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280화


지크는 자신의 손안에서 레이필의 농축 파이어볼을 공 다루듯 가지고 놀며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여자 마법사에게 혓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헤헹, 난 공놀이는 농구밖에 못해요 할머니! 이런 소프트 볼은 싫어한다고요~ 하하하하핫!!”

그 말을 마친 지크는 손에 힘을 가하여 가지고 있던 파이어볼을 터뜨려 버렸고 그 광경을 본 레이필 여사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지팡이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마력을 느낀 지크의 얼굴에선 곧바로 미소가 사라졌고 그 역시 무명도에 다시 손을 가져가며 자세를 취하였다.

“해보자는 건가… 할멈? 좋아, 난 남의 친절을 사양하지 않지. 어쨌거나 할멈 다행이군… 난 내 형제 중 한 명처럼 빚을 배로 갚아주진 않으니까…!”

레이필은 지크에게서 뿜어지는 살기를 느끼며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은 후 계속 지팡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저 나이에 저런 기를 뿜어낼 수 있다니…! 상대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잠깐 멈추세요 레이필 현자! 그리고… 어쨌든 당신도!!”

그 순간 미네아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여왕은 중재를 하기 위해 긴장 상태의 둘에게 소리를 쳤고 지크는 한숨을 길게 쉬며 또다시 무명도를 거두었다.

“칫, 구경 실컷 하고서 그만두라 하는군.”

“여, 여왕 마마…?”

자신의 최대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두었던 레이필 여사는 어리둥절해 하며 지팡이와 마력을 거두었다. 두 번째의 결투가 별일 없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자 미네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레이필에게 다가갔고 자신에게 미네아가 다가오자 레이필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손으로 눈을 비벼 보다가 자신의 눈에 이상이 없자 급히 지팡이를 놓고 미네아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반가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미네리아나 마마!! 돌아오셨군요 미네리아나 마마!!!”

지크는 둘이 서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 주위를 둘러본 후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그냥 좀 있다가 안에서 반가워하지 왜 밖에서 이러는 거야… 추운데, 젠장.”


한 시간 후.

정원에서의 상황은 대충 정리가 되었고 지크는 더 이상 병사들에게 둘러싸일 걱정은 없었다. 여왕이 지크의 실수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늦은 시각인데도 알현실의 불은 다시 켜졌고 알현실 안에선 여왕과 미네아, 뒤늦게 도착한 그레이 공작과 그의 부인 레이필, 그리고 지크와 베르니카가 미네아의 귀환 환영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레이 공작은 미네아에게 예를 갖추며 간만의 재회를 나누었고 자신의 제자인 베르니카에게 사제의 예를 나누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미네아는 지크의 옆으로 다가가며 그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를 여기까지 호위해 주신 지크 스나이퍼 씨입니다. 이분의 실력은 여왕 마마나 레이필 여사께서 보셨듯이 정말 굉장하시지요. 앞으로 이 왕궁의 호위를 맡아 주십사 하고 이곳으로 모셔왔습니다.”

그 말은 지크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지크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여러분! 전 그저 미네아님과 방향이 동일하길래 동행을 한 것뿐이랍니다! 전 이곳에서 그리 오래 있진 않을 거라고요!!”

지크가 이렇게 나오자 레이필 여사와 베르니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지크는 그들이 그렇게 나오자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빈혈 사나이만 있어도 이 왕국의 호위는 끝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저 애꾸하고 할망구도 그리 약한 것 같진 않구요.”

그레이 공작은 ‘할망구’란 말이 들리자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오?”

“시끄러워요…!”

여왕 역시 지크가 몇 겹의 경비를 뚫고 들어온 점, 그리고 수만의 군사를 혼자서 쓸어버린 바이론과 잠깐이지만 대등한 결투를 벌였다는 점을 높이 인정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여왕은 지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분의 능력은 미네아가 높이 살 만합니다. 다른 분들도 속으론 그렇게 인정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거부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유감이지만 이 나라에 머무실 동안은 왕궁 귀빈의 자격을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지요.”

그 말을 들은 지크는 오른손을 꽉 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여왕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단, 지크씨는 오늘 중대한 죄를 저지르셨습니다.”

“…네?”

힘이 들어가 있던 지크의 오른손은 곧 힘없이 풀렸고 여왕은 말을 계속했다.

“이유가 있었다 해도 당신은 오늘 레프리컨트 왕국 왕성에 경비를 뚫고 무단 침입을 했습니다. 그것도 내 방에요. 또한 제 몸에 함부로 손을 댔고….”

그 대사가 나오자 이번엔 그레이 공작이 자신의 허리에 있던 검을 뽑아들며 노발대발 하기 시작했다. 지크가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레이 공작은 평소엔 조용하다가 갑자기 흥분을 하면 그야말로 폭풍과 같다는 것이었다.

“뭐, 뭐라고!!! 감히 네놈이 여왕님의 몸에 손을–!!!”

레이필 여사와 베르니카가 그레이 공작을 진정시키는 동안 얘기는 계속되었다.

“…왕궁에 단 하나뿐인 정원에 약간이지만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부상자를 다수 배출시켰으며….”

거기까지 나오자 지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하고 있는 여왕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만해요, 알아들었으니까. 원하는 게 뭐예요?”

여왕과 미네아는 빙긋 웃어 보였고 여왕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당신은 미네리아나의 경호를 하게 됩니다.”

“어, 언니!?”

그 말에 놀란 사람은 지크가 아닌 미네아였다. 여왕은 거침없이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단, 왕성 밖에서 임무를 수행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미네리아나가 원할 때 당신은 경호를 하면 됩니다.”

지크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힘없이 웃으며 여왕에게 물었다.

“후우… 언제까지요 마마?”

“…미네리아나에게 보호자가 생길 때까지입니다. 간단히 말해 미네리아나가 결혼할 때까지 당신은 미네리아나를 경호해야만 합니다.”

지크는 곧 고개를 끄덕였고 미네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지크로부터 돌려 버렸다. 베르니카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미네아를 바라보았다.

“자아, 이제 각자의 방과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세요. 짐도 이만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왕에게만 간단히 작별 인사를 받은 지크는 터벅터벅 밤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돌아간 미네아를 떠올려 보았다. 지크는 역시 자신에겐 별 관심이 없었구나 생각하면서 자신의 시간으로 수개월 전에 만나고 헤어졌던 한 여자를 떠올려 보았다. 파란 머리의 소녀를….

“…어쩔 수 없지 뭐, 난 신과는 관계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뭐 하고 지낼까 그 애는….”

휘익–♬

자신의 여관 근처를 지나던 지크는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자 소리가 들린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휘파람의 주인공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크에게 말했다.

“오면서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실실 웃으며 오는 걸 보니….”

지크는 창가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키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