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84화
“…다른 일행에게 잠시 갔다 와도 괜찮을까요?”
리오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라이아가 자신에게 소리쳤을 때 확 바뀐 린스의 표정과 옆으로 풀썩 쓰러지는 레이의 모습, 그리고 거짓말이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노엘….
“아, 가세요 리오씨. 기다리고 있을게요.”
리오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집 밖으로 나와 재빨리 일행이 있는 촌장 집으로 향했다. 그는 촌장 집 앞에서 낯선 중년의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버크의 부인이었다.
“…어머? 리오씨?”
버크의 부인은 리오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기억이 난 듯 반가움을 표시했고 리오는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예, 오래간만입니다 버크 부인. 제 일행들이 촌장님 댁에 머문다고 해서요… 잠시 들어가 봐도 괜찮겠습니까?”
버크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오에게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자, 들어가요 리오씨. 저도 마침 들어가려던 참이니 같이 들어가죠.”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리오의 눈에 띈 것은 버크와 얘기를 하고 있는 노엘, 그리고 레이였다. 리오는 버크에게 인사를 한 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고 노엘은 옆에 앉으라는 말을 리오에게 해주었다.
“버크씨 옆에 앉으세요 리오씨. 지금 버크씨에게 리오씨의 얘기를 듣고 있던 중이에요.”
리오는 움찔하며 버크를 바라보았고 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엘과 레이에게 계속 얘기를 시작했다.
“…본인도 왔으니 직접 들어 보는 게 어때 노엘?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야.”
리오는 무슨 소린가 하며 노엘과 레이를 살짝 바라보았다. 노엘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버크의 얘기를 들은 뒤 생각을 해 보는 듯했고 레이는 리오를 힐끔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다.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얘기가 돌았군….’
이렇게 예상한 리오는 가만히 노엘의 질문을 기다려 보았고 생각을 다 정리한 노엘은 리오에게 천천히 묻기 시작했다.
“저어… 리오씨는 세이아 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매우 간단하고 직접적인 질문이라 리오는 생각했다. 표정을 굳힌 채 가만히 생각하던 리오는 곧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남자의 신부가 될 사람으로는 최고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 아직 결혼에 관해선 생각해 본 일이 없고 세이아씨에 대해선 도와주겠다는 생각 외엔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리오의 말은 거기서 끝이었다. 노엘은 리오에게서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 듯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을 뿐이었다. 레이의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리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노엘은 깜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어, 어딜 가시려고요?”
리오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세이아씬 저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노엘 선생님이나 레이씨, 린스 공주님은 같은 여성이니 그 생각이 무엇인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세이아씨에게 확실히 말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상처가 크지 않을 테니까요.”
리오가 말을 마치고 나가려 하자 노엘은 급히 리오의 앞을 가로막았고 리오는 아무 표정 없이 노엘을 내려다보았다.
“잠깐만요 리오씨! 그런 말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잖아요!”
“지금 상황이 그리 급하지 않다면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12 신장이란 녀석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문에서 비켜주십시오.”
리오의 말을 들은 노엘은 순간 화를 내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저도 알아요!! 12 신장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는 리오씨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해 주셨죠, 제가 말한 나중이란 내일이나 모레 정도, 즉 출발하기 전이란 말입니다! 제가 듣기론 세이아씬 2년 동안 리오씨를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만나자마자 리오씨가 잔인한 말을 하면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되겠어요! 2년간의 기다림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요!!”
노엘이 강하게 나오자 리오는 눈을 감으며 왼손으로 자신의 앞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이 흔들릴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리오와 노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하세요 선생님! 세이아씨의 마음을 리오씨가 모르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말을 그녀의 앞에서 직접 해야 할 리오씨의 마음은요… 리오씨의 마음은 생각해 주시지 않으시나요! …흐흑…!”
노엘은 레이가 굵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소리치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레이를 바라보았고 떨고 있는 레이의 뒤에 서 있던 리오는 눈을 가볍게 뜨며 소파로 돌아가 풀썩 걸터앉았다.
“레이양… 부엌으로 가서 얘기해요. 제가 사과할게요.”
노엘은 레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갔고 버크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푹 눌러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벽 뒤에 숨어 그 상황을 다 지켜본 린스는 역시 버크와 같은 눈으로 리오를 살짝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 이제야 보이는군요. 리오란 사나이의 정신이 흐트러진 모양입니다.”
라기아는 마동왕에게 자신의 수정 구슬을 건네주었고 마동왕은 얼음 같은 차가운 얼굴로 그 수정 구슬을 바라보았다.
“오래간만에 이 녀석을 보는군… 프로토 타입 라우소를 쓰러뜨렸다는 소식이 이 녀석에 관한 가장 최근의 소식이었지. 프로토 타입이라도 강함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아주 간단히 쓰러뜨렸어. 게다가 그전엔 몰킨도 어떤 괴한에게 쓰러졌다 하고 말이야. 프로토 타입은 역시 믿을 것이 못 되는가?”
마동왕은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흰 옷의 노인에게 물었고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프로토 타입은 실험작일 뿐입니다. 아직 미완성인 그들의 진짜 육체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음… 저 남자입니까 전하?”
그 노인은 구슬 안에 비춰진 붉은 머리의 사나이-리오를 가리키며 물었고 마동왕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자신의 턱 밑에 난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인간의 육체가 기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는 합니다. 제가 있던 세계에도 BSP란 초능력 경찰이 있었으니까요. 그들 중에선 공기 중에서 초속 7Km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젊은이가 있기도 합니다. 그 젊은이의 평가 점수는 최고로 나왔지요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 리오란 젊은이가 있는 마을을 알 수 있으십니까 라기아님?”
“후우… 간단하지 늙은이. 근데 뭐하려고 그러시나, 설마 1 대 1로 붙으시려고? 호호호호홋…!”
노인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허헛, 설마요. 이 세계에서 만든 제 첫 번째 작품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첫 번째 작품이란 말을 들은 마동왕은 싸늘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후… 나찰(羅刹)을 말하는군. 좋아, 실행해 보게, 자네의 그 과학 기술이란 것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지.”
“허허헛… 영광입니다 전하.”
그 노인은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한 후 알현실을 급한 걸음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