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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30화


주점의 주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히, 히이익…!?”

주인은 돌아보자마자 신음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고, 의자에 앉아있던 리오는 씨익 웃으며 주인의 얼굴을 오른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어, 어떻게 저 녀석들을 다 쓰러뜨릴 수가 있지!?”

주인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리오는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칼을 잡고 있던 그들의 손등엔 리오가 거스름돈으로 주인에게 받았던 동전들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운이 좋군, 거스름돈을 동전으로 받지 않았다면 이 녀석들은 목숨이 날아갔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나하고 얘기 좀 해야 하겠어, 아저씨.”

리오에게 얼굴을 잡힌 주인은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알았다는 말을 했다.

“여신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그냥 물은 것뿐인데 사람을 난도질하려고 들다니 말이야.”

“저, 전 이 도시 추기경님의 부탁을 받고 이런 것입니다! 여신교에 대해 당신처럼 묻는 사람이 있다면 상황을 봐서 없애버리라고요…! 크아악!!”

리오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주인은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냈다. 리오는 정색을 하며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 추기경이라… 그 녀석은 어디에 살고 있나?”

“이, 이 도시 중앙에 있는 대성당에 계십니다! 그, 그리고 잘못했으니 제발 놔주세요…!!”

리오는 피식 웃으며 손에 힘을 뺐고, 주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리오는 쓰러진 사람들을 이리저리 비켜 주점에서 빠져나갔다.

“상처의 치료비는 손등에 박혀있는 걸 빼서 써라, 그것도 돈이니까 말이야. 후훗… 그럼 몸보신 잘 하도록.”

주점에서 빠져나간 리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주인이 말한 대성당이라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도 늦지 않았고, 빨리 처리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가는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대성당은 그 도시 안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리오는 감탄의 휘파람을 휘익 불고서 정문 앞으로 향했다. 정문은 거한 두 명이 굳게 지키고 있었다. 리오는 가만히 그들에게 접근해 들어갔고, 두 거한은 리오를 막아서며 신분을 확인하려 들었다.

“이봐, 이곳엔 무슨 용건인가?”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글쎄, 추기경을 만나러 왔다면 들여보내 줄 텐가?”

거한들은 리오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에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그를 강하게 밀어냈다.

“꺼져라 애송이, 그런 꾀죄죄한 몰골로 감히 추기경님을 뵙겠다고? 웃기지 말고 없어져버려! 신분증을 봐서 높으신 분이라면 모르지만 말이야….”

“어, 신분증? 그것만 보여주면 들어갈 수 있다 이건가? 좋아, 보여줄 테니 잠깐 이리로 와봐.”

리오는 두 거한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거한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리오에게 접근하였고, 리오는 자신의 망토 안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어, 여기 있었는데… 아, 여기 있군! 잘 보라고….”

리오가 찾았다는 듯 펼친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질 않았다. 거한들의 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리오는 양 손바닥으로 거한들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이 신분증이면 다 통과할 수 있지… 잠깐 자라!”

그와 동시에 리오의 양손에선 푸른색의 기가 순간적으로 분출되었고, 기에 의한 충격을 뇌에 받은 두 거한은 얌전히 바닥에 쓰러졌다. 성당의 안으로 들어서려던 리오는 성당의 정문이 열리자 근처의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어서 나온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뭐야 저건…?”

베레모를 쓰고 있는 제국군 병사 몇 명과, 그들에 의해 둘러싸여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갑옷 차림의 남자,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긴 수염의 노인이었다. 그들은 몇 차례 악수를 나눈 후에 헤어졌고, 제국군들은 성당의 뒤로 돌아가 그들이 타고 온 듯한 비행선을 이용해 서쪽 하늘로 사라져갔다.

“… 간단히 끝날 일은 아닌 것 같군….”

리오는 중얼거리며 나무에서 나와 정문을 열어 젖혔다. 안은 예배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텅 비어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제단 근처에 몇 명의 수녀들과 아까전의 노인이 서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리오가 성당 안에 들어오자 약간 경계하는 듯하면서 리오에게 인사를 했다. 리오도 목례로 답한 후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형제여, 이곳에선 처음 뵙는 분인데 용건이라도…?”

노인의 예의 바른 질문에 리오도 공손히 대답했다.

“아, 예… 이곳 성당에 계시다는 추기경님을 뵈러 왔습니다만….”

노인은 리오의 대답을 듣고서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잘 오셨군요. 제가 바로 이곳의 추기경입니다. 제게 볼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리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하… 이거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볼일은 별거 아니고요, 주점에서 여신교의 일을 물었더니 그곳 주인과 손님들이 저에게 조금 거칠게 대하더군요. 그래서 이유를 좀 여쭙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리오의 말을 들은 추기경과 수녀들은 흠칫 놀라며 리오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얼굴을 펴며 추기경은 입을 열었다.

“아…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저희 신도들이 실수를 저질렀군요. 제가 대신 용서를 빌지요.”

