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128화


<5초가 남았다! 어서 손을 올리고 이쪽으로 와라!!!>

스피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고, 그 주위에 있던 행인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크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머신건의 유탄에 맞아 숨지는 시민들은 없을 테니까. 지크는 자동 조준 장치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은 은폐물이 없는 이상 이 자동 조준 장치를 피할 수가 없다. 끝까지 따라붙어서 쏘아대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서 인정사정도 없고 떨림도 없다. 그러나 완벽한 기계는 없는 법. 물체의 속도가 렌즈의 속도를 뛰어넘을 때 자동 조준 장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날 꽉 잡아 프시케.”

프시케는 지크의 말대로 그의 몸을 꽉 안았다. 굉장히 단단한 몸이라고 프시케는 느낄 수 있었다. 지크는 가만히 메탈재킷들을 바라보았다.

“4… 3… 2… 1… 온다!!!”

그와 동시에 메탈재킷의 머신건에선 불이 뿜어져 나왔고 지크와 프시케가 서있던 자리는 흙먼지가 일어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메탈재킷의 계기판을 적외선 모드로 바라보던 한 병사가 동료들에게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 녀석이 없어졌다!”

“꺄아아아악!!”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음파 탐지기에 여성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메탈재킷은 공중을 바라보았고, 탑승자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크는 당황하며 프시케에게 소리쳤다.

“이런! 그러길래 눈을 감으라고 했잖아!! 여기서 비명을 지르면 어떻해!!!”

프시케는 눈을 꼭 감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서워서 그런 것뿐이에요! 죄송해요!!”

마치 나는 듯, 지크와 프시케는 메탈재킷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었다. 물론 급격히 내려오는 중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보통 수준의 인간으로선 상상도 못 하는 점프력이었다. 지크는 메탈재킷에게 발견되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땅에 착지한 지크는 프시케를 주점 안에 밀어 넣으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프시케는 또다시 깜짝 놀라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시, 싫어요! 혼자 있는 건 싫단 말이에요!!”

지크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떠오른 그녀의 표정, 그것은 공포였다. 말투도 그러했다.

“기다리고 있어! 네가 있으면 어렵단 말이야!!”

“싫어요! 난 지크 씨랑 같이 있을 거라고요!”

프시케는 지크의 그런 말을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그의 재킷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공포증’이란 것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지크는 순간 미간을 찡그리며 프시케에게 소리쳤다.

“누군 혼자 싸우는 게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나도 외로운 건 질색이라구!!!”

프시케는 흠칫 놀라며 지크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영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크는 그녀가 재킷을 놓아주자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날 믿어… 꼭 돌아오니까.”

지크는 주점의 문을 닫고서 다가오는 메탈재킷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장갑을 당겨 조인 후에, 손을 꺾으며 씨익 웃었다.

“헤헷… 박살을 내 주마.”

지크는 천천히 자신의 기전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스파크가 그의 팔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그의 온몸을 감싸는 장면은 상대편으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까지 한다.

“하아아아아아!!”

메탈재킷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한 지크에게 메탈재킷들은 머신건을 이용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그중, 맨 앞에 있던 메탈재킷의 탑승자는 갑자기 지크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멍하니 계기판을 바라보았다.

콰아앙!!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앞의 메탈재킷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지크의 무릎차기가 정확히 먹힌 것이었다. 메탈재킷들은 당황하며 지크를 손으로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번개에 비할 수 있는 그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구동 모터를 가진 메탈재킷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업!!”

지크는 양손을 모아 깍지를 낀 후에 한 메탈재킷의 머리 부분을 힘껏 내리쳤다. 기계 부품이 사방으로 튀었고 지크의 그 공격에 의해 메인 카메라가 파손된 메탈재킷은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지크의 시선이 두 번째 메탈재킷에게 돌려지자, 표적이 된 메탈재킷은 왼팔의 실드를 펼쳐 지크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지크는 그대로 달려들어 실드에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가했다. 실드는 얇은 편이어서 쉽게 부서져 나갔고 지크는 실드가 박살 난 메탈재킷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처음의 앞차기 공격을 맞은 메탈재킷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고 지크는 같이 떠서 그 상태의 메탈재킷에게 두어 번 발차기를 먹였다. 마지막 일격으로 쳐 내려진 메탈재킷은 땅바닥에 처박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지크의 눈은 다음의 메탈재킷에게 돌려졌다. 그 모습을 본 메탈재킷의 탑승자는 움찔하며 자신이 어렸을 적에 들었던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레, 레브 울프…!?”

