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14화


“저 녀석 오늘은 최상의 상태로 대전하려고 한다구.”

슈는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드러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데 무슨 최상의 상태란 말인가?

“무슨 소린지는 싸워보면 알아. 아, 그리고 충고 한 가지 더 해줄까?”

“뭔데요?”

“저 녀석의 전투 방식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해가 갈 거야. 뭐냐면은…”

리오의 검술은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휘두르는 속도와 파워가 상상을 초월하고 막아낸다 하더라도 검이나 방패가 밀려나가기 때문에 반격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만약에 검을 피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가 검에 실린 만큼 헛쳤을 때의 딜레이란 엄청난 것이었다. 바이칼이 충고해주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 알 것 같군요. 그가 싸우는 것을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이란 전제가 성립되는 거야 아가씨.”

“흠… 어렵군요…”

그때 다른 출전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슐턴과 헤리온이었다.

“어, 먼저 와있었군.”

“늦었군요 둘 다.”

슈에게 인사를 받은 슐턴은 의자에 누워 있는 리오와 그 옆에 앉아 있는 바이칼을 의식했다.

“리오란 녀석과… 또 누구지?”

바이칼은 슐턴의 건방진 말투에 눈을 잠시 부릅떴으나 다시 눈을 감으며 슐턴이 들으라는 듯 적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스 왕이 늙긴 늙었구만, 입이 더러운 놈을 장군으로 뽑아놓다니.”

슐턴은 꿈틀하며 바이칼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바이칼이 먼저 그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슐턴의 입에서 으윽하는 신음 소리가 났다.

“내 이름은 바이칼 레비턴스, 아마도 너란 놈이 슐턴인가 하는 호장 같은데, 맞지?”

슐턴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이 자식…!”

바이칼은 슐턴의 손목을 놔주고 팔짱을 다시 꼈다. 슐턴은 손목을 어루만지며 바이칼을 노려보았다.

“너와는 8회전에서 붙을 것 같군. 지금 손목을 부러뜨릴 수 있었지만 관중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는 게 한이다.”

이어서 들어오던 클루토와 리카는 대기실에 펼쳐진 긴장감에 잠시 주춤했다.

“아… 안녕하세요?”


정오가 되자 투기장은 관중으로 꽉 차서 입추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전에 거리에서 펼쳐진 퍼레이드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들이었고, 금년의 경기에는 호장들까지 참가한다는 것에 사람들은 더더욱 흥분해 있었다. 거의 환상적이라 일컬어지는 호장들의 솜씨를 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였다.

한 명의 대신관이 거대한 경기장의 중앙에 들어서서 커다란 호른을 한 번 불었다. 그러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경기장 특별석을 바라보았다. 말스 3세와 레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왕의 예상보다 건강한 모습과 레나의 아름다움에 관중들은 예전보다 더 박수 소리를 높여서 왕에게 인사를 하였다. 왕은 팔을 높이 치켜들고 그들에게 답례를 하였다. 레나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며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대신관이 다시 한 번 호른을 불자 관중석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경기장 한쪽 벽에 마련된 검은색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의 어둠을 뚫고 여덟 명의 사람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열렬한 함성을 그들에게 보내왔고 참가자들 중 호장 네 명만이 그들에게 답례를 하였다.

리카와 클루토는 이렇게 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서는 것이 처음이었다. 사실 그들 자신도 본선에 진출할 것은 상상만 하고 있던 터라 더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들이 본선에 간단하게 진출한 것은 호장들의 덕(?)도 있었다. 약한 자들과는 대전하기 싫다는 호장들의 부탁에 따라 웬만큼 강하게 보이는 출전자들은 모조리 다른 조로 분산이 된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리카가 알게 되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지만 이미 경기는 시작된 것이었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곧바로 제1경기가 시작되었다. 리오와 슈를 남기고 다른 출전자들은 경기장 외곽에 위치된 의자에 앉았다. 리오는 가볍게 팔을 돌리며 위치에 들어섰고 슈는 양손을 깍지 낀 후 앞으로 힘껏 밀어보였다. 관절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대신관은 규칙을 설명해주었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되면 장외패이고, 비신사적인 행동은 나중에 판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 등, 간단한 것이었다. 말을 마친 대신관은 호른을 힘껏 불어서 경기의 시작을 알리었다.

