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23화
방문의 앞으로 다가간 리오는 노크한 사람이 대답이 없자 다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속을 태우며 재차 물었다.
“저기, 누구십니까?”
그때,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였다. 리오는 깜짝 놀라며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방문의 앞에는 낮익은 얼굴의 소녀와 소년이 서 있었다. 그들을 본 리오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히이잉… 리오! 너무해요, 훌쩍…!”
메이린의 비음이 섞인 목소리를 들은 리오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눈을 꽉 감았다. 히렌은 매우 지쳤다는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왔고, 침대에 푹 엎어지며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크리스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메이린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리오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의자에 푹 눌러 앉았다.
“… 젠장,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군.”
하나의 위험을 넘기고 나서 짐을 하나 더 지게 된 리오는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분명 가이라스 왕국보다 더한 위험이 이 제국의 땅에는 도사리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계속해서 일행이 느는 것은 일행에게나, 자신에게나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따라온 이들의 집념을 보아하니 도망간다고 해서 안 쫓아올 아이들은 아닐 듯 싶었다. 그리고 크리스와는 약속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이러니 적을 만나면 ‘임전무퇴’를 할 수밖에 없는 거지, 달리 도망을 못가나….”
리오는 이렇게 저렇게 불평하면서 의자에 푸욱 눌러 앉으며 방의 불을 껐다.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동료들과 함께했던 적도 있었던 리오였었다. 이런 일은 조금만 지나면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언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던 리오가 오늘은 이상하게도 히렌에게 깨워져 일어났다. 히렌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의 몸을 계속 흔들어 댔다.
“어서 일어나요 리오! 아침이 훨씬 지나버렸다구요!”
리오는 인상을 쓰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허리를 펴자 그의 등에서 우두둑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히렌은 깜짝 놀라며 리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리오는 그런 히렌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며 세면실로 들어갔다.
“별로 신기한 건 아니야, 너도 한번 의자에서 자보면 알게 될 거야.”
리오는 적당히 머리를 감고, 세면을 한 뒤에 크리스의 방으로 찾아갔다. 어서 출발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방 앞에 선 리오는 문에 노크를 하려다가 잠시 멈추고 문에 귀를 대어 보았다. 저번과 같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리오는 고개를 슬쩍 저으며 노크를 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자아, 출발하자구요 크리스. 그리고 참….”
리오는 슬쩍 침대에 앉아있는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리오가 자신을 보자 미소를 지어 보이긴 했으나 거의 억지 웃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메이린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할지 예상하고 있겠지?”
메이린은 그 말을 듣고 역시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어서 출발할 준비를 하거라.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되니까.”
리오의 말을 들은 메이린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바뀌었고 리오의 팔에 매달리며 기뻐했다.
“데, 데리고 가주시는 거에요? 진짜요?”
리오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린은 기뻐하며 크리스의 주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리오는 그 모습을 뒤로하고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 리카와 클루토보다 더 골칫거리일지도….”
그렇게 중얼거린 리오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가서 짐을 꾸려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히렌에겐 얘기도 하지 않은 리오였지만 히렌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좀 가르쳐주세요, 리오 스승님. 헤헷….”
출발하기 위해 여관을 나선 리오 일행은 마을을 거의 빠져나갈 때쯤에 괴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흰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꽃을 맞은 사람들이 갑자기 그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춤을 추고 ‘여신’을 찬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흰 옷의 사람들은 그대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곧 그들이 연주하던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 무슨 종교단체인가? 하지만 선교 활동이 너무 심하군….”
곧 사람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지나가면서 하나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여신교 만세, 여신을 찬양하라. 여신교 만세, 여신을 찬양하라….”
그들이 지나간 후에, 리오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 못마땅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신교…? 뭐지?”
리오가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메이린이 나서서 설명을 해주었다.
“아, 리오는 외지인이라서 잘 모르시겠네요. 여신교는 말이지요….”
메이린의 말에 의하면, 10수년 전부터 일어난 신생 종교 단체인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여신이 잠에서 깨어나는 날, 또 다른 세상이 깨어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소문에는 여신이 깨어나는 해가 바로 금년이고, 여신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어난다는 예언들이 모조리 맞아떨어져서 교세는 이미 제국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해졌다고 한다.
“예언? 그런 것도 했었니?”
“예, 예언 중에요, 붉은 바람이 여신의 성전에 나타난다고 되어 있었는데요, 한 달 전에 진짜로 붉은 바람이 성전 근처에서 일어나 사람들의 믿음이 더더욱 강해지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해변에서 철충이 부서진다는 이상한 예언조차 맞아떨어져서 모든 사람들이 놀랐어요.”
리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해변이라는 말을 듣고서 입을 열었다.
“저어… 해변이라는 곳이 항구도시 보르이크 아니니?”
