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19화
대신관의 호른 소리에 리오와 헤리온은 경기장으로 나섰다. 좀 전의 대결에서 큰 부상을 입은 헤리온은 승려들의 마법과 약초에 의한 치료로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후으음…”
리오는 오른팔을 돌려보며 몸을 풀었다. 피곤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헤리온도 심호흡을 잠깐 해보았다. 체내의 기가 약간은 불안정했지만 대전 중에 충분히 회복될 것 같았다.
“엇?”
헤리온은 리오의 가슴팍을 바라보고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슈와의 대전 중에 망토 가슴 부분이 잘렸을 텐데…?’
하지만 망토엔 흠집조차 보이지 않았다.
“뭘 보는 거요?”
리오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헤리온을 보았다.
“아, 아니오. 실례를 용서하시오.”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망토는 당신이 대전할 때 수선해 두었소. 못 본 게 당연하지.”
그러나 수선한 것 치고는 너무나 자리가 깨끗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헤리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리오와 헤리온은 각자의 자리에 선 후 자세를 취하였다.
“잘 부탁하오. 리오 스나이퍼씨.”
“나야말로, 헤리온씨.”
둘은 말을 간단히 주고받은 후 호른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공방전을 개시했다.
“핫!”
리오가 먼저 수평으로 검을 휘둘러왔다. 헤리온은 창을 비스듬히 세워서 공격을 받아내었다. 정면으로 직접 받아내면 창이 두 동강 날 우려가 있어서였다. 리오의 경우엔 특히 그랬다. 날카로운 금속성이 경기장 하늘을 울리고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허어… 저 사나이는?”
라가즈는 리오의 공격 자세와 차림새를 보면서 말했다.
“왜 그러오 라가즈.”
왕의 물음에 라가즈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완전 공격형 기사군요. 갑옷이나 방패 등 방어구는 일체 장비하지 않고서 검 하나에만 의지하는 형태랍니다. 저런 기사들이 검 솜씨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사막 지방의 기사들이 거의 그런 형태입니다.”
“리오는 사막 지방의 사람이 아닌데요?”
“그쪽에 많다는 겁니다 공주님. 그런데 공주님께서는 저 사나이에게 관심이 많으시군요. 구면이신가요?”
말스왕이 살며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저 사나이가 공주를 여기까지 호위해 왔소. 당신의 제자도 그와 같이 왔다고 하오. 저번에 보니 검 솜씨가 정말 일품이더군, 슐턴이 그렇게 쩔쩔매는 건 처음이었지?”
“아… 그래서 그러셨군요.”
라가즈도 웃으며 말했다.
“으읏!”
헤리온은 빠르게 몸을 젖혔다. 얇게 치이잉 하는 소리가 그의 갑옷에서 들려왔다. 간발의 차이로 리오의 검이 헤리온을 스친 것이었다.
`빈틈이 없다! 그리 가벼워 보이는 검을 휘두르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잡념은 금물이야!”
리오의 공격이 재차 감행해지자 헤리온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뒤로 살짝 뛰었다. 창은 원거리에선 발군의 전투력을 보여주지만 근거리에선 그리 빠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리오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헤리온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돌진해 오는 리오와 피하는 헤리온의 상황은 얼핏 보면 호각이라 하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창을 가진 내가 불리하다. 그렇다면…’
“흐랴앗!!”
리오는 거의 파죽지세로 검을 휘둘러왔다. 헤리온은 그것을 피하면서 정신을 집중하였다. 전세가 리오에게 약간 기울었다고 생각될 때쯤 헤리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리오의 수직 자르기가 나왔을 때.
“하앗!”
헤리온은 리오의 거센 공격을 창으로 받은 후 왼손에 창을 거머쥐고 강하게 파고들며 리오의 가슴 부위를 오른쪽 팔꿈치로 강하게 밀어쳤다.
“컥!”
생각지 못한 헤리온의 반격에 리오는 잠시 주춤했다. 가슴을 맞은 이유도 있었다. 헤리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오 쪽에서 뒤로 물러섰다.
