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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24화


늦은 밤, 리오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레이필이 낮에 말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로는 지금 리오가 있는 공간이 다른 차원과 가까워지고 있어서 이차원(異次元:다른 차원)의 마물들이 이곳 저곳에서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이차원의 마물들은 자신의 종족 이외에 모든 생명체를 증오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컸고, 또한 다른 차원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말은 1000년 전 여신들에 의해 둘로 나눠진 세계가 다시 하나가 된다는, 즉 여신들이 다시 세상에 강림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리오를 비롯한 일행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왜 나눠졌던 차원이 다시 하나가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벨로크 공국에서 왜 차원을 하나로 만들려 하는 거지‥? 차원이 떨어져 나간 이유도 모르는데‥설마 여신들이 불쌍해서 다시 하나로 만들려는 건 아닐 테고‥.’

똑똑–

계속 고민 중이던 리오의 기분을 전환시킨 건 노크 소리였다. 리오는 늦은 시간에 누굴까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곧 문이 열렸고 들어온 사람은 리오에겐 의외의 인물이었다.

“자식, 존댓말을 써 주다니 많이 착해졌구나.”

지크가 들어온 것을 본 리오는 피식 웃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고 지크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흘끔 지크를 본 리오는 그가 어쩐 일로 심각한 표정을 짓나 궁금증이 일었다. 지크는 천천히 말했다.

“‥너, 린스 공주를 어떻게 생각하냐?”

“뭐? 후훗‥이젠 별걸 다 물어보는구나.”

리오는 또 무슨 말인가 하며 웃었으나 지크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크는 계속 말했다.

“‥목소리랑 얼굴 등‥누구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어?”

지크의 얘기가 거기까지 나오자, 리오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너도 이제 알았냐‥?”

그 말에 지크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응!? 너도 안단 말이야??”

지크의 목소리가 커지자 리오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계속 말했다.

“당연히‥4년 동안이나 찾아다녔는데 내가 왜 모르겠어. 이 수도에 온 직후 알게 되었지. 하지만‥지금 너나 내가 파고들어 봤자 그 애는 자신이 과거에 누구였다는 걸 알지 못해. 누군가가 그 애의 과거를 모두 지워버리고 다른 여자아이의 기억을 밀어 넣었기 때문이야. 예전과 같은 건 버릇뿐이지. 말투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하지만 난 이제 그 애에 대해선 손 떼기로 했어.”

지크는 리오의 다음 말이 어떤 건지 예상할 수 있었으나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왜지?”

“왜긴 왜냐, 리카가 지금 19세가 되어 원래 있던 장소에 돌아가 봤자 그 애는 혼자가 될 뿐이야. 그리고 그쪽에서도 거의 죽었다고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처음 내가 찾으러 간다고 했을 때부터 클루토 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사실 나도 그랬지, 보통 사람이 차원 이동을 할 때 잘못하면 몸이 틀어져 버리거든. 시간차 때문에 그런데, 우리들은 거의 영향을 안 받지. 하지만 리카는 보통 사람이야. 만약 네가 있는 차원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하지만 운이 좋게도 같은 시간대의 차원에 떨어졌고, 더욱 운이 좋게도 공주까지 하고 있지. 어떻게 보면 그 애를 비롯한 모두에겐 더 좋을지 몰라. 물론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말이야. 결국 난 그 녀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악당이 되고 마는 거지. 후훗‥.”

리오의 말을 듣는 동안 지크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며 리오에게 물었다.

“‥이 왕국 사람들, 어째서 단체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 애의 진짜 정체를 말 안 하는 걸까?”

“‥나도 모르지. 무슨 중대한 이유 아니면 여왕의 체면 지키기, 둘 중 하나일 거야. 난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마법을 써서 남의 기억을 지운 후 다른 기억을 밀어 넣는다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 이상으로 좋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지크는 머리를 긁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고, 리오는 지크를 흘끔 보며 물었다.

“가냐?”

지크는 문을 열고 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문이 닫히고 지크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리오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싱거운 녀석‥.”


1부 종장 [여신강림]

시간은 흘러 흘러 레프리컨트 왕국의 최대 행사인 검술 대회의 기간이 되었다. 참가자의 제한이 그렇게 엄격하진 않기 때문에 당연히 참가자는 많게 되었고 대회 기간만 해도 12일이나 되었다.

개회식 때 린스 경호 겸 대회장에 있던 리오는 개막 경기를 보며 하품만 연발하고 있는 린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재미없으신가 보죠?”

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싸우는 것만 하도 봐가지고 그런가 봐. 이번 대회 우승도 케톤이 할 것 같네. 아휴‥.”

