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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90화


“이봐! 루이체!!”

지크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자 루이체는 인상을 푹 쓴 채 문을 열고 지크를 바라보았다.

“왜 오빠, 화장실 가려는데 휴지가 없어?”

“자식!”

지크는 곧바로 루이체의 머리를 쥐어 박은 후 그녀를 이끌고 자기 방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 녀석, 지금 농담할 분위기인 줄 알아!”

루이체는 지크에게 맞은 부위를 손으로 부비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자주 그랬잖아 뭐…. 근데 왜?”

“그 껌둥이가 이상해. 감기는 아닌 것 같아, 얼굴이 벌개진 걸 보니 말이야.”

루이체는 깜짝 놀라며 지크의 방문을 열었고 그녀의 눈엔 침대 위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마키의 모습이 바로 들어왔다. 루이체는 곧바로 마키의 진찰을 하기 시작했고 지크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빠 말대로 감기는 아닌데, 그리 심각하진 않은 열병이야. 마키씨는 그 더운 지방에서 계속 살았잖아, 그러다가 약간 쌀쌀한 이 고장의 날씨에 적응을 못해서 이렇게 된 걸 거야. 근데 이상하네, 밤 공기를 많이 맞아야 이렇게 될까 말까 한데… 마키씨 언제 밖에 나온 적 있었어?”

지크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녀석도 생각보다 자기 마음대로인 녀석인데. 아, 그러고 보니…?”

지크는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어제 밤 돌아오던 자신을 창가에서 맞아준 마키의 모습…. 지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멍청이, 그럼 내가 나간 후로 계속 창가에 앉아 날 기다렸단 말이야?”

지크의 말을 들은 루이체는 마키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곧 루이체의 양손에선 녹색의 빛이 부드럽게 흘러나왔고 루이체는 그 빛을 마키의 전신에 흘려 보내주었다.

“열병에 잘 듣는 주문이니까 내일이면 다시 건강해질 거야. 그건 그렇고 마키씨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 남자 치고는 체력이 약한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지크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미네아는 왕궁 정원에서 베르니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정원은 그녀의 안식처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어떤 꽃 옆에 놓인 긴 의자에 앉으며 같이 앉은 베르니카를 향해 말했다.

“다알리아는… 제가 왕궁을 떠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군요… 꽃이지만 정말 부러워요.”

베르니카는 아무 말 없이 미네아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근데 베르니카, 눈은 왜 다치셨나요?”

미네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베르니카는 당황하며 대답을 잘하지 못하였다.

“예? 그, 그것은 마마….”

베르니카가 당황을 하자 미네아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말씀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상처가 베르니카의 성격을 많이 변화시킨 것 같아서요. 예전엔 정말 불과 같았는데 지금은… 호홋, 저도 다음 말은 하기가 곤란하네요.”

베르니카는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하기 시작했다.

“마마의 말씀대로… 이 상처는 절 많이 변화시켰지요. 마마가 이 왕궁을 나가신 이후… 전 그야말로 방랑을 하고 다녔답니다. 모험도 몇 번 하고… 그런데 그 모험 중에 이름 모를 녹색 머리의 떠돌이 기사와 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었어요. 그 버릇없는 멍청이 녀석과는 달리 진지한 면이 있는 사나이였죠. 단 한방에 제 검이 날아가 버렸고 전 그때 제 부주의로 날아가는 검에 왼쪽 눈을 다쳤답니다. 다행인지… 전 안구를 다치지 않아 실명만은 하지 않았죠. 그 사나이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검으로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싶다면 이제부터 검으로 사람을 살려보라구요. 그 후로 전 검으로 사람을 살려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다녔고 벨로크 왕국의 침공 후엔 마마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말을 다 들은 미네아는 베르니카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대며 나지막이 말하였다.

“그랬군요… 전 옛날의 베르니카도 좋았지만 지금의 베르니카도 좋아요. 그 녹색 머리의 떠돌이 기사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제가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그러실 필요는… 근데 린스 공주님을 납치해 돌아다닌다는 그 남자는 누굴까요? 케톤도 제가 듣기론 많이 강해졌다고 하던데… 이 왕국엔 숨겨진 실력자가 정말 많군요.”

“글쎄요… 아, 지크씨가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강한 사람들끼리는 잘 안다고 하잖아요? 소문만이라도 들어보신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베르니카는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제가 가서 직접 물어보지요. 그렇지 않아도 할 얘기도 있었으니까요.”

미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부탁드릴게요. 아 참, 지크씨에게 제가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어제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해서 그렇답니다.”

베르니카는 속으로는 당연한 행동이셨습니다라고 말하였으나 겉으로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녀 자신도 고쳐야 할 버릇이라 부르짖는 행동이었지만 어쩔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마마. 몸 조심하시길….”

미네아는 손을 흔들어주며 바로 출발하는 베르니카에게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해주었다. 약간 홀가분한 마음으로 왕궁을 나서던 베르니카는 뜻하지 않은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말끔한 미남이었지만 표독스러운 눈초리를 가진 남자….

“호오… 베르니카 단장 아닌가? 내가 후작이라고 인사도 하지 않는 건가?”

베르니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베르니카, 라세츠 후작님께 인사 올립니다….”

라세츠는 곧바로 일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던 베르니카의 팔을 갑자기 붙잡아 자신을 향해 그녀를 끌어당긴 후 몸을 밀착한 상태로 베르니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후후… 떠돌아다녔지만 아직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은 것 같군. 하지만 왼쪽 눈에 안대를 붙이고 있어서 노엘보다 재미는 덜하겠는데…? 하하하하하핫!!”

라세츠의 입에서 노엘의 이름이 나오자 베르니카의 오른손은 곧바로 칼자루에 향했으나 그녀는 자제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라세츠를 밀어낸 후 분노가 실린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노엘을 괴롭힌 건 노엘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미네아 마마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말아주세요. 만약 마마께 손을 대신다면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 드릴 겁니다…! 그럼, 안녕히.”

라세츠는 씨익 웃으며 왕성 안으로 들어섰고 베르니카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불쌍한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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