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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33화


“이것이다!”

테크는 기합성과 함께 맨 이터를 휘둘렀다. 그러나 검을 휘두른 자세는 ‘멋진 것’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그리 특별나지 않았다. 케톤은 레드 노드를 수직으로 세우며 맨 이터를 막으려 했다.

“멍청이! 고개를 숙여–!!”

리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케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레드 노드의 날과 충돌한 맨 이터의 날은 놀랍게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휘어져 레드 노드를 휘감았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케톤의 머리는 지금쯤 휘어진 맨 이터의 날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케톤은 눈을 부릅뜨고 레드 노드를 움직여 감겨진 맨 이터를 풀어냈다.

“비겁한 녀석!!”

케톤이 자신에게 소리치자 테크는 피식 웃으며 맨 이터를 원상태로 되돌리고 나서 말했다.

“난 기사가 아니야, 그러니 비겁하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지. 그리고 난 너에겐 볼일이 없어, 저 붉은 머리와 대결하고 싶을 뿐이다. 넌 방해하지 말고 꺼져!”

케톤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는 테크에게 소리치며 레드 노드를 잡은 오른손에 힘을 넣었다.

“날 이길 수 없다면 리오 씨에겐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난 케톤·프라밍, 레프리컨트 왕국의 기사다!!!”

테크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케톤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엔 믿을 수 없다는 글이 쓰인 듯했다.

“농, 농담하지 마! 레프리컨트 왕국의 기사가 왜 이런 변방에 있는 거냐!!”

“알 필요 없다! 어서 덤벼라!!”

리오는 케톤이 저렇게까지 흥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것은 케이도 마찬가지인 듯, 리오의 옆에 바싹 붙어 신기하다는 듯 케톤과 테크의 대전을 구경했다. 둘은 어느 때보다 가까이 붙게 되었고 리오는 케이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에 어색한 웃음을 조용히 지어 보였다.

“저 검은, 굉장히 사악한 무기군요. 한번 제대로 공격당하면 치명상을 입겠어요.”

“그렇군요. 대결에서 무기의 살상 능력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니까요.”

리오는 케이의 말에 동의하며 케톤의 움직임과 테크의 움직임을 같이 지켜보았다. 케톤의 검술은 기사의 검술인 만큼 정확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반면, 테크의 검술은 굉장히 변칙적이었다. 무기의 이점, 맨 이터의 긴 공격 범위를 충분히 살리는 검술이기도 했다. 맨 이터가 늘어나기 시작한 후부터 케톤은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으읏!”

케톤은 순간 자신의 왼팔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맨 이터의 거친 날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곧, 붉은 선혈이 왼팔을 감싸 쥔 케톤의 오른손 사이로 비어져 나왔고 그의 손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생각보다 출혈이 심했다.

“후훗, 아픈가? 아프겠지… 이 검은 모양대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심한 외상을 입는다. 그리고 고통은 정신을 흐리게 하지? 후후후… 이제 승부는 결정난 거다 케톤·프라밍. 이제 보니 명성에 비해 별것 아닌데 그래?”

“시끄러워!!”

소리친 케톤은 오른손을 상처 부위에서 떼고 손에 묻어난 피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옷자락에 대충 닦으며 레드 노드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 말이 쏙 들어가게 해 주겠다 건달 녀석!!”

노성과 함께 케톤은 테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드 노드의 반사광은 케톤의 높아진 기에 반응하듯 금세 붉은빛을 띠었고 공격을 막아내던 테크는 붉은 반사광을 보자 크게 놀랐다.

“뭐야!? 설마 그 검이 레드 노드? 오늘은 놀라운 일만 생기는군!”

두 사람은 곧이어 수십 번을 치고받았고 둘은 약간 긁힌 정도의 상처만을 서로에게 입힐 뿐이었다.

“호각인데? 저 건달 녀석도 만만치가 않군.”

리오는 팔짱을 끼며 테크를 바라보았다.

케톤을 주시하고 있는 테크의 눈에선 케톤에게 시비를 걸 때와 같은 흐릿함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 싸움을 진정으로 즐기는 듯했다. 케톤도 테크와 검을 겨루며 아슈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남자라 그를 생각했다. 주위엔 구경꾼들이 점차 모이기 시작했고 모인 사람들은 테크와 케톤의 검기가 나올 때마다 갈채를 보내며 즐거워했다.

“시시하군요.”

리오는 따분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 케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창틀에 턱을 괸 채 반쯤 졸고 있었다.

“동방에선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리오 역시 따분함을 느꼈는 듯 케이에게 물었고 케이는 기지개를 켜며 물음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우리 동방엔 강호라는 것이 있어요. 각 무술 유파 간의 다툼은 절대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죠. 저희 집안은 절극류(絶極流)를 사용하는 강호 중 하나지요. 절극양류는 서방에서 마법이라 일컬어지는 4대 정령마법과는 달리 양과 음, 이 두 가지를 이용하여 몸과 정신을 동시에 단련시키는 독특한 무술이지요. 동생인 레이는 정신 쪽이 더 발달되어 있죠. 이른바 음(陰)의 술, 그리고 전 동생과 반대로 양(陽)의 권을 사용해요. 그리고 저희 오라버니는 절극류의 정통 계승자죠. 아아… 인심 좋은 사람도 많은 곳인데… 괜히 생각나네요.”

리오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케톤과 테크의 대전을 바라보았다. 둘은 이미 심하게 지쳐있었고 더 이상의 대전은 불가능할 듯했다.

“… 한번 보여줄래요 케이 양?”

리오는 빙긋 웃으며 케이에게 물었고 케이는 리오의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였는지 얼굴을 붉히며 되물었다.

“무슨 실례의 말씀을…!”

“예? 아… 하핫, 그런 쪽으로 말고요 케이 양. 당신이 사용한다는 양의 권 말입니다. 당신의 말을 들어보니 동방의 무술이란 걸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케이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결심한 듯 자신의 머리를 끈으로 한 번 묶은 후 창문을 통해 여관 밖으로 가볍게 뛰어 나갔다.

“당신에겐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부탁이니 들어 드리죠!”

리오는 빙긋 웃으며 창틀에 기대어 케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자! 케톤 군은 이제 쉬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맡아줄게요.”

케톤은 케이가 자신의 앞을 갑자기 막고 나서자 깜짝 놀라며 검을 내렸다.

“케, 케이 씨! 위험해요!!”

케톤은 솔직히 케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고 솔직한 심정으로 빨리 결단을 내고 싶어 했다.

케이는 손으로 케톤의 어깨를 밀쳤고 힘이 빠진 케톤은 헉 소리를 내며 뒤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케톤에게 윙크를 하며 충고하듯 말했다.

“힘들면 쉬어야죠. 게다가 저쪽도 지친 것 같으니… 잘 됐잖아요?”

케톤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켜 리오가 있는 여관의 창가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리오는 미리 준비했던 냉수를 케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잘했어, 무기의 차이를 고려해 보면 잘한 거야.”

케톤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냉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케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널 상대해주지.”

약간 냉소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케이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테크의 일행 중 홍일점인 <리마·레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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