온몸에 번개를 휘감고서, 무리와는 동떨어져 홀로 먹이를 찾아 굶주려 헤매인다는 전설상의 늑대를 칭하는 말이었다. 다른 지방의 이름은 뇌랑(雷狼), 또는 혼자 다닌다고 해서 외로운 늑대라고도 불린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마지막 메탈재킷의 탑승자는 메탈재킷에 장착된 비상 부스터를 백팩에서 꺼내었다. 짧기는 하지만 메탈재킷을 날 수 있게 만든 장치였다. 특수 기갑 부대용의 메탈재킷에는 공중 요새의 것과 비슷한 반중력 엔진이 장착되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거대한 불꽃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메탈재킷을 그냥 놔둘 지크는 아니었다.

“어딜 도망가나!!”

메탈재킷이 5초 정도 빨리 떠오를 수 있었다면 지크에게 잡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올라가던 메탈재킷의 탑승자는 기체가 한번 크게 흔들리자 흠칫 놀라며 계기판을 바라보았다. 이상 물체가 백팩의 위쪽에 붙어있다는 경고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헤헷, 이것만 없으면 날지 못하겠지?”

지크는 그 말과 동시에 메탈재킷의 백팩을 강하게 내리쳤다. 백팩이 떨어져 나가며 메탈재킷은 곧바로 지상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탑승자는 혼비백산하며 해치를 열고 기본적으로 장착된 낙하산을 이용하여 기체에서 탈출하였다. 적당한 거리에서 뛰어내린 지크는 공중제비를 몇 번 돈 뒤에 가볍게 착지했고, 메탈재킷은 폭음과 함께 광장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조각이 났다.

“후우, 상쾌한데?”

지크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몸에 흐르던 기전력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멍하니 지크를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이 메탈재킷 세 대를 쓰러뜨린다는 사실은 보고도 믿기 힘든 것이었다. 지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살짝 주점으로 달려가 프시케를 찾기 시작했다. 주점의 문 앞에 가까이 가자 프시케가 먼저 문에서 나와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어엇, 프시케…!?”

프시케는 지크를 안고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크는 당황한 듯 그녀를 끌다시피 하며 사람들 사이를 피해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지크 씨….”

지크에게 이끌려 숙소로 향하던 프시케가 숙소 근처에 와서 입을 열자 지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왜?”

“… 당신의 과거,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볼 수 있었어요. 죄송해요….”

프시케는 고개를 숙이고서 말을 계속했다. 지크는 아차 하며 흥분 때문에 방어 능력을 흐릿하게 쓴 자신을 속으로 질책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의 얘기를 계속 듣기 시작했다.

“… 과거라고는 하지만 자세한 것은 읽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지크 씨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 수 있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안 계셨고, 성인이 될 때까지, 성인이 돼서 지금까지 당신은 싸워왔었지요. 자신에 대한 건 생각하지 않고, 자신 주위의 사람들이 미소 짓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좋아서 강해지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그러나…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었군요.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주지, 알지 못했고요. 당신의 감정 대부분은 고독, 그리고 슬픔….”

지크의 얼굴에 언제나 흐르던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식은땀까지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까지 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였다.

“그, 그만해! 어째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주는 거지…?”

지크의 질문에 프시케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크가 가장 싫어하는… 슬픈 웃음이었다.

“… 저랑 비슷하니까요, 당신은….”

지크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이 과연 사람일까 하는 의심이 들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현재의 프시케는 인간 이상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를 신전의 얼음 안에서 꺼내올 때처럼… 그야말로 여신과 같은 분위기였다. 지크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서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핫! 농담하지 말라구. 자, 추운데 서서 뭐하는 거야. 어서 돌아가자구, 일행이 기다리니까 말이야.”

프시케는 지크의 행동이 예전과 같이 진지하지 않자, 그녀도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헤헷, 미안해요 지크 씨, 저도 농담이었어요. 제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읽을 수가 있겠어요. 자, 돌아가요 지크.”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숙소로 다시 향했다. 지크는 솔직히,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잊고만 싶었다. 생각해봤자 미소만 사라지는 일이어서 그러기도 했고, 그녀가 말한 것이 너무나도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지크 일행은 도시를 출발하기 위해 여관을 나섰다. 클루토는 일행의 앞에 가고 있는 지크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저기… 프시케 누나는 어디 갔어요?”

“아, 옷 좀 더 사가지고 온다고, 먼저 가라고 했어. 천천히 가면 돼.”

클루토는 다시 리카의 옆으로 돌아갔고, 세레나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듯, 계속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저어… 지크 씨. 잠깐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아,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어요. 이러다간 리오 녀석을 따라잡지 못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냥 가요 수녀 누님.”

가볍게 대답한 지크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세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걸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