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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20화


지크 일행이 신전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결국 그들은 노숙을 택하는 수 외에는 없었고 지크와 다른 일행들은 눈이 쌓이지 않은 나무 밑을 찾아내어 밤을 지내게 되었다.

“후우… 눈은 다 치웠고, 불도 피웠고. 이제 쉽시다.”

지크는 자신이 데리고 나온 그 여성의 근처에 누우며 말했다. 그녀가 아직도 의식이 불명확한 상태여서 그렇다고 지크가 일행에게 말했으나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이상한(?) 오해를 받게 된 지크는 결국 입을 다물고 그녀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세레나와 리카는 일찍 잠이 들었고 클루토도 지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게 되었다. 지크도 역시 리오처럼 잠이 없는 체질이어서 눈을 멀뚱히 뜬 채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수수께끼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후우… 어째서 얼음 안에 들어 있었지?”

지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닥불에 땔감 하나를 더 던졌다. 시간이 꽤 지나고 먼 동이 틀 무렵, 마지막 땔감을 던진 지 한 시간이 되어 지크는 꾸벅꾸벅 자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잠이 온 모양이었다.

“으음…!”

움찔하며 잠에서 깨어난 지크는 머리를 긁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나타난 것이 없었다. 모닥불이 거의 꺼져가는 것 외엔….

“… 에이, 다들 팔자 늘어졌구만…. 노숙하며 이렇게 깊이 자는 사람들은 없을 거야. 하아아암…! 리카도 잘 자고, 세레나 씨도 잘 자고, 클루토도 잘 자고…. 에이, 다들 일어날 때까지 계속 자자….”

그는 자신의 팔을 베고서 다시 잠을 청했다.

“…….”

그러나 그의 기분이 영 좋지가 않았다. 무언가 하나 빼먹은 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일행은 모두 다 있었다.

“… 으악! 얼음 미녀!!”

지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위의 숲을 뛰어다니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지크는 찾으면서도 자신이 왜 그녀를 찾아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분명,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 건 확실했지만 이상하게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이다. 숲을 돌아다닌 지 5분가량 되었을 때, 그는 결국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지크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후우, 찾았잖아요 아가씨!”

그 수수께끼의 미녀는 지크가 뒤에서 자신을 부르며 뛰어오자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크는 그 모습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은 오기인 듯, 그는 그녀의 손목과 허리를 붙잡고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녀 쪽에서 완강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거 놔요! 절 놓아주세요, 제발요!!”

“호오, 말을 할 줄 아시는군. 그럼 어디 이유나 좀 들어봅시다!”

지크는 그녀의 몸을 자기 쪽으로 돌린 후 그녀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살짝 짚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돌이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저항하였다.

“제발 놔주세요! 저를요, 제발!!!”

지크는 결국엔 화가 치밀어 오른 듯, 목소리를 높여 그녀에게 소리쳤다.

“시끄러워! 꺼내달라고 해서 꺼내줬더니 이유도 밝히지 않고 가려고 해! 좋아, 이유만 말해, 그러면 보내주지!!”

지크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자 그녀의 태도도 약간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이유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걸 못 배운 모양이군… 좋아, 말하지 않겠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지. 이유를 말할 때까지 너를 어디에도 못 보내줘. 그리고, 부르기 힘드니까 이름 좀 말해줘. 그건 해줄 수 있겠지?”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크의 표정을 보고서 반은 겁에 질린 듯 입을 열었다.

“프시케라고 해요….”

지크는 그 이름을 듣고 흠칫 놀라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 진짜? 가명이 아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며 중얼거렸다.

“… 프시케라… 헤헷, 좋아, 하지만 이유 말할 때까지 못 보내준다는 건 바뀌지 않아. 알았지?”

혈도가 풀린 프시케는 몸을 살짝 움직여 보이면서 입을 다물었다. 지크는 그녀의 표정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발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어, 맨발 아니야? 눈을 맨발로 밟으며 걸어가다니, 참내… 이리 와봐.”

지크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 프시케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프시케는 조금 움직이려다가 다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신경 쓰이는 아가씨군. 에잇!”

지크는 프시케에게 덤벼들 듯 다가가 그녀의 양팔을 잡고 그대로 자신의 등 위에 그녀를 업었다.

“아, 괜찮아요, 오래동안 밟고 있어서 견딜 수 있어요….”

지크는 뒤에 있는 프시케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웃기지 말아. 이유를 말할 때까지 넌 내 맘이야. 잔말 말고 꽉 붙들어.”

지크는 그녀의 둔부를 받쳐 올린 후에 그녀의 다리를 붙들고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 업혀있던 프시케는 얼굴이 발개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 어, 그러고 보니…?”

지크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잠시 동안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지금 프시케는 사제복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지크는 속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뭐 어때… 벗은 것도 봤는데 뭘.’