리오는 피식 웃으며 경기 참가 전사들이 1대 1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린스의 말대로 정말 재미없게 싸우고 있었다. 계속 구경하던 리오는 결국 흥미를 잃고 참가자 명단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거의 책 수준인 두꺼운 명단을 뒤적거리던 리오는 순간 깜짝 놀라며 린스를 바라보았다.

“엇? 공주님, 그레이 공작님도 출전하시나요?”

“응, 상업 효과 때문이라나? 계속 뒤져보면 만만치 않은 것도 나올 거야.”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명단을 계속 뒤져보았다. 그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은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이름은 익히 들어왔던 케톤의 할아버지, 하롯·프라밍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었고, 세 번째로 놀란 것은 자신과 지크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아연실색하고 있는 리오를 돌아본 린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히힛, 내가 적었지! 자자, 다음 경기가 네 차례니까 빨리 나가라구!”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힘없이 웃어버렸고 린스의 명령대로 경기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후‥빨리 도망갈걸 일이 꼬이는 바람에‥젠장, 어쩔 수 없지. 몸이나 풀어 보는 수밖에. 어차피 지크 녀석도 결승전에나 만날 것 같으니 우승은 케톤에게 양보해 줘야지 뭐.”

리오는 아직 대결이 끝나지 않은 석재 경기장 근처에서 어정거리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으악! 할아버지!! 저 사람 좀 봐요!!!”

귀빈석에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개막전을 보고 있던 케톤은 경기장 근처에서 약간 인상을 쓴 채 어정거리는 리오를 보고 옆에 앉은 자신의 할아버지 하롯·프라밍에게 소리쳤고 하롯은 자신의 손자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 녀석! 공개 석상에서 난리를 피우면 어떻게 하느냐! 그건 그렇고 저 젊은이가 뭐길래 네가 놀라느냐?”

케톤은 머리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일이 있던 리오란 프리·나이트에요. 으‥이번 대회 우승은 아무래도 제가 못할 듯하네요.”

하롯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네가 우승하지 못할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단다.”

케톤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그럼 리오씨가 나올 것을 알고 계셨단 말이에요?”

하롯은 자존심이 상했던 듯 손자의 머리를 다시 쥐어박았고 팔짱을 끼며 당당히 말했다.

“저런 건달은 몰라, 이 레프리컨트 왕국 최고의 검술사 하롯·프라밍이 참가한 이상 넌 내 손자라도 절대로 우승 못 해! 우하하하하–!!”

그 소리를 멀리서 들은 그레이 공작은 깜짝 놀라며 멀리 떨어져 있는 하롯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이 노망난 늙은이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노, 노망난 늙은이!? 저 치매 환자가 왜 여기까지 와서 망발을 하느냐!!!!”

멀리서 귀빈석의 소동을 지켜보던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라이벌끼리 신경전이 치열하군‥.”

그러는 동안 개막전은 끝났고 다음 차례인 리오는 오래간만에 공식 석상에 나오는 것이라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경기장 위에 올라섰다. 상대편은 이미 올라온 상태였다. 모닝스타 두 개를 거머쥔 거한이었는데 리오의 눈엔 그리 신통하게 보이진 않았다.

“자아, 오너라 빨간 머리!!”

리오는 여유 있게 팔을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예상도 못한 채 갑자기 나온 거라 좀 살살해줘 친구. 며칠 놀아서 말이야‥그럼 부탁해.”

디이이잉–

예선전은 선수 소개도 없었다. 그냥 시작 종만 울릴 뿐이었다. 리오는 더욱 더 후회하며 린스가 앉아 구경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린스는 잘 싸워 보라는 듯 히죽 웃어주었고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엇.”

시작 종이 울렸다는 걸 잊은 리오였다. 그의 앞엔 이미 모닝스타가 날아오고 있었고 리오는 입을 동그랗게 하며 모닝스타를 슬쩍 피했다. 거한은 다른 모닝스타를 연속으로 휘둘렀으나 리오는 역시 손쉽게 피하였다. 몇 번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거한은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고 리오는 관중들의 야유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손을 풀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지. 하기는 싫지만 또 지기는 싫거든?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자자, 오너라.”

리오는 천천히 디바이너를 뽑아 들었고 케톤과 린스는 똑같이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끝났네.”

“쿠우아아아아아앗–!!!!”

거한은 괴성과 함께 모닝스타 두 개를 동시에 휘두르며 리오에게 달려들었고 리오는 가만히 서서 디바이너로 어깨를 두드리며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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