리오는 고개를 몇 번 가로저은 후에 씨익 웃었다.

“정확한 대답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추기경님… 당신이 부탁했다고 자백했어요.”

리오의 말을 들은 추기경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 후에 크게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후… 하하하하!! 보통의 떠돌이는 아닌 것 같군, 하지만 이렇게 깊숙이 파고들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인물 같은데… 기억은 안 나지만 말이야. 어쨌든, 넌 살아서 이곳을 나서지 못할 것이다.”

파악!!

순간, 리오는 왼발로 옆에 있던 수녀를 차올렸고, 수녀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단도가 들려져 있었다.

“그런 건 예상하고 들어왔지, 난 당신에게 더 자세한 얘기를 들으러 이곳에 왔다. 더 이상 날 자극시키면 이 성당을 이 도시에서 제일 작은 건물로 만들어 줄 거야.”

추기경은 눈을 부릅뜨면서 수녀들에게 신호를 보내었고, 단도를 빼어 든 수녀들은 빠르게 리오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수들과도 같았다.

“가랏!”

추기경의 외침과 동시에 수녀들은 리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고, 리오는 자신의 가슴에 매어져 있는 칼집 끈을 풀고 디바이너를 칼집째 휘두르기 시작했다. 칼집 덕분에 베어질 염려가 없는 수녀들은 순식간에 성당 바닥을 메워나갔고, 몇 분 지나서 성당 안에 제대로 서있는 사람은 둘로 줄어 있었다. 추기경은 식은땀을 흘리며 꼼짝도 하지 못했고, 리오는 칼집의 끈을 다시 묶고서 검을 꺼내어 추기경의 목에 대었다.

“당신마저 덤벼들었으면 볼만했을 거야, 훗. 자자, 여신교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자구.”

추기경은 벌벌 떨며 무언가 기억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네가 바로 동쪽에서부터 수십 대의 메탈재킷들을 박살내며 돌아다닌다는 괴물 녀석이구나! 그래, 이름도 기억이 나는군, 리오 스나이퍼라고 했지…?”

리오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쳇, 벌써 그렇게 유명인이 되었나…?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디바이너의 날이 목에 바짝 붙자, 추기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알았다. 그러나,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아, 난 교황님의 명을 받아 이행하는 것뿐이야.”

“교황? 교황도 있나?”

추기경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훗, 제국의 두 번째 세력인데 교황이라 모셔도 이상할 건 없지. 교황님만이 여신을 직접 ‘얼음의 성전’에서 뵐 수 있고, 그분만이 여신과 대화할 수 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여신이라는 건 실제로 존재한다 이 말인가?”

“그렇다, 그분은 비록 영구 빙정 안에 계시긴 하지만, 우리 신도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의 생물을 비롯한, 이계의 생물들과도 대화할 수 있으신 분이시다, 그에 따라 그들을 부를 수도 있고, 조종도 할 수 있으시지. 마치 애완동물처럼 말이다. 그에 의해서 그분의 힘은 강대하시고….”

리오는 검을 거두며 추기경의 복부를 가격해 그의 입을 막았다. 리오는 한숨을 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살아서 존재하는 여신이라… 그런 건 들은 적이 없는데? 어쨌든, 제국 이상으로 위험한 녀석들이군.”

그때,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상황도 보지 않은 채 안에다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약간 두꺼운 사제복을 입고 있는 사나이였다.

“추기경님! 큰일입니다, 여신이 납치되었습… 니다?”

사제는 리오 혼자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말끝을 흐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리오는 고개를 흔들며 그에게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고, 사제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리오에게 걸어왔다.

“오호… 이 세상은 여신도 납치당하는 세상인가 보지? 그 여신은 누가 납치했나?”

사제는 리오의 기에 질린 듯 순순히 대답했다. 자신이 놀랄 정도로….

“그, 그건 잘 모릅니다만, 그 녀석이 영구 빙정을 녹이고서 여신을 데리고 얼음의 성전을 빠져나갔습니다. 전 추기경에게 그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온 것이고….”

리오는 사제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만 하라는 말을 했다.

“알았다고, 추기경님은 잠시 후에 수녀들과 함께 일어나실 테니, 기다려 봐. 그리고 일어나시면 난 다른 도시로 출발했다고 전해줘.”

사제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리오는 가볍게 성당을 빠져나갔다. 밖엔 어느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래…? 그럼 성전인가 뭔가는 갈 필요가 없겠군. 오히려 잘되었어….”

그러나 리오는 그렇게 말하고도, 얼음 안에 있었다는 ‘여신’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빠져나갔다는 부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빠져나가지 않는 한 그럴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리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지식 안에선 말이다.

“… 부딪혀보면 알겠지 뭐, 어서 돌아가자.”

리오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여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뒤를 바라보는 한 사나이의 기척을 읽지 못한 채….

“후후후훗… 잘 하는구나 리오. 더욱더 빠져들어라… 후후후후후….”

큰 모자를 눌러 쓰고 있는 그 사나이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내리는 눈 사이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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