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11화
“예? 그, 글쎄요…?”
노엘의 그 질문을 들은 순간, 케톤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보고 있는 리오의 움직임이 인간 근육의 한계를 초월한 움직임이라면…?
현재 맞붙어 싸우고 있는 아슈탈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정확히 맞추어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블루 노드는 언제나 허공을 가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앗!!”
계속 공격만을 하던 아슈탈은 힘이 빠진 듯 순간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말았고 리오는 디바이너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턱으로 아슈탈에게 오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그것은 분명한 도발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아슈탈은 다시 리오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알 것 같아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이, 아니 케이는 알겠다는 듯 빙긋 웃으며 케톤과 노엘에게 자세하진 않았지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리오 씨의 움직임 말이에요, 저것은 동방의 무술가들이 사용하는 움직임과 비슷하군요. 동작 하나하나에 교묘한 속임수가 들어 있어서 눈으로는 간파하기 힘들지요. 동방 무술가들의 움직임과 다른 점이라면… 리오 씨의 잔상, 이것은 뭐라 설명하기 힘드네요. 그것 때문에 저라도 리오 씨를 제대로 공격하긴 힘들 것 같아요.”
케톤은 갑자기 머리색과 말투가 변한 그녀를 바라본 후 흠칫 놀랐고 노엘은 안경을 고쳐 쓰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아, 그건 그렇고 공주님은 어떻게 했어요 첸양?”
“어, 어머! 죄송해요 선생님, 하도 궁금해서 그만… 다시 동생에게 맡길게요.”
케이는 허리를 굽혀 노엘에게 사과한 뒤, 린스가 있는 방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그녀의 머리색은 진홍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후우… 하여튼 대단한 자매야. 근데 언제 스나이퍼 씨가 싸움을 끝낼 것 같나요?”
노엘의 물음에 케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들었을 때 제 발로 걸어서 보내지 않겠다고 한 것을 보아 약간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좀… 걸리겠죠.”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슈탈은 제풀에 지쳐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실신하였고 리오는 가볍게 땀을 닦으며 디바이너를 거두었다.
“훗… 바이론 녀석에 비하면 넌 어린애다 멍청이. 어이- 케톤! 이 녀석을 근처 여관에 갖다 두고 올 테니 집 잘 지켜. 갔다 올게요 아주머니.”
쓰러진 아슈탈을 어깨에 들쳐멘 리오는 조용히 여관가로 향했고 케톤은 한숨을 쉬며 창문을 닫았다. 그때, 노엘이 린스에게 가보려는 케톤의 등을 툭툭 치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어… 케톤. 제가 그렇게 늙어 보여요?”
그 질문에 케톤은 답변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노엘의 얼굴은 그렇게 늙어 보이는 편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지성인의 느낌이 그녀를 보통 여성과 다르게 보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하던 케톤은 지금까지 리오의 약간 거친 말투를 상기하며 그가 노엘을 아주머니라 자주 부르는 이유를 예상하여 보았다.
“아, 리오 씨는 아마 <노엘 선생님>이라고 선생님을 칭하기 ‘귀찮아서’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요?”
노엘은 그 말을 듣고 잠시간 멍하니 있다가 곧 크게 웃기 시작했다. 몸을 주체 못 할 정도로….
“하하하하핫… 아휴, 정말 스나이퍼 씨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람은 린스 공주님 이래 처음이군요. 굉장한 성격이에요, 호호호호홋….”
계속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노엘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케톤의 얼굴엔 그녀가 더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게 드러나 있었다. 곧 케톤 역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하여간… 전부 괴짜라니까.”
다음날 아침.
모든 짐을 정리한 일행은 노엘과 친숙해 있던 근처 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트립톤을 떠났다. 노엘은 그 도시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는지 몇 번이고 도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의 몸은 어느새 케이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같은 몸이면서도 레이인 상태라면 쉽게 지쳐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린스가 여행을 처음 떠났던 때와 비슷했다.
“자아…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요?”
깍지 낀 양손을 뒷머리에 가져간 채 리오는 노엘에게 물었다. 지도를 꺼내어 근처를 살펴본 노엘은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트립톤은 레프리컨트 왕국 수도에서 도보로 3주일은 잡아야 해요. 그것도 앞에 ‘적어도’라는 말이 붙죠. 우선은 도스톨 가문이 대대로 영주를 지내고 있는 크로플렌 지방으로 가겠습니다. 자세한 건 크로플렌에 도착하여 말씀드리지요. 자아, 그럼 가보죠.”
모든 일행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노엘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레프리컨트 왕국의 최고 개국 공신 가문인 <도스톨>가의 영지, 크로플렌을 향해.
그날 밤은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일행은 숲속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다. 여행객이라면 며칠의 노숙쯤은 기본이었으나 노엘 등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린스의 문제였다. 왕궁 안에서 보물단지처럼 커오던 린스에게 하늘을 천장 삼는 노숙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펠튼 고원을 내려올 때 하루간 노숙을 한 적이 있었던 리오와 케톤은 더욱 더 잘 알고 있었다. 같이 노숙을 한 린스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다음날 거의 잠든 상태에서 길을 걸어가 수차례에 걸쳐 돌부리에 걸려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린스만을 위해 집을 지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풀을 밑에 받쳐 다른 사람의 자리보다 약간 편하게 만들어 놓긴 했지만 사람의 기분이란 그런 것에 좌우되긴 힘들었다. 결국 린스를 비롯한 모두는 잠자리에 들었고 리오는 자진해서 모닥불을 피우겠다고 했다.
“안 자도 괜찮아요?”
걱정이 되었는 듯, 케이는 장작 더미 옆에 앉아있는 리오에게 물었고 리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푹 자둬요. ‘홀몸’도 아닌데 조심해야죠. 하하핫….”
“어머? 무슨 실례의 말씀을…!”
리오에게 혀를 한번 내둘러보인 케이는 발그레진 얼굴을 모포로 뒤덮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리오의 눈빛은 잠에 흐려지지 않았다. 이런 일에는 많이 숙달된 듯했다. 모닥불 속에 장작 하나를 더 집어넣은 리오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십자가를 두꺼운 망토 사이에 손을 넣어 꺼내 보았다. 엄지손가락으로 몇 번 그 십자가를 문지른 리오는 곧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십자가, 누가 준 거야?”
리오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편안한(?) 잠자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린스가 모포를 몸에 두른 채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어, 공주님 아직 안 주무셨어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
린스는 리오의 옆에 슬그머니 앉으며 한숨을 쉬어 보였다. 떠나기 전날에 있었던 아슈탈의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리오는 문득 생각해 보았다.
“잠이 안 오는 걸 어떻해. 그럼 리오는 왜 안 자는 거야?”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그냥 어깨만 으쓱였다.
“글쎄요… 잠이 별로 없어서요.”
“칫, 그런 게 어디 있어…. 근데, 나이가 스물넷이라고 했지?”
“예… 그런데요.”
린스는 그 다음의 말을 이으려다가 잠시 주저했다. 약간 곤란한 질문이어서 그런 것이 확실했다. 약간 볼을 붉힌 채, 린스는 결국 말을 이었다.
“그럼… 사랑해 본 적…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