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143화


“어, 어떻게 저럴 수가…!?”

크리스를 비롯한 모든 일행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오 역시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취한 채 카디스를 노려보았다.

“반은 인간이 아닌 것 같군….”

리오의 말대로, 카디스의 기계팔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을지도 의문이었다. 카디스는 자신의 허리에 장비되어 있는 예비용 검을 뽑아 들고 리오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붉게 빛을 뿜어내었다.

“크아아아앗!!”

기합성과 함께 달려드는 카디스를 향해 리오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둘은 다시 한번 충돌하였고 푸른색과 붉은색의 검광이 도시의 밤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엄청난 빠르기로 둘의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행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수 외엔 방법이 없었다.

“타앗!”

카디스의 검을 강하게 밀어낸 리오는 카디스의 얼굴을 발차기로 강하게 후려쳤다. 기가 실린 차기여서 카디스의 목은 우두둑 소리와 함께 이상한 각도로 꺾였고, 그 틈을 노린 리오의 수차례에 걸친 공격이 카디스의 몸을 네 조각으로 나뉘었다. 힘없이 떨어진 카디스의 몸들을 내려다본 리오는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쳇, 입맛만 떨어졌군.”

뒤로 돌아서서 슬쩍 일행을 돌아본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싸움이 끝났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나, 일행의 표정은 더욱더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어? 왜 그러는 거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리오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카디스의 시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갔다. 마치 칼과도 같은 기계 부속들이 리오의 몸을 갈라놓으려고 춤을 추고 있었다. 리오가 멀리 떨어지자, 부속들은 다시 한번 뭉치기 시작하며 카디스의 시체, 아니 몸들을 다시 붙여 나갔다. 몸이 붙은 카디스는 꺾어진 자신의 목을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키며 눈을 붉혔다. 리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자세를 취했다.

“반이 아니라 아예 인간이 아니군. 좋아….”

리오는 살며시 입술 끝을 올리며 디바이너를 양손에 거머쥐었다. 자세를 바꾸어 검을 잡은 리오의 두 눈에선 청색의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닌 이상 장난칠 필요는 없겠지. 성불은 잘 해주마.”

순간적으로 살기를 뿜어낸 리오는 여태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카디스에게 달려들었다. 카디스 역시 인간 이상의 반사 능력을 발휘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이번의 공격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그의 검을 박살내며 카디스의 몸을 공 쳐내듯 공중으로 쳐낸 리오는 다시 한번 그를 향해 뛰어오르며 수직으로 강하게 내리쳐 지면에 그를 박아 넣었다. 폭음과 함께 지면에 박혀버린 카디스의 몸은 이리저리 찌그러진 상태로 꿈틀거렸고,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놀랍게도 원상태로 회복되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어선 보람도 없이 푸른색의 날카로운 검광이 다시 한번 그를 산산조각 내어버리고 말았다. 재생이 되지 않을 때까지 리오는 공격을 감행할 생각인 듯했다.

“세상에 무한한 건 없어! 아무리 네가 재생 능력이 좋아도 한계가 있을 거다!! 그때까지 손가락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리오의 외침을 얼핏 들은 히렌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저번에 보니까 마법도 사용할 줄 알던데 왜 힘들게 검으로 승부를 내려는 거지? 이해가 안 가네….”

“저것이 리오 스나이퍼란 꺽다리의 전투 방식이기 때문이야 멍청아.”

팔짱을 낀 채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리카의 말이었다. 히렌은 리카의 말투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한 말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전투 방식…?’

히렌은 그 말을 되뇌어보며 다시 한번 리오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른 때보다 빠른 탓에 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분명 그가 어렸을 때부터 꿈에 그려오던 이상형의 검술이었다. 그는 자신의 허리에 매여있는 검의 자루를 잡고 힘을 넣어보았다. 검술가로서의 피가 끓어오른다는 증거였다.

카디스의 몸이 파손과 회복을 반복한 지 수십 차례, 결국 동력을 다 소모한 카디스의 기계 몸은 천천히 허물어져 갔다. 기계 골격들이 떨어져 나가고, 몸의 곳곳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크윽…!”

카디스는 결국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었고, 리오는 그의 신체를 보고 나서 디바이너를 거두었다. 그것은 전투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날, 아니 기계 몸을 이겼는가…?”

카디스의 차가운 입술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의식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에 서있던 크리스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크리스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카디스에게 다가왔다. 카디스는 크리스의 굳은 표정을 보고서 빙긋 웃으며 그녀를 반겨주었다.

“오오… 크리나 바리하이크! 내가 아끼는 후배여 살아 있었구나…!!”

“… 선배, 어떻게 이렇게 되셨나요?”

카디스는 힘이 겨운 듯 눈을 감고서 대답했다.

“아아… 타르자, 그 마녀가 날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다른 오마장군들도 나 이상의 모습으로 변해 있을 거야. 황제 폐하께서 너만은 살려두시려고 한 것 같구나. 그분도 아시고는 계셨을 거야.”

크리스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리오는 조용히 그녀가 뛰어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정을 그런대로 알 수는 있을 것 같았다.

