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23화


잠시 후 피리의 음색이 멎고 대장은 하늘을 쳐다보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눈은 하얗게 변해있었고 이마엔 푸른 힘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우오오오오 -!!”

그는 이미 크림슨 나이트의 대장이 아니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사나이, 광전사 버서커였다. 광전사는 자신의 옆에 떨어져있는 창을 움켜쥐었다. 야릇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앞쪽에서 걸어오는 멘티스 솔져들을 바라보았다.

-적이다!

그는 창 하나만 가지고 자신보다 세 배 이상 큰 멘티스 솔져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공포심도 그에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가족이나 부하들 같은 잡다한 생각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오직 하나, 눈앞의 적을 죽인다는 생각 외에는 일체의 잡념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기 오는군.”

바이칼은 공중에 뜬 상태로 다가오는 와이번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적어도 30마리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 포악한 파충류들은 빠른 속도로 바이칼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좋아, 덤벼라!!”

바이칼은 검을 뽑고서 공중에서 자세를 취하였다.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였다. 그러나… 와이번들은 바이칼을 보지도 않은 채 수도로만 날아가기 시작했다. 바이칼로선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성격이 난폭하기로 유명한 와이번들이 눈앞에 다른 존재를 놓고도 그냥 지나친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저 녀석들!!”

바이칼은 아차 싶었다.

“보통 일이 아니잖아! 제길!!”

그러나 바이칼이 와이번들을 쫓아가기는 이미 늦은 듯했다. 와이번들은 수도 내의 민가들을 잿더미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광전사는 멘티스 솔져들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또 다른 장애물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몸 자체가 느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 장애물에 대한 두려움…

“조금만 기다리셔야지 아저씨. 아이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장애물은 씨익 웃으며 광전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광전사의 얼굴을 그리 강하지 않은 힘으로 감쌌다.

“집에 가서 애들이랑 좀 더 놀라구.”

장애물 – 큰 키에 붉은 장발을 한 사나이는 대장의 얼굴을 감싼 오른손에 약간의 힘을 가했다. 그러자 푸른 빛이 그의 손에서 방출되어 대장의 머리를 통과했다. 그러나 대장의 머리에는 아무 손상이 없었다.

“아… 당신은…?”

대장의 눈에 초점이 살아났다. 붉은 머리의 사나이는 천천히 대장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저기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잖소. 어서 가보시오, 여긴 나에게 맡기고.”

그는 커다란 망토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자색 검을 뽑아들며 대장에게 말했다. 대장은 그러나 그 사나이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호의는 고맙지만 이대로 전장을 이탈할 순 없소! 난 명예로운 크림슨 나이트의 이름과 위대하신 말스왕의…”

사나이는 듣기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장의 복부를 가격했다. 대장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죽을 게 뻔한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는 건 인과응보가 된다고. 기사직에서 짤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거지. 이봐, 쫄병들!!”

담 뒤에 숨어있던 크림슨 나이트들은 그 사나이가 자신들을 향해서 외치자 그대로 달려나왔다. 그 사나이는 대장을 기사들에게 넘겨주고는 한 발짝 한 발짝 사마귀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당신 위험하지 않겠소!”

그 사나이는 괜찮다는 듯 자유로운 왼손을 그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당신의 이름이라도 말해주시오! 부탁이오!”

그 사나이는 번개같이 멘티스 솔져의 낫을 피하면서 괴물의 허리를 두 동강 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대장을 부축하고 있는 기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해낸 표정이었다.

“그래… 저 사나이, 7호장 슐턴 장군님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실력자야, 왕궁에서 저 사람을 잠깐 본 적이 있어. 이름이… 리오라던가?”

“리오라구…”

두 기사는 인상에 남을 것 같은 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어선을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와라앗!!”

보라색의 섬광이 멘티스 솔져들의 몸을 스쳐 지나가고, 거기에 닿은 멘티스 솔져들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한 명의 멘티스 솔져도 리오의 옷깃조차 스치질 못하였다. 리오의 검 디바이너는 그들의 투명한 피를 몸에 적시며 자신의 색을 한층 더 진하게 만들고 있었다. 멘티스 솔져의 외골격이 아무리 단단하다 하더라도 디바이너의 일격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쉬이익!!”

한 멘티스 솔져가 처절한 비음을 내면서 쓰러졌다. 그의 기다란 목에는 화살과 비슷한 거대한 나무 말뚝이 박혀있었다.

“가자! 크림슨 나이트들의 복수다!!”

리오는 군인들이 달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르만과 그의 휘하에 있는 발키리 부대와 거궁병 부대가 일제히 몰려오고 있었다.

“호오… 드디어 뜨셨군, 호장들께서.”

리오는 남아있는 멘티스 솔져들의 수를 눈으로 세어보았다. 열 마리 가량 남아있는 듯했다.

“좋아, 이 정도면 떼죽음 당하진 않을 거야. 적어도 정예부대인 발키리들이니까. 오르만도 있고…”

리오는 검을 집어넣고는 다른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왕궁 쪽이 아무래도 불안해서였다.

“느낌이 좋지 않아… 어째서일까…?”

리오가 떠나자 멘티스 솔져들의 움직임은 다시 활발해졌다. 거궁병들이 쏘아대는 거대 화살들이 하나도 적중하지 않았다. 오르만은 전 발키리 부대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돌격이다!! 저 곤충들에게 발키리들의 무서움을 보여주자!!”

말을 타고 있는 발키리들은 보통 기마병과는 약간 달랐다. 창도 도끼창이었고 만약을 대비해서 검과 활도 장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원거리, 근거리 전투가 모두 가능한 만능 전사들이었다.

“우아아앗!!”

오르만은 체구에 걸맞는 거대한 말을 타고 다른 발키리의 것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특수한 도끼창을 장비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풍겨나오는 위압감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제일 앞쪽에 서있던 멘티스 솔져의 머리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기세가 오른 발키리들도 거대한 곤충인 멘티스 솔져들에게 거침없는 공격을 개시했다. 멘티스 솔져들의 투명한 피가 전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