮아?”
그제서야 리오에게서 떨어진 메이린은 히렌이 상처를 안 입었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히렌은 그런 그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 미안해 메이린….”
메이린은 히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미안하다’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던 히렌이었다. 히렌은 리오를 보고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죄송했습니다 리오 씨.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리오는 천천히 일어서서 히렌에게 다가왔다. 리오가 손을 자신에게 가져오자 히렌은 눈을 꼭 감았다. 리오가 자신을 칠 것만 같아서였다.
“녀석, 하하핫….”
리오는 히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기 시작했다. 히렌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리오는 히렌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용서’라는 단어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히렌. 특히 남자들끼리는 말이야, 후훗…. 알았으면 됐다, 메이린이나 잘 보살피시게나.”
그렇게 말한 리오는 건물에 기대어 앉으며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아암…. 메이린, 크리스가 오면 내일 출발하자고 말해줘, 알았지?”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는 망토를 뒤집어쓴 채 골아떨어졌다. 히렌은 그런 리오를 보고 메이린에게 말했다.
“저 사나이… 도대체 정체가 뭘까 메이린?”
메이린은 빙긋 웃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흐음… 멋진 기사지. 호홋….”
히렌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메이린의 말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그러나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루퍼헨드 마을의 주민들과 보물 사냥꾼들은 집회소와 파괴되지 않은 가정집에 나누어서 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리오가 자기로 된 곳은 집회소의 2층 다락이었다. 좁기는 했으나 리오 혼자서 자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리오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청했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후에도 충분히 낮잠을 잤으며 잠을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였다.
“으… 잠이 안 오네….”
한편으로, 그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진 크리스가 걱정되었다.
“후우… 어쩌다가 벙어리가 되었을까…? 얼굴도 예쁜 여잔데….”
이리저리 생각이 깊어질 때쯤, 누군가가 다락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리오의 귀에 들려왔다. 리오는 디바이너에 손을 가져가며 다락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 성인 남자는 아니고… 아이인가?”
다락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긴 금발의 여성, 크리스였다. 리오는 디바이너에서 살짝 손을 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 크리스. 어디 갔었어요, 걱정했잖아요.”
크리스는 미안하다는 수화를 해 보였다. 그리고서 리오의 옆에 가만히 앉았다.
“내려가서 주무세요, 여긴 크리스가 자기엔 너무 춥다구요.”
리오의 말을 들은 크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여기서 자겠다는 뜻을 밝혔다. 리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에이, 알았어요. 제가 내려가서 잘게요.”
그때, 크리스가 리오의 손을 꼭 잡았다. 리오는 침을 꿀꺽 삼키며 크리스를 돌아보았다.
“왜, 왜 그래요?”
크리스는 계속해서 리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공기가 그녀의 주위에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낀 리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알았어요, 옆에 있어줄게요.”
리오는 그녀의 옆에 몸을 굽히고 앉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었다. 크리스는 천천히 수화로 말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그녀가 전해준 수화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 애인이 있냐고요? 으음… 글쎄요….”
리오는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옛날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일… 옛날의 일이….
“레나! 정신 차려!!”
붉은 장발의 사나이는 자신의 앞에서 무서우리만치의 요기를 뿜어내고 있는 여성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 여성은 싸늘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뭐냐, 리오 스나이퍼… 넌 나를 알고 있나 보지? 그러나 난 너를 모른다, 이름만을 알 뿐이지. 어서 덤벼라 리오 스나이퍼!!”
그녀의 몸에서 검은색의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고 리오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검, 디바이너를 뽑았다. 그러나, 그의 몸에선 살기가 뿜어지지 않았다. 전혀 전투 태세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호호호…! 삶을 포기한 모양이지? 그러면 전투가 쉬워지겠군, 가즈 나이트라고 해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는데 말이야.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겠어.”
리오는 검으로 방어 태세를 취한 채 다시 한번 앞의 여자에게 소리쳤다.
“제발 정신 차려! 난 너랑 싸울 수 없단 말이야! 자, 이것을 봐, 네가 타르자에게 납치당할 때 나에게 건네준 끈이라고, 네가 언제나 머리를 묶을 때 쓰던 것 말이야!”