“… 크리나에게 눈물이라는 게 생겼군… 잘 되었어, 그래야 여자답지…. 후우우… 리오 스나이퍼…라고 했던가. 잠시 가까이 와 주겠소…?”

리오는 쓴웃음을 띄우고 그에게 다가갔다. 카디스는 다시 눈을 뜨고 리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후웃… 역시 강한 남자였소 당신은.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소?”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디스는 다시 눈을 감고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빠른 시일 내로 이곳에 나머지 오마장군 셋이 올 것이오. 그들을 제발 죽여주시오… 나처럼 인간의 의식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오. 그들이 황제 폐하께 해를 입히지는 말아야 할 텐데… 그분과 처음부터 싸우려고 들지 말아주오. 그분의 얘기도 들어주구려… 그리고 크리나를… 멋진 남자에게 시집 보내어 주시오….”

리오는 다 떨어져 가는 그의 손을 잡아주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카디스 역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미소를 지으며 산산이 부서져 갔다. 오마장군의 한 명이 사라져 가는 순간이었다.

“… 어려운 부탁인데… 마지막은.”

리오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클루토와 리카가 빠르게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리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 기다린다.”

클루토와 리카는 깜짝 놀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국의 수도에 쳐들어가며 칼을 갈던 리오가 이곳에 머무른다는 소리를 했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리오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쩔 수 없어. 약속이니까 말이야.”

이 사나이가 약속에 대해선 철통 시상으로 지킨다는 건 둘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아, 크리스는 너희들이 좀 위로해 주라. 난 가볼 곳이 있어서 말이야.”

“예? 또 어딜 가려고요?”

리오는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클루토의 코를 살짝 잡아당기며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녀석, 그럼 거리에서 노숙할 거냐? 여관 알아본다고 두 아가씨에게 말해둬. 알았지?”

“예.”

클루토는 코를 매만지며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리오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지치지도 않나…?’


11장 [부활]

병원은 여느 때와 같이 한산했다. 며칠 전에 대전투가 병원의 앞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도 병원 근무자들의 기억에선 차츰 사라져 가고 있었다. 외곽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의해 사망한 메탈 재킷 조종사들의 장례도 끝난 상태여서 이젠 병원의 업무도 정상으로 돌려져 있었다.

“하아… 뭐 재미있는 일 없니?”

얼굴에 약간의 주근깨가 있는 간호원이 책상에 다리를 꼬아 올린 채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갈색 머리의 동료에게 따분한 듯 물었다. 그러나, 그녀도 역시 재미있는 ‘거리’는 없었다.

“뭐야 샤오린, 너무 일만 하면 몸에 안 좋다구… 조금 쉬는 게 어때?”

이름표에 ‘샤오린 메리베이크’란 이름이 적혀있는 그 간호원은 자신의 무테 안경을 벗으며 옆의 동료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약간 어른 티가 나타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이는 20세를 어제 갓 넘었을 뿐이었다.

“알았어, 그런데 아직도 병사가 앞에서 지키고 있는 방은 뭐야? 시체실인데….”

주근깨의 간호원은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이런… 넌 구제 불능이구나.”

밤이 되어서, 7일 동안 간호원들이 가장 공포에 질려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바로 시체의 부패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한 시체가 부패하면 다른 시체도 바로바로 부패해 버리기 때문에 7일에 한 번은 꼭 점검을 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자원하는 간호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제비뽑기’뿐이어서 한 명은 희생을 당해야만 했다. 긴장감 속에 전 간호원들이 제비를 골랐고, 결국 운명의 제비를 고른 것은 ‘샤오린 메리베이크’였다. 언제나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인 샤오린도 제비를 뽑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다른 간호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밤 10시가 되어서, 샤오린은 간호원들의 위로를 받으며 서류를 들고 시체실로 향하였다. 시체실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군인 두 명이 샤오린이 다가오자 경계를 하며 그녀의 신분을 확인하였다. 착한(?) 군인들이어서 ‘신체검사’같은 짓궂은 행위는 하지 않았다.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시체실 안으로 들어선 샤오린은 천천히 시체를 덮고 있는 시트를 들추며 서류에 표시를 하였다.

“으음… 별것 아니네.”

30여 개에 달하는 시체를 확인한 샤오린은 한숨을 쉬며 마지막 시체에 눈길을 돌렸다. 시체들의 옆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멋진 이름도 있었고, 우스운 이름도 있었지만 마지막 시체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던 이름이었다.

“어…? 며칠 전에 왔던 손님이잖아? ‘지크 스나이퍼’였네 이름이….”

그녀는 아까운 남자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시트를 들추었다. 놀랍게도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겉도 멀쩡해서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시체실에 들어온 이상 시체는 시체였다.

“이 사람도 문제없고. 좋아, 나가볼까?”

시체실 문에 손을 가져간 그녀는 무테 안경을 한번 매만진 후 손목 시계를 바라보았다. 걸린 시간은 10분가량 되었다. 한숨을 쉬며 나가려는 그녀는 갑자기 섬뜩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후우-.

“차, 창문이 열렸나…!?”

그러나 창문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발걸음을 빨리하여 시체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그녀를 경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프, 프시케…!”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