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29화
6장 [여신교]
프시케는 옷가지를 몇 개 더 산 뒤에 일행이 간쪽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아침에 주부들이 장을 볼 시간이 되어서인지, 사람들과 꽤 많이 부딪히는 그녀였다. 어깨를 쓰다듬으며 상가를 빠져나왔을 때, 그녀는 다시 한번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고, 프시케는 그만 뒤로 쓰러졌다.
“아얏!”
“오, 이런….”
프시케와 부딪힌 사람은 키가 매우 큰 청년이었다. 두꺼운 헝겊 망토에, 붉은 장발을 위로 묶어 내린, 그런대로 잘생긴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청년은 미안하다는 행동을 취하며 프시케를 일으켜 세워 주었고, 프시케는 옷을 털며 가볍게 일어섰다.
“다친 곳은 없어요?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되었군요 아가씨.”
지크보다는 정중한 말투여서 프시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괜찮아요. 전 급한 볼일이 있어서 이만….”
프시케는 사나이에게 대충 인사를 한 뒤에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며 어디론가 사라져갔고, 청년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았다.
“흠흠… 파란 머리라, 그리 흔치는 않은 머리색인데….”
리오는 자신과 부딪힌 여성의 뒤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후, 다시 일행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인파 덕분에 꽤나 떨어진 듯했다.
“여기 가만히 있는 게 좋겠지. 괜히 돌아다녀서 일만 불리면 안 되니까.”
리오는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곳에선 이 방법이 사람 찾기엔 더 좋은 방법이었다. 게다가 붉은 머리라 눈에도 잘 띄는 편이어서 문제는 별로 없었다. 일행을 찾는 것은 리오 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스와 히렌, 메이린도 마찬가지로 애를 태우고 있었다. 히렌은 짜증을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메이린과 크리스도 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리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계속 찾기 지쳤는지, 히렌과 메이린은 도중에 주저앉았고, 크리스도 약간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어 보였다. 숨을 내쉬는 그녀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내뿜어졌다.
“하아…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히렌, 메이린. 내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올 테니,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줄래?”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여자도 아니고 크리스이니 건달들에게 당할 염려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크리스가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고, 둘은 턱을 괴고 배낭 위에 걸터앉았다.
“… 메이린, 리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메이린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히렌에게 되물었다.
“어머? 그건 왜 물어?”
“왜 묻긴, 너도 내 생각과 비슷할 거 아니야…. 저 정도로 강한 사람이 방랑 생활을 할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메이린은 히렌의 말을 듣고서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히렌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호훗… 난 조금은 알 것 같아. 하지만, 히렌에겐 비밀이야.”
단호한 그녀의 말에, 히렌은 마음대로 하라는 행동을 취하였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던 그들의 뒤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사내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거기 꼬마 두 명!! 감히 대 사제님의 길을 가로막는 거냐!!!”
둘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네 명의 거한에게 둘러싸인 사제 한 명이 싸늘한 눈초리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메이린은 히렌과 배낭을 끌며 비키자고 했으나, 히렌은 자존심이 상한 듯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봐요! 당신들이 뭔데 남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겁니까? 저기 가운데에 있는 아저씨가 여신교 교황이라도 되는 거예요?”
거한들은 히렌의 당돌한 말을 듣고서 화가 난 듯 사제 대신에 히렌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사제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감히 사제인 나에게 말을 하다니… 용서받지 못할 녀석. 그러나 여신은 자비로운 분이시지. 그 자비로 너를 용서해 주마… 후후후후…!”
그가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자, 히렌을 싸고 있던 거한들의 주먹이 일제히 히렌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메이린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꼼짝도 못한 채 그 광경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파아악!!
인체가 무언가에 가격당하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고, 동시에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광경을 본 사제의 핏기 없는 얼굴은 더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칫, 덩치만 큰 것들이… 어라? 그건 그렇고 어디서 나하고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저 아저씨.”
거구 한 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붉은 윗옷의 청년이 씨익 웃으며 사제를 바라보았고, 거한들은 히렌의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청년에게서 조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당신은…!?”
히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 청년을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청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훗,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야, 상관할 건 없어.”
