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236화


세상을 조각내었던 여신들은 신 중의 신에 의해 처벌을 받아 육체 따로, 정신 따로 각기 분해되어 수천 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 일에 앞장을 선 망자의 여신 <마그엘>, 그녀의 정신이 풀어질 때 이 땅의 모든 시체들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일어선다.

분노의 여신 <이스말>, 그녀의 육체가 정신이 풀어질 때 이 땅의 사람들은 광전사로 변하게 된다.

고대의 여신 <요이르>, 이스말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육체나 정신이 풀어질 때 그녀의 수하로 있던 고대 마물이나 괴수들이 같이 깨어난다.

새벽의 여신 <이오스>, 그녀가 깨어날 때의 일은 어느 부분에도 적혀있지 않았고 말로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들 네 여신의 신벌이 풀릴 때, 그녀들이 갈라놓았던 세계는 다시 하나로 된다. 그것이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상관하지 않고….

이 얘기를 전해들은 일행의 얼굴은 리오를 제외하고 순식간에 굳어졌다. 동방 대륙이 발견되었을 때에도 경악을 금치 못하던 서방 사람들인데 하물며,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세계가 다시 합쳐질 때 이 대륙 위에 살고있는 생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 막아보려고 하는 겁니다. 상대가 여신들이니만큼 강한 동료들을 모아야만 하겠죠. 그래서 아르센을 떠나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답니다.”

리오는 묵묵히 로드 덕의 얘기를 듣고만 있다가 그의 얘기가 끝나자 이어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을 모은다 해도 상대가 ‘신’인 만큼 이길 확률이 적을 텐데요, 자신 있으십니까?”

로드 덕은 말하느라 말라있던 목을 물로 축인 후 리오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라도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허허헛… 근데 공주님은 어딜 가시는 겁니까? 혹시 여행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린스는 한숨을 푸욱 쉬며 간단히 말했다.

“집에 돌아가는 거예요.”

“집이라뇨? 설마 왕국 수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로드 덕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대답은 케톤이 해 주었다.

“왕국의 수도가 벨로크 공국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여왕님께서 손수 공주님과 절 왕국 변방으로 피신시켜 주셨지요. 노엘 선생님과 함께 수도를 구출해 달라는 말씀과 함께요. 도중에 리오 씨와 케이 씨 등을 만났고 수도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어 지금은 서둘러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 그랬었군. 그럼… 젊은이들은 수도까지 간 후에 어떻게 할 건가?”

케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 이 서방 대륙을 더 여행해볼 거예요. 제 동생도 같은 생각이지요.”

“저는….”

리오가 막 대답하려는 찰나, 린스의 눈빛이 리오를 향해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로 번뜩였다. 리오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말을 이었다.

“수도까지 가면 제 일은 끝납니다. 케이 씨처럼 여행이나 해 보렵니다.”

“그럴 순 없어!!!”

린스가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여관 로비에서 일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린스와 일행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고 케톤과 케이가 다급히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다. 린스가 소리치는 것을 들은 노엘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린스는 리오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망토 자락을 잡고서 또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기가 없다면 날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번에 그랬잖아! 날 앞에 두고 그런 말을 당당히 해 놓고서 이제 와선 떠나겠다고? 웃기지 마!!”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조용히 말했다.

“수도에선 공주님을 지켜줄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제가 지켜드리지 않아도 괜찮을 겁니다. 케톤도 있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공주님.”

리오의 냉정한 말을 들은 린스는 리오를 쏘아보며 이를 부드득 간 후 자신의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리오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긴 붉은 머리가 그의 얼굴을 뒤덮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일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 할 말 없으십니까 로드 덕님?”

리오의 그 말은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약간 누그러뜨렸고 로드 덕은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리오와 케이를 그의 일행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그의 본심이 최대한으로 절제된 얘기였다.

날이 저물 무렵, 로드 덕은 돌아갔고 여관 1층의 식당엔 리오와 노엘만이 남게 되었다. 노엘이 리오에게 남아달라고 한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너무해요 스나이퍼 씨! 공주님의 마음이 여리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그런 말을 하시다니, 공주님의 기분은 생각 안 해보시나요?”

리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공주님께서 스나이퍼 씨를 좋아한다 말씀드렸잖아요, 공주님을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면 냉정하게라도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던 리오는 손가락 사이로 노엘을 바라보며 낮게 말하기 시작했다.

“제 기분은 기분도 아닙니까?”

“예…?”

노엘은 리오에게서 풍겨오는 이상한 분위기에 눌린 듯, 입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린스 공주님께서 절 좋아하시는 건 공주님 마음이지 제 마음은 아닙니다. 전 어차피 공주님을 수도로 데려다 드리면 떠나갈 몸, 이 이상 린스 공주님의 마음에 미련을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공주님을 위한 제 마음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노엘 선생님.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윗층으로 올라가는 리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노엘은 자신의 머리를 살짝 감싸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아아… 골칫덩이 남자야 정말. 질렸어 이젠.”

리오는 천천히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이 린스라는 19세의 소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는지 그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더욱 냉정해지지 못한 자신을 책망할 뿐이었다.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만 하며 가던 리오는 문득 자신의 방 앞에 서게 되었고 그는 방문을 연 후 망토를 벗고 침대 위에 누운 뒤 천장을 바라보며 린스에게 할 사과의 말을 이리저리 떠올려 보았다.

‘…나도 참 마음이 약한 녀석이란 말이야… 젠장, 사과고 뭐고 관두자.’

리오는 몸을 일으켜 아직 들어오지 않은 케톤의 침대를 돌아보았다. 케톤은 로드 덕에게 물을 것이 있다며 그와 여관에서 함께 나갔다. 방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자 쓸쓸함을 느낀 리오는 침대에 다시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요새 들어서 정말 많이도 자는구나, 팔자 좋다 리오·스나이퍼.”

자기 자신에게 비아냥대며 리오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고 리오는 잠깐 긴장하며 그 노크 소리를 되뇌어 보았다. 소리를 들어보아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번엔 목소리까지 같이 들려왔다. 리오의 표정은 불의의 일격을 맞은 사람의 표정과 흡사해졌다.

“…꺽다리 안에 있어?”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