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164화


“그… 멍청이들?”

바이나가 조나단이 나간 후에 멍하니 있다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녀 자신도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물론 몇 개월이 지났고 그동안에 왕국 일로 바빴기 때문에 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가즈 나이트 말인가? 후훗, 잊고 있었네….”

그 시간, 바이나는 거의 믿고 있지 않던 ‘신’이란 존재를 향해 양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그것이 밖에 나가서 요새나 메탈 재킷을 상대로 ‘온 힘을 다해 싸우다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인 일인지도….


각 기사단은 공중 요새에서 눈송이처럼 쏟아지고 있는 메탈 재킷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화력이 어떤지는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왕비가 제국과 손을 잡고 있었을 때 그들 앞에서 시범 사격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칼이나 창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쿠쿠쿵.

메탈 재킷의 대 부대가 지상에 내려오는 굉음이 그들에게 들려왔다. 그러나, 기사단의 눈에선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요새의 대 폭격으로 칼도 못 뽑아본 채 죽는 것보다는 메탈 재킷과 싸우다 죽는 것이 기사에겐 더 마음이 편한 것이었다.

“전 기사단! 대열을 정비하라!”

앞열로 나선 조나단이 화이어 턴을 들고 기사단에게 소리쳤다. 그의 명령대로, 하던 훈련대로 그들은 자에 맞춘 듯 대열을 정리해 나갔다. 눈앞에 흙먼지가 끼기 시작했다. 메탈 재킷의 지상용 부스터에서 뿜어진 가스에 의해 날려지는 흙먼지가 분명했다.

“… 돌격하라 가이라스의 기사단이여! 명예를 택하는 것이다!”

조나단의 외침과 함께 가이라스의 기사단은 메탈 재킷을 향해 말을 달렸다. 미리 성직자들이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템플 나이트들이 걸어둔 방호망 덕분에 ‘조금은’ 메탈 재킷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 두꺼운 장갑을 뚫는단 말인가. 그 질문은 지금의 기사단에겐 무의미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이었다.

메탈 재킷에 탑승하고 있는 제국군 병사들은 멍한 눈으로 메탈 재킷의 무기 안전 장치를 풀었다. 그들 역시 약에 의해서 투귀(鬪鬼)로 변한 충성스러운 군인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압도적인 문명의 힘과 인간의 명예를 건 싸움은 시작되었다.

가이라스의 기사단에 대대로 전해오는 투검술을 익힌 조나단은 화이어 턴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메탈 재킷을 차례차례 불덩이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각 기사단장을 제외한 기사들은 메탈 재킷의 압도적인 힘과 무기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어떤 이는 메탈 재킷의 팔에 장착된 나이프 아머에 의해 조각이 났고, 어떤 이는 엘리마이트 빔에 증발되어 사라져 갔으며, 어떤 이는 기계 팔에 의해 몸이 부숴져 처참히 죽어갔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숫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가이라스의 기사단은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20분…?

“크아아아앗!”

한 젊은 기사가 온 갑옷에 메탈 재킷의 오일을 뒤집어쓴 채 비명이 난 곳을 바라보았다. 나이트 마스터-조나단이 왼쪽 팔을 잃은 채 말 위에서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나단은 이를 악물고 투구를 벗어 제치며 화이어 턴으로 자신의 팔을 자른 메탈 재킷을 불덩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마, 마스터!”

젊은 기사는 검을 휘두르며 울부짖었다. 너무나도 분하였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장면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 기사의 분노도 메탈 재킷의 엘리마이트 빔 앞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할 뿐이었다.

20분 후, 고쳐진 가이라스의 성문은 의미 없이 부서져 나갔다. 그것은 가이라스 기사단의 전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왕궁 안으로 피신해있던 수도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와, 형제와, 남편과 아들을 잃은 것에 절규하였다. 어떤 이는 피눈물을 흘리며 공중에 떠있는, 지상에서 차츰 다가오고 있는 제국군을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저주를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바이나의 기도하는 양손에선 분함이 담긴 선혈이 흘러 바닥에 한 방울씩 떨어졌다.

“어, 어째서…!”


공중 요새의 함장 중 한 명은 조용히 부관의 보고를 들었다. 결론은 물론 메탈 재킷들의 압도적인 승리였지만 파괴된 메탈 재킷이 50여 대가 넘었다는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쳇, 마법사도 없는 가이라스 왕국과 싸우는데 50대나 파괴되었다면 마법사가 있는 말스 왕국에선 큰일이 나겠군. 그럼 카오스 에메랄드의 에너지 충전률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나?”

그 질문을 받은 부관은 급히 동력실 실장에게 카오스 에메랄드의 에너지 충전률을 물었다. 보고는 곧 들어왔다.

“… 수도의 사람들은 꽤나 정이 많군요. 방금 기사단의 전멸 소식으로 에너지 충전률은 89%까지 상승했습니다.”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명령을 부관에게 전달했다.

“메탈 재킷들에게 전달하도록, 가이라스 수도에 있는 생명체는 모조리 없애라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에너지 충전률은 100%까지 올릴 수 있겠지….”

부관은 경례를 붙인 후, 곧바로 무전실로 달려갔다.


“이, 이럴 수가…?”

지크는 페가수스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의 앞에서 뒹굴고 있는 기사단의 시체 더미를 보고 망연자실해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장면이었다.

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아직 메탈 재킷들이 움직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그는 한 명의 생존자라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지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리오의 목소리가 지크의 뒤쪽 하늘에서 들려왔다. 리오는 날고 있는 페가수스에서 뛰어내려 지크에게 다가갔다. 리오 역시 분노와 허망함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 가이라스의 적…!”

둘은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한 사나이가 검을 든 채 만신창이가 되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크는, 특히 리오는 그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조, 조나단님!”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어버린 채 마력이 사라진 화이어 턴을 들고 서있는 조나단의 모습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리오는 쓰러질 것 같은 조나단을 부축하며 그의 몸을 진찰해보았다. 정말 놀라웠다. 조나단의 육체는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 리, 리오! 그리고 지크! 자, 자네들이 돌아와 주었군….”

리오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조나단의 말을 방해할 뿐이었다.

“잘됐어… 우리 왕국을… 세레나와 티퍼를… 반드시 지켜주게나… 훗.”

조나단에게 남아있는 오른쪽 눈이 편안히 감겼다. 리오는 아무 말 없이 조나단의 시신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포성이 들리기 시작한 수도를 바라보며 분노를 터뜨렸다.

“… 없애버리겠다 이 자식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