리오는 강하게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헤리온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호오… 창술뿐만 아니고 체술도 익히셨군. 몰랐어.”
입술을 오른팔의 아대로 훔치면서 리오는 감탄하듯 말했다.
“이렇게 하면 창술의 빈틈이 없어지거든. 하지만 그 공격을 받고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다니 놀라운걸?”
헤리온은 다시금 자세를 취하면서 리오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재미있군!”
리오는 특유의 미소를 띄우면서 검을 두어 번 공중에 휘둘렀다.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하아앗!”
두 사나이는 서로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헤리온은 리오가 공격 범위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섣불리 공격했다간 언제 몸이 두 동강 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반면에 리오는 자신 있게 선제 공격을 해왔다.
“명왕 사연참(冥王 四連斬)!!”
이른바 연속 공격, 상대의 급소만을 노리는 검기를 네 번 연속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처음에는 중간, 다음에는 하단, 그리고 나서 비스듬히 올려 자른 후 강격으로 마무리를 짓는 살벌한 공격을 헤리온은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막아내었다.
“으윽!!”
마지막의 강격으로 창을 두 동강 내려고 했던 리오는 생각보다 강한 내구성에 약간은 놀랐다.
`드워프의 작품이라 다르긴 다르군. 대단한 내구력이야.’
리오는 더 이상 생각할 틈이 없었다. 곧바로 헤리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긴 창을 쉴 새 없이 휘두르며 리오와의 거리를 천천히 벌려놓은 헤리온은 클루토와의 대전에서 사용했던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도 거의 회복되었고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체력이 바닥날 것 같아서였다.
“연옥수신충!”
헤리온만의 신기라 불리우는 이 기술은 슐턴도 정면으로 받기를 꺼려할 정도의 대단한 기술이었다. 초당 열 발 이상의 찌르기이니 근처에만 다가가도 살점이 날아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받아 쳐주지!”
헤리온의 창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리오가 받아치는 속도도 빨라졌다. 검광이 보라색에서 서서히 붉은색으로 바뀌어 가며 리오의 기술이 터져 나왔다.
“간다! 혈화난무(血花亂舞)!”
한마디로 난전이었다. 금속이 깎여나가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소음이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슐턴 등의 호장들은 연옥 수신충을 받아치는 광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에 숨을 멈췄다. 단 한 사람 빼놓고…
“전광 미진참이 더 빠르다구…”
바이칼은 투덜대며 고개를 돌렸다.
“아앗!”
헤리온의 비명과 함께 그의 창은 경기장 밖으로 날아갔다. 연옥 수신충을 사용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리오도 즉시 검을 멈추었다. 헤리온은 손이 마비된 듯 팔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과연 강하군, 속도만큼은 내가 위인 줄 알았는데…”
헤리온은 패배를 인정하는 듯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도 꽤 강했어. 슐턴만큼.”
리오는 검을 집어넣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어떻소, 당신이 보기엔.”
말스왕은 리오를 평가해달라는 듯 라가즈에게 물었다.
“음… 아마도 전에 나온 바이칼이란 사나이와 비슷한 실력일 것 같습니다.”
“그렇소? 난 바이칼이란 사나이가 더 강할 것 같은데…?”
“바이칼이란 사나이는 자신의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건 리오도 마찬가지이지요. 바이칼이란 사나이가 실력을 약간 더 보여준 것뿐입니다.”
왕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음 경기를 위해서 경기장으로 올라오는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결승전이 기대되는군.”
“예, 아마도 지금까지 보여졌던 어떤 결승전보다도 흥미로울 겁니다.”
대신관의 호른 소리와 함께 슈레이와 바이칼은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글래머 장군,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훗, 걱정 말라구. 하지만 이번에 나에게 진다면 약속은 무효야, 알겠지?”
바이칼은 그런 억지가 어디 있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자신이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마음대로, 어차피 내가 이길 건 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