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10화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지크는 자신의 검은색 가죽장갑을 강하게 조여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슈렌의 말을 들어보아 저번 이상의 위험한 일이 기다릴 게 뻔했지만 그의 부탁도 있고 해서 안 갈 수는 없었다.
“지크, 어디 가는 거니?”
그의 어머니-나이 차이가 열 살인데도 어머니다. 그녀가 대학생일 때부터 고아였던 지크의 어머니 역할을 잘해준 지크의 최고 은인이다. 그녀의 물음에 지크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휴가잖아요. 어디 여행 좀 갔다 올 생각이에요.”
그러나 지크의 어머니는 한숨을 쉬어 보였다. 그녀가 보기엔 전혀 여행 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어서였다. 지크를 처음 만났던 열 살 때부터 쭉… 그 아이는 이상하게도 싸움에 집착하여 왔다. 그러나, 그가 해왔던 모든 싸움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자신만을 위해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또 있는 거지? 한 달 전에도 여행 간다면서 6일 동안이나 집에 안 들어왔잖아.”
지크는 뜨끔했다. 역시 십 년이 넘게 자신을 길러준 사람이어서 아무리 지크라도 속이기 힘든 건 당연했다. 지크가 아무 말이 없자, 예상했던 결과라는 듯 그의 어머니는 지크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네가 나가서 무슨 일을 하던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고 있단다. 비록 14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같이 있었어도 난 네가 어떤 남자라는 걸 잘 알고 있어. 내 나이가 30대이긴 해도 네 어머니이니까. 호호홋….”
그 말을 들은 지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작은 어머니를 꽉 껴안으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어머니. 당신이란 분이 저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반시간 뒤, 지크는 무명도가 든 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매고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긴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어머니는 현관문에 기대어 지크의 모습이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봐 주었다.
4장 <전개>
“으음… 여긴…?”
의식이 돌아온 아슈탈은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에 복부를 매만지며 천천히 눈을 떴다. 가구도 없고 방 하나에 자신과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라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으윽… 어떻게 내가 의식을 잃은 거지? 그리고 블루 노드는…?”
그렇게 주위만 둘러보고 있을 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기회라 생각한 아슈탈은 재빨리 몸을 문 옆에 대고 사람이 들어오기만을 노렸다.
끼이익–
“어머? 이 사람 어디 갔나? 이상하네….”
방 안에 들어온 사람은 무테 안경을 쓰고 있는 큰 키의 미인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가 돌아서려고 하자, 아슈탈은 그녀의 뒤를 덮쳐 왼팔로 그녀의 목을 꽉 졸랐다.
“아앗!? 무슨 짓이에요!!!”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으나 용사라고까지 칭해지는 아슈탈의 힘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아슈탈은 그녀의 목을 조른 채 천천히 방 밖으로 나섰다.
“케, 케톤! 스나이퍼 씨!! 누가 나와서 좀 도와줘요!!!”
그녀가 크게 소리침에도 불구하고 아슈탈은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군가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곧 방문들이 차례로 열리고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재빨리 거실로 달려 나왔다.
“아, 아슈탈!? 네 녀석, 이제 여자를 인질로 비겁한 짓까지 하는 거냐!”
아슈탈은 자신에게 소리친 청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 맹세했던, 자신의 옛날 친구이자 자신에게 패배라는 것을 안겨준 최초의 사람인 케톤·프라밍이었다.
“케, 케톤!? 네 녀석이 왜 이곳에 있는 거냐!!”
“듣기 싫다! 너 같은 더러운 자식이 알 필요는 없어!! 잔말 말고 노엘 선생님을 놔드려라!”
아슈탈은 무언가 소리치며 반박하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무장하지 않은 여자를 인질로 삼은 것은 정당한 일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아슈탈은 노엘을 풀어주며 당당한 말투로 케톤에게 말했다.
“내 검과 소지품을 돌려줘. 그럼 그냥 가겠다.”
