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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31화


여관에 돌아온 리오는 자신과 히렌이 쓸 방에 들어가 침대에 그대로 엎드렸다. 세면장에서 나온 히렌은 리오가 침대에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리, 리오, 무슨 일 있었어요?”

리오는 침대에 엎드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음… 아니야, 그냥 피곤할 뿐이야. 이대로 잠시만 있게 해줘라.”

“알았어요, 전 크리스 누나가 있는 방으로 가 있을게요.”

히렌은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서 여관방을 빠져나갔다. 리오는 한숨을 쉬며 아까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제국군과… 여신교라…. 지크나 슈렌 둘 중에 하나가 없다면 꽤 힘들 것 같은데….’

게다가 제국엔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인 바이론이 있다. 그만을 상대하기도 힘든데 제국의 상상을 뛰어넘는 과학력과 여신이라는 존재가 사용한다는 ‘힘’까지… 분명 리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것들뿐이라면 고민도 안 하지….’

타르자와 요우시크, 그들을 포함한 아직 살아있는 육마왕들과 리오의 최종 목표인 마황제 가스트란. 일은 한층 더 복잡해진 상태였다. 리오는 돌아누우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 에이, 오늘은 잠이나 자자. 나라도 잠은 자야 하니까….”

그는 누운 채로 망토와 검을 벗어 던지며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히렌이 방에 들어온 것조차 모를 정도로 잠에 빠져든 그였다.


황제는 자신이 즐겨 마시는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키며 앞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안엔 붉은색의 옷을 입고 있는 마녀, 타르자의 모습이 떠올려져 있었다.

“… 그래? 메탈재킷 말고 또 다른 마법 병기를 만들었다 이건가? 이번엔 무엇인지 궁금하군 그래.”

타르자는 미소를 띠우며 자신의 뒤에 있는 신병기를 황제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황제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뭐, 뭐야 그게! 그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타르자는 다시 병기를 가리며 황제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폐하. 어차피 보통 인간의 힘으론 가즈 나이트를 이기진 못합니다. 하지만, 이 병기를 사용한다면 그를 충분히 능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한 명이 빠진 게 아쉽긴 하지만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군요.”

타르자의 설명을 들은 황제는 술기운에 의해서인지 미소를 띠우며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 하하하! 과연 육마왕 최고의 마녀 타르자 답군. 역시 네가 마지막에 갈 곳은 지옥밖에 없을 거다. 하하하하하!!”

타르자 역시 미소를 띠우며 그에게 답례했다.

“호호홋…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그건 그렇고, ‘사냥’ 계획은 잘 되어가십니까?”

황제는 위스키를 다시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이제 그 녀석만 끌어들이면 문제가 없어, 오늘 보고에 의하면 교황 녀석도 여신을 찾으면 바로 동참한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이제, 모든 것이 내 손안에 들어올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내 계획도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된다…!!”

타르자는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경의를 표했다.

“예에… 당신의 계획이 성공하길 진심으로 빕니다. 그럼, 병기가 완성되었을 때 다시 뵙지요.”

곧 모니터는 흰색으로 바뀌어졌고, 황제는 손수 모니터를 끄며 남은 위스키를 비웠다.

“후후후… 지금은 잘 자고 있겠지, 리오 스나이퍼… 곧 영원히 잠을 자게 해 주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잠을 충분히 잔 듯, 리오의 의식은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막 눈을 뜨려고 할 무렵, 자신의 얼굴 가까이에 무언가 따뜻한 것이 접근하는 것을 리오는 느낄 수 있었다.

‘히렌 이 녀석, 잠버릇 한번 고약하군. 남의 얼굴 가까이에 뭘 대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 리오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목에 가느다란 무언가가 부드럽게 내려오고, 이상 야릇한 향기가 그의 후각을 자극하자 그는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크, 크리스!?”

눈을 뜨자마자 리오의 눈에 보인 것은 그의 후각이 느낀 대로 크리스였다. 그녀도 리오가 소리치며 일어서자 깜짝 놀라며 몸을 세웠다.

“뭐, 뭐했어요 크리스!?”

크리스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지 못했다. 리오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크리스는 너무 적극적이네요, 후훗….”

크리스는 고개를 더더욱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단지… 리오 씨를 깨우려고….”

리오는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벽의 시계를 보니 오랫동안 늦잠을 잔 것이 확실했다.

“알았어요, 깨워줘서 고마워요 크리스. 전 세수나 할게요.”

리오가 머리를 풀며 세면장으로 향하자, 크리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온 리오는 머리를 푼 상태여서 식사 중이었던 메이린과 히렌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메이린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와아! 머리를 풀어도 멋있네요! 풀고 다니는 건 어때요 리오?”

그녀의 건의사항에, 리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훗…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구나. 머리를 묶는 건 내 업보라서 말이야…. 가끔씩 보는 걸로 만족해 줄래?”