사제는 그 청년이 손을 꺾으며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거한들에게 명령해 쓰러진 사람을 데리고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청년은 말없이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재미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젠장, 저 녀석들 운이 좋았군. 아, 그건 그렇고 꼬마야, 파란색 머리를 한 예쁜 누나를 본 적 없니?”
히렌은 그 청년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청년은 알았다는 듯 끄덕이고는 일행인 듯한 세 명에게 돌아갔다. 히렌은 일행이 있는 장소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굉장히 떨어져 있는 지점이었는데, 그 시간 안에 자신의 앞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서였다. 메이린도 역시 놀란 듯 히렌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둘은 입을 모아 말했다.
“리오에 버금가는 사람도 있긴 있었네…?”
잠시 후, 리오를 찾은 크리스가 둘에게 달려왔고, 둘은 크리스를 따라 리오에게로 향했다. 크리스의 안내로 간 곳에는 팔짱을 낀 채 비석처럼 서있는 리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오는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그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리오를 보는 일행의 눈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듯이 보였다.
“리오 씨, 갑자기 그렇게 빨리 가면 어떻게요, 찾느라고 고생했다고요.”
크리스보다, 히렌과 메이린이 더욱더 화를 내면서 리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리오로선 의아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고요! 여신교 교도들이 시비를 걸어왔다고요!”
“다행히 어떤 사람이 구해줘서 무사할 수 있었어요. 그치만, 무서웠단 말이에요.”
리오는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서 두 소년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일행은 곧바로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고, 언제나처럼 방 두 개에 나누어서 자기로 했다. 날이 거의 저물고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할 무렵, 리오는 다시 여관을 빠져나와 근처의 주점으로 향하였다.
“후우… 여신교라.”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리오가 들어선 주점의 안은 생각보다 깔끔한 편이었으며, 손님도 꽤 많은 편이었다. 리오는 보통대로 카운터에 앉아 우유를 주문하며 주점 주인에게 슬쩍 물었다.
“저기… 주인장.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콧수염을 길게 기른 주점의 주인은 술잔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여신교에 관해서 아시는 것 있습니까?”
주인의 얼굴은 그 질문을 듣자마자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는 주위의 손님들을 한번 둘러본 후에 몸을 리오에게 숙이고 그에게 속삭였다.
“손님, 작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교도들이 만약 듣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리오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주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기 시작했다.
“함부로 말씀드릴 순 없겠습니다만, 간단히는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해 주십시오.”
주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닦고 있던 술잔을 똑바로 테이블에 놓아두었다. 리오는 그 술잔을 슬쩍 본 뒤에 오른손으로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있는 동전들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여신교란, 이 제국 내에서 두 번째 세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 종교 단체랍니다. 괴수들과 마음을 통할 수 있다는 ‘여신’이란 존재를 섬기고 있지요. 하지만, 규모에 비해 사람들은 그리 좋아하고 있진 않습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아있던 우유를 모두 비웠다. 주인은 얘기를 계속했다.
“여신교의 잔인한 의식 때문에 그렇다는 소문도 있고, 반강제적인 헌금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들려와도 정부에선 묵묵부답일 뿐이지요. 함부로 건들면 위험한 존재로까지 성장한 종교이니까요.”
리오는 잔을 앞으로 밀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호오, 정말 잘 아시는군요. 역시 주점 주인분들은 아시는 게 많아서 좋습니다.”
주인도 웃으며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하하… 별말씀을. 그런데, 손님께서는 왜 여신교에 대해서 아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 예… 그건 말이죠, 여신교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주인의 안색은 다시 한번 변했고, 그는 리오에게 되물었다.
“마음에 안 드신다면…?”
리오는 씨익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훗… 박살 내 버려야죠.”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오른손에 들려있던 수건을 위로 치켜 올렸고, 그와 동시에 리오의 뒤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리오를 포위했다. 주위에서 술을 마시던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선 사람들이 들고 있는 검을 보고 기겁을 하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주인은 뒤로 돌아서며 나지막이 말했다.
“위험 인물이다, 없애버려…!”
그와 동시에 흉기를 지닌 사람들은 모조리 리오에게 달려들었고, 곧 꺼림칙한 소리와 함께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