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23화
“‥근데 바이칼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디바이너를 다 닦은 리오는 지크에게 물었고 지크는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음‥뭐 어디서 술을 마시다가 누구랑 시비가 붙어서 싸우고 있을 수도 있고‥아니면 지금 여기로 오는지도 모르지.”
리오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풋, 자세히도 말하는구나. 아 참‥그러고 보니 너 리카 기억나니?”
지크는 소파에 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신전쟁] 때에 지겹게 따라다니던 여자아이였고, 말괄량이에다가 차원의 틈으로 날려져 리오를 4년 동안이나 고생시킨 장본인이었다. 리카의 말을 할 때 지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그 애를 잊어먹어. 게다가 난 그 일이 있은 지 이곳 시간으로 보름 약간 넘었고 내 차원 시간으로는 한 달하고도 보름이 약간 넘었다고. 합계로 보면 한 두 달 되었나? 그러니 인상착의도 정확히 알고‥으읏!?”
눈을 감은 채 계속 꿍얼거리던 지크는 순간 눈을 번쩍 뜨며 몸을 일으켰고, 리오는 의아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응? 왜 그래?”
지크는 말없이 멍하니 앞을 바라본 채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자리에 누우며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 오늘 애꾸눈이 적어준 일정이 생각나서. 걱정하지 마.”
“흠‥그래?”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파래지는 하늘을 창문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별 생각 없이.
21장 [기억의 저편]
정오 무렵, 지크는 인상을 가득 쓴 채 왕성으로 향했다. 경비병들은 지크가 베르니카에게 끌려오지 않고 스스로 나오는 모습을 보자 깜짝 놀라며 지크를 바라보았고 그런 경비병들의 모습을 본 지크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뭘 봐! 구경났나!!!”
경비병들은 움찔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크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에 들어선 지크는 곧바로 린스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반응한 사람은 노엘이었다. 노엘은 안경을 고쳐쓰며 문을 살짝 열어보았고, 문밖엔 진지한 표정의 지크가 서 있었다. 그런 표정의 지크는 본 일이 별로 없었던 노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 지크씨? 무슨 일로 오셨죠?”
지크는 눈을 좌우로 한 번 굴린 후 간단히 말했다.
“공주님 있나요?”
노엘은 고개를 끄덕였고 지크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억지로 들어온 것이라 노엘은 당황했지만 지크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 린스가 책을 들고 개인 서재에서 나오고 있었고 지크는 짧게 한숨을 쉰 뒤 린스의 앞에 다가섰다. 갑자기 지크가 자신의 앞에 서자, 린스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평소 때와 같은 반응을 나타내었다.
“뭐야 마른 꺽다리? 볼일 있어?”
가만히 린스를 바라보던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노엘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
“잠깐 나와 봐요 안경 선생.”
노엘은 소리 없이 끌려나갔고 린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투덜댈 뿐이었다.
“이상한 녀석이네‥?”
복도로 나온 지크는 노엘을 벽에 몰아놓고 양손으로 노엘의 어깨 위의 벽을 짚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지크의 눈초리를 본 노엘은 이상하게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크는 천천히 물었다.
“한 가지만 물읍시다. 린스 공주님 이 나라 여왕의 양녀 맞죠?”
노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네‥그렇긴 합니다만 그건 우리 왕국의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그것 때문에 이러시나요?”
대답을 들은 지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언제 양녀가 됐죠?”
노엘은 가만히 생각한 후 대답해주었다.
“음‥그러니까 그레이 공작께서 데려오신 공주님을 여왕님께서 만나신 것이‥10년 전이었을걸요?”
지크는 순간 눈을 크게 떴고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지, 진짜에요!? 10년 전입니까? 4년 전이 아니고요?”
노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요, 어렸을 때 사진도 다 있지요. 첫 생일 초상화도 있고, 진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초상도 있어요. 공주님께 부탁하면 보여드릴 걸요?”
그 말을 들은 지크는 허탈한 표정으로 벽을 짚은 손을 떼었고, 노엘은 의아한 눈으로 지크를 계속 바라보았다. 지크는 힘없이 복도를 걸어가다가 순간 벽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젠장!! 그럴 리가 없어!!!”
