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66화
티퍼는 리오 앞에 달려와 그를 올려다보며 일말의 희망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아빠는, 아버지는 살아 계신가요!”
지크는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고 리오는 침통한 표정으로 티퍼의 조그만 어깨를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 미안하다 티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거, 거짓말하지 말아요! 우리 아버진 살아계시죠, 그렇죠!”
티퍼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리오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티퍼는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아빠가 돌아가셔야만 하는 거예요! 우리 아빤 살아계실 거예요, 분명히!”
파악!
티퍼는 더는 소리치지 못하였다. 리오가 그의 뺨을 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넘어져 있는 티퍼에게 소리쳤다.
“조나단 씨가 죽었다고 직접 말해줄까! 아니면, 너희 아버진 네 가슴속에 살아계시다는 엉터리 같지도 않은 말을 해줄까! 조나단 씨는 저승으로 가셨다! 널 그곳에서 보실 수도, 응원해 주실 수도 없어! 네 가족은 누나 뿐이야!”
티퍼는 놀란 표정으로 리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 약간 앞당겨진 것뿐이야.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제, 블레이크 가의 남자는 너 하나다. 네 누나는 시집을 가면 성이 바뀌니 결국 남는 건 너 하나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문에 명예를 이어나갈 걱정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때려서 미안했다 티퍼.”
리오는 티퍼를 일으켜 세워주고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티퍼는 눈물을 닦으며 속으로 결심했다. 방금 전에 흘린 자신의 눈물이 마지막 눈물이 될 것이라고….
“… 알았어요 리오. 그 말, 명심할게요.”
리오는 빙긋 웃으며 티퍼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러고 있을 무렵, 왕궁에선 바이나가 직접 리오와 지크를 맞으러 뛰어나왔다. 둘은 왕의 옷을 입고 있는 그녀가 예전에 갑옷을 입었던 때처럼 자신들에게 뛰어오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들, 지금 오면 어떻게 해!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바이나는 거의 울먹일 듯한 표정과 말투로 둘에게 소리쳤다. 지크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 걱정을 많이 했나 보네, 여왕님. 손이 다 까졌잖아… 핏자국도 있고. 예쁜 손에 상처가 생기면 못 쓰지….”
지크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술을 가져가며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나 바이나는 손을 뿌리치며 말을 돌렸다.
“이, 이럴 때가 아니잖아! 공중 요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분위기 낼 때야! 어떻게 좀 해 봐!”
지크는 입술을 매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난 저기까지 갈 수가 없어. 부탁을 하려면 여기 있는 이 빨간 머리에게 하라고. 이 녀석은 가고도 남으니까 말이야.”
리오는 지크를 흘끔 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나 혼자서 저 괴물들을 쓰러뜨리려면 일격에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폭발을 일으켜 폭풍으로 쓸어넘기는 수 외엔 없어. 그렇게 하려면 저 녀석들은 집결해야만 하고 말이지. 그리고 집결하는 시기는 단 한 번, 수도를 폭격으로 공격하기 직전뿐이야. 그 외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바이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리오가 너무나 자신 있게 말한 탓이었다.
“그, 그럼 상황만 된다면 다 부술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하지만 그 상황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 그리고 공간의 폭풍을 일으킬 정도의 파괴력을 갖춘 것은 1급 이상의 마법이나 내 필살기인 오메가 선샤인뿐이야. 문제는 그것들을 쓰면 내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 말스 왕국에 가서 또 싸워야 하거든.”
바이나는 그러면 그렇다는 듯 리오의 망토 자락을 잡고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왕이란 책임감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해볼게! 나에게 그 마법이나 필살기란 것을 가르쳐 줘!”
리오와 지크는 잠시 동안 멍한 표정으로 바이나를 바라보았다. 바이나는 둘을 교대로 바라보며 당황하였다.
“참나, 웃기지도 않군. 그것을 배울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넌 할머니가 되어 버릴걸? 그것 말고,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지.”
순간, 바이나의 표정은 확 바뀌었다.
“뭔데! 말해봐, 말해봐!”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쉰 뒤에 그녀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꽤나 괴로울 텐데….”
“괜찮아! 내 백성들을 지키려면 고통쯤은 감수할 수 있어! 어서 방법이나 말해줘!”
리오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주문은 내가 외우고, 넌 그 마법이 소비하는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마력을 나 대신 써주는 거야.”
바이나는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 되물었다.
“그, 그것이 가능해? 가능하냐구!”
리오는 웃음을 띠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주는 그의 행동 중에 하나였다.
“당연하지.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니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할 상황도 아니고 말이야. 자, 하겠어?”
바이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그럼 때를 기다리자고. 방법은 그때 가서 설명해 주지.”
말을 마친 리오는 바닥에 정좌를 하며 앉았고 지크는 벽에 기댄 채 공중에 떠있는 요새들을 지켜보았다.
“… 움직인다, 조금씩…!”
“지상의 반응은 어떤가, 그 괴물들의 위치는 잡혔나?”
함장은 직접 레이더부까지 내려가 부하들을 격려하며 넌지시 물었다. 레이더에서 눈을 떼고 있지 않던 군인은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위치는 메탈 재킷 부대가 전멸한 후에 레이더에서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힘을 낮춘 것 같습니다.”
함장은 그의 길다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네. 그럼 수고하게나.”
다시 자신의 의자로 돌아온 함장은 모자를 벗으며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카오스 에메랄드의 에너지 충전률이 낮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 가이라스 국민들에게 다시 희망이 생긴 건가… 고신들께서 부활을 하시려면 90% 이상의 카오스 에너지가 모여야만 하는데….”
함장은 모니터를 가이라스 왕성으로 돌렸다. 안의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죽으면서 절망하게 되겠지. 100% 이상의 에너지는 채울 수 있을 것 같군. 좋아, 마음껏 상상해라, 너희들의 승리를. 그래야 더욱더 큰 절망을 하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