메이린은 잠깐 스쳐 지나간 리오의 그늘진 표정을 보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히렌은 또다시 툴툴거리며 빵을 거칠게 집어 들었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젠 어디로 갈 거예요 리오?”

히렌의 질문에 리오는 씹던 빵을 삼킨 후에 대답해 주었다.

“으음, 물어본 바로는 이제 대도시 한 개만 더 지나가면 수도라고 하는구나. 제일 가까운 곳 먼저 가야지 뭐. 내일 출발하자.”

식사를 대충 끝낸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휴식을 취하였다. 리오로선 이 도시의 추기경을 쓰러뜨린 이상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어제와 같은 무서운 수녀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 눈에 선하였다. 영문도 모르는 히렌은 리오를 흔들며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네?”

하지만, 15세가 된 소년이 리오에게 배울만한 검술은 간단한 베기와 휘두르기, 찌르기 기술뿐이었다. 단련이 많이 되지 않은 히렌의 몸으론 리오의 고난도 기술을 전수 받는다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리오는 살짝 인상을 쓰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런… 그럼, 네 검을 잡고 자신이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해봐. 다른 사람의 흉내는 내지 말고 말이야.”

히렌은 검술을 가르침 받는다는 기쁨에 편한 마음으로 자세를 취하였다. 그의 자세를 가만히 쳐다본 리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이런… 그런 자세론 검을 사용할 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구. 손부터 틀렸어.”

리오는 히렌의 자세를 처음부터 교정해주며 그의 체형에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 주었다. 히렌은 약간 까다롭다고 느꼈으나 리오가 교정해준 자세로 계속 검을 휘두르다 보니 전보다 체력의 소모도 적고 힘이 확실히 들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몇 시간뿐이었지만 리오의 교습은 효과가 있었다.

“좋아, 자세는 외우도록 노력해 보고, 검술을 약간 가르쳐 주지.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라.”

확실히, 방 안에서 기술을 배운다는 건 한계가 있었다. 리오도 어쩔 수 없이 말뿐이었고, 히렌은 머릿속에 상상해서 기술을 익히는 수 외엔 방도가 없었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교습은 계속되었고, 히렌은 결국 녹초가 된 상태에서 밤을 지내야만 했다.


“하아….”

크리스는 잠을 청하려는 듯, 침대에 누워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메이린은 아까 전부터 잠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똑똑.

“… 음? 누구지?”

크리스는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옷을 입으며 문을 살짝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였다. 문틈 사이로 리오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이자 크리스는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어머, 리오가 웬일이에요? 밤에 제 방을 다 찾아오시고…?”

리오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아주세요.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으니까요.”

크리스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탁자를 사이에 놓고서 대화를 시작하였다.

“저어… 제국의 과학력에 대해서 좀 말해주실 수 있어요?”

크리스는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으음… 선대 황제께서 승하하시기 전까지는 다른 왕국들과 별다를 것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현재의 황제께서 등극하신 후부터 제국의 과학력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지요.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서 저도 확실히는 모르지만요. 제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첫 번째 공중 요새인 우르즈 로하가스가 완성된 것을 시작으로 몇 개의 공중 요새가 더 만들어졌고, 최고의 대인 병기라 불리우는 메탈재킷도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왜 갑자기 그런 것들이 개발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아는 것은 그것들을 설계하고 견본을 제작한 것이 그 옛날부터 살아왔다는 타르자란 마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요우시크란 괴 검사도 그렇고요.”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수수께끼가 약간은 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하긴, 그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지요. 그들은 현재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그건… 황제 폐하만이 알고 계세요. 다른 오마 장군들도 알지 못합니다.”

리오는 머리를 숙이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잠시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있자 크리스가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저어… 리오는 어째서 황제 폐하를 만나려고 하는 거죠?”

그 질문에 고개를 든 리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머니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그의 손에 들려서 나온 것은 투명한 에메랄드 조각이었다.

“이것 때문이죠. 이 조각이 다시 비단 드레스 조각으로 변할 때까지 전 싸울 겁니다. 그 싸움의 마지막이 제국 수도가 되지 않을까 해서지요. 그것뿐입니다.”

크리스는 리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그가 분명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 드레스의 주인은 여자… 인가요?”


리오는 크리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침을 꿀꺽 삼켰다. 크리스는 리오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드러나자 고개를 숙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 그렇군요, 제가 괜한 걸 물어봤네요 리오.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리스에게 저녁 인사를 했다.

“으음… 그만 가볼게요 크리스. 실례만 끼치고 가는군요.”

크리스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고, 리오는 내심 미안해하며 방을 나섰다. 리오가 나가자, 크리스는 방의 불을 끄고 조용히 자고 있는 메이린의 옆에 누웠다.

“… 나도 드레스를 입을 수 있을까…?”

이렇게 중얼거린 크리스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에겐 그리 좋은 저녁은 아닌 것만 같았다.

6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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