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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09화


“…아슈탈을 알고 있나?”

케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의 눈엔 케톤과 아슈탈이 알고만 있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린스가 무슨 일을 시켜도 짜증 한번 낸 적이 없는 케톤이 그렇게 화낸 것을 보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아슈탈은 제 조부님 아래에서 저와 함께 검술을 배운 녀석입니다. 잘 배워나갔고 저와 제 가족들과도 사이좋게 지냈지요, 처음에는…. 그러다가 제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저와 아슈탈은 같이 레프리컨트 왕국 무도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와 아슈탈은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고 결국 제가 승리하게 되었지요. 그때, 그 녀석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지 않고 조부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불공평하다고 느꼈나 봅니다. 결국 화가 난 저는 그 녀석과 다시 한번 일대일 대결을 벌였고 제가 또 이겼습니다. 아슈탈은 그길로 레프리컨트 왕국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지요. 그 후, 1년 전에 그 녀석이 마왕 아슈테리카를 물리쳤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었고 오늘 본 것이 2년만입니다.”

리오는 턱을 괴며 케톤에게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넌 왜 그렇게 아슈탈을 싫어하는 거지?”

그 질문을 들은 케톤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한숨을 쉰 후에 입을 열었다. 대답을 하려는 도중에도 굉장히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슈탈은… 제 누나와 함께 마왕을 물리쳤습니다. 제 누나는 노엘 선생님께도 마법을 가르쳐줄 만큼 굉장한 소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연하인 아슈탈을 사랑했었죠. 그런데 그 녀석이… 누나가 마왕의 마지막 공격으로 인해 이공간(異空間)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요!! 누나가 분명히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 말이에요!!! 그렇게 그 녀석이 직접 이야기했기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제 손으로 그 녀석을 죽이려다가… 살려주었지요. 그리고 1년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케톤의 말을 들으며 표정을 점점 어둡게 했던 리오는 케톤의 말이 끝나자 그의 어깨를 양손으로 꽉 쥐며 말했다.

“…알았어. 잘 참았었구나 케톤. 그럼 마지막으로 묻지, 넌 네 누나가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나?”

케톤은 말없이 리오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마동왕은 오늘 트립톤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이 담겨있는 수정 구슬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거인 사이크롭스의 목숨을 일격에 빼앗는 여자의 정신술과 리오라는 이름의 떠돌이 기사의 검술에 그는 내심 탄복하고 있었다. 앞에 서있던 라기아는 그것 보라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봐요 마동왕. 이 자가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우연은 아니었죠?”

마동왕은 마지막 코볼트가 트립톤 경관들의 칼에 잘리는 장면을 끝으로 수정 구슬을 헝겊으로 덮었고 라기아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 아무래도 레프리컨트 왕국에서 나타났던 그 괴물 녀석과 무슨 연관이 있는 녀석인 것 같아. 수만에 가까운 병사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라면 사이크롭스 한두 명은 장난이겠지. 왜 린스 공주에게 붙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같이 있다면 노엘보다 더한 걸림돌이 분명할 거야.”

라기아는 가만히 앉아서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마동왕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후후훗…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설마 직접 나서시진 않겠죠?”

마동왕은 귀찮은 듯 라기아의 팔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놓으며 다시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 벨로크 공국의 장성들을 너무 우습게 보진 말도록. 그건 그렇고 다른 차원의 문명을 흡수하는 건 잘 되어가나?”

라기아는 자신의 회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과학자라는 인간들을 벌써 수십여 명 잡아들였으니까요. 게다가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있답니다.”

“기쁜 소식?”

라기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 보인 후 말을 이었다.

“1년 전, 멍청하게도 죽어버린 고위 마귀족 아슈테리카의 시신을 발굴해 내었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납치한 과학자들에게 시신을 이용하여 더욱 강력한 생물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마동왕은 아무 말 없이 다리를 꼬며 눈을 감았다. 말이 없는 편인 마동왕에게 오늘은 목을 꽤 혹사한 날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기 싫어진 것을 느낀 라기아는 빙긋 웃으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돌아서며 마동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럼… 전 계속 일하겠습니다. 호호홋….”