히렌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거기에서 철충, 아니 메탈재킷 몇 대가 부서져서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그 사람들이 떠들고 다녔는데…?”
자신이 부순 거라고 리오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그들이 예언할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거 참… 더 복잡해지는데?”
하지만 리오가 상관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겐 더 큰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하였다.
“… 하지만, 제국 수도가 먼저야. 무슨 나쁜 일이라도 하면 정의의 용사라도 나타나서 그들을 물리치겠지 뭐. 어서 가지요 크리스.”
크리스는 알았다는 뜻을 비춘 후, 일행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어떤 사나이의 낮고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후후후후후… 여기까지는 즐거웠을 거다 리오…, 그러나 이제부터 즐거움은 끝이야… 후후후….”
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괴사나이였다. 그는 더욱 더 모자를 눌러 쓰면서 주머니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그곳에 대고 입을 열었다.
“사냥감이 간다, 준비해라 친구들… 후후후후후….”
다시 싸늘한 미소를 지은 그 사나이에게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그의 특이한 피부색이 약간 드러나 보였다. 회색….
마을을 완전히 벗어난 리오 일행은 굉장히 넓은 길을 지나고 있었다. 길의 양옆이 돌로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좋아 보였다. 그러나, 리오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다.
“위험한데? 이런 상황이면 피할 장소가 없어….”
크리스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리오와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리오는 슬쩍 빠져나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히렌과 메이린은 킥킥 웃어댔다.
“어, 리오. 누군가가 오는데요?”
히렌의 말 그대로, 일행의 반대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커다란 중절모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리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나, 그의 몸에서 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고 일행을 멈춰 세웠다.
“… 기가 느껴지지 않다니…!?”
그 사나이도 리오 일행이 멈추어서자, 자신도 멈춰서서 한 손을 올렸다. 리오에게 그 사나이의 기가 느껴진 것은 그 직후였다.
“이런!!”
리오가 순간적으로 기를 방출시켜 일행의 앞을 가로막자, 거대한 충격파가 리오의 기에 충돌하여 폭음과 함께 사라져갔다. 일행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 녀석은…!!”
중절모의 사나이는 리오를 향해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리오는 등에 지었던 가벼운 배낭을 내려놓고서 일행을 돌아다 보았다.
“여기서 움직이지 말아, 저 녀석은 메탈재킷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녀석이니까 말이야! 여기에 그대로 있어, 근처에 메탈재킷의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까 안심해도 돼, 알았지!”
히렌은 메탈재킷보다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서 피가 끓는 듯 리오에게 물었다.
“와아! 메탈재킷보다 강하다구요? 그럼 어느 정도…?”
리오의 굳은 얼굴을 본 히렌은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리오는 돌아서며 나지막이 대답해 주었다.
“… 나만큼 강하다.”
리오는 그대로 사나이를 향해 달려갔고, 히렌은 리오만큼 강하다는 소리에 질린 듯이 침을 꿀꺽 삼켰다.
“리, 리오만큼 강하다구…?”
사나이는 리오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서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리오는 물론 그를 따라서 계속 달렸고, 그들은 어느덧 길의 막다른 곳에서 멈추어 섰다.
“… 너라는 건 다 안다 바이론…!”
사나이는 그 소리를 듣고서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중절모를 벗어던졌다. 회색의 피부를 하고 있는 사나이, 리오의 예상대로 그는 바이론이었다.
“후후후후후… 상처는 회복되었나, 리오?”
리오는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예전에 끊어진 적이 있는 오른팔의 근육 이야기였다.
“물론, 하지만 네 상처가 더 컸던 것으로 아는데…?”
리오의 말을 들은 바이론은 다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검, 다크 팔시온을 뽑아 들고 말했다.
“나도 가즈 나이트니까 그 정도 상처의 회복은 간단하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리오는 바이론이 자신을 향해 고민이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인상을 쓰며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무슨 소리냐 바이론….”
바이론은 공중을 쳐다보며 한탄하듯 입을 열었다.
“후후후… 오늘은 너와 결판을 내려고 온 것이 아니라서 말이야… 후후후훗.”
부우우우우웅….
리오의 귀에 무엇인가가 공기를 가르며 오는 소음이 들려왔다. 리오는 움찔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리오의 머리를 지나쳐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넓은 길로 향하는 것이었다.
“저 안에는 메탈재킷 다섯 대가 준비되어 있지… 네가 없는 꼬마 친구들이 저 다섯 대의 메탈재킷을 부수고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 후후후후후….”
리오는 곧바로 일행에게 향하려 했으나, 그의 앞길을 다크 팔시온이 가로막았다.
“후후후훗… 저런 재미있는 일을 구경하게 보내줄 수는 없지, 관람료가 너무 비싸거든… 하하하하하하!!”
그 말을 들은 리오의 몸에서 푸른색의 기가 폭발적으로 방출되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 자식… 바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