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7화
“오호호호……!!”
타르자의 웃음소리가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마법으로 기절해 있는 왕과 슈레이, 슈, 그리고 슐턴을 깨웠다.
“으… 아, 아니!!”
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호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라가즈와 리오는 허탈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자아… 어떠신가 말스 전하. 호호호호!!”
타르자는 더욱더 목소리를 높여서 웃기 시작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쪽으로 달려갔다.
“공주야! 레나 공주야!!”
왕은 레나의 앞에서 소리쳤다. 레나의 몸은 서서히 수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레나는 슬픈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아, 난 이쯤에서 돌아가 봐야겠군. 어차피 이 왕국은 내가 멸망시키지 않아도 자멸될 테니까 말이야. 호호호!!!”
타르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순간이동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이 끝나자 타르자는 리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오 스나이퍼…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후후후…”
리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널… 꼭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말겠다…”
타르자는 리오에게 조소를 던지며 공간 이동 주문을 사용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공주님!!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호장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들이 저주스러웠다. 레나가 서서히 수정으로 변해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문을!!”
라가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어보는 듯 디스펠(주문 해제 마법)을 레나에게 걸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결국 목 근처까지 수정으로 변해버린 레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리오…”
리오는 레나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타르자의 간단한 눈속임에 속아버린 자신을 속으로 질책하고 있었다.
“이리 가까이 와줘요.”
리오는 천천히 고개를 숙인 채로 일어나 레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기분이 이상해요…”
레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눈가에 어린 슬픔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이대로 수정으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리오는 얼굴을 들었다.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잠깐뿐입니다 공주님. 제가 꼭…”
“아니에요…”
레나는 리오의 말을 막았다.
“더 이상 리오가 저를 위해서 고생할 필요는 없어요. 리오는 잘해주었어요.”
“크윽…!!”
리오는 무언가를 참으려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몸은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요…”
레나는 더 이상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머리까지도 거의 수정으로 변해 있었다. 말을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 리오에겐 그런 표정은 어울리지 않아요…”
레나는 그 말을 끝으로 완전한 수정상이 되었다. 리오는 땅을 후려치면서 분개했다. 바닥은 깊숙이 패여 들어갔다.
“제기랄… 제기랄!!”
말스왕은 힘이 빠진 모습으로 리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레나의 말 그대로야. 자네는 온 힘을 다해주었네…”
리오는 왕의 위로를 받은 후에 서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수정으로 변한 레나의 옷자락 부분을 조금 떼어냈다. 그리고 리오는 레나의 앞에서 맹세하듯이 말했다.
“레나란 이름의 여인이 또한번 내 앞에서 이렇게 사라지는 건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당신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겁니다.”
리오는 수정 조각을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그때, 알현실에 있는 모두가 놀라운 것을 보았다. 수정으로 변한 레나의 눈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공주님의 의식은 아직도 이 상 안에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라가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건지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왕국은 어찌하나. 후계자가 다시 없어졌으니 영주들은 또다시 왕위에 오르려고 눈을 붉힐 텐데…”
왕의 말에 모두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타르자가 말한 자멸이라는 건 이런 것을 말한 건지도 모른다.
하루가 지난 후 수도는 침울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주에게 일어난 참변과 와이번들에게 당한 피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조용히 리카와 클루토가 있는 병원의 병실로 들어갔다. 작별의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 리오!”
클루토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었고 리카는 거의 회복된 듯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몸은 어떠니?”
클루토는 괜찮다는 듯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말아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며칠만 있으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리오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리카는 리오의 앞에 조용히 서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
“뭐 말인 이?”
“상금.”
리오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기는 종결이 나지 않아서 상금은 한 푼도 타질 못하지 않은가. 리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약속했잖아. 리오.”
리카는 뚫어져라 리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오는 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작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자아, 이거면 상금 정도는 될걸?”
리카는 리오의 커다란 손에서 자신의 조그만 손에 떨어지는 빛나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히이익…!”
적어도 8백만 배른(돈 단위)은 나갈 만한 보석이었다.
“이 나라에선 거의 보지 못할 보석이야. 이름이 아마 다이아몬드일걸? 물론 너희들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겠지만.”
리오는 붉은 장발을 휘날리며 병실의 문을 열었다.
“자, 난 이제 가볼게. 건강하게 잘 있어라.”
클루토는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 말했다.
“리오, 설마 아주 가는 건…”
리오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아마 보기는 힘들 거다. 다른 대륙으로 갈 거니까.”
“그래요…”
리카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리오에게 다가왔다.
“이봐, 꺽다리. 나이가 몇 살이지?”
리오는 갑자기 나이를 물어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작별의 순간인데 말을 안 해줄 수는 없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나이? 스물네 살이지.”
“흠… 아홉 살 차이네. 그럼 잠깐 허리 좀 굽혀봐.”
“?”
리오는 리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리오는 리카의 말대로 허리를 굽혔다.
쪽!
리카는 리오의 목을 팔로 감고선 뺨에다가 키스를 해주었다. 리오와 클루토의 눈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휘둥그레졌다.
“으윽?! 갑자기 왜 그래?”
리카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히힛, 지금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잖아 꺽다리. 그래서 한꺼번에 해준 것뿐이야.”
리오는 특유의 미소를 띄우면서 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럼 내가 오히려 빚을 진 것 같은데?”
셋은 모두 함께 웃었다. 그리고 리오는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원을 나서자 바이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리오, 아까 전에 슈라는 호장 아가씨가 왔었는데 말이야…”
“슈? 그런데 왜?”
“말스왕이 우리를 찾는다는군. 중요한 일이라는데?”
리오는 정색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왕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