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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27화


5장 [고랑(孤狼)]

지크는 일행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장난기 있는 말투를 사용한다. 그것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그는 신경을 그리 쓰지 않는 듯 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이유가 없지는 않다.

“후우… 따분하다.”

일행이 점심을 먹는 동안, 그들보다 먼저 점심을 먹은 지크는 커다란 방 안에 홀로 남아서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만은 보통 때와는 다른 그늘진 표정을 짓고 있는 그였다. 혼자 그러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하자 지크는 표정을 풀고 밝게 대답했다.

“예∼에!”

너무 조심스럽지 않을까 할 정도로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 것은 프시케였다. 지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 벌써 다 먹었어? 식사를 빨리하면 살찌는데….”

프시케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 먹진 않았어요. 그래서….”

지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프시케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런… 다이어트도 좋지만 너무 안 먹는 것도 곤란하다구. 나처럼 말랐다는 소리 들어도 괜찮아?”

프시케는 지크에게 꼬집힌 볼을 쓰다듬으며 그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 다이어트가 뭐예요?”

지크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머리만을 긁을 뿐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낀 그는 그냥 웃으며 얘기를 돌렸다.

“아하하… 상관할 거 없어, 좋은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아, 이번엔 내가 한 가지 물어봐도 돼?”

프시케는 검지를 살짝 입에 가져간 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곤란한 건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지크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후에 입을 열었다.

“으음… 솔직히, 나이가 몇이야?”

“아… 열아홉이에요.”

지크의 생각대로, 프시케는 20세가 안 된 어린 여성이었다. 물론, 얼굴 등이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말하는 투나, 눈빛이 너무나 어려 보여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알았어, 대답해줘서 고마워.”

“어? 끝이에요…?”

지크는 그녀가 아쉽다는 뜻을 내비치자,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더 얘기하고 싶어? 그럼,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물어봐. 나도 곤란한 것 빼고는 다 대답해 주지.”

프시케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을 띠우며 지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어… 지크는 나이가 몇이에요? 그리고, 키도 꽤 큰 것 같은데….”

“나? 스물넷이야. 그리고 키는 1.92 가론(미터) 정도 될 거야, 아마도….”

그렇게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프시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전과 같지 않은 웃음을 띠우고 지크에게 다가왔다.

“저어… 잠깐 제 눈 좀 봐 줄래요?”

“음? 뭐하게….”

지크는 안 될 것도 없다 생각하며 프시케의 눈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꽤나 큰 눈이라고 지크는 느꼈다. 그녀의 푸르스름한 눈빛이 약간 희미하게 되었다고 느껴졌을 때, 프시케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입을 가린 채 멍하니 지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지크는 어깨를 으쓱인 후에 빙긋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프시케는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갸웃하고만 있었다.

“자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 심심하면 나하고 나가서 바람이나 쐴래? 나가려면 외투를 입고 와.”

그녀는 놀러 나가자는 지크의 말을 듣고서 아까의 일은 잊었는 듯 생기있게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지크는 한숨을 푸욱 쉬고서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황당하군… 누가 수수께끼의 여자가 아니랄까 봐 마음을 읽어 보다니….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쉽게 읽었는데 말이야,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는 거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내용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정신력이 읽는 사람보다 낮을 때에 성공되는 기술이었다. 아마 방어 능력을 익힌 지크가 아니었다면 웬만한 사람도 가볍게 어린 시절을 읽히고 말았을 것이다.

지크는 중얼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고, 프시케와 함께 나간다는 말을 식당의 일행에게 전한 뒤에 거리로 나섰다. 큰 도시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가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이런, 이래가지고선 뭐 사주려고 해도 사줄 수가 없잖아…?”

지크가 그렇게 옆에서 투덜거리자, 프시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아, 괜찮아요 지크. 전 가지고 싶은 게 없어요, 입을 옷 한 벌이면 충분해요.”

그 말을 들은 지크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어, 그럼 ‘안의 옷’도 하나면 충분하다는 거야…?”

프시케는 지크의 두터운 가슴을 손으로 살짝 치며 얼굴을 붉혔다. 지크는 약간 소리 내어 웃은 뒤에 상가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지크는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대었다. 보고 싶지도 않은 메탈재킷들이 지명 수배자의 영상을 떠올린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어서였다. 수배자의 영상은 입체로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잘만 볼 수 있다면 금방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수배자 영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일만을 하고 있었다.

“쳇, 저 고철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자, 다른 곳에 가자구.”

그러나 프시케는 그렇지가 않았다. 메탈재킷은 처음 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메탈재킷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잠깐만요! 조금만 더 구경하고요, 와아… 신기하다 정말!”

이건 어린아이야 라는 생각이 지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놀러 나온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지크는 수배자의 영상을 올려다보았고, 그와 동시에 그는 큰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했다.

“풋! 와하하하하! 저, 저건 리오 녀석 아니야!?”

그의 말대로, 공중엔 리오의 입체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투 중에 찍은 영상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지크는 자신의 이런 활달한 웃음을 고치고 싶은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구경하고 있는 자신과 프시케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서였다. 기계음이 섞인 음성이 지크의 귀에 크게 들려왔다.

<이 녀석이 리오 스나이퍼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프시케 역시 구경하다 말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지크의 등 뒤로 숨어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메탈재킷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지크는 허리에 손을 가져갔으나 역시나 허전했다.

‘이런… 무명도를… 어쩔 수 없지 그럼.’

지크는 자신의 뒤에 있는 프시케의 손을 잡고서 자신의 앞쪽으로 돌려 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오른팔로 꽉 안은 채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 눈만 감고 있으면 빨리 끝날 거야, 알았지?”

프시케는 지크의 얼굴을 바라보고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안돼요! 이곳엔 사람들이 많잖아요!!”

지크는 한숨을 쉬며 프시케를 살짝 노려보았다.

“… 별말을 다 하는군, 난 그런 짓 안 하니까 안심하라구! 눈 뜨고 있어도 좋아!!”

지크가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메탈재킷들은 가슴 부위에 장착된 자동 조준 머신건을 꺼내어 지크에게 향하였다.

<10초의 여유를 주겠다! 어서 말 하던가, 아니면 즉결 처분을 받거나!>

지크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천천히 뻥긋거렸다. 그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던 메탈재킷 파일럿은 가만히 그의 입을 바라보다가 계기판을 내려치며 머신건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지크가 입을 뻥긋거린 말은 이런 것이었다.

<시끄러워 깡통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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