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42화
“크으으윽…! 괴롭다!!!”
병사들에 둘러싸인 한 사나이가 길 모퉁이에서 자신의 갑옷을 쥐어뜯으며 괴로움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갑자기 저렇게 되어버린 자신의 상관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이리저리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어떻게, 카디스님이 저렇게 되셨지? 오마장군이라 불리실 정도로 강한 분이셨는데… 단 이틀 만에 말이야.”
병사들의 얘기를 들었는지, 그 사나이-카디스는 다시 몸을 단정히 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으며, 식은땀마저 줄줄 흘리는 상태였다. 보다 못한 한 병사가 그의 앞에 서서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카디스 장군님! 오늘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발 수도로 귀환하시는 게….”
카디스는 단정히 쓸어넘긴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약간이지만 미소도 흐르고 있었다.
“… 아니다. 잠시 발작이 일어난 것뿐이야. 어서 그 ‘일급 지명 수배자’를 찾아야 한다. ‘사냥’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카디스는 병사를 슬쩍 돌아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병사들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쳇…! 어째서지? ‘폭염장’이라 불리시며 병사들의 존경을 받으시던 저분이…! 하찮은 수배자를 찾고 다니시는냔 말이야!”
“그건 아닌 것 같던데? 그 수배자라는 녀석 말이야, 메탈재킷 수 부대를 박살내며 수도 근처까지 뚫고 왔다고 하더군.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이라 카디스님이 직접 나서신 게 아닐까…?”
병사들의 얘기를 뒤로 하고서, 카디스는 수배자를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는 이마의 땀을 손으로 닦아내었다. 약간 추운 제국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분명 그의 신체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였다.
“찾아내고 말 테다… 붉은 머리!”
약간 큰 소리로 중얼거린 카디스는 멀리 보이는 제국의 수도 전경을 한번 바라본 후 계속해서 길을 걸어 나갔다.
리오는 숙소의 방 안에 들어선 후 잠시간 말을 하지 못하였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팽팽한 긴장감에 의해서였다. 그가 들어온 것도 모른 채, 두 미녀는 서로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리오는 뒤에 서있는 리카와 메이린을 데리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별일 다 있군. 세레나 씨가 저렇게 사나운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
리오는 쓴웃음을 띄우며 히렌과 클루토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리카와 메이린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가 리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이 녀석들은 잘도 자는군….”
양 침대에 어지러이 자고 있는 두 소년을 보고 리오는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뒤따라 들어온 두 소녀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직도 이 꼴로 자고 있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클루토는 귀에 들리는 말소리 때문에 머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이리저리 눌린 머리카락을 대충 쓰다듬으며 주변의 사람들을 확인한 클루토는 약간 인상을 찌푸린 채 세면장으로 향했다.
히렌이 일어난 것은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일어서서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의 잠버릇 중 하나였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올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고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약간 얼굴이 발개진 세레나였다.
“아니, 저렇게 말이 안 통하는 여자가 어디 있어! 기가 막혀서… 어머, 리오 씨!?”
리오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가 있는 줄도 모른 채 들어와 소리를 친 세레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죄, 죄송해요 리오 씨! 계신 줄도 모르고….”
리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싸움이 끝난 모양이니 식사나 하러 가자.”
세레나는 방에서 나가는 리오와 아이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방에서 나섰다. 방 앞에서 크리스와 다시 만난 그녀는 짧은 말로 자신의 기분을 밝혔다.
“흥!”
그들이 한참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여관 주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리오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잠깐 보자는 말을 했다. 리오는 설마 하면서 주인을 따라 식당을 나섰다.
“저어, 손님….”
중년의 여관 주인은 여전히 말을 제대로 하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청력을 확대했다. 열 개가 넘는 기척이 여관을 슬쩍 돌아 식당의 창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주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신고를 하려면 식사 시간은 피해 주세요. 먹는데 건드리면 기분이 나빠지니까 말이오.”
주인은 리오가 의외로 쉽게 넘어가자 땀을 닦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리오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 대신 여관이 부서져도 배상은 안 합니다.”
말을 마친 리오는 급히 식당으로 향해 일행을 바라보았다. 리오는 수화로 크리스에게 제국군이 창문 아래에 있다는 것을 전한 후 슬쩍 벽 쪽으로 다가갔다. 크리스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행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코를 막고, 자세를 낮춰.”
그와 동시에, 식당의 창문을 뚫고 몇 개의 화학탄이 식당 안으로 난입했다. 일행은 흠칫 놀라며 크리스의 말에 따라 코를 막고 자세를 낮춘 채 그녀의 뒤를 따라 식당 밖으로 향했다. 자극성 연기가 가득 찬 식당 안에는 곧 방독면을 쓴 제국군 병사들이 깨어진 창문을 뚫고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고, 방독면에 장치된 적외선 렌즈를 통하여 리오와 일행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행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황한 병사 하나가 소리쳤다.