아슈탈의 말투를 들은 린스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듣기 거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봐 멍청이. 두들겨 맞아 길바닥에 쓰러진 걸 미안한 마음에 데리고 와서 치료해주었더니 고맙다는 말은커녕 일을 벌이고 뭐가 어째? 감사하다 인사하고 노엘에게 사과하면 짐은 돌려주겠어. 하지만 계속 그런 투로 지껄이면 더 두들겨 줄 거야.”
아슈탈은 린스의 건방진 발언에 순간 치밀어 오른 듯 린스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멱살을 잡고 크게 소리쳤다.
“시끄러워!!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그 광경을 본 케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아슈탈에게 한 방 선사하려 했으나,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케톤은 깜짝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리오가 웃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 녀석은 내가 혼내주지. 넌 가만히 있어.”
케톤은 아직도 린스에게 소리치고 있는 아슈탈과 리오를 번갈아 쳐다본 후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 한숨을 쉬어 보았다. 리오는 케톤의 어깨를 살짝 건드린 후 천천히 아슈탈에게 다가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으윽–!?”
순간, 아슈탈은 짧은 비명과 함께 자신의 덜미를 잡은 엄청난 힘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 힘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이적인 것이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아슈탈은 린스를 놓아주었고 린스는 리오를 한 번 쳐다본 다음, 분한 듯 울먹거리며 의자에 앉아있는 노엘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리오는 쓴웃음을 짓고는 아슈탈을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검과 소지품을 돌려주겠다. 단… 제 발로 걸어서 떠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말을 마친 리오는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검과 아슈탈의 검을 가지고 나왔고 아슈탈에게 나오라는 듯 밖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쳇, 감히 누구에게…!!”
아슈탈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리오를 따라 나서려고 했다. 그러자, 뒤에서 케톤이 그에게 충고하듯 말해주었다.
“한 가지만 말해주마 아슈탈, 저 사람에게만 특히 어울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는 것 말이야.”
아슈탈은 멈춰 서서 케톤을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케톤은 짧게 말을 이었다.
“…바로 <무적>이다. 나와 같다고 생각하면 죽을 수도 있어.”
“칫, 그딴 헛소리를…! 보기나 해! 저 빨간 머리를 길바닥에 눕히는 모습을 말이야!!”
아슈탈은 밖으로 뛰쳐나갔고 케톤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저었다.
“…그도 리오 씨가 어떤 사람이라는 건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케톤 씨.”
옆에 서있던 레이가 아슈탈의 뒷모습을 보고 말하자, 케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예요. 하지만 그 녀석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굽히지 않을 거예요. 그것보다 제발 리오 씨가 흥분하지 않았으면….”
리오는 자신과 마주 서 있는 아슈탈에게 그의 검, 블루 노드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 디바이너를 뽑아 들었다. 아슈탈 역시 블루 노드를 뽑아들고 자세를 취하였다.
“시작하자 멍청이.”
리오의 말을 시작으로, 아슈탈과 리오의 일대일 대결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슈탈은 기합을 있는 대로 넣으며 리오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푸른색 검광이 블루 노드가 지나간 자리를 선명히 나타내 주었다.
“좀 더 빠르게 휘둘러보시지!”
리오는 슬쩍슬쩍 움직이며 아슈탈의 검을 모조리 피했고 그럴수록 아슈탈은 이를 악물고 더욱더 강하게 리오를 공격해 나갔다. 현재 리오는 망토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잘 보였고 케톤은 기회라는 듯 유심히 리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굉장한데요? 최소의 움직임으로 아슈탈의 공격을 피하고 있어요. 저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필살기라 칭해지는 그레이 공작님의 <텔 브레인 어택>을 피할 수 있을지도…!”
노엘은 아직도 켁켁거리며 케톤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의 조부와 마찬가지로 검에 관한 관심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현재 자신이 보고 있는 리오의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본 적은커녕 들은 적도 없는 독특한 움직임이었다.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이상하다 생각할 정도로 잔상이 생겼고 맞는 것 같으면서도 그러하지 않았다. 너무나 신기해서인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케톤에게 물었다.
“케톤은 저렇게 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