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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98화


파아앗!

레드 노드의 날과 정면으로 충돌한 석화 마법 <브레이크>는 아무런 소득 없이 사라져 버렸고 다크엘프는 또한번 놀라게 되었다.

“으! 레드 노드가 마법까지 방어할 수 있다니!”

다크엘프는 지금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케톤과 와이번들을 모조리 없애버린 리오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분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하였다. 이번엔 전과 같은 공격 마법이 아닌 보조 마법인 듯했다.

“이번 일은 꼭 기억해 두지! 내 이름을 기억해라, 난 다크엘프 <루비텔>이다! 후에 보자! <텔레포트>!”

루비텔의 몸은 곧 빛과 함께 사라졌고 케톤은 꽤 지친 듯 한숨을 쉬며 레드 노드를 거두었다.

“후우… 힘든 상대였어.”

케톤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심한 움직임을 한 근육을 풀어주며 쓰러져 있는 페릴이란 청년에게 다가갔다. 페릴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케톤에게 도움을 받기는 싫은지 거의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케톤의 도움을 미리 거절했다.

“칫, 얼굴에 비해 검을 잘 쓰는군. 난 <페릴 자이판>이라 하오, 보시다시피 검술을 익히러 여행을 하는 중이지. 그러다가 이 꼴이 되긴 했지만… 아차, 트리네!”

페릴은 그제서야 자신의 동료가 생각났는지 허둥대며 그녀를 찾았고 케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전투 전에 벗었던 자신의 부분 갑옷들을 찾아 다시 장비하였다.

“여기에요 페릴.”

트리네는 어느새 찢어진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녀의 왼팔엔 차곡차곡 접은 케톤의 망토가 들려 있었다. 페릴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길게 쉬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다친 곳은 없어? 나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정말 미안해….”

“아, 아니에요 페릴. 약속을 지키려다가 이런 것뿐이니 괜찮아요.”

트리네는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페릴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어디선가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후후훗… 아, 죄송… 하하하핫.”

웃음소리의 주인공인 리오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두 여행객을 바라보다가 그만 실소를 하고 만 것이었다. 다혈질인 페릴은 자신의 상처도 잊은 채 리오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리오의 앞에서도 그는 질린 기색 없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봐! 얘기하는 중에 웃는 것은 실례라는 것 아나! 왜 웃었는지 어서 얘기해!”

리오는 자신의 수염을 슬슬 만지면서 너무나도 솔직하게 그 이유를 말했다. 그의 얼굴엔 아직도 웃음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흠… 굳이 말을 하자면, 형씨하고 저 엘프 아가씨가 서 있으니까 형씨가 좀 작아 보이더라고요. 물론 저 엘프 아가씨가 워낙 큰 거겠지만. 내가 솔직히 실수했으니 정식으로 사과를 하….”

그러나, 페릴의 귀엔 리오의 사과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페릴의 키가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전사들에 비해 작은 편이어서 그의 머릿속엔 항상 콤플렉스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리오의 망토 자락을 움켜쥐며 소리를 크게 치기 시작했다.

“이 자식!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다 이거지! 결투다!”

“… 사과는 들어야 하는 거 아니오?”

리오는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페릴에게 말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린스는 귀나 후비며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트리네와 케톤은 둘을 말리기 위해 그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과는 무슨 사과야! 여기서 널 눕혀 버리겠어!”

리오는 아무래도 페릴의 흥분을 멈추려면 물리력 이외에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리오는 페릴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에 조용히 말했다.

“이 정도면 나보다도 크니 불만 없겠지… 더 이상 지껄여대면 영원히 키에 대해 생각 안 하게 해주겠어!”

“크, 크윽!?”

페릴은 한 손으로 자신을 장난감처럼 들어 올린 리오의 괴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릴은 잠시 의식을 잃었던 탓에 리오가 와이번 네 마리를 쓰러뜨리는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점점 나빠져 가는 둘의 사이에 트리네가 끼어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페릴씨의 실례를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리오는 잠시 트리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엘프답게 단아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180㎝ 가까이 되는 늘씬한 키를 가지고 있어서 같이 다닌다는 페릴이 약간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리오는 빙긋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 역시 나보다는 작아….’

리오는 곧바로 페릴을 놓아 보았고 머리를 긁적이며 트리네에게 허리를 살짝 굽혀 보였다.

“별말씀을, 오히려 제가 사과할 일입니다. 좀 전의 실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리오의 정중한 사과를 받은 트리네는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자아, 오늘은 피곤하니까 민가에라도 가서 쉬자구 꺽다리. 케톤도 피곤할 거야, 그렇지?”

린스는 케톤을 바라보면서 윙크를 살짝 해 보였고 케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리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며 말했다.

“한 일은 뭐 있으시다구… 이 마을 촌장님께는 제가 부탁드려 보지요.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아가씨.”

리오는 걸어가며 가만히 린스의 말을 되뇌어 보았다.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꺽다리라… 오래간만에 듣는데?”

촌장은 기꺼이 린스 일행의 숙박을 받아들였고 꽤 넓은 편인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하였다. 물론 트리네와 페릴도 함께였다.

리오를 제외한 일행은 침대에 쓰러져 저녁 시간이 올 때까지 잠을 청하였다. 레프리컨트 2위의 기사인 케톤 역시 잠의 유혹에선 벗어날 수 없는 듯했다. 그들이 자는 사이에 리오는 세면실에서 조용히 칼을 들어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약간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리오의 몸을 더더욱 근육질로 보이게 하는 피부가 면도날이 지나간 자리에 선명히 나타났다. 텁수룩한 수염이 없어진 리오의 얼굴은 케톤의 미소년 같은 이미지와는 매우 달랐다. 그렇다고 페릴과 같이 터프한 얼굴도 아니었다. 꽤나 잘 정돈된 깨끗한 얼굴이었다. 미소를 띠우거나 우수에 찬 표정을 짓는다면 로맨스를 좋아하는 여성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법한 얼굴이었다.

“… 4년 동안 기른 건데, 젠장.”

리오는 아깝다는 듯 투덜대며 나머지 수염을 마저 잘라내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일행은 반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 촌장의 가족이 마련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왕성을 떠난 3일 동안 마른 빵이나 토끼 고기만을 먹어오던 린스는 볼품은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담백한 향을 가진 그 음식들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케톤은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의자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고 페릴은 상반신에 감은 붕대가 불편한지 약간 쓰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오는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어, 트리네 씨가 없네? 다이어트라도 하는 건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린스는 수프를 뜨면서 표정을 구긴 채 리오를 바라보았다.

“엘프가 무슨 다이어트야, 트리네는… 어라?”

린스는 리오가 면도한 모습을 그제서야 보고 놀란 듯 뚫어지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케톤과 페릴도 의외라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리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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