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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4화


“좋아, 좋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처치해라!”

오르만은 기사들을 향해서 외쳤다. 기사들의 사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르만의 전장에서의 버릇이기도 했다. 멘티스 솔져들은 거의 전멸 상태였고 발키리 부대는 사상자가 거의 없었다. 리오가 대다수의 멘티스 솔져들을 가루로 만든 탓도 있었지만 말스 왕국의 발키리 부대는 확실히 강했다. 거의 정리가 끝나갈 무렵에 오르만은 왕궁에서 달려온 병사의 말을 듣고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치면서 분개했다.

“이런! 큰일이다, 왕궁 근방이 집중 공격을 받고있다!!”

왕궁 근처의 민가들은 거의 불바다에 가까웠다. 와이번들은 무차별로 민가들을 공격했고 주민들은 목숨을 건지는 것도 어려웠다. 헤리온의 드래곤 나이트 부대가 와이번을 공격하려고 출격을 했으나 와이번들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민가들만 공격했다. 드래곤 나이트 부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집을 잃게 된 난민들은 다행히도 성 안으로 피난할 수 있게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레나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난민들을 몸소 보살피고 있었다. 궁녀들은 옥체를 보존하시라며 레나를 말렸으나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왕뿐이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도와주었다. 부상자도 많고 하였으나 레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성심성의껏 난민들을 보살펴 주었다.

“하아… 숨을 좀 돌릴까?”

레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허름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녀는 약간 번거로운 듯 머리에 쓰고 있는 장식을 벗었다. 뒤로 넘기고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장식을 벗자 앞으로 넘어왔다. 공주라고 불리기 전의 머리 형태가 그대로 나왔다. 레나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어떤 사나이가 그녀의 집 뒷뜰에서 노숙을 하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날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어. 나의 이름도 알고 있었지.’

레나는 오른팔에 턱을 괴었다.

`리오는 무사할까… 간단히 어떻게 될 사람도 아니지만…’

레나는 계속 생각에 잠겨있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긴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는 걸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어? 너는?”

한 아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레나 앞에 앉아있었다.

“레나 언니… 무서워…”

레나는 그 애에게 다가가서 그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네 걱정을 언니는 제일 많이 했다구.”

“으응…”

레나는 약간 검정이 묻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제 걱정하지 마, 제나야. 언니가 옆에 있어줄게.”


리오는 리카와 클루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있는 여관 쪽의 거리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망할 녀석들!!”

리오는 거칠게 내뱉으며 아직도 불길이 가시지 않은 거리로 뛰어들어갔다. 수인을 맺고서 사람의 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으음…… 있구나, 역시 끈질긴 애들이군.”

리오는 리카와 클루토의 기를 찾아내고서 안도의 표정을 지은 뒤에 아이들이 있는 여관으로 뛰어들어갔다. 여관의 1층은 아직 불길에 휩싸이지 않은 듯했으나 2층은 연기로 가득했다.

“리카! 클루토! 대답해 봐!”

리오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때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가 여관을 진동시켰다.

“이런, 리카! 클루토!”

리오는 클루토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클루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리카의 방 쪽에서 희미하게나마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리오는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리카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거기 있니! 대답해 봐!”

“콜록, 콜록! 꺽다리! 클루토가…!”

리카는 연기에 목이 멘 듯 콜록거리며 리오에게 도와달라는 손짓을 했다. 클루토는 커다란 나무 부스러기 사이에 끼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클루토!!”

클루토는 리오의 외침에 응답이 없었다. 깔리면서 정신을 잃은 듯했다.

“제기랄!!”

리오는 나무 부스러기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힘을 다해 그것들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나무 부스러기는 우지직 소리를 내면서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리오는 다시 그것들을 앞으로 밀어내었다.

“자, 됐어! 리카, 어서 내려가!!”

리오는 클루토를 망토로 감싸 안으며 리카와 함께 여관 밖으로 무사히 나갈 수 있었다.

“하아, 하아, 꺽다리, 보기보다 도움이 되는데?”

“그것보다 리카, 제나는 어디 있지?”

리카는 정신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우리가 왔을 때는 여관에 없었어. 콜록!”

리오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클루토와 리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아직 와이번에게 공격당하지 않은 병원에다가 리카와 클루토를 데려다 놓은 리오는 간호원에게 둘을 부탁하며 황급히 왕궁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봐, 리오!”

리오는 뛰어가는 도중에 공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멈춰 섰다. 바이칼이었다.

“와이번들은 어떻게 된 거지? 아직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았잖아!”

둘은 같이 왕궁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것들, 아무래도 사마술에 조종당하는 것 같아. 오직 목표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어.”

“뭐라고? 사마술!?”

“그래, 그것 외에는 저 녀석들의 지능 지수를 올릴 방도가 없잖아.”

리오는 순간적으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타르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일은 아무래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아.”

왕궁에 가까이 왔을 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야만 했다. 30마리가 넘는 와이번들이 진을 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와이번들의 눈은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것들…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이 보이는데?”

둘의 모습이 와이번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한 마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구오오오오!!”

와이번은 괴성을 지르면서 입에서 시뻘건 화염 덩어리를 둘에게 쏘아댔다.

“이자식!!”

리오는 분노가 어린 얼굴로 불길을 피한 후 와이번을 향해서 뛰어올랐다.

“없어져라!!”

리오는 와이번의 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는 와이번의 목을 잡은 채로 지면을 향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키이이익!!”

폭음 소리와 함께 와이번의 몸은 땅에 처박혔고 리오는 다시 있던 자리에 착지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와이번들은 한꺼번에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리오와 바이칼은 각자의 검을 뽑아들었다.

“가자!”

와이번들은 공중에서 정지한 채로 리오와 바이칼에게 불덩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붓기 시작했다. 삼십여 마리가 동시에 불덩이를 쏘아대는 모습은 어찌 보면 장관이라 할 수도 있었으나 그 밑의 광경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성 주위에서 맴돌던 드래곤 나이트들은 그 광경을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럴 수가! 헤리온님 이게 어떻게…”

헤리온도 갑작스레 눈에 보인 광경에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엇! 저걸 보십시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불덩이로 완전히 불바다가 된 장소에서 갑자기 불기둥 하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기둥을 뚫고서 리오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낙월참(落月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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