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50화
지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못 본 지 열흘 정도 된 프시케가 갑자기 저런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프시케를 향해 뛰어갔다.
“프시케!”
식료품점 안에 들어가려던 프시케는 누군가가 자신을 크게 부르자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은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지, 지크 씨…!?”
지크는 프시케의 손을 붙잡고 뛸 듯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래 나야!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프시케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지크의 얼굴과 두꺼운 가슴을 손으로 만져보기 시작했다. 예전과도 같았다. 분명히 살아있는 지크였다.
“어, 어떻게…? 커드 씨가 분명히 지크 씨 일행이 죽었다고…!?”
지크는 그 말을 듣고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 커드란 작자가 누구야?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하다니… 그건 그렇고 이 마차는 뭐지? 그리고 이 드레스는 또 뭐고?”
프시케는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마차 안에 있던 그녀의 경호원이 마차 밖으로 나와 지크와 프시케의 사이를 떼어놓았다. 지크는 갑자기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덩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뭐야 이 덩어리는… 그렇지 않아도 속이 괴상한 판국인데 날 건드는 거야?”
경호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임무를 다하기 위해 지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전에 복부를 울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경호원은 배를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져갔다.
“힘쓸 일이 없었거든? 약간 아팠을 거다… 헤헷. 자, 하나는 해결했으니 어서 가자 프시케.”
“저, 저어….”
지크는 프시케가 우물쭈물 움직이지 않자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프시케, 왜 그래?”
그의 부름에 프시케는 고개를 저으며 마차에 뛰어올랐다. 지크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마차 안에 있는 프시케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서 가요 아저씨!”
프시케는 마차 안에서 마부에게 소리쳤고 마부는 말의 잔등에 채찍을 가하였다. 마차가 출발해서 희미하게 보이기 직전까지 지크는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지크는 순간 소리치며 마차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 바보야! 어디 가는 거야!”
마부는 마차에 장치된 후면경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경호원을 한방에 쓰러뜨린 남자가 마차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히고 있는 것이었다. 마부는 놀란 나머지 말에 더더욱 채찍을 가하였고 마차의 속도는 빨라져갔다. 그러나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와의 거리를 좁혀 결국엔 마차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프시케! 왜 그러는 거야, 말 좀 해봐!!”
그러나 마차 안에선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크는 분통을 터뜨리며 마차의 앞을 가로질러 말 위에 타고선 말을 급히 정지시켰다. 마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의자 밑에 있는 버튼을 아무도 모르게 눌렀다.
“이봐! 내려봐!!!”
지크는 마차의 문짝을 거칠게 뜯어내며 안에 있는 프시케에게 소리쳤다. 프시케는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으윽…! 도, 도대체!?”
이윽고, 프시케는 고개를 들고 이상한 분노에 몸을 떨고 있는 지크에게 소리쳤다.
“제발 가주세요! 이제 더 이상 지크 씨와 위험한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전 그냥 한 남자의 부인이 되어서 편안히 살고 싶다구요!!”
지크는 그 말을 듣고서 멍한 표정이 되어 돌이 된 듯 그 자리에 굳었다. 그사이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괴한들이 지크를 둘러쌌고 마부는 안심이 되었다는 듯 마차를 다시 전속력으로 몰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 나와… 위험한 여행…이라고?”
지크가 멍하니 서 있기만 하자 흰 옷의 괴한들은 굽어진 검을 꺼내어 지크를 난도질하려고 했다. 순간, 괴한들은 자신들의 몸이 갑자기 얼어붙은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굉장한 살기가 지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해서였다.
“… 기분을 풀어주러 왔나… 좋지, 헤헷… 모두 죽여버리겠어!!!”
고함과 함께 지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괴한의 얼굴을 후려쳤고 괴한은 피를 뿜어내며 어떤 집의 정원으로 떨어져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였다. 자신의 동료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괴한들은 칼을 휘두르며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앗!!!”
지크는 자신을 향해 굽어지는 검을 주먹으로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주먹과 충돌한 검들은 유리가 깨어지듯 박살이 나버렸고 그 파편에 맞은 괴한은 괴로워하며 바닥에 뒹굴었고 지크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버린 괴한은 동료와 같은 운명을 걸어야만 했다. 얼마 후, 지크를 잠시 막기 위해 어디선가 나섰던 괴한 여섯 명은 모두 시체 아니면 불구가 되어버렸고 지크만이 혼자 길 위에 서서 프시케가 사라져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게… 좋을지도 모르지. 너에겐….”
메탈 재킷의 분대는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복면의 괴한을 보고 잠시 멈추어 섰다. 그 괴한-슈렌은 조용히 손바닥을 펴고 돌아가라는 손짓을 그들에게 해 보였고 메탈 재킷들의 탑승자들은 피식 웃으며 머신건의 자동 조준 장치를 켰다. 메탈 재킷의 가슴에서 머신건이 튀어나오자 슈렌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 멍청이들. 미안하다만 민간인이 다치니 어쩔 수 없구나. 날 용서하기 바란다.”
