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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92화


루이체에게 마키를 맡긴 지크는 베르니카와 함께 홀가분한 표정으로 여관을 나서 왕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베르니카는 자신이 왜 이런 건달과 함께 걸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걷는 중이었고 그녀를 힐끗 바라본 지크는 피식 웃으며 말을 걸어 보았다.

“이봐, 검술은 누구한테 배웠어?”

“검술? 그건 네가 알아서 뭐하게.”

베르니카의 무뚝뚝한 답변에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누가 가르쳤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아니라서 말이야, 헤헤헷.”

베르니카는 이제 지크의 농담엔 질렸다는 듯 머리를 감싸며 대답해 주었다.

“너에겐 곧바로 대답하는 수 외엔 없겠군. 내 검술은 어제 뵈었던 그레이 공작님께서 가르쳐 주신 거야. 이 왕국 최강의 검술사이시며 제1 기사단의 단장이시지. 젊었을 적엔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며 지금은 승하하신 지 오래된 국왕 마마의 명을 수행하셨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름이 유명하셔. 너보단 훨씬 훌륭하신 분이시니 나중에 뵐 때 정중히 인사를 드려야 해.”

지크는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베르니카는 자신의 말이 지크에게 어느 정도 통한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 늙은이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 흠… 의외야 의외.”

그러나 아쉽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문을 통과할 때 지크는 경비병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어제 밤 지크에게 두들겨 맞은 병사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크는 본체만체하며 성안으로 유유히 들어왔다.

“나한테 맞은 자리가 아프긴 아팠나 본데? 저렇게 노려보는 걸 보니 말이야. 음… 이봐 애꾸.”

베르니카는 지크를 힐끔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건달.”

“구경시켜줘, 난 성안의 길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구. 어디가 어딘지 알아야 미네아 님이 위험할 때 찾아가지. 안 그래?”

베르니카는 그도 그럴 것이다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간만에 정상인 같은 말을 하는군. 따라와, 구경시켜 주지.”

지크는 싱글싱글 웃으며 베르니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베르니카가 지크에게 가장 먼저 안내를 해준 곳은 성의 식당이었다. 물론 왕이나 고위급 신하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을 말하는 것이다. 지크는 안의 화려한 장식을 보며 휘파람을 휘익 불어 보이며 감탄을 자아냈다.

“휘이~ 대단한데? 감동적이야 정말. 이런 곳에서 식사 한번 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지크는 긴 식탁 아래에 놓여진 수많은 의자 중에 하나를 꺼내 거리낌 없이 걸터앉았고 베르니카의 얼굴은 순간 경직이 되고 말았다.

“이, 일어서지 못해! 여기가 무슨 자리인 줄 알고!!”

베르니카의 호령에 지크는 인상을 가볍게 쓰며 다시 일어나 의자를 조용히 식탁 밑에 밀어 넣고서 투덜대기 시작했다.

“호들갑은… 지금 당장 여왕 마마가 와서 식사할 건 아니잖아, 사람 참 이상하네… 쯧.”

베르니카는 자신이 너무 심했나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금방 잊어버리며 다시 지크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도서실이었다. 왕궁 도서실이라 규모는 꽤 큰 편이었으며 서재에 의해 가려지는 곳이 꽤 많아 누군가가 숨어 있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책은 싫어하는데… 하긴 뭐 이런 장소도 와 봐야 하겠지. 다른 데 가 보자구.”

베르니카는 곧이어 어제 밤 지크가 찾아 돌아다니려 했던 미네아의 방을 안내해 주었다. 물론 방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였어? 생각보다 작은 방이네? 그러니 못 찾았지… 쯧.”

지크의 말과 같이 미네아의 방은 왕궁 안에 있는 방 치고는 작은 편이었다. 왕족이라는 티를 내기 싫어하는 미네아의 성격이 실려 있는 방이라 설명하면 정답일 것이었다.

“들어가 보면 안 돼?”

“당연히 안 돼!”

베르니카는 다음에 알현실을 안내해 주기 위해 복도를 거닐었고 지크는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베르니카의 뒤를 따랐다. 도중에 베르니카는 문득 무엇인가 생각이 났는지 걸음을 천천히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음, 아까 네가 한 질문 말이야. 이제 내가 해도 될까?”

지크는 콧노래를 멈추고 베르니카를 바라보며 물었다.

“질문? 뭔 질문?”

“검술을 누구에게 배웠냐는 것 말이야. 넌 누구에게 배웠지?”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검술? 엄밀히 말하자면 검술은 아니지만… 다 내 스스로 터득한 거야. 영식부터 구백구십구식까지 존재하지. 물론 중간에 빈칸 포함해서지만. 간단히 수로 세자면 한 600가지 될까? 그 정도면 웬만한 상황에 다 대응할 수 있겠지 생각하고 있어. 헤헤헷.”

자신이 스스로 터득했다는 것엔 별로 놀라지 않은 베르니카였지만 수의 종류가 600개 정도 된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이 몇 년간 떠돌아다니며 터득한 자기류 검술은 단 세 가지일 뿐인 것을 보면 베르니카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지크는 자신의 칼, 무명도를 꺼내 들며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쓰는 칼은 도(刀)라고 해서 날이 한쪽뿐이야. 적중했을 때의 물리적 파괴력은 이런 곳에서 쓰는 대검에 비해 중량이 딸려 검에 미치지 못하지. 그 대신 약간이긴 하지만 곡선이 져 있기 때문에 뽑기가 간편해서 빠른 승부를 낼 수 있어. 무기마다 장점 단점이 있으니까 날 흉내 낼 생각은 하지 마.”

베르니카는 지크의 말을 들으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평상시엔 괴상한 말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던 지크가 무기와 무술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옳은 말’만을 하는 것이었다.

“자자, 이 얘기는 재미없으니 계속 안내나 해 줘.”

베르니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복도를 거닐었다. 그리고 알현실로 향하는 복도를 향해 꺾어지는 순간, 그녀는 불청객을 다시 한번 만나고 말았다.

“호오… 베르니카 단장, 다시 만나는군. 이번엔 인사 안 해도 좋아, 재미는 아까 충분히 봤으니까 말이야. 하하하하핫!!”

베르니카는 못 들은 척하며 라세츠의 옆으로 슬쩍 돌아 알현실로 계속 걸었다.

“뭐야, 이 녀석은?”

베르니카가 그때 실수한 것이 있었다. 아직까지 지크의 의협심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지크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라세츠의 앞에 섰고 라세츠는 황당하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하핫! ‘이 녀석’? 감히 평민 주제에 후작인 이 라세츠님에게 녀석이라고? 한번 맛을 보고 싶은 거냐!!”

라세츠는 자신만만하게,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허리춤에 장비된 장검의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쉬익-

그때, 은청색의 섬광이 라세츠의 목 언저리에서 번뜩였고 라세츠의 움직임은 순간 멎고 말았다.

“흐읍!?”

지크의 무명도는 어느새 라세츠의 목에 닿아 있었다. 물론 자른 건 아니었고 상처를 낸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닿아 있을’ 뿐이었다.

“헤헷… 너, 나랑 게임 한번 해 보지 않겠나? 상당히 재미있어, 스릴도 만점이고. 진검으로 하는 서바이벌 게임 한 판 어때?”

지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라세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칼자루에서 손을 거두었고 지크 역시 무명도를 거둔 후 베르니카에게 걸어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상당히 거슬렸어… 라세츠라고 했지? 네 목을 가질 날을 기다리마… 그리 멀진 않은 것 같으니까 말이야, 헤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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