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60화
「이봐, 1000년 만에 먹이를 먹어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양이 안 차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할 수 없잖아, 만약 우리가 움직여 없어진 걸 라우소님이 아신다면 불벼락이 떨어질 게 뻔하다구! 그러나… 배를 맘껏 채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키키키… 인간의 도시가 산 밑에 있지?」
「그래, 게다가 우리들의 전투 능력을 능가할 정도의 인간은 그리 많지가 않으니 빨리빨리 배를 채울 수 있을 거야. 가자…!」
아침과 점심을 충분히 먹은 탓에 저녁은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리오는 여관 밖으로 나가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보도 얻을 겸, 이 세계의 문명도 더 잘 파악할 생각이었다.
레프리컨트 왕국과 벨로크 공국은 현재 국가적으로는 대립 상태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자유 교류가 활발했다. 2개월 전 벨로크 공국이 레프리컨트 왕국을 침공했을 때에도 렌톨을 비롯한 경제 도시엔 아무 피해를 입히지 않았고 오직 수도로 가는 길목을 막는 요새 도시만을 공략했다. 그리고 전쟁이 잠시 휴전 상태로 들어가자마자 상인들에겐 다시 교역을 허가하여 주었다. 물론, 국외 거래를 할 수 있는 범위는 렌톨과 벨로크 공국의 국경 도시 <라이엠>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길을 걷던 리오는 구운 감자를 팔던 할아버지에게 문득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의 깊은 주름살에 파묻힌 두 눈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손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있는 듯했다. 리오는 그 노인의 생각을 깨기가 미안했지만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 것 같아 결국 감자구이 통을 두드렸다.
“저어… 할아버지, 말씀 좀 물어도 될까요?”
통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밝아진 노인은 리오를 보고 고개를 살짝 굽히며 어서 오라는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시오 젊은 양반. 감자 몇 개면 배를 채울 수 있겠소?”
리오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하나면 됩니다.”
노인은 리오의 큰 키와 넓은 어깨를 보고서 도저히 하나 가지곤 배를 채울 수 없을 인물처럼 보여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손님의 말이라 잠자코 철통을 열어 잘 구워진 감자 하나를 골라 종이에 반쯤 싸서 리오에게 건네주었다. 리오는 돈과 감자를 교환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근데, 얘기 좀 나눠도 괜찮을까요? 이 지방엔 처음 와서 그러는데요.”
노인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어차피 퇴근까지 시간도 좀 남았으니 심심함도 달랠 겸 해 봅시다. 난 이 지방 토박이니 아무거나 물어보시오.”
“예… 오늘 아침에 여관에서 어떤 아이와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저쪽 도시 외곽에 있는 산에서 그 아이의 아버지와 오빠가 나무랑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거기에 관해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 뭐 하나 있습니까?”
조용히 리오의 말을 듣던 그 노인의 표정은 갑자기 납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 표정을 본 리오는 무언가 있구나 생각하고 노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노인은 침을 몇 번이고 삼킨 뒤에 대답을 해 주었다.
“나무랑 함께 산다고 했소? 그렇다면… 라우소가 다시 나타난 것일지도… 아, 그건 최악의 상황이오. 라우소가 다시 나타난 게 아니라면 그의 부하들인 <이파리>들일지도…. 내가 나의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라우소보다 그 이파리들이 더 잔혹하다 했소. 식물이긴 하나 양분을 생산하지 못해 다른 것의 양분을 뽑아먹고 사는데, 그 <다른 것>이란 게 바로 인간이오. 인간들을 조각내어 그 몸의 양분을 피 한 방울, 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다 하오. 참 잔인하지… 내 추측이 둘 중 하나라도 맞지 않길 바랄 뿐이지만. 그냥 산짐승에게 당했다 생각하시오. 그게 여행객에겐 더 편할 거요.”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리오의 표정은 더없이 굳어져 있었다. 감자가 다 식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리오는 노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 라우소란 녀석의 정체가 뭡니까? 이파리란 녀석들을 부하로 두었을 정도면 굉장히 강한 녀석이라 생각되는데요.”
노인은 리오의 눈빛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배워왔던 경험이 그에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노인은 입을 열었다.
“…<12 신장>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소?”
리오는 그의 동생 루이체와 대화할 때 12신장에 대해 한번 들어본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들은 내용이어서 거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신벌을 받은 네 여신 중 세 명의 밑에 네 명씩 존재하는 강자들이라는 것이었다.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면 말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라우소는 고대의 여신 <요이르>의 부하로서 전체 신장 중 제 12위에 속하오. 하지만 육체가 멸해졌으니 다시 깨어날 이유는 없소. 누가 육체를 만들어다 주면 모를까. 어엇, 젊은이, 감자가 다 식었잖소.”
그 말을 들은 리오는 다시금 웃으며 감자를 한입에 다 먹고서 삼킨 뒤에 말했다.
“전 식은 감자를 좋아하거든요. 하핫… 그럼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다시 뵐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허헛, 뭘… 살펴 가시오 젊은이.”
노인은 리오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리오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시 경찰들이 그 노인에게 다가왔고 노인은 탐탁지 못한 표정으로 그 경찰들을 바라보았다. 경찰들은 그 노인의 앞에 서서 자로 잰 듯이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시장님! 퇴근 시간이 되셨습니다!!”
그 노인은 손수 자신의 감자 구이통을 정리하며 기다리고 있는 경찰들에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에 굉장한 젊은이를 만났다네. 그런 눈빛을 가진 청년은 정말 처음이야. 그렇게 강한 눈빛을 뿜어낼 수 있다니… 허헛, 부럽구만… 젊음이란 정말 좋은 거야.”
감자 구이통을 다 정리한 그 노인은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관 근처에 도착한 리오는 여관 앞에 사람들이 시끌벅적 몰려있자 걸음을 빨리하였다. 왠지 안 좋은 느낌이 그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케톤이 끼어있는 것을 본 리오는 케톤의 어깨를 두드렸고 케톤은 리오를 보며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나이를 응시하며 말했다.
“잘 왔어요 리오! 저 사람은 아침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괴물을 물리치러 친구 여섯과 함께 저쪽 산에 올라갔던 남자인데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저 사람만 왼쪽 팔뚝을 잃은 채 돌아왔다는군요.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리오는 한숨을 쉬며 사람들 중앙에서 소리 소리를 지르는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표정은 속마음을 말한다고 했나, 그의 표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저 사람에겐 들어볼 것 없어, 이미 미쳐있으니까. 공포심은 인간의 심리를 철저한 자기 정당화로 돌변시켜 버리지. 들어가서 얘기하자 케톤. 로드 덕 일행을 불러주겠어?”
“예? …예!”
리오의 표정을 본 케톤은 이미 리오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케톤은 급히 로드 덕 일행이 있는 여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리오는 조용히 주위의 공기를 느껴보았다. 해가 기울기 직전과는 달리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음침한 기류가 이 도시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듯했다.
“…피곤하군. 하루도 쉴 틈이 없단 말인가?”
리오의 한탄과 함께, 이 도시의 두 번째 사건은 시작의 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