“아, 아니!? 없잖아!”
“없긴 뭐가 없나.”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병사는 혼비백산하며 뒤로 돌아섰다. 화학 연기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는 리오의 모습을 본 그는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이, 난 여기 있다 제군들!”
리오는 자기 앞에 서있는 병사의 얼굴을 후려치면서 식당 안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다른 병사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고 하나둘씩 리오의 공격에 쓰러져 나갔다. 쓰러진 병사들의 방독면을 모조리 벗긴 리오는 빙긋 웃으며 식당 밖으로 나섰다.
“한 시간은 편안히 잘 것 같군. 냄새로 봐선 말이야.”
방독면을 숙소 주인에게 선물로 안겨준 리오는 바깥으로 나섰다. 연기를 약간 들이마신 클루토와 세레나가 호흡이 곤란한 듯 계속 기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음… 콜록콜록! 어떻게 됐어요 리오?”
“그녀석들에 대해선 한 시간은 걱정 안 해도 돼요. 아직도 불편한가요?”
세레나는 고개를 저으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크리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때, 크리스의 눈은 경악으로 벌어졌고 리오를 비롯한 일행 역시 그쪽에서 풍겨오는 살기에 의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뭐야 저건…?”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는 한 사나이가 그들의 옆 방향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는 분명히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카디스 선배…!?”
리오는 심상치 않다는 듯 디바이너를 꺼내 들며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크리스, 아는 사람이에요?”
“아아… 알고 있어요. 저와 같은 오마장군 중에 한 사람인 ‘카디스 메르파가트’예요. 하지만, 이렇게 강한 살기는 뿜은 적이 없었어요, 어떻게…?”
카디스는 리오가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취하자, 미친 듯이 그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처음의 공격을 슬쩍 받으려 한 리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쫙 밀려나가고 말았다.
“뭐, 뭐야 이 파워는!?”
그야말로 굉장한 공격력이었다. 웬만한 거구의 공격을 받아도 뒤로 밀려난 적이 없던 리오가 이 정도로 밀려났다는 것이 증명해주는 사실이었다. 리오는 검을 고쳐 잡으며 몸의 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아지랑이가 서서히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근처의 잔돌들이 기의 압력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자, 오너라!!”
“쿠오오오오오!”
카디스와 리오의 검이 다시 한번 충돌했고, 그 때문에 근처 민가와 상가의 유리창이 한꺼번에 깨어져 나갔다. 리오는 마치 바이런과 대결하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 같았다. 단련한 인간 이상의 스피드와 힘을 카디스란 사나이는 가지고 있었다.
“으랴아앗!”
파아앙!!
리오의 기가 실린 일격을 받은 카디스는 검과 함께 날아가 한 상가 건물의 셔터를 뚫고 안에 처박혔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상가에서 튀어나와 리오에게 역습을 가하였다.
“젠장! 그렇다면…!”
리오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디바이너를 왼손에 고쳐 잡고 다시금 카디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 공격이 오가던 중, 카디스의 강한 공격을 받아낸 리오는 디바이너로 카디스의 검을 봉쇄한 후 기가 실린 오른손으로 그의 복부 급소를 강하게 밀어쳤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최소한 내장 파열일 정도의 일격이었지만, 카디스는 입에서 피를 약간 흘릴 뿐이었다. 리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리오는 디바이너를 다시 풀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카디스의 눈에선 붉은색의 광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인간의 눈이 아니다.
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온몸의 기를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기가 폭발하듯 그의 몸에서 방출되었고, 리오의 눈 역시 푸른색으로 빛을 뿜어내었다.
“박살을 내주마앗!!”
디바이너 역시 검기를 뿜어내며 카디스의 몸을 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디스는 개의치 않고 리오에게 맞섰다.
“흐아아앗!”
리오의 기합성과 함께 거대한 검광 두 개가 카디스의 앞에서 춤을 추었고, 카디스의 검과 함께 그의 양팔도 공중에 솟구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공격을 마친 리오는 다시 일행의 앞으로 물러서서 가만히 서있는 카디스를 노려보았다.
“괴, 굉장해…! 정말 멋있어!!”
리오의 검술을 몇 번 보았던 히렌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더욱 값진 광경을 본 듯이 기뻐했고, 메이린과 세레나는 약간 비위가 상하는 광경이어서 눈을 가렸고, 크리스와 리카, 클루토는 긴장된 표정으로 카디스를 보았다.
“카디스 선배가 저렇게 강했었나…? 아냐, 이럴 리가 없어!”
그녀의 앞에 서있는 리오는 자세를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 저건 완전한 인간이 아니에요 크리스. 전엔 인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자, 잘 봐요. 저 녀석의 정체를…!!”
리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디스의 팔이 잘려진 부위에선 수십 개의 전선과 기계 골격들이 튀어나오며 새로운 팔을 형성했다. 카디스는 그러한 자신의 몸이 저주스러운 듯, 계속해서 울부짖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