지크가 후려친 벽은 깊숙이 구멍이 뚫렸고, 지크는 복도를 뛰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크가 벽을 치는 소리에 놀란 린스는 밖으로 나와 보았으나 노엘이 무사하자 화를 펄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저 녀석이 사람을 겁주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노엘은 한숨을 쉬며 린스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던 노엘은 지크가 뛰어갔던 복도를 슬쩍 본 후 완전히 문을 닫았다.
“‥분명해, 뭔가 있어! 떨어진 지 두 달밖에 안 돼 내 기억도 확실하고 그 애가 19살이 되었다 해도 여자라서 목소리는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확실해! 게다가 그 말투까지!!”
장식 석상 하나를 때려 부순 뒤 그 파편 위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중얼거리던 지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레이 공작의 저택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작과 공작 부인은 여왕과 가까운 사이라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짜고짜 공작을 불러놓고 노엘에게 던진 질문과 유사한 질문을 한 지크는 가만히 공작의 대답을 기다렸다. 공작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이 10년 전에 양녀가 된 것은 이 수도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지. 허헛, 난 또 무슨 심각한 일인가 했군.”
기대했던 대답과 판이하게 멀자 지크는 한숨을 푸우 쉬며 다시 한 번 물었다.
“‥4년 전에 양녀가 된 게 아니고요?”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10년 전 린스 공주님의 친부모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울고만 있던 린스 공주를 성에 데리고 온 게 바로 나였다구. 그 근처 주민들에게 물어보게나. 확실하지, 암.”
가만히 바닥을 바라보던 지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방해만 드렸네요.”
“아니, 괜찮네. 근데 무슨 일인가? 자네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니 궁금해지는데 그래?”
지크는 허탈한 모습으로 방문을 나서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쉬십시오.”
지크가 문을 닫고 나간 후, 공작은 한숨을 쉬며 한 달에 하나 필까 말까 하는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길게 뿜어낸 공작은 지크가 들어오기 전에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펴 읽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나온 지크는 발코니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감각이 틀린 것 내지는 단체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지크는 만약 거짓이라고 할 때 그들이 왜 이렇게 완벽한 각본으로 린스의 정체를 정당화시키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가 잘못된 건가‥이건 나중에 밝혀지겠지 할 문제가 아닌데‥. 잘못하면 모르고 넘어가서 리오 녀석이 계속 떠돌아다닐 수 있다구. 미치겠네‥.”
“‥무슨 걱정 있으십니까?”
지크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가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지크는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짜증을 냈다.
“으‥아니에요, 아가씬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 그건 그렇고 리오 녀석은 어디 갔나요?”
다시 발코니에 기대어 다른 곳을 바라보며 지크가 묻자, 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레이필 현자님과 나가시는 것을 봤습니다. 왜 나가셨는지는 잘‥.”
“‥마법 할머니와 나갔다고요, 알았어요. 볼일 보세요‥.”
말을 마친 지크가 발코니에 매달리듯 기대며 힘없이 한숨을 쉬자, 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발코니에 서서 생각을 한 지 한 시간째, 이번엔 마키가 지크에게 다가왔고 자신이 다가오는 것조차 지크가 느끼지 못하자 마키는 인상을 쓰며 지크의 다리를 툭 건드려 보았다.
“으앗!”
살짝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휘청거렸고 그 모습을 본 마키는 의아한 눈으로 지크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보통 땐 몇 발자국 걸었나도 알아맞히더니 오늘은 빈틈까지 있네?”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키를 바라보다가 다시 발코니에 기대며 말했다.
“상관하지 마, 오래간만에 머리 좀 굴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지크의 말을 들은 마키는 떫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대듯 말했다.
“쳇, 근육으로 이루어진 뇌도 돌아가긴 하나 보군.”
마키는 즉시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지크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노을이 질 무렵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여전히 발코니에 있었다. 공작의 가족들까지 와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 식사 안 할 거냐 물어도 지크의 대답은 같았다. 결국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지크는 자리를 뜨게 되었다.
“‥추리소설 좀 읽어 보는 게 좋겠군. 빌어먹을‥방법이 없잖아!!!!”
약간 크게 소리를 친 지크는 방으로 가며 이젠 자신이 루이체를 닮아가는 게 아닌지 또다시 걱정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