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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47화


황제는 자신의 방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모니터 실에 술병과 잔을 손수 들고 들어갔다. 모니터 실에 앉아 자신의 영토를 바라보는 것이 그에겐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아무 일도 없군… 그게 더 재미없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황제는 수도 근처의 대도시 하르벤의 시장을 호출했다. 수도 다음으로 큰 도시였기 때문에 그 시의 시장 자리는 중책 중에 하나였다. 잠시 후에 백발을 한 하르벤 시의 시장이 모니터에 모습을 나타냈고 그는 황제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야. 하르벤에 교황 녀석이 있다고 하던데, 찾아볼 수 있겠나? 그녀석이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고를 안 해서 말이야….”

황제는 잔에 붉은빛이 감도는 술을 따르며 말했다. 시장은 옆에 앉아있던 비서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나서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예, 두 시간 후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길….”

술을 한 모금 마신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곳으로 모니터를 돌렸다. 타르자의 성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 나쁘게 생긴 그녀의 하인만이 성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아, 황제 폐하…!”

“타르자는 어디에 있나. 말없이 자리를 비우는 건 흔하지 않은 여잔데….”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 하인은 허리를 굽힌 채 그녀의 행방을 황제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예, 오늘이 절호의 기회라고 하시면서 요우시크님과 함께 오마장군 셋을 이끌고 수도 근처 바밀라 시로 가셨습니다.”

황제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인을 바라보았다.

“바밀라? 그곳은 왜?”

“리오 스나이퍼 혼자 그곳에 있다고 하시더군요.”

황제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자의 성격으로 보아 직접 출동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말 절호의 기회일 것 같군… 후훗. 자네는 어디에 걸고 싶나…?”

“예?”

황제는 술잔을 다 비우며 다시 하인에게 물었다.

“리오 스나이퍼란 녀석에게 걸고 싶나, 자네의 주인에게 걸고 싶나?”

하인은 잠시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상당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임엔 틀림이 없었다.

“저야… 당연히 주인님께….”

다시 술잔을 채운 황제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유감스럽게도 난 리오 녀석에게 걸고 싶네. 그녀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니까…. 좋아, 그건 그렇고 바만다라는 어디에 있나.”

“바만다라님 역시 나가셨습니다. 교황님께 볼일이 있으시다면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연락이 왔었다는 말을 하라면서 모니터를 끈 황제는 의자를 돌려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의 구름이 음침히 움직이고 있었다.

“… 싸우기엔 좋은 날씨군. 후후후….”


리오는 침대에 누워 천정만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틈으로 살짝 리오를 본 메이린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히렌에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리오가 빵을 열 개 이상이나 먹은 적은 오늘이 처음인데… 넌 짐작 가는 거 없니?”

히렌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동안 못 먹은 거 보충이라도 하려나 보지. 보통 땐 나보다도 안 먹잖아, 그리고 더 잘 싸우긴 하지만….”

“얘들아….”

둘은 리오가 갑자기 부시시한 얼굴로 문에서 나오자 흠칫 놀라며 뒤로 주춤거렸다.

“무, 무슨 일이에요?”

“으음… 크리스 좀 불러줄래? 잠깐 내 방으로 오라고 말이야.”

둘은 가만히 서서 리오를 바라보다가 히렌이 메이린의 옆구리를 쿡 찔러 그녀를 크리스가 있는 방으로 보내었다. 리오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고 히렌은 이상하다는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얼마 후 메이린과 크리스가 같이 왔고 크리스는 약간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갔다.

“절… 부르셨어요?”

리오는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의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였다.

“…?”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자에 앉았고 리오는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 오마장군 말인데요… 구체적으로 누군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오마장군이란 말을 들은 크리스의 얼굴엔 약간 그늘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드러내지 않고 리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조용히 눈을 감고 들을 뿐이었다.

“저와 카디스 선배를 제외한… 세 사람 다 검의 달인이에요. 곡도와, 대검과, 장검 등이죠. 하지만 그들 역시 카디스 선배와 같이 변했다면 중요하진 않을 거예요.”

말을 들은 리오는 잠시간 조용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좋아하는 남자 있어요?”

“예!?”

크리스는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높이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선 장난기 등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크리스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힘겹게 대답했다.

“… 있어요.”

“누군데요?”

더더욱 곤란한 질문만을 골라서 한다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질문엔 답할 수 없는 듯 크리스는 침묵을 지켰다.

“… 궁금하잖아요.”

크리스는 리오가 재촉하듯 말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꼭 감고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멋진 남자예요. 키도 크고, 성격도 좋은 것 같고… 하지만 그의 속을 모르겠어요.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겹게 싸우는지. 그는 유감스럽게도 말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저 하나 때문에 싸우진 않는다는 거예요. 후훗… 저 혼자서 그를 좋아하는 것 뿐이겠지요….”

