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5화
리오의 기합성과 함께 와이번 한 마리가 머리에서 꼬리까지 단숨에 두 동강이 났다. 낙월참의 검기는 아직 남아있어서 밑에 있던 또 다른 와이번의 날개를 잘라버리기에 충분했다. 바이칼도 질 수 없다는 듯 불꽃 속에서 날아올라 자신의 기술을 펼쳤다.
“신월 대격참 쌍월출(雙月出)!!”
두 개의 거대한 호선이 와이번들 사이에 그려졌고 호선 범위 안의 와이번들은 신체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며 땅으로 추락하였다. 드래곤 나이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폭염 속에서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으며 리오와 바이칼이 공중에서 떨어지지 않고 와이번들과 싸운다는 점에서 그들의 지식으로는 설명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헤리온은 와이번 사이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런 괴물들과 대전을 했었다니…’
헤리온은 피식 웃었다. 그의 보좌관이 자신의 타고 있는 사육된 와이번을 헤리온의 곁으로 몰아갔다.
“헤리온님, 우리들도 저들을 지원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 자! 전원 전투 대형으로! 와이번들을 몰살시키자!!”
드래곤 나이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헤리온은 자신의 와이번의 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전군 돌격!!”
“공주님, 왕께서 공주님을 부르십니다.”
한 시종이 레나의 곁으로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 레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시종을 보내었다.
“제나야,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줄래?”
제나는 두렵다는 표정으로 레나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싫어! 언니랑 함께 갈 거야!”
레나는 난처한 듯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가 제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 같이 가도 될 거야. 하지만 얌전하게 있어야 해, 알았지?”
레나는 제나의 옷가짐을 단정하게 해주며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제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알았다고 말했다.
“좋아. 자, 가자 제나야.”
둘은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말스왕이 있는 알현실로 걸어갔다. 그때, 레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제나의 눈은 이상하리만큼 빛나고 있었다.
“좋아! 거의 전멸 상태까지 몰고 갔다! 더욱 힘을 내라!!”
와이번들은 압도적인 숫자의 드래곤 나이트들과 리오 등의 힘으로 한두 마리만이 가벼운 저항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헤리온은 그가 타고 있는 와이번의 고삐를 더더욱 거세게 잡아당기면서 앞쪽에 날고 있는 와이번의 머리에 자신의 창으로 일격을 가했다. 와이번은 괴성을 지르면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리오와 바이칼은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는 듯 땅으로 가볍게 내려왔다. 기의 소비가 평상시보다 심했는지 둘 다 땀을 가볍게 흘리고 있었다.
“좋아, 거의 정리됐는데?”
바이칼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리오는 아대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지만 원인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어, 타르자 할망구 말이야.”
“그렇군, 어, 저기 오는 건 뭐지?”
바이칼은 남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언가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오르만인가 하는 덩치군. 기병대인 주제에 이렇게 느리다니 원…”
리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오르만은 얼굴이 시뻘개진 상태로 왕궁을 향해서 있는 힘껏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을 날고 있는 드래곤 나이트들이 전투가 끝났다며 수신호를 보내오자 안심이 된 표정으로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으음… 과연 헤리온이군. 그런데 성 앞에 있는 저것들은?”
오르만은 성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서 자신들을 한심한 듯이 쳐다보고 있는 리오와 바이칼을 보았다. 오르만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를 본 바이칼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이봐 덩치, 왕국 최강의 기병대라는 발키리 부대가 이렇게 늦어서야 쓰겠나? 구호 활동이라도 하고 왔다면 모를까…”
바이칼의 표정과 말투는 다혈질인 오르만의 신경을 자극하고도 남기에 충분했다. 오르만은 말에서 뛰어내리며 바이칼에게 자신의 도끼창을 들이대면서 소리쳤다.
“이 꼬마 녀석이!! 한 번 운이 좋아서 날 이겼다고 다인 줄 아느냐! 다시 한번 이곳에서 붙어보자!!”
“꼬마 녀석?!”
바이칼도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었고 진짜로 대결하려는 듯 검을 뽑기 직전의 자세를 취하였으나 헤리온과 리오의 만류로 둘은 거기서 그치게 되었다.
“아, 레나님.”