“잘 부탁해요, 리오씨.”

슈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아보였다. 리오는 생각보다 귀여운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요 귀여운 아가씨.”

리오는 특유의 미소를 띄우면서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잠깐 특별석을 바라보았다.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레나의 얼굴이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역시 어울려요 레나 공주님.’

생각을 마친 리오는 힘차게 검을 뽑아들고 자세를 취하였다. 자색의 검날을 가진 디바이너가 강렬한 햇빛을 받아 더더욱 살기를 띄고 있었다.

슈는 등에 장비한 중형 나이프 두 자루 중 한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매우 기동성 있게 보이는 준비 자세였다.

“핫!!”

슈는 빠르게 리오의 옆쪽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상상 외로 빠른 스피드에 리오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뒤로 빠르게 물러서며 공격을 회피했다. 그러나 슈의 공격법은 돌격만이 아니었다. 나이프를 잡지 않은 왼손을 펼친 후 리오 쪽을 향해 공기를 밀쳐냈다.

“허억!”

리오의 옆구리에 강한 통증이 왔다. 기합포(氣合砲)를 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리오였다.

`방심했군! 하지만!’

리오는 재빠르게 슈가 있는 쪽으로 돌격했다. 키에 비하여 빠른 스피드라고 슈는 생각했다. 리오가 기합성과 함께 무서운 스피드로 검을 휘둘렀다. 슈의 머리카락이 스치지도 않았는데 공중에 휘날렸다. 겨우 몸을 피한 슈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걸 정면으로 맞는다면…’

재차 리오의 공격이 날아오자 슈는 살짝 몸을 돌려 오른발 돌려차기로 그의 공격을 되받아쳤다. 리오는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한 후 검을 다시 휘둘러 슈를 공격했다.

“아앗!!”

예상치 못했던 반격 스피드에 슈는 나이프를 꺼낸 후 양손으로 리오의 공격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힘에 밀리어 손바닥이 얼얼했다. 장검같이 충격을 검날에서 완화시킬 수 없는 중형 나이프였기에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는 여러 번 이 나이프로 오르만의 도끼창 공격을 거뜬히 받아내었다. 나이프 자체가 드워프가 만들어준 무기 예술품이었기에 쉽게 충격을 완화시켜준 것이었다. 하지만 리오의 공격은 충격이 그대로 오는 것 같았다. 슐턴이 식은땀까지 흘린 이유를 슈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살살 좀 해요! 아프잖아요!”

리오는 잠시 공격을 멈추고 아연실색했다. 살살하라니…

슈는 손바닥을 잠시 어루만진 후 다시 나이프를 잡았다. 그리고는 다시 리오에게 돌진해왔다. 리오는 길게 검을 휘둘러 슈를 견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슈가 노리는 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어랏?!”

슈는 리오가 검을 리오의 어깨 높이로 휘두르는 것에 맞춰 자세를 한껏 낮추고 리오의 가슴팍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은빛 호선이 리오의 가슴 부위에서 순간적으로 그어졌다.

“안 돼!”

그 장면을 본 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왕도 깜짝 놀라 레나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뒤쪽으로 벗어났다. 리오가 착용하고 있는 망토의 가슴 부분이 예리하게 그어져 있었다. 두텁게 어깨와 가슴을 감싸고 있는 사막 지방식 망토였기에 몸에는 피해가 없었다.

“어때요, 리오씨?”

슈는 리오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리오는 쓴웃음을 지어보인 후 망토의 베어진 부분을 쓰다듬었다.

“휴우… 이거, 방심하면 안 되겠군. 역시 호장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해.”

레나는 리오에게 아무 탈이 없자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왕은 살짝 미소를 지은 후 다시 경기를 관전했다.

리오는 오른손으로 검을 잡은 후 왼손 손바닥을 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바닥을 쥐었다.

“좋아, 다시 시작하자구 아가씨!”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