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00화
“저 기둥이 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잠든 사이에 갔다 오지 뭐.”
그림자, 리오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마을 바깥에 갑자기 솟아난 기둥을 향해 밤을 달렸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리오는 탑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는 아직 흙이 묻어 있는 기둥의 주위를 조용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 문자가 쓰여있군. 이런 기둥이 있다는 건 주신께도 듣지 못했던 건데….”
리오는 기둥의 표면에 쓰여있는 문자를 살피기 위해 자신의 시력을 조절했다. 곧 리오의 두 눈은 붉은색 광체를 내기 시작했고 그의 시각은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으로 물체를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물론 시야가 온통 붉은색이라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문자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리오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시각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나서 팔짱을 낀 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설마 이곳이 주신께 말로만 듣던 <다공간 차원>인가?”
리오는 심각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 어떻게 이 일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군. 우선은 린스 공주를 데려다 달라는 곳까지 데려다준 후에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 하지만 원인도 모르는데…?”
고민인 듯 머리를 다른 때보다 세차게 긁어본 리오는 한숨을 쉬며 다시 엣센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속 무거운 짐이 또 하나 늘게 된 것이었다.
다음날, 일행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엣센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관청이 있는 도시가 엣센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다는 촌장의 어젯밤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다크엘프 넷을 마른 생선처럼 꽁꽁 묶은 채 밖으로 끌고 나온 리오는 다른 방향에 서 있는 페릴과 트리네를 바라보았다.
“어, 같이 안 갈 거예요?”
리오는 의외라는 듯 그들에게 물었고 트리네는 아쉬움이 담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저희들의 수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아쉽지만 후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죠, 모두들 무사히 뜻한 바 이루시길… 자, 가죠 페릴.”
“으음, 그럼 또 봅시다 형씨!”
페릴은 쾌활하게 인사를 하며 자신의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트리네와 함께 마을을 먼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케톤과 린스는 아쉬운 듯 그들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고 리오는 아무 말 않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일행 역시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에 곧 엣센을 떠났다. 린스는 더 있다가 가고 싶은 생각이 있는 듯했지만 케톤과 리오가 너무나 미련 없이 마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엣센 촌장이 가르쳐준 큰 도시, 그것은 지도에도 나와 있는 항구도시 <트립톤>을 말하는 것이었다. 해상 상업이 예전부터 발달하여 레프리컨트 왕국의 가장 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즈음, 일행은 상쾌한 해풍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린스는 성 안에만 있었던 탓인지 리오와 케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바다라는 것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한 이유였다.
“바다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흐음… 그럼 직접 보도록 하세요 공주님. 속이 탁 트일 테니 말이에요.”
리오는 숲이 끝나는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씨익 웃어 보였다. 린스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곳으로 가 보았다. 따가운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눈을 크게 뜬 린스는 입을 크게 벌리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이것이 바다라는 거야?”
모든 것이 푸른색… 호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광활한 규모와 상쾌한 기분에 린스는 리오의 말 그대로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린스는 곧 팔짝팔짝 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기 시작했다.
“꺄앗! 어서 가보자 모두들! 어서어서!”
린스는 곧바로 아래에 보이는 트립톤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케톤은 쓸쓸한 눈빛으로 린스의 즐거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성 안에 계시느라 바다도 보지 못하시다니, 불쌍하신 분….”
그 말을 들은 리오는 피식 웃으며 케톤의 등을 손바닥으로 툭 치고 말했다.
“오늘 우리가 보여 드렸잖아. 자, 공주님께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어서 내려가자구.”
케톤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리오의 모습을 보고 배워야겠다 생각하며 린스를 따라 트립톤으로 향했다. 리오는 한숨을 짧게 쉬며 잡고 있던 끈을 잡아당겼다.
“너희들도 가자구!”
입에 재갈을 물린 다크엘프들은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리오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리오가 무슨 재주를 썼는지 다크엘프들은 마법은커녕 힘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리오가 잡아당기는 끈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 외엔 없었다.
도시에 당도한 린스와 케톤은 신분증이 있었기에 문제없이 통과했지만 리오는 신분증이 없었기에 도시 입구에서 약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린스와 케톤에게 말했다.
“먼저 가셔서 정보나 얻어봐요. 전 이 예쁜 아가씨랑 여기서 시간 좀 보낼 테니까요. 하하하….”
린스와 케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고 리오는 자신을 막고 있는 여자 경관과 계속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참나, 계속 이러면 못생겼다고 할 거예요! 다크엘프도 잡아왔는데 이러기예요 진짜?”
리오의 붉은 머리와 큰 키에 아까부터 압도되던 경관이었지만 자신의 직분은 어길 수 없다는 듯 용기를 내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 다크엘프인지 어떻게 알아요! 어쨌든 확인하러 상급 경관분들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젠장, 맘대로 하십시오. 꽉 막혀가지고….”
리오는 팔짱을 끼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고 여경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리오를 쏘아보았다.
도시 안으로 향하던 린스와 케톤은 도중에 배에 열을 지어 타고 있는 여행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상인들이 타는 것 같은데요? 동방으로 가는 것 같군요.”
“동방? 그런 곳도 있었어?”
동방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 케톤에게 들은 것이 처음인 린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케톤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 저희가 있는 마우이 대륙의 동쪽에 있는 신대륙을 말하는 겁니다. 저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요. 제가 아는 바는….”
‘동방’이라 불리는 대륙이 마우이 대륙에까지 알려진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은 근래의 일이었다. 마우이 대륙의 각 왕국이 각자의 기사들을 가진 것처럼, 그들은 무인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무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무술에 ‘유파’라는 것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였다. 그리고 마우이 대륙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동방에선 ‘정신술’을 사용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은 린스에게 동방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으나 현재 해야 할 일이 다시 그녀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결국 린스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돌아섰다.
“… 다른 곳으로 가보자 케톤.”
린스는 허리까지 기른 자신의 금발을 해풍에 날리지 않도록 매만지며 걸음을 옮겼다. 케톤 역시 아무 말 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근데, 노엘이 어디 사는지 케톤은 알고 있어? 엄마가 그것을 말해주시지 않으셔서 말이야.”
케톤은 그 말을 듣고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학자 노엘이 어디 있는지 그 역시 들어본 역사가 없어서였다.
“저어… 그것은 말이지요….”
그때, 다른 집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던 한 가옥에서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솟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근처의 주민들은 그 가옥의 주위에 몰려들었고 연기가 뿜어지는 집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콜록… 실패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