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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67화


요새들은 천천히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워낙 거대한 몸집들을 가진 탓에 폭격의 대형으로 만들어지려면 꽤나 오래 걸릴 것이다. 요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지 10여 분이 흘렀을 무렵, 지크는 앉아있는 리오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자, 준비하라구.”

“….”

리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움직이는 요새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중앙에 오는 요새가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였다.

“… 저 요새 같군. 좋아, 바이나.”

그러나 리오의 부름에도 바이나는 대답이 없었다. 리오는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여왕이란 사람은 없었고 풀린 긴장감 덕분에 쏟아지는 졸음을 주체할 수 없어 앉아 졸고 있는 바이나란 처녀가 있었다. 리오와 지크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헷, 어쩔 수 없군. 나이는 못 속인단 말이야….”

지크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왕이란 중책이 힘들었겠지, 특히 이런 상황에선. 여러 가지 일을 너무나 빨리 겪었어, 이 아이는….”

쪼그려 앉아있는 바이나의 옆에 지크는 같이 몸을 구부려 앉아 그녀를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자자, 일어나 여왕님. 이것만 끝나면 실컷 잘 수 있어.”

“으음…? 아, 이런!”

바이나는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10분간이나 쪼그려 앉은 탓에 다리가 저려오는 건 당연했다. 결국 그녀는 그만 지크의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

“엇?”

바이나는 당황하여 얼굴을 붉힌 채 지크에게서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다리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크는 빙긋 웃으며 바이나에게 말했다.

“왼손을 펴 봐. 내가 고쳐주지.”

바이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크에게 왼손을 펴 보였다. 지크는 자신의 오른손을 그녀의 왼손에 맞대었다.

“조금 따가울 거야. 참아줘.”

지크는 맞댄 오른손에 약간의 기전력을 발생시켰다. 전기 충격으로 손의 혈맥을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손은 인체의 여러 부분과 연결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치칙 소리와 함께 움찔하며 손을 뗀 바이나는 인상을 쓰고 지크를 바라보았다.

“조금 따갑다고 했잖아!”

그녀의 불평에 지크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칫, 어쨌든 일어서 보라고. 훨씬 가뿐할 거야.”

바이나는 지크의 품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발을 땅에 디뎌 보았다. 지크의 말 그대로 저린 것이 가셔 있었다.

“와아, 신기한데!?”

그녀가 괜찮아진 것을 확인한 리오는 손가락을 모아 입에 가져가고 휘파람을 크게 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어디선가에서 리오가 타고 날아온 페가수스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성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이, 이건 페가수스? 대단해! 실제로 보긴 처음이야!”

리오는 페가수스의 배 쪽에 양손을 겹쳐 가까이 가져갔다. 바이나가 타기 쉽게 배려한 것이었다.

“보기만 하지 말고 직접 타라고. 어차피 이걸 타고 성 밖을 나가야 하니까. 어서, 시간은 봐주지 않아.”

바이나는 재빨리 리오의 도움을 받아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탔다. 그녀가 탄 것을 확인한 리오는 페가수스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쳤다.

“앗! 뭘 하는 거야!”

리오의 행동에 놀란 페가수스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바이나는 페가수스를 꼭 잡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질 못하였다. 리오는 씨익 웃은 뒤에 지크를 바라보았다.

“자아, 엄호를 부탁해. 그럼 나 먼저!”

리오는 약간의 기를 방출하며 페가수스를 따라 공중으로 치솟았다. 지크는 자신의 장갑을 조이며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도중에 리오와 바이나가 날아간 쪽을 바라보고 있는 티퍼에게 다가가 그 작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이, 티퍼. 이제 작별이다.”

작별이란 말을 들은 티퍼는 깜짝 놀라며 지크를 바라보았다.

“예? 그럼 리오도, 지크도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단 말이에요?”

지크는 씁쓸히 웃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다시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티퍼의 볼에 양손바닥을 가져가 살짝 부비며 말했다.

“… 나하고 리오란 녀석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 거야. 바이나, 아니 여왕님께서 돌아오면 똑같이 전해줘, 알았지?”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편 후에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활약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한 퇴장이었다.

“치이잇…! 모두 떠나가기만 하면 난 어떻게 해요!”

티퍼는 왼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가 지크의 가죽 장갑이 남긴 거친 감촉을 더욱 오래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리오가 자신에게 한 마지막 말… 그 말도 뇌리에서 맴돌렸다.


“헤이, 기분이 어때?”

바이나는 눈을 꼭 감은 채 뜰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희미하게나마 뜬 것은 리오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이, 이봐! 너무 빠르잖아!”

리오는 페가수스의 곁에서 날며 말을 바이나가 안전하도록 잘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날아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바이나에겐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나는 걸 즐겨.”

“네가 맡고 있으니까 더 안심이 안 된다고!”

“….”

리오는 씁쓸히 웃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표정은 곧 굳어졌고 바이나도 리오의 표정이 굳어지자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기이이이잉-

무엇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아주 작은… 그러나 수는 많았다. 리오는 급히 방향을 바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란색의 작은 동체를 가진 제국의 무인 요격기가 리오와 바이나의 바로 위에 위치한 요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리오는 인상을 쓰고 몸 안의 기를 끌어올렸다. 기의 오오라가 폭발하듯 그의 몸에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페가수스를 꼭 붙잡고 있어! 내가 얘기해 놨으니까 제대로 된 장소에 내려줄 거야! 잠시만 참고 있어!”

리오가 외치는 뜻을 페가수스도 알아들었는지 천마는 전속력을 내며 목표 지점으로 날았다. 그를 향해 날아오는 무인 요격기들을 바라본 리오는 씨익 웃으며 양손에 마법진을 전개하였다.

“없애버리겠다! 3급, <다이아 드라이버>!”

리오의 마법진 앞엔 대지와 공기 중에 있는 탄소들이 급속히 모여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수십 개 이루었고 그 조각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무인 요격기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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