지크는 자신을 억제하면서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다른 일행들은 모두 일어난 상태였다. 일행 셋은 지크가 프시케를 업고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마음대로 생각하라며 프시케를 스프가 끓고 있는 모닥불 옆에 앉혀놓고 배낭에서 말린 빵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자, 기운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이거라도 먹어봐.”

그러나 프시케는 사양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크는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먹어! 안 먹으면 안 보내줘!!”

프시케는 급히 빵을 받아 입 안에 넣고 억지로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맛이 없지는 않는 듯 지크가 다른 빵을 주자 얼른 받아서 먹었다. 지크는 씨익 웃으며 큰 컵에 스프를 떠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프시케는 멍하니 지크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런 표정은 짓지 마. 먹으면서 다른 곳에 신경 쓰면 그리 좋지 않아.”

프시케는 조용히 따뜻한 스프를 받아 빵과 함께 그녀의 위장으로 보내었다. 스프가 그녀에겐 약간 뜨겁지 않을까 하고 지크는 생각했지만 별 탈 없이 프시케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마쳤다.

그 사이 다른 일행들은 자리 정리를 끝마쳤고 프시케의 식사가 끝나자 지크도 천천히 일어섰다.

“자아, 오늘은 마을에 꼭 도착합시다. 약간 늦어져 버린지도 모르니까 걸음을 빨리해야 해요.”

세레나를 비롯한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각자의 배낭을 매고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하자 프시케도 걷기 위해서 일어섰다.

“어어, 잠깐 기다려.”

지크는 프시케의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앉으며 말했다.

“자아, 업혀. 맨발로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구.”

프시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크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지자 즉시 그의 등에 업혔다. 지크는 웃으면서 그녀를 업은 채 일행을 뒤따라갔다.

“… 저어, 무겁지 않아요?”

“좋지 뭐, 서로 춥지도 않고. 헤헷….”

지크의 야한(?) 말을 들은 프시케는 다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지크의 등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마도 자려는 것 같았다.

“… 이봐, 침은 흘리지 말아줘, 하나밖에 없는 재킷이니까.”

지크가 그 말을 한 것은 숲을 완전히 빠져나간 후였다. 곧 그들의 눈앞에는 광대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조그맣게 보이는 도시가 있었다.

“어라? 작은 마을이잖아?”

리카의 말을 들은 지크와 클루토는 살짝 코웃음을 쳤다.

“작아? 저 도시가 작은 것이 아니고 평원이 큰 거야. 가까이서 보면 무지무지 클걸?”

리카는 클루토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자 클루토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살짝 쳤다. 맷집이 나쁜 건지, 리카의 주먹이 강한 건지, 클루토는 허리를 굽힌 채 일행을 천천히 따라왔다.

“응? 이상하네? 겨울인데도 이 평원의 안쪽은 전혀 춥지가 않아?”

이번에는 세레나가 리카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 여기는 화산 분지라서 그렇단다. 이곳의 아래에는 아마도 용암이 가득 흐르고 있을 거야. 그리고 분지라서 바람도 잘 안 들어오지.”

리카는 입을 벌리고 세레나의 박식함에 감탄했다.

“와아…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그러자 지크가 때를 만났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리카가 자신에게 그러는 것처럼….

“네가 책을 안 읽어서 그런 것뿐이야. 무식한 소녀 같으니라고….”

일행은 계속해서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클루토의 말 그대로, 도시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도시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정오가 넘어설 무렵, 그들은 도시의 거대한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도시에서 쉴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일행은 도시를 휘젓고 다니는 폭주족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소리를 치고 다니며 이곳저곳에 피해를 끼치고 다니는 그들에 대해서 치안 담당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크는 여관의 앞에서 일행들에게 안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예? 어디로 가시게요 지크 씨?”

“뒤에서 자고 있는 짐덩이에게 사줄 것이 있어서요. 이대로 사제 복장을 하고 다닌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그럼, 다녀올게요.”

세레나에게 대답한 뒤 프시케를 업은 채 장터로 향하는 지크의 뒷모습을 보며 리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형제들의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죠 세레나 언니?”

세레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가 장터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신발가게였다. 아무래도 업고 다니는 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좋지가 않아서였다.

“자자, 다 왔으니까 내려 아가씨.”

“…….”

깊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지크는 한숨을 쉬며 뒤통수로 그녀의 앞머리를 살짝 쳤다. 프시케를 깨운 지크는 그녀에게 신발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말했다. 프시케는 잠에서 덜 깬 표정을 지으며 신발을 천천히 고르기 시작했다. 프시케가 신발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지크 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의 옆에서 지켜보는 눈도 있었다. 그들은 프시케의 옷을 보고서 소곤거렸다.

“이봐, 저 여자 분명 여신교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거지?”

“음, 분명해. 저 여자가 신발을 다 고르고 빨간 윗옷 입은 꺽다리가 계산할 때… 알겠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는 프시케는 얼굴에 서서히 미소를 띄우면서 신발을 하나씩 신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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