슈레이와 슈는 레나가 오는 것을 보고서 무릎을 굽히며 예를 갖추었다. 레나도 간단히 목례로 답해주었다.
“아바마마께서 절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예,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그런데 그 아이는…”
슈레이는 레나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제나를 바라보았다.
“아, 제가 아는 아이입니다. 얌전하게만 있다면 괜찮겠죠?”
슈레이와 슈는 잠시 생각하다가 얌전히만 있다면 괜찮을 듯해서 승낙을 했다.
“예, 하지만 너무 예의에 어긋나서는 저희들이 혼이 나게 되니 주의해 주세요.”
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슈레이와 슈가 문을 열어주었고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아바마마, 부르셨사옵니까?”
레나는 몸을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제나도 따라서 예를 갖추었다.
“오오, 그래. 그런데 옆의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구나?”
라가즈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왕의 말을 듣고는 레나와 함께 들어온 제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좋아하는 라가즈에게는 기분 전환이 될 수도 있었다.
“아, 아주 귀여운 꼬마 아가씨…”
그러나 라가즈의 표정은 이내 바뀌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 생각했다.
“……”
잠시간의 침묵이 알현실에 흘렀다. 라가즈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고 목소리에는 노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이…!! 넌, 타르자! 타르자 베히즈마!!”
레나는 라가즈의 뜻밖의 반응에 놀랐다. 아이를 보면서 타르자의 이름을 말하다니… 놀란 건 말스왕뿐만이 아니었다.
“……”
제나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표정은 어린 여자아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호호호… 역시 말스 왕국 최강의 마법사답군 그래…”
목소리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로 뒤바뀌어 있었다. 레나는 제나… 아니 타르자에게서 서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넌 분명히 제나…”
타르자의 육체는 아이의 몸에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빛이 타르자를 휘감더니 곧 타르자는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레나, 너하고 리오는 생각 외로 상냥하더군, 하긴 숲속에서 홀로된 아이에게 동정심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겠지. 리오에게만은 간파당할까 생각하고 조마조마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의외로 쉬웠지.”
타르자는 천천히 레나에게 다가와서 그녀의 갸름한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레나의 얼굴은 공포로 질려있었다.
“공주님에게서 손을 떼라!”
뒤에서 여성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슈레이와 슈였다. 그러나 타르자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훗… 꺼져버려라!!”
타르자의 눈이 붉게 번쩍이는가 싶더니 슈레이와 슈의 몸은 벽을 향해서 곤두박질을 쳤다. 타르자만의 강력한 사마술이었다. 두 여장군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슈레이!, 슈!”
레나는 그녀들이 깨어나질 않자 소리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라, 귀여운 것… 난 쓸데없는 살생은 싫어하니까.”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타르자에게 말했다.
“이 요망한 것…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이냐!”
타르자는 레나에게서 손을 떼면서 날카롭게 웃었다.
“호호호호! 걱정하지 마, 이 왕국을 멸망시킬 생각은 아직은 없으니까. 난 이 공주님에게 볼일이 있을 뿐이야…”
분명히 타르자의 손은 레나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레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뭐라고! 이 무엄한!!”
왕은 자신의 옆에 있던 장검을 뽑으며 타르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호장인 슈레이 등이 상대가 되지 못한 시점에서 왕의 그러한 행동은 무모한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인데 잘 부지하셔야지!!”
타르자의 눈이 또한번 빛을 냈고 왕도 역시 의자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튀었다.
“커헉!!”
“아바마마!!”
라가즈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는 듯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써 보시지 늙은이. 하지만 당신의 마술은 나에겐 전혀 통하지 않아. 그리고 나에게 마법을 쓴다면 내 옆에 붙어있는 공주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라가즈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문을 도중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으윽…! 요망한 것……!!”
“호호호… 흥분은 몸에 안 좋다고, 호호호호…!”
타르자는 크게 조소했다. 그런 후에 타르자는 다시 레나의 턱에 손을 대었다.
“넌 이제부터 조용히 살아가면 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이때까지의 정을 생각해서 너의 아름다움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레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가 않았다. 공포심으로 입도 열리지가 않았다.
“넌, 이 왕국을 지키는 수정상이 되는 거야, 호호호호!!”
“아, 안돼요…”
타르자는 양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기운이 양손에서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
레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감에 마음이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힘차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믿고 있는 사나이의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