슈렌은 천천히 자신의 기염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크의 몸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자 메탈 재킷의 탑승자들과 근처의 구경 나온 시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니, 저 녀석이 분신 자살을…!?”
슈렌은 메탈 재킷의 배치 상황을 보았다. 메탈 재킷들은 좁은 도로를 지나느라 거의 일렬로 서 있는 상태였다. 슈렌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룬가르드를 잡고서 자세를 취하였다.
“빨리 끝내주지, 필살!”
슈렌은 기합성과 함께 메탈 재킷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메탈 재킷들은 슈렌이 갑자기 자신들에게 대시해오자 움찔하며 머신건의 방아쇠를 눌렀다. 슈렌은 기염이 감돌고 있는 그룬가르드를 엄청난 속도로 회전시켜 날아오는 총탄을 모조리 재로 만들어 버렸고 메탈 재킷의 머리 위로 뛰어오르며 기염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낫을 연상시키는 기가 창의 양 끝에 서렸고 슈렌은 그것을 두 차례 공중에서 휘둘렀다.
“-더블하켄!!”
두 개의 낫은 공기와 함께 메탈 재킷들을 세 조각으로 나누었고, 메탈 재킷들은 곧 화염에 휩싸이며 폭발해 사라져갔다. 맨 뒤에 남아있던 메탈 재킷은 운이 좋은지 겉 장갑에 금이 갔을 뿐, 폭발은 면하였다. 그 안의 탑승자는 순식간에 전멸한 자신의 동료들을 보고 반은 정신이 나간 듯했다. 그러다가 모니터에 슈렌이 돌아가라는 손짓을 다시 해 보이자 그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메탈 재킷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좋아, 이제 지크에게 가볼까.”
슈렌은 기염력을 거두고 복면을 풀며 지크가 있던 집으로 향하기 위해 건물 위로 뛰어올라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샤오민은 언제나처럼 의자에 앉아 빨래를 널며 반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오늘은 더더욱 짙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아….”
알 수 없는 한숨이었다. 널어놓을 빨래가 거의 없어질 즈음, 마당의 낮은 문을 여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샤오민은 웃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루이크, 벌써 오니? 어머…!?”
마당에 들어온 것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지크였다. 샤오민은 기침을 참으며 의자에서 일어서서 지크를 바라보았다. 묘한 감정이 그녀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지크는 터벅터벅 걸어와 샤오민의 앞에 섰다.
“… 저어, 한 시간만 더 여기에 있어도 괜찮을까요….”
샤오민은 지크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침에 완전히 작별 인사를 하고 나갔던 사람이 갑자기 침울한 표정으로 와서는 한 시간만 더 있자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좋으시다면… 어멋!?”
지크는 그녀가 승낙을 하자마자 그녀의 치마폭에 안겼다. 샤오민은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에 잠시 놀라 지크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자 팔을 풀고 지크의 등을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지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요… 크윽…!”
샤오민은 몇일 알지 못한 이 남자가 갑자기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 같이 느껴졌다. 언제나 명랑하고 즐거운 듯한 지크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울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애에게 제가 그런 존재일 줄은 몰랐어요… 아니, 제 잘못이 전부일지도… 그애 역시 속은 평범한 여자라는 것을 전 무시하고 있었는지 몰라요. 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도 있지만… 그들은 알아주질 않았어요. 아니,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전 혼자였어요… 전 그것이 제일 싫었구요. … 그애만은 저와 같이 외로움을 알고 있었기에 제 마음을 아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그애도 역시….”
샤오민은 약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울고 있는 이 남자가 살아오는 동안 느꼈던 정신적 고통을, 그리고 외로움을…. 그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거부하여 느끼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결국엔 이겨내지 못했나… 바보 녀석.”
샤오민은 또 다른 사나이가 마당에 들어온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푸른색의 장발에 조각과도 같은 미모를 지닌 사나이였다. 그 역시 지크를 내려다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슈, 슈렌…?”
지크는 얼굴을 오른손으로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슈렌을 바라보았다. 슈렌은 한숨을 지으며 지크에게 다가왔다.
“일어서라….”
지크는 샤오민에게 떨어져 몸을 일으켰다. 슈렌은 그가 일어서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퍼억!
“허억!”
지크는 자신의 복부를 부여잡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샤오민은 그를 일으키려 했으나 슈렌이 그녀를 눈빛으로 제지했다. 슈렌은 낮은 음성으로 지크에게 소리쳤다.
“멍청한 녀석… 그러고도 네가 ‘바람’인가! 그런 것조차 참아내지 못하고 무슨 바람이라 할 수 있나! 넌 아직 멀었어, 고작 이런 일에 눈물이나 흘리고 있으니…. 넌 이곳에 연애하러 온 거냐?”
지크는 움찔하며 슈렌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지크가 여지껏 보지 못했던, 그야말로 타오르는 불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