라기아가 나간 뒤에, 마동왕은 옥좌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방은 한 나라 왕의 방 치고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마동왕은 베일이 쳐진 한쪽 벽을 향해 걸어갔고, 그 베일을 걷었다. 그 베일 안에는 한 여인의 초상화가 가려져 있었다. 마동왕은 그림의 여인에게 키스를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라이센>… 꼭 당신을 되찾을 거야.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외장(外場) <바람의 전사>

<그 일>이 끝난 지 한 달하고 보름이 약간 되었다. 지크는 오래간만의 여름 휴가를 집에서 즐기는 중이었다. 물론 잠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가져다 놓은 찬 음료수가 따뜻해질 무렵, 낮잠을 즐기던 지크는 잠에 취한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는 완전히 헝클어졌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인 지크는 음료수를 한 번에 들이킨 뒤에 옷을 갈아입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제기랄… 휴가가 뭐 이래.”

간단히 세면을 끝낸 지크는 부엌의 냉장고를 샅샅이 뒤져 음식을 식탁에 벌려 놓았다. 천천히 빵을 씹으며 지크는 집을 가만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가셨네. 하긴, 문구점은 일찍 나가야 하니까. 그래도 아들 아침은 차려주셔야 하잖아….”

빵 하나를 다 먹던 지크는 갑자기 빙긋 웃으며 회상에 잠겼다. <그 일>… 생전 처음 가보는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의 일. 죽을 뻔도 했었지만 그만큼 자신에겐 재미있었는 듯했다. 마지막에 일이 틀어져 자신의 형제 한 명이 아직도 고생한다는 소식을 천계에 있는 동생에게 전해 듣기도 해서 그의 마음은 완전히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그런 곳은 다시 가진 않을 거야. TV도 없는 그런 곳에 가서 뭘 하겠다고.”

식빵 여섯 개와 햄 두 통을 어느새 비운 지크는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이나 더 자자… 내가 자면 얼마나 잔다고, 이때 다 자둬야지 뭐.”

그러나, 지크는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 발걸음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쿠웅!

막 문을 열려는 때에 자신의 방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지크는 눈을 번쩍 뜨고서 자신의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기인 태도(太刀), 무명도가 없이도 기계 덩어리 수십 대는 박살 낼 수 있는 주먹이었다.

“간닷–!!”

문을 벌컥 열어젖힌 지크는 크게 소리를 치려다가 자신의 방 안의 상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어서도 그랬고, 방 안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이 왜 그 꼴이 되어 있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슈, 슈렌!? 어떻게 된 거야!!!”

푸른색 장발에 귀공자와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사나이, 지크의 형제 중 한 명인 슈렌이었다. 그는 지크가 자신을 일으키려 하자 고개를 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그만둬…! 지금 너와 나에게 이럴 시간이 없어. 그리고 이 부상은 임무를 다 마치고 입은 것이니까 걱정하지 마. 빨리… 네 왼손으로 내 왼손을 잡아라…!”

지크는 슈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죽어가는 것이 분명한데… 그러나 슈렌의 성격을 알고 있는 지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왼손을 잡았다.

“뭘 어쩌자는 거야? 말이나 해줘!”

자신의 왼손이 잡힌 감각이 오자, 슈렌은 침을 꿀꺽 삼킨 뒤에 입을 열었다.

“…사실… 그대로 저승에 가보려고 했었지. 하지만 우연치도 않게 굉장한 일을 알아버리고 말았지. 지금… 리오가 있는 세계는 네가 맡고 있는 이 세계와도 관련이 있고 리오나 네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엄청난 일이 생기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힘이 없어… 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내 힘 중 하나, 불을 이용하는 힘을 너에게 맡기겠다.”

말을 마친 슈렌은 자신의 모든 힘을 왼손에 불어넣었고 동시에 지크의 왼팔에선 큰 불꽃이 솟아났다. 지크는 흠칫 놀라며 슈렌을 바라보았고 슈렌의 몸은 어느새 전등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넌 <바람>이니까… 나의 <불>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부탁한다 지크…!”

그 말을 끝으로, 슈렌의 몸과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소지품은 한 무더기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갔다. 지크는 허망한 눈으로 슈렌이 누워있던 장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런 제길…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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