그녀의 힘겨운 대답을 들은 리오는 살며시 눈을 뜨고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도 크리스의 마음을 알아줄 거예요. 그래야 저도 카디스와의 약속을 편히 지키죠. 자… 그럼 전 나가 보겠습니다.”

리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방문을 열었다. 크리스는 깜짝 놀라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어, 어딜 가시려고…?”

그는 씨익 웃으며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전의가 담긴 웃음이었다.

“저하고 놀아줄 손님들이 가까이 와 있으니까요.”

크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손님’들이 누군지 거의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그들이 벌써!?”

리오가 말한 ‘손님’, 다섯 명은 동쪽의 문을 통하여 리오와 일행들이 있는 도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눈을 붉히고 있는 세 남자와 붉은 코트를 걸치고 있는 여자, 그리고 칠흑빛의 중장갑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사나이였다. 붉은 코트의 여자, 타르자는 돌아서서 세 남자에게 명령조로 말하였다.

“명심해라, 리오 스나이퍼란 녀석은 정면 공격을 위주로 하는 녀석이니 셋이서 협공을 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 지켜 보다가 마무리를 지을 테니 행동을 잘하도록, 만일 카디스 녀석처럼 이상한 행동을 할 때는 가차 없이 죽여버리겠다. 알겠나?”

오마장군 셋은 마치 타르자가 황제인 듯 그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에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밀치며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요우시크는 타르자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에게 넌지시 말하였다.

“당신이 만든 저 장난감들이 과연 리오 녀석을 없앨 수 있을까…? 흐흐….”

타르자는 언제나처럼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요우시크를 바라보았다. 웬만한 악마들조차 피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냉혹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요우시크는 그녀의 눈을 많이 보아와서 상관이 없는 듯했다.

“모르지, 하지만 틈은 만들 수 있을 거야. 그 틈을 이용해 우리가 공격하면 되겠지. 그러나 수치를 비교해본 결과 저 녀석들 셋이 잘만 해도 리오 녀석을 이길 수 있어.”

요우시크의 투구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이 잠시 얇아지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그럼 기대해보지. 우리도 가볼까…?”

요우시크와 타르자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행인들은 자리를 피한 뒤였다. 그들이 스무 발자국쯤 걸어갔을 때, 폭음 소리와 함께 오마장군 중 한 명이 먼지를 일으키며 둘 쪽으로 날아왔다. 돌에 몇 번 강하게 굴러 피부가 닳아 떨어진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서서 다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요우시크와 타르자는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었으나 잠시 후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사나이를 보고서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하! 너희들도 구경하러 왔나 보지? 오래간만이군, 둘 다!!”

셋에게서 어느새 벗어난 리오가 타르자와 요우시크 앞에 서서 조롱하는 듯 윙크를 보내었다. 곧 세 명의 오마장군이 리오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리오 역시 방어를 하며 본격적으로 전투를 개시했다. 수로선 뒤졌지만 상황은 그리 나쁜 편도 아니었다. 리오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격을 가하였다. 타르자는 놀란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뭐야!? 100년 전과 비교가 되질 않다니!!”

검 놀림과 스피드, 그리고 파워에서 타르자가 알고 있는 리오와 지금의 리오는 비할 수가 없었다. 타르자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고 예전에 리오와 한 번 싸워본 적이 있던 요우시크는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만을 끼고 있었다.

“100년 동안 나 리오 스나이퍼가 뒹굴뒹굴 구르고만 있었는 줄 알았나? 천만에 말씀, 그때보다 더욱 힘든 일이 나에겐 많았었다!!”

순식간에 셋을 허공으로 날려버린 리오는 디바이너를 들고 둘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약간 흥분한 상태인 듯했다.

“타르자! 너만 여기서 처리하면 레나 공주는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완전히 없애주마!!!”

“크읏!?”

파아앙-!!!

차가운 금속성과 함께 리오의 디바이너와 요우시크의 로제바인이 타르자의 앞에서 강하게 충돌하였고, 타르자는 자신의 목에 한치의 차이로 들이대여 있는 디바이너를 보고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 녀석…!!”

리오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요우시크를 노려보았다. 요우시크는 투구로 표정을 가리고 있어서 어떤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도 역시 지금의 공격을 받아내어 타르자의 생명을 연장 시킨 건 기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저번보다 훨씬 강해졌군 리오 스나이퍼… 무슨 재주를 쓴 거냐….”

리오는 디바이너를 풀고 다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훗, 식사를 충분히 했거든.”

타르자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양손에서 마력을 개방하며 검을 다시 잡고 있는 세 오마장군에게 소리쳤다.

“제어장치 개방! 무제한의 힘으로 저 빨간 머리 녀석을 없애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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