리오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검은색의 끈을 꺼내어 레나에게 보여주었다. 레나는 그 끈을 보고서 잠시 있다가 코웃음을 쳤다.
“그깟 끈 하나로 날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너를 오늘 처음 만난다. 너와 난 적이야! 3급 주문, [라이트닝 레인]!!”
순식간에 허공에 그려진 거대한 빛의 마법진에서 날카로운 빛들이 리오를 향해 쏟아져 내렸고 리오는 팔을 교차해 머리를 감쌌다. 아대에서 뿜어져 나온 흰색의 빛이 쏟아지는 빛들을 막아주었고 리오의 주위에 떨어진 빛들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레나는 허공에 떠오르며 감탄 어린 얼굴을 지어 보였다.
“호오… 역시 가즈 나이트답군. 3급 주문을 이렇게 간단히 막아낼 줄이야….”
리오의 아대가 만들어낸 보호망의 주위는 깊숙이 파헤쳐져 있었다. 리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레나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그만둬! 너와 싸우고 싶지가 않아!!!”
레나는 시끄럽다는 듯 계속 주문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수차례에 걸친 주문에 결국 아대도 버티지 못하고 재로 화하여 사라지고 말았고, 리오는 주문 세 개를 정면으로 맞고서 쓰러지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리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호호호호…! 정말 어리석구나 리오 스나이퍼. 감정에 얽매여서 아무것도 못하다니… 아하하하하!!”
리오는 쓰러진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로브를 입고 있는 타르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리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타르자를 쏘아보았다.
“타, 타르자…!! 레나를 어떻게 한 거야!!!”
타르자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글쎄… 어떻게 된 걸까…? 호호호호…!”
리오는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일어나려고 애썼으나 기를 다 잃어버렸는지 그럴 수가 없었다. 리오는 분한 듯 땅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이, 이 녀석…!!”
타르자는 리오의 그러한 모습이 보기 좋다는 듯 눈을 아래로 깔고 그를 지켜보며 그것을 즐겼다.
“아무리 네가 가즈 나이트라고 해도 약점은 있는 법, 다섯 명의 가즈 나이트 중에서 너희들 형제만이 유독 사랑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있더군. 호호호호… 그것이 없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널 이기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난 널 이겼다. 이 세상에서 용사라는, 영웅이라는 녀석들이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랑을 무기로 말이야!!!”
타르자의 광소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리오는 얼굴을 땅에 박은 채 분노에 몸을 떨었다. 타르자는 웃음을 멈추고 자신의 옆에 있는 레나에게 말했다.
“자아, 레나! 저기에 뭐가 보이지?”
레나는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예, 포프가스 공국의 수도입니다 타르자님.”
타르자는 아래로 내려와 리오의 헝클어진 머리채를 붙잡고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아… 잘 봐라 리오 스나이퍼. 너의 애인의 손에서 사라지는 공국 수도의 모습을 말이야…!! 자, 레나! [그레비트]로 저기에 사는 사람들을 모조리 눌러버려라!!”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리오는 다시 한번 소리치기 시작했다.
“안돼! 그것만은 하지 마 레나!!! 제발!!”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초중력 주문, 그레비트는 완성되었다. 검은색의 구체가 포프가스 공국 수도에 나타났고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초중력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리오의 귀엔 확실히 들려왔다. 100배가 넘는 초중력에 의해 제대로 서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타르자는 광소하며 레나에게 다시 한번 명령했다.
“자아, 레나! 역중력을, 더욱더 멋있는 장면을 이 녀석에게 보여주자!!”
레나의 주문이 역으로 흐르기 시작했고, 내리누르던 중력이 뒤바뀌자 공국 수도에 있던 사람들의 혈액이 하늘 높이 뿜어져 올랐다.
“오호호호호호!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워!!! 으, 으아앗!!”
한참을 광소하던 타르자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손을 리오의 머리에서 떼었다. 그녀의 손바닥은 화상을 입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타르자는 리오를 